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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1권(24화)
10장 로이니스(下)(3)
전날 청령에게 당한 기사들을 살펴본 후, 에이전트 기사단은 아침 시간에 빠짐없이 나와 정렬해 있었다.
아침 훈련 시간보다 5분 일찍 나와 있던 청령도 이 순간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의 충격이 컸긴 컸나 보네. 아니면 대형 몬스터들에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다거나.’
그로퍼와 욘지도 일반 기사들과 같이 맨 뒤에 서서 청령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침 두 시간을 맡았으니 간단한 몸 풀기 운동부터 시작했다.
“아! 제가 말씀을 미리 안 드린 것이 있는데, 제 훈련 시간에는 갑옷이 아직 필요 없으니 벗어 놓고 와도 좋습니다.”
기사들의 훈련에 갑옷은 필수라고 여기던 그로퍼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청령은 애써 그에게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로퍼도 두 시간을 이미 청령에게 주기로 했으니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몸 풀기 운동이 끝난 후, 청령의 말을 듣고 갑옷을 벗어 놓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갑옷을 입는 것이 더 익숙했다.
‘쩝. 이제부터 내가 할 것은 심법이랑 보법인데, 그런 무거운 것을 입고 있으면 무지 힘들 텐데…….’
“그럼 전원 저와 같은 자세를 취해 주세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불편하겠지만 점점 익숙해질 겁니다.”
청령이 가부좌를 틀자 기사들도 하나 둘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으윽!”
“헙! 이, 이게 무슨 훈련이라는 거지?”
처음 해 보는 자세에 기사들이 모두 인상을 찡그리며 최대한 청령과 비슷한 자세를 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어떤 이들은 가부좌를 튼 지 고작 5분 만에 포기했고, 10분 동안이나 참는 자들도 있었다.
청령은 전원이 똑바른 자세가 될 때까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지적해 주었다. 기사들은 저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새삼 갑옷을 벗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갑옷 때문에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분명 의아해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지금 이 훈련은 여러분들의 마나를 늘리려는 목적이니만큼 제 지시에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저와 같이 눈을 감고 편안한 마음으로 배로 호흡해 주십시오. 주변에 마나가…… 마나가 느껴지실 겁니다.”
익스퍼트에 오른 욘지, 그로퍼 및 여러 기사들은 주변에 있는 마나를 느꼈다. 하나 아직 웨폰 오러의 경지인 기사들은 저마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가르칠 것은 삼재…… 아니, 마나 호흡법이라고 하여 이것을 익히고 익숙해진 분은 걸어 다니면서도 그것이 가능해질 겁니다. 자, 제가 마나를 주입하면 그 경로를 정확히 기억해 두었다가 후에 혼자 하실 경우 그 경로로 마나를 돌리면 됩니다.”
청령은 맨 앞에 있는 기사의 몸에 내공을 주입해 강제로 소주천 시켰다. 기사의 마나는 처음에는 뜨끔했지만 이내 완전히 청령의 내공을 받아들였다. 그런 식으로 삼십 명의 기사들에게 내공을 주입하니 이제는 청령이 녹초가 다 되었다.
‘내가 이들에게 삼재심법을 가르쳐 주는 이유는…… 그저 부단장의 역할을 다해 단원들을 죽지 않게 만들기 위함일 뿐이야. 그 외에 다른 이유는 필요 없어…….’
로이니스는 나무에 기대 기사단이 훈련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를 잡고 쓰러졌다.
“푸하하하, 쟤네들 뭐 하는 짓이니?”
그녀가 바라본 곳에는 기사단이 한데 뒤엉켜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발자국이 워낙 오묘해서, 똑같이 밟는 것이 힘든 듯했다.
맨 앞에서는 청령이 내공을 발에 실어 땅바닥에 발자국을 정확히 찍어 내고 있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기사단은 한 번을 제대로 못 하고 비틀거리며 넘어지기 일쑤였다. 만약 그들이 청령이 배운 경공술이나 보법을 제대로 배우겠다고 결심한다면 모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청령은 느긋하게 한다고 했으나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는 기사단을 보고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토벌 일까지 남은 것은 고작 한 달 정도였다. 과연 그들이 그때까지 얼마나 익숙해질지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보고만 있던 로이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천천히 청령에게 걸어왔다. 그러더니 그가 찍어 놓은 발자국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푸훗, 너네 혹시 댄스파티에 나가? 기사단이 단체로 미쳤구나.”
청령은 그녀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발자국 찍는 일에 열심이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햇빛에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며 한숨 돌린 청령이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귀족의 딸이라 해도 기사단 훈련의 관람은 금지입니다.”
“어머? 세리아가 말 안 해 줘? 난 오늘부터 용병 정령술사로서 활동할 거거든. 잘 부탁해, 부단장 씨.”
그녀가 선뜻 손을 내밀었지만 청령은 그녀의 손을 맞잡아 주지 않았다.
