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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쾌 1권(2화)
1장 모든 것의 시작(2)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의 수하 두 명이 남몰래 나라에서 금지한 곳에서 사냥을 하다 잡혀 현장에서 즉참되었다.
수령은 이 모든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지껄여 댔다.
옥에 갇힌 아버지는 매일 고문과 매질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매질에도 아버지는 거짓 자백을 하지 않았다.
우선은 증거가 부족했고, 세상의 평판은 아버지 편이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웃 고을 수령들이 상부에 탄원을 할 움직임까지 있어 수령은 차선책으로 금 열 냥에 석방해 주겠다는 조건을 걸어왔다.
금 열 냥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금 한 냥이면 아버지가 꼬박 일 년을 사냥해도 모을까 말까 한 금액이다. 내가 사는 고을 사람들을 탈탈 털어도 구경하기 힘든 그런 금액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니 수령이 아버지를 이참에 단단히 엮을 모양이었다.
아무리 이 고을 저 고을을 뛰어다니며 호소해도 사람들 역시 도움을 쉬이 줄 수 없었고 이것은 아버지를 따르는 엽사 무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구원의 손길은 쉽고 빠르게 다가왔다.
강 건너 이웃한 큰 고을에 사는 부잣집에서 금 열 냥을 선뜻 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이번에 남쪽 국경에 새로 교체되는 주둔군(駐屯軍)에 포함되는 군역(軍役)을 그 집 큰아들 대신 내가 짊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극렬히 반대했다. 차라리 당신의 목을 내놓을지언정 나를 보낼 순 없다고 절규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끈덕지게 설득했다.
풍문에 밝은 아대 형의 말을 빌어 새로 구성되는 주둔군을 총지휘하는 관리가 개봉에서도 이름난 문관(文官) 출신으로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기로 유명하고, 부하들을 마치 제 가족같이 여기므로 하급 병졸이라도 엉뚱하게 화를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쪽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남쪽 국경은 그 흔한 도적 떼 하나 나타난 적이 없어 오 년간의 군역 기간 동안 놀고, 먹고, 살찌다 오는 곳이라고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또 아삼의 둘째 형인 아소(阿少) 형도 이번 군역에 자원한다고 하니 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아버지를 졸랐다.
결국 아버지는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그날 옥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눈에 찌꺼기 같이 말라붙어 있던 것이 피눈물이었음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군역을 떠나기 전날까지 수십 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어머니의 위패를 품에 안고 우시던 아버지는 마지막 날 저녁 내 목에 작은 목걸이를 걸어 주셨다.
뒷면에 어머니의 성 연(淵) 자가 음각된,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했다.
간단한 짐만 휴대한 채로 다른 군역자들과 함께 길을 떠나는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슬픈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십사 년 동안 살아왔던 고향을 등지고 가는 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무엇보다 당분간 아버지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나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행렬이 안보일 때까지 언덕에 서서 손을 흔드시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끝으로 나는 눈물을 거두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 * *
“야! 야야야! 아! 씨앙! 빨리 안 뛰어?”
거칠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십칠 번(十七番)이라 적힌 군막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비호(飛虎)는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마냥 서둘러 거친 목소리의 장본인 앞으로 뛰어 갔다.
“너 이 새끼, 내 허락 없이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비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주위를 흘끗거리며 말했다.
“저기…… 백육 번(百六番) 군막 장이(張二) 어르신이 심부름 시키셔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명치 바로 아래쪽에 지독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숨이 헐떡거렸다.
“야! 지금 밥 나올 시간 된 거 몰라? 내 거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덜 들어가 있으면 확 얼굴 가죽을 뜯어 버릴 줄 알아, 이 똥통 같은 새끼야!”
바닥에 엎어져 침을 게워 내고 있는 비호는 큰 체구의 사내 두삼(杜三)을 올려다보며 진정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커윽! 예, 두삼 어르신!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당장 뛰어가서 식사 잘 챙겨 올게요.”
비호를 노려보던 두삼은 침을 뱉으며 군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가던 큰 콧구멍의 사내가 이죽거렸다.
