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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Chapter.5 Corrupted Flame Lord(3)
꽉 쥐어진 그의 주먹 사이사이에서 검푸른 화염이 끝없이 일었다. 그러나 련화는 탈라스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른 탈라스는 련화를 향해 발을 떼었지만, 류드나르의 마법에 당한 피해가 남아 발을 뗄 때마다 휘청거렸다.
련화는 그런 탈라스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몸으로 뭘 어쩌겠다는 건지.”
한숨을 푹 내쉰 련화는 살짝 입술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탈라스는 그 내용을 들은 듯, 부르르 몸을 떨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련화는 그런 탈라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냥 가라고…….”
막 말을 꺼내려던 련화를 향해, 갑자기 화염이 날아들었다.
화들짝 놀란 련화는 두 손을 들어 올려 날아든 화염을 막아 내었다. 식은땀마저 흐르는 것이, 기습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후아―. 갑자기 이러는 건 반칙이잖…… 으아악!”
세기도 힘들 정도의 화구가 련화를 향해 무더기로 날아들었다.
날아드는 화구를 보며 화들짝 놀란 련화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며 손을 놀렸다. 그러자 련화를 노리고 날아들던 화구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간간이 지척까지 다가온 화구들도 있었지만, 련화는 그럴 때마다 손을 놀려 화염을 쳐 냈고, 련화를 향해 날아들던 화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엄청난 빠르기로 날아든 화구들을 다 소멸시킨 련화는 숨을 몰아쉬며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탈라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련화의 귀에, 단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화 형, 위!”
“에?”
련화는 고개를 들었다.
“우악!”
검푸른 화염으로 만들어진 새가 날아들었다. 급히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 련화는 빠르게 주문을 외워 그것을 없애고는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때,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탈라스가 입을 열었다.
“역시.”
“응?”
탈라스는 련화를 노려보았다.
“속아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
“에…… 들켰네.”
“건방진 것들!”
송곳니를 잔뜩 드러낸 채 련화를 쏘아본 탈라스는 다시 수십 개의 화구를 만들어 냈다. 그 모습에 울상을 지은 련화는 단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지?”
“나보고 어쩌라고!”
“에에, 너무하잖아.”
투덜거린 련화는 반투명한 방어막을 치곤 다시 말했다.
“텔레포트로 도망가 버릴까.”
“일 크게 벌려 놓고 도망가려고!”
“농담이야, 농담.”
한참을 더 투덜거리려던 련화는 갑자기 느껴진 충격에 몸을 떨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탈라스가 불러낸 화구가 계속해서 련화의 방어막에 부딪쳤다. 그때마다 빛을 내뿜던 방어막이 어느 순간 깨졌고, 련화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주문을 외우며 손을 뻗었다.
다섯 개의 빛이 련화의 손에서 내뿜어졌다.
그것들은 탈라스가 만들어 낸 화염과 충돌해 폭발을 일으켰다. 자신이 불러낸 화염이 모두 폭발했다는 것에 이를 간 탈라스는 다시 거대한 화염을 불러내었다.
“죽어 버…….”
그 순간, 붉은 화염이 탈라스를 덮쳤다.
탈라스를 덮친 화염은 그의 바로 앞에서 거대해졌다. 그러고는, 사방을 가득 채우며 하늘을 향해 빠르게 치솟으려 하고 있었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련화를 노려보던 탈라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탈라스는 급히 고개를 돌려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몸을 피했지만, 이미 그의 앞으로 다가온 화염은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크, 크아아!”
순식간에 거대해진 화염이 다시 한 번 탈라스를 집어삼켰다.
붉은 화염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탈라스는 물론 그 주변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쓸어버린 화염은 아직도 삼킬 것이 남았다고 주장하려는 듯이 계속해서 뻗어 갔다. 남아 있던 성벽 일부가 다시 그 화염에 쓸려, 폐허 같은 모습과 잔 부스러기만을 남기곤 사라져 갔다.
“하, 하하…….”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을 본 류드나르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단설은 곧 도리질을 치고는 류드나르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거 쓰지 말랬잖아!”
“……흑마법이잖아?”
눈을 크게 뜬 련화는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느낌에 움찔한 류드나르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련화를 보았지만, 련화는 잠시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정리 됐으니까 다행이지, 뭐.”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른 단설은 류드나르의 어깨를 붙잡고는 류드나르를 마구 흔들며 말했다.
“흑마법은 마족 힘을 빌리는 거란 말이야! 그런 걸 쓰면 어떡해!”
“그게 뭐 어때서?”
“우아아악!”
단설은 괴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류드나르를 흔들었다.
“마족 힘을 빌려서 마법을 쓰면 그 마족 힘이 더 강해진단 말이야! 마족의 힘을 빌린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 마족이 남에게 힘을 빌려 줄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행위라구! 게다가 그냥 마족도 아니고 마왕 힘을 빌린 주문을 쓰면 마왕을 마신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잖아! 그런 걸 계속 썼다간 파멸이야, 파멸!”
