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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쾌 1권(3화)
1장 모든 것의 시작(3)
* * *
뱀처럼 구불구불 길게 늘어진 병사들의 대오(隊伍)는 일견(一見) 엄중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끔 일부 구간에서 벌어지거나 흐트러질 때마다 각 대(隊)를 통솔하는 말 탄 장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최대한 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의 빈도가 잦아지는 것이 병사들이 상당히 지쳐 있음을 반증(反證)해 주는 것이라고 비호는 생각했다.
주둔지를 떠나온 지 삼 일이 지났다. 야간과 밥때, 보급을 위해 인근 고을 관청에 잠시 머무를 때를 제외하고는 끝없이 걸었다.
건장한 장정들도 지쳐 비틀거리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체력이 못 미치는 비호는 그저 죽을상이다.
그런 와중에도 첫날부터 계속된 가슴의 두근거림은 아직까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들었남?”
“뭘?”
바로 뒤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아, 이 개오라질 것의 민란(民亂) 말이여. 요것이 뒷골이 탁! 땡기구로 머리 아프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하더만.”
“건 또 무신 개아들놈이 똥 먹고 방귀 뀌는 소린감? 끽해야 두메산골 화적(火賊) 패거리가 좀 설쳐 대기로서니 멀쩡한 사람들 뒷골은 왜 당기고 난리여 난리는.”
“에에, 고향에 자알 계신 자네 아들 똥 먹고 방귀 뀌는 소리는 뒷간 똥줄 붙잡고 얘기하시고, 일단 내 썰이나 좀 들어 보구먼.”
“그려. 어라? 뭐시여? 짐 나더러 개라는 겨 뭐여? 거기서 내 아들 얘기가 왜 나오는겨?”
다들 지쳐 가는 중에도 농담할 여유는 남았었던가. 비호는 두 병사의 대화를 들으며 잠시나마 다리의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아, 됐고. 내 말 좀 들어 보소. 아까 나가 고을 관청에 우리 먹을 물이며 밥이며 뭐 이런 것들 내놓으라고 들렀지 않은가 말여. 근디 거기서 딱! 십 년 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났지 뭔가.”
“거참 툭하면 십 년이네 오 년이네 하면서 아주 대송(大宋) 여기저기 모르는 면상들이 없구먼.”
“나가 원래 장사치 출신이라 중원땅 요래조래 안 가 본 곳이 없구먼. 에이! 일단 내 말이나 끝까지 들어 보라니까! 그니까 거두절미허고 이번 민란이란 게 그냥 동네 배고픈 농사치들이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그런 정도가 아니란 말이지.”
은근 흥미가 동하는 비호였다. 사실 출전 당시부터 자세한 내용은 함구한 채로 급하게 움직인 면이 없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일으켰는지, 또 국경을 수비하는 정규군이 왜 이런 일에 동원되어야 하는지, 일차적으로 난을 진압해야 할 관군(官軍)은 어떻게 된 것인지, 병사들 사이에는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아, 일단 그 친구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 그 말씀이란 말이여. 그 친구가 원래 형호북로(荊湖北路)에서 일군일대를 이끄는 장수였단 말이지. 첨에 어디더라…… 암튼 어디어디 고을에서 미치광이 하나가 발작을 일으킨 게 시작이라 하더만.”
“허…… 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게 미친놈 하나 때문이라 그 말인감? 예끼! 이 인간아.”
나름 궁금하던 차 비호는 귀를 쫑긋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암튼 그 미친놈이 힘이 장사였나베. 어, 무슨 무림의 고수 정도 되나 보더라고. 이놈이 무슨 십 년 묵은 똥덩어리를 삶아 먹었는지 마른 날 벼락 맞은 돼지새끼마냥 칵! 하고 꼭지가 풀려서 그날로 포청(捕廳)을 확! 갈아 버렸디야.”
“헐…… 이 무신 말이 뒷구멍으로 씹히는 소리여? 에라이! 포청에 있는 관군들은 논두렁 농사지러 갔다던가. 포청이 무신 밭도 아니고 혼자 갈긴 어딜 갈어.”
잠시 뜸을 들이던 병사는 이윽고 조용히, 그리고 심각해진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아주 씨몰살을 시켜 버렸다 하구만. 위에서 아래까지 키우는 개 새끼 한 마리까지 제대로 난도질을 해댄 모양이여.”
“설마…….”
“그 친구가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는디 어찌나 참혹하던지 같이 갔던 병졸 몇몇은 토악질하느라 제대로 수습도 못한 모양이여. 특히 통판(通判)인가 뭔가 하는 수령은 끔찍하기가 말도 못했다네. 사지를 찢은 것도 모자라 대가리를 아주 기냥 등뼈까지 쏙! 다 뽑아 버렸다는디 죽은 모양새가 오만상을 찌그리고 눈이 켁! 하고 돌아가 있는기 놀라도 단단히 놀란 모양이여.”
“허…… 생각만 해도 나오던 오줌발이 쏙 들어가 버리겠구먼. 그래서 다음은?”
“일단 인근 다른 고을 관군들이 이 미친놈 잡으러 출동했다는데 반나절 만에 그냥 저언부 피고름이 되서 이눔이 개 똥인지 저눔이 소똥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였다데.”
“키야…… 거 대단한 강호 영웅의 등장이시구먼그래. 그 많은 인간들을 혼자 싸그리 잡아드셨다?”
“아 뭐 거기까진 어떻게 혼자 그랬다고 치자고. 근디 문제는 그 담부터라 이 말씀이시지.”