“키킥. 이 오평(吳坪) 나리는 국물 한 방울에 손가락 하나씩이다. 알지? 키키킥.”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오평이라 불리는 사내도 곧 사라졌다.
조금 더 바닥에 엎어져 숨을 몰아쉬던 비호는 곧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군막에는 여섯 사람이 더 있었으나 누구 하나 말리기는커녕 이 상황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비웃음을 흘리며 즐기는 모습까지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른 비호는 빠른 걸음으로 군막을 빠져나왔다. 각 소부대 단위별로 배식 시간이 따로 있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아예 국물 한 방울도 구경 못한다.
배급 줄 맨 앞에 도착한 비호의 손에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큰 나무판 하나가 들려 있다.
고기 몇 점에 야채 조각이 섞인 국물 두 그릇과 아직도 물기가 반들거리는 이름 모를 곡물들이 버무려져 있는 밥 그릇 두 개. 그것을 판에 올려주는 보급병 왕첨(王沾)은 비호 뒤에 줄 서 있는 병졸들을 힐끗 보더니 고기 한 점을 더 올려준다.
“감사합니다.”
왕첨은 비호에게 말없이 그냥 가 보라는 눈짓을 했다.
줄을 빠져나온 비호는 서둘러 뛰어나갔다. 혹여나 국물이 튀기라도 할까 봐 무척이나 신경 쓰는 모습이 전에도 크게 경을 친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가로이 나무 아래에 앉아 지나가는 개미들을 소도(小刀)로 쿡쿡 찔러 죽이고 있는 두삼과 오평이 보이자 비호는 더욱 긴장한 듯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배급받은 식사를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뭐야 이거 썅! 고기가 이게 다야? 오다가 몇 개 집어 처먹은 거 아녀?”
받은 배식을 보지도 않고 소도를 흔들거리며 두삼이 눈을 부라린다. 오평 역시 국물의 높이를 손으로 재는 시늉을 하며 비호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부탁해서 더 받아 온 거예요.”
“아우 젠장헐. 겨우 이거 처먹고 그 더럽게 힘든 훈련을 또 받으라구? 미친.”
두삼의 불평을 들으며 비호는 불안해 보이는 눈알을 굴리며 오평을 쳐다본다.
“뭐야! 꺼져! 어르신들 밥 먹는데 재수 없으니까.”
괜히 더 있다가 또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몰라 비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배식 줄에 시간 맞춰 도착한 비호는 제일 마지막 순번으로 배급을 받았다.
역시나 야채조차 떠 있지 않은 국에 한 그릇의 반도 안 되는 양의 밥이다. 이것도 감지덕지라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식사를 받아 가는 비호를 왕첨이 불렀다.
“호야. 잠깐 이리 와 봐라.”
“네? 아, 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왕첨은 안으로 비호를 데려가 밥그릇 아래에 큰 고기 한 점을 깔고 다시 밥을 더 덜어 줬다.
“안 보이는 데 가서 먹어. 아직 몸도 덜 나았을 텐데 잘 먹어야 또 내 심부름해 줄 것 아니냐.”
싱긋 웃으며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 코끝이 찡하다.
“네 형님. 빨리 나아서 형님이 시키시는 것들 제일 먼저 다 해 드릴게요.”
누가 볼세라 가까운 군막 뒤로 숨어 식사를 하는 비호의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얍!!”
“아코! 아소 형.”
난데없이 뒤에서 껴안은 통에 지레 놀라 오줌까지 찔끔한 비호는 상대가 아소임을 알자 적이 안심하는 눈치다.
“또 요기 숨어서 혼자 남은 밥 챙겨 먹고 있냐? 에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아소였지만 어느새 손에는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들려 있다.
“헉! 그거 저 주실 거?”
“너 좋아하는 토끼 고기다.”
“고마워요 형.”
늘 이렇게 챙겨 주는 아소 형이 고맙기 만한 비호였다.
“몸은 어때? 이제 좀 살 만해?”
“네……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가끔 어지러울 때 빼고는 아픈데 없어요. 이제는.”
