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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1권(6화)
3장 용아천(3)
잠룡수라대는 어느 정도 발자국을 쫓아왔을 때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들 중 추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삼호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았다. 발자국을 쫓아오는 동안 벌써 수백 번을 넘게 침을 삼켰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곳에서 보폭이 세 개에서 하나로 줄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보폭이 사라졌고, 또한 희미했던 보폭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자취를 감춰? 그들이 설마 허공답보라도 해서 우리의 이목을 숨겼다는 것인가?”
허공답보가 어떤 경지인가. 경공술에서 최고로 일컫는 경지가 아니던가?
삼호는 지금껏 자신이 생각해 오던 것을 결국 털어놨다.
“지금까지의 발자국을 보아 희미한 발자국을 가진 자가, 어린아이를 업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이 사라진 이유는…… 아마도 이자는 지금까지 경공술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자가 아닐까 합니다.”
“경공술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떤 경공술이기에 자네가 그리도 놀라는 것인가?”
“지금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결론이 나왔는데, 처음에 희미한 발자국은 가면 갈수록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지요. 이것으로 볼 때 그는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경공술의 경지가 한 단계씩 상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능한 얘기인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 경공술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른데, 아마 이것은 수십 년 전에 실전된 청성파의 빙허임풍이나, 소림사의 최고 보법인 나한보(羅漢步)나 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주인이 그 무공을 익히고 있을 확률은 없나?”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실전된 무공이 다시 나타날 리도 없거니와, 나한보를 익히고 있는 자는 소림사에서도 최고 배분을 가진 몇몇 자들을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주인은 장법과 권법의 고수다. 하나, 경공술의 경지는 지극히 낮은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경공술은 신공절학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만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좋아. 그럼 남은 발자국이라도 쫓아야겠다. 그들의 위치는 파악할 수 있는가?”
“무리는 없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용아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좋다. 이번 일은 혈룡대처럼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된다.”
“예!”
그들은 몰랐다. 설마 자신들이 쫓는 상대가 얼마 전 혈룡대 열 명의 살수들을 일각도 안 되는 시간에 괴멸하고, 자신들이 멸문시킨 청성파의 상승절기를 익힌 제자라는 것은.
* * *
휘리리릭!
콰앙! 콰앙!
허공에서 연이어 폭발음이 들려왔다. 흑백쌍마 중 오른쪽에 있던 노인이 오른손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크윽! 네, 네 이놈!”
석윤서는 대경실색했다. 천하에 그 누가 흑백쌍마의 장을 막고 그들을 물러서게 한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는 이제 갓 약관이 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뒤돌아보며 외쳤다.
“이보십시오, 형장!”
그의 공력이 담긴 외침에 석윤서가 정신을 가까스로 차렸다.
“당장 무사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형장이 죽는다면 상단은 누가 이끌겠습니까?”
석윤서는 그 말투에서 먹향이 풍기는 것을 깨달았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왜소해서 정말 서생이나 하기에 딱 알맞은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무위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흑백쌍마를 장으로 밀어내고 꿈쩍도 하지 않는 사내! 그것은 천하에 감히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흑백쌍마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무사들 쪽으로 몸을 돌리는 석윤서의 모습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놈! 어디를 가는 것이냐! 내 당장 네놈의 목을 따 주마.”
청년과 살짝 대결해 본 흑마가 아우 백마를 말렸다.
“아우야, 진정해 보거라. 아무래도 앞에 있는 저 아이가 보통은 아닌 것 같구나. 흘흘, 정말 오랜만에 상대가 되는 놈을 만난 것 같다.”
“아니, 형님! 지금 제 손자보다도 못난 놈이 보통이 아니라니요? 그건 형님이 방심했을 뿐이었습니다. 잘 보십쇼, 이 아우가 제대로 한 수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노인의 손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알아본 석가장 사람들이 신음을 삼켰다.
“허억, 마교에서 실전되었다는 소수마공이 아닌가? 설마 녹림채에서 발견한 것이더냐!”
“껄껄껄, 이 노부의 소수마공을 알아보는 놈이 있구나. 아직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네놈들을 끝장내는 데는 고작 사성으로도 충분하다!”