두 병사의 끔찍한 대화 내용에 은근히 오한이 들던 비호는 다음에 벌어진 일들이 궁금한지 슬쩍 걸음을 늦춰 두 사람 쪽으로 몸을 접근시켰다.
“원래부터 패거리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놈, 두 놈 슬슬 그 미친놈 있는 데로 모이더라 하더만. 나중에는 그 수가 백이 넘어갔다네.”
“그려서?”
“놀라 자빠진 수령놈들이 여러 고을에 요청해 관군들을 한 오백쯤 끌어모아서리 대대적으로 토벌을 갔다고 하더라고. 뭐 대충 자네가 예상하신 바와 같이 요것들도 신나게 갈아 잡수셨다아∼ 이거지.”
“흐구…… 춥다! 추워!!”
“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 요즘 나라 꼴이 좀 뭐 같지 않은가. 아랫것들은 사는 게 팍팍하다 그 말일세. 그래서 그런지 몰라두 이놈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힘깨나 쓴다는 남정네들이 척척 달라붙더라 그러더만. 한 달쯤 지나니께 거진 이천이나 되었다고 하더라구.”
“에고 이 험한 놈의 세상. 있는 것들이 월매나 쥐어짰으면 그리될꼬.”
“내 옛 친구놈이 형호북로에 장수라 하지 않았나. 이 괴상한 무리들이 관군으론 도저히 안 될 성싶으니께 위에서 아예 쌈질 좀 한다 하는 군댓밥 자신 분들을 보내 봐라 한 거지. 이 친구 놈도 뭐 별거 있겠나 싶어서 대충 가려 뽑은 병사들로 삼천 정도 데리고 갔었디야.”
“그래서? 정예 병사 삼천이면 놈들두 꽤 죽어 나갔겠구먼.”
“이그…… 이 사람아. 아까 내가 뭐라 했든? 그 친구 놈 몰골이 말이 아니라 했제?”
“그……렇지.”
주위를 크게 둘러본 병사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멸(全滅). 그 다음엔 생각하기도 싫은 듯 몸을 푸들푸들 떨더니 사람 넋이 휑 나가 버리더구만.”
그 병사들 주위로 침묵이 내려왔다. 주변 다른 병사들도 이들의 말을 들었을 터. 정신이 아득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보시오. 내도 하나만 물어봅시다.”
이들의 말을 듣던 다른 병사 한 명이 물어왔다.
“말해 보소. 내 아는 건 다 말해드리지.”
“형호북로 쪽이면 여기서 북쪽으로 한참 멀리 있는 곳인데 중간에 떡! 버티고 앉잤는 분들은 뭐하시고 왜 남쪽 끝자락에 있는 우리가 외려 위쪽까지 불려 가는 거랍니까?”
“흠 고것은 세상만사 다 아는 본인도 잘 모르겄소.”
“그것은 내가 좀 아오.”
조금 쉰 목소리의 병사가 알은 체를 한다.
병사들 주변을 순회하는 지휘관들이 들을세라 조심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나도 지휘관으로 있는 고향 형님이 술 자시고 얘기하는 걸 좀 들어서 뭐 이거다 라고는 말씀 못 드리오. 그냥 알아서 생각하슈.”
운을 땐 병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게 상당히 정치(政治)적인 문제가 얽혀서 그렇답디다.”
“저엉치? 정치는 저어쪽 개봉에 계신 분들이 하는 거 아닌감?”
“그렇지요.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개고생이라지요.”
“아, 좀 쉽게 설명해 보쇼. 내 무식해서 못 알아듣겄소.”
잠시 뜸을 들인 병사는 주위의 이목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만족한 듯 숨을 크게 한번 내쉬며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가 모시는 ‘대장군’이신 연천평(淵天平) 어른이 근래 보기 드물게 청렴(淸廉)한 관리시라지요. 뭐 황제께서도 신뢰가 이만저만이 아니시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대단한 존경을 받는 분 아니오.”
“그렇구먼. 내도 좀 들은 게 있슈. 본래 엄청난 무장(武將) 집안이었다는데 송나라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문관(文官)으로 이름을 날린다 합디다.”
“탐관(貪官)을 극도로 미워하고 악(惡)을 천하의 원수처럼 여기니 개봉에 사는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다 하데요.”
“아, 글쎄 연 나으리 칭찬은 고만하시고 그래서요?”
재촉하는 병사를 잠깐 째려보던 목 쉰 병사는 다음 말을 풀어 놨다.
“개봉에 있는 관리 놈들 열에 아홉은 어떻습디까? 문디 코구녕에 마늘을 빼먹을 놈들 아니오? 한마디로 연 어르신과는 상극(相剋)이라 이 말이외다. 처음부터 그렇소. 거란 놈들과 십 년 가까이 싸우다 돌아오신 그분을 삼 년도 안 되어 다시 이곳으로 보낸 게 진정 황상의 뜻이겄소? 아니아니, 아니지요. 저 탐관 놈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황상께 주청을 올렸더랬소. 황상께서 아무리 연 어르신을 두터이 여긴다 하나 이놈 저놈, 심지어 아끼는 귀비까지도 조잘대니 어쩔 수 없이 한 오 년만 조용히 있다 와라 하시며 다시 종군을 명하신 게지요.”
“아, 근디 그거랑 우리가 요로코롬 고생하는 거랑 뭔 상관이데요.”
비호를 포함해 대부분 배움이 짧은 터라 이런 장황한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니 답답한 심정은 모두 마찬가지였을 터 여기저기서 항의가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