“다행이네. 그땐 정말 너 죽은 줄 알았다. 사망자 명부에 네 이름이 올라 있었으니 말 다했지. 두 달 넘게 죽어 있었으니 이제 맛난 것 좀 챙겨 먹고.”
“그러게요. 그 몹쓸 병 때문에 많은 분들이 가셨는데 전 이렇게 살아 있으니…….”
지난 세 달여 동안 군진을 휩쓴 전염병 때문에 많은 생목숨이 사라졌다. 주둔한 지 약 반년만의 일이었다.
“그나저나 저 걱정이에요. 벌써 세 달째 아버지께 소식을 못 보내드려서…….”
“그렇긴 하다. 처음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갈 때 보냈던 보급 부대가 마지막이었으니 비(飛) 아저씨도 애가 많이 타실 거야.”
“저 많이 불안해요. 혹여나 아버지께서 잘못된 소식이라도 들으셨다면요. 처음에 다들 저 죽은 줄 알았을 때요. 죽은 사람들 명부를 각 지역 관청에 보고하는 게 관례라면서요?”
비호는 흔들리는 눈으로 아소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 마라. 우리 같은 깡촌 마을은 그런 명부가 들어가려면 한참 걸린단다. 이번에 출발하는 병사들 중에 소칠(小七)이도 포함된다고 하니 네가 건강하단 걸 네 아버지께 정확히 알려드릴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휴!”
비호는 아버지가 잘못된 소식을 먼저 접할까 두려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듯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온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건 그렇고 그 말종들 아직도 그러냐?”
두삼과 오평을 말함이다. 돌림병으로 약 삼백에 달하는 인원이 줄어들어 인근 로(路)에서 급하게 차출해 오느라 죄수나 건달패가 많이 섞여 들어왔는데 이 두 놈도 그중 일부였다.
문제는 이 두 놈들이 같은 군막에 있는 비호를 제 하인처럼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틈나는 대로 폭력을 휘두름에 있었다.
“형. 제가 조금만 참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처럼 그냥 넘어가요.”
“그래도 너 고생하는 것만 보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진짜 둘 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인데…….”
“형은 꼭 훌륭한 장수(將帥)가 되어야죠. 군영(軍營) 내에서 문제 일으키면 끝장인 거 알죠? 지켜보는 눈이 많네요.”
“안다, 알어. 그래서 내가 더 한심해.”
군에 투신해 지위 높은 장수가 되는 것이 꿈인 아소는 지금 주둔군 내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장군 직속 정찰 부대의 삼조장(三組長)으로 복무 중이다.
비호의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준 활 솜씨는 이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토끼 고기를 뜯는 비호를 말없이 바라보던 아소는 곧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해.”
“에?”
뜬금없는 아소의 말에 비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바로 위쪽 지방에 뭔 일이 있는 모양이야.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윗분들 표정이 근래 보기 드물게 어두워 보여서 말이지.”
한가득 물었던 고기를 다 삼킨 비호가 간신히 물었다.
“여기랑 크게 상관이 있는 일인가요? 우리야 뭐, 그냥 오 년만 버티면 고향으로 갈 거라고 알고 있는데.”
“아아. 뭐 그렇긴 하다만 지난 세 달 동안 외부와 접촉이 끊긴 탓에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야. 이쪽 일들이 워낙에 변수가 많아서리.”
군영 내에 퍼진 불안감에 대해서는 비호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지휘관급에서 나온 거라면 문제가 또 달라진다.
“특히나 연(淵) 대장군께서 개봉에 정적(政敵)들이 많기도 하고…… 아, 물론 그분의 품성이나 인맥과는 상관없이 말이지. 암튼 중간급에서도 말이 좀 많다. 이거 너한테만 말해 주는 거니까 일단은 그냥 알고만 있어.”
순간 집합을 알리는 북소리가 길게 세 번, 짧게 두 번 울려 퍼졌다.
아직 식사 시간이 끝나지 않은 시점이라 비호는 멀뚱한 눈으로 아소를 바라보았고 아소는 심각한 얼굴로 대장군의 군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웅! 두웅! 두웅…… 퉁! 퉁!
왠지 불길하게만 느껴지는 북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