노인이 방금 전 석윤서를 도운 청년을 향해 일장을 후려쳤다. 청년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장과 장을 맞부딪쳤다.
콰앙! 콰앙!
연거푸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청년은 소수마공에도 불구하고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노인의 안색이 조금씩 새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때 청년의 입에서 나지막한 절기가 흩뿌려졌다.
“최심장(催心掌).”
“허억!”
소수마공을 전개하고 있던 노인이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보법을 펼쳐 최심장의 영역을 벗어났다.
세상에 알려지길, 최심장은 청성파의 지독한 독장이었다. 사실 청성파는 검과 장법에도 능숙하지만, 암기와 독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 그것은 백 년 전만 해도 청성파 근처에 살수문파가 많이 들어서서 한동안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청년이 펼친 최심장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이, 이놈! 넌 청성파의 제자가 분명하구나!”
그 청년의 정체는 청령이었다. 청령은 한숨을 푹 쉬면서 손을 털어 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무기는 검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장법을 오랫동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아 들었다. 끝이 뭉툭하고 거무튀튀한 것이 별로 좋은 검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보는 바대로 그것은 좋은 검이 아니었다. 청성파를 떠나올 때 가까이에 있던 검을 그냥 꺼내 온 것뿐이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정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오? 아무리 녹림채라고 해도 석가장은 쉽게 무시할 만한 곳이 아니거늘.”
“오호! 이놈, 우리가 녹림채라는 것을 어찌 알았느냐?”
노인들이 호기심 짙은 표정으로 쳐다보자 청령이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중원 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귀를 닫지 않은 이상은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노괴들은 흑백쌍마라 불리는, 정도를 어지럽히는 녹림채의 일당이 아니오?”
“노, 노괴?”
흑백쌍마는 자신들을 노괴라고 부르는 청령의 말에 기가 찼다.
“이놈!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네놈에게 그따위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오늘 네놈의 피로 목을 적셔야겠노라!”
“좋다, 아우야! 나도 이번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구나.”
흑백쌍마는 각각 혼자서도 매우 강한 무위를 보이지만, 둘이 뭉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 둘이 합공을 펼치면 천하백대고수들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그때 청령의 손가락에 두 줄기의 강기가 맺혔다. 그리고 강기는 곧바로 흑백쌍마를 향해 쇄도해 나갔다.
휘이익―!
바로 칠십육로무형지를 펼친 것이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간 강기가 곧바로 흑백쌍마 노괴들의 미간을 강하게 때렸다.
탕!
노괴들의 호신강기가 크게 출렁거렸다. 노괴들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내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강기라니! 호신강기가 없었으면 영문도 모른 채 죽었을 것이다.’
두 노인이 앞과 뒤를 맡아 청령을 향해 장을 휘갈겼다. 청령은 곧바로 초식을 전개했다.
“구하천풍검법. 제일초식 풍룡비상!”
그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을 박차고 올라갔다. 십 장이나 떠오른 청령이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초식 파지풍룡!”
풍룡의 위력은 가히 하늘을 가르고, 땅을 박살 낼 정도였다.
석윤서는 청령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초식명 그대로 가히 땅을 때려 부술 정도의 위력이로다. 어디의 후기지수인지는 모르겠다만, 그곳에서 용을 키워 냈구나!’
순간 목표물을 놓친 흑백쌍마는 자신들이 서 있던 땅이 흔들리자 곧바로 보법을 펼쳐 벗어났다. 하지만 곧 검에 내공을 주입한 청령이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강한 검기를 흩뿌려 댔다.
“삼초식! 와룡연쇄참!”
촤르륵―!
검기를 뿌려 대는 모습이 누워 있는 용과 흡사했다. 청령의 파상공세에 밀린 흑백쌍마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검기들을 향해 장을 후려쳤다.
쿠웅!
“크윽!”
그러고는 곧바로 벌렁 누워 버렸다. 장을 후려치자 마치 만근은 될 법한 돌에 부딪친 듯 그 여파가 대단했다. 그들은 손목을 부여잡고 이를 꽉 깨물었다.
“허억! 허억! 허억!”