단설은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그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너무도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만!”
“잠깐이고 뭐고! 쓰지 말라면 쓰지 말란 말이야!”
“어, 어지러워!”
단설을 밀쳐 낸 류드나르는 두 손을 관자놀이에 대고는 정신을 수습했다.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인지 한참이 지나도 머리가 띵했다. 그래서 잠시 신음을 흘리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좌우로 몇 차례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아아, 머리야. 그런데 왜 쓰지 말라는 거야?”
“아까 들었잖아!”
“어지러워서 뭘 들을 수가 있어야지.”
“후―. 그러니까 말야…….”
단설은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련화의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뭐. 써도 별 상관없을걸?”
“무슨 소리야?”
도끼눈을 뜬 단설을 보곤 움찔한 련화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아…… 어차피 저런 마법 한두 번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구. 그저 그런 마족이라면 모를까, 마왕씩이나 되는 존재가 힘 몇 번 빌려 쓰는 걸로 더 강해질 리가 없잖아. 적어도 천 번 이상은 써야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영향이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
“아악! 그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겨우 공무원밖에 못하는 거야!”
“공무원이 뭐가 어때서!”
평소답지 않게 버럭 소리를 지른 련화의 모습에 움찔한 단설은 에엑 하는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을 부릅뜬 단설은 다시 소리 질렀다.
“박봉이잖아!”
“…….”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무릎을 꿇은 련화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단설은 류드나르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쓰지 마. 알았지?”
“저기 말야…….”
“쓰지 말라면 쓰지 마!”
“앞으론 쓸 기회도 없을 거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놀란 류드나르와 단설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갑작스런 폭발이 둘을 덮쳐, 류드나르와 단설은 수십 야드를 구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뭐, 뭐…….”
놀란 류드나르는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든 단설은 눈앞에 나타난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돼!”
몸이 반쯤 날아간 탈라스가 허공에 떠 있었다. 찢겨 나간 부분에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유령을 연상케 했고, 그 주변에 떠 있는 검푸른 화염은 마치 도깨비불같이 사방을 휘저으며 날고 있었다.
그렇게 떠돌던 불덩이 하나가 그대로 류드나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급히 그것을 피해 낸 류드나르는 멀찍이 떨어져서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날아드는 불덩이들을 다 피할 수는 없어, 류드나르는 네 번째로 날아든 불덩이에 직격당했다.
급히 주문을 외우던 단설 역시 폭발에 휘말려 뒤로 튕겨 나갔다. 그나마 련화는 급히 얼음벽을 만들어 버텨냈지만, 계속해서 날아드는 불덩이들에 신경 쓰느라 다른 것에 손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불덩이를 쏘아 내면서도 신음을 흘리던 탈라스는 쓰러진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덕분에 백 년은 요양해야 되게 생겼다. 절대로 네놈만은 죽여 버리겠…….”
“죽는 건, 너다.”
“뭣!”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몸을 돌린 탈라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녹색 빛이 도는 검이 반밖에 남지 않은 탈라스의 몸에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보며 눈을 부릅뜬 탈라스는 한쪽만 남은 손을 들어 올려 검을 잡은 상대를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검과 마찬가지로 연녹색 빛을 머금은 주먹이 탈라스의 머리를 강하게 찍었다.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반쯤 남아 있던 탈라스의 몸이 갑자기 푸른 화염에 휘감기며 스러져 갔고, 그의 주변에 떠 있던 불덩이들도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끄, 끝났다.”
정신없이 불덩이들을 피하던 련화는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들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건가.”
“악덕 고용주…… 아니, 악덕 전직 고용주에게 붙잡힌 몸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한숨을 내쉰 련화는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엘라인 경은 왜 이제 온 거죠?”
“묻지 마라.”
눈살을 찌푸린 엘라인은 쓰러진 류드나르와 단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귀찮게 됐군.”
“예?”
“봤을 거 아닌가.”
“아아.”
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류드나르가 쓴 마법 때문이리라.
“그건 제가 처리할 테니까, 저 시말서 안 쓰게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대로라면 무단결근 처리된다고요.”
“내 알 바 아니다.”
“치, 치사해! 안 그래도 박봉인 공무원 월급 깎이길 바라는 거죠!”
“……공무원 놀이는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놀이라니요! 내 평생직장이라고요!”
“그 평생은 몇 년일지 모르겠군.”
고개를 저은 엘라인은 사방을 둘러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시말서는 쓰지 않게 해 주지. 그러니까, 이곳을 정리해 주지 않겠나.”
엘라인의 말을 들은 련화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계장으로 승진시켜 주면 좋겠…….”
“없던 일로 하지.”
“우아아! 농담이에요, 농담!”
련화는 급히 도리질을 쳤다.
“시말서 안 쓰게 되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제발 제가 처리하게 해 주세요!”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너, 너무해요!”
“시말서나 열심히 쓰도록.”
“우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