청령은 몇 초식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지쳐서 숨을 헉헉거렸다. 그의 약점이라면 상대가 싸움을 오래 끌면 끌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신공절학을 익혔다 한들, 밑받침되는 체력이 없으니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청령의 앞으로 나긋한 향기를 풍기는 여인이 검을 뽑아 들고 나섰다.
“검 소저?”
다름 아닌 검하은이었다. 그녀는 연이를 업고 정말 이를 악문 채 신법을 전개해서 달려왔다. 만약 한밤중에 임독양맥이 뚫려 일취월장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청령을 쫓지 못했을 것이었다.
청령은 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검 소저. 신법을 전개해 쫓아오시느라 많이 힘들었을 터인데, 그것도 연이까지 업고.’
흑백쌍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상을 입은 것인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고작 저딴 애송이의 공력이 우리보다 강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 이상 덤벼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군.’
흑백쌍마는 고심 끝에 물러나기로 했다. 이 이득 없는 싸움을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송이!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는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거라. 흘흘흘. 모두 돌아가자꾸나.”
흑백쌍마의 외침에,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산적들이 하나 둘 일어나 동료들을 이끌고 숲 속 깊숙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정확히 일각 동안 말을 꺼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청령은 검을 검집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석윤서는 호법도 없이 운기를 하고 있는 청령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겠지. 정말 대단하군. 패도적인 무공으로 보아 청성파의 후기지수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저런 검법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
그는 대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무림초출인 청령이었기에 호법이란 것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한편, 자진해서 운기에 들어간 청령의 호법을 서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검하은이었다. 그녀는 호법 없이 운기를 하는 청령을 보며 대경실색했다.
‘아무리 세상일에 무관심하다고는 하나, 이토록 바보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 무림인은 설사 가족과 같이 있더라도 호법을 서는 것이 당연한데…….’
청령이 일어난 것은 운기에 들어간 지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깨어나는 것에 맞춰 석가장의 소가주인 석윤서가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반갑습니다, 소협! 가까이서 뵈니 이토록 젊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석가장의 소가주인 석윤서라 합니다.”
청령도 그에 마주 포권을 취했다. 책에서만 봤던 것들을 실제로 하니 조금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물론 석윤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저 또한 무림에 칭찬이 자자한 석 형을 보아 반갑습니다. 청성파의 제자인 청령이라 합니다.”
석윤서는 청령이란 이름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니, 청령이라 하면 청성파에서 따돌리는 제자가 아니었던가! 분명 검술보다는 방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검을 잡아 본 적도 어릴 때 이후로는 없다고 했는데?’
그러다 곧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그랬군, 청 공자는 청성파에서 은밀히 키운 고수가 틀림없구나. 일부러 세상에 괴상한 소문을 퍼뜨려 청 공자를 키우려는 속셈이었어.’
그는 청성파의 계략에 탄성을 질렀다.
“그나저나 청 소협께선 어디를 가고 계셨던 겁니까?”
“아, 청성파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한지라, 더 이상 중원에 있을 수가 없어서…….”
“청성파요?”
석윤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청령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을 말해 줘야 하나……. 쩝, 이거 말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청성파 제자인 청 공자가 꼭 알아야 할 문제니 말하지 않는 것도 곤란하고.’
그는 곧 청령을 쳐다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청 소협, 초면에 실례되는 말이지만…… 지금 청성파는 이미 멸문하고 없어졌습니다.”
“예에?”
그 말에 놀란 것은 청령뿐만 아니라 검하은도 마찬가지였다. 구파일방의 한 곳인 청성파가 그렇게 빨리 무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청령은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돌아갈 곳도 없었다. 혈파의 눈을 피해 천하를 주유하거나, 은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청령이 무거운 얼굴을 하고는, 밑동이 어른 허리 굵기만 한 나무들이 우거진 깊은 산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연이가 그를 쫓아가려 했지만 검하은이 저지했다.
“연아, 청 공자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자. 응?”
검하은은 청령의 현재 모습이 검각이 무너졌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자신을 향해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사부는 사라지고, 한솥밥을 먹던 사형들과 사제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청령 오빠…….”
연이가 청령의 뒷모습을 보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어느새 청령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