“참으로 하릴없어 보이는군요. 남에게 딴죽을 걸 시간이 있으면 저 단원들과 같이 훈련이나 하시죠.”
로이니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뭐, 뭐얏! 넌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오늘부터 용병으로 활동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기사가 용병에게 귀족 대우를 해 준답니까?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은 용병일 뿐, 귀족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
청령에게 말로 밀린 로이니스는 그대로 등을 홱 돌려 버렸다.
“흥! 그래! 좋다 이거야. 그 천한 입을 언제까지 놀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청령은 뒤돌아서서 가 버리는 로이니스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저 여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말해 주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과연 믿어 주기나 할까.
기사단의 훈련이 끝나자, 청령은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병사들을 한데 불러 모아 그들에게도 기사단과 똑같은 훈련을 시켰다. 병사들은 웨폰 오러도 아닌, 웨폰 맨 수준의 경지였기에 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푸하하하! 이거 정말 골 때리는군. 저 녀석들 좀 봐라.”
우연히 훈련 장면을 목격한 용병들도 로이니스와 마찬가지로 배를 잡고 뒹굴었다. 그렇게 되자 훈련 방식에 불만을 가진 병사들이 다음 훈련을 빼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청령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자신이 보아도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병사들이 청령의 훈련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잘 따라 주고 있었다.
‘후우, 앞으로는 병사들을 죽게 만들 수 없다. 이들이 프로시안 영지의 병사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닌가.’
청령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 이번에는 진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 *
열흘이 넘어서자 기사들의 수준도 청령이 만족할 만한 정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처음에만 해도 반신반의하며 청령의 심법이나 보법을 믿지 못하던 그들도 이제는 앞 다투어 연무장에 나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임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기사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이 익스퍼트에 드는 것도 힘든 일은 아닐 것이었다.
“전원이 모두 익스퍼트라……. 후후.”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한 기사단 전원이 익스퍼트인 경우는 펠타온 제국의 왕실 기사단뿐이었다.
하지만 청령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지내보니 숨김이 없고 거짓이 없는 기사도를 가진 에이전트 기사단이다.
그런 그들이 삼재심법만으로도 익스퍼트의 벽을 넘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가부좌의 힘든 자세나, 따라 하기 힘든 삼재보를 꾸준히 배우는 병사들은 이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제 토벌 작전이 20일 가까이 다가온 이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자도 있었다.
“아직까지 마나를 느낄 수 있는 병사들은 없다라…….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한지라 혈관이 방해가 되는 건가?”
유라시아 대륙에서 펼치는 삼재심법도 신공절학의 수준까지 될 수 있으나 병사들의 늦은 나이가 문제였다. 어떤 이들은 20대에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40줄이 되어 심법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열흘 만에 마나를 느낄 만한 자들은 아직까지 병사 중에는 없었다.
그때 청령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쿠당탕!
용병 하나가 병사를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병사가 그대로 용병에게 주먹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호오…….”
청령이 보기에도 그 용병의 실력이 제법이었다. 체계적인 훈련을 쌓은 병사들보다,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용병들은 보이는 것이 실력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한눈에 보아도 용병보다 실력이 낮아 보이는 병사가 그대로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렸다. 용병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주먹을 피하고 그대로 병사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이는 병사가 그 주먹에 정신을 잃은 듯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고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용병의 승리였다.
청령은 그 모습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순간적이지만 병사의 발걸음에서 삼재보를 볼 수 있었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배워 펼친 것이라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것보다도 못해 보였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병사의 주먹에 실린 힘이 평소보다도 두어 배는 강해 보였던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야. 병사들의 삼재보를 누구한테 실험하나 했는데, 저렇게 훌륭한 스승들이 있을 줄은 몰랐는걸.”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용병들이다. 한 곳에 계속 있다 보니 좀이 쑤셔 제일 만만한 병사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움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청령은 철저히 무시했다.
누군가 병사 하나가 멋지게 용병을 꺾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었다.
나무에 걸터앉아 있던 청령이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바람이지만 무언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청령의 시선에 그 바람이 점점 형상을 이루더니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로이니스의 실프였다.
“나를 찾고 있는 건가?”
영지에 들어온 이후 로이니스는 자꾸 청령의 옆에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망치듯 모습을 숨겼더니 실프한테 여지없이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청령이 나무에서 뛰어내려 사뿐히 착지했다. 제법 높은 위치였지만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약속한 것도 있었으니까 다 같이 가면 되겠지.”
태양이 뜬 위치를 보니 얼추 약속 시간이 된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곧바로 트라바체스 대장간을 찾아가려 했던 청령에게 어젯밤 세리아가 찾아왔다.
자신도 일이 생겨 트라바체스 대장간을 찾는다는 것.
마침 대장간에 가는 청령에게 호위를 해 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청령은 옆에 떠 있는 실프를 의식하면서 본관으로 향했다.
* * *
“고작 열흘이었던가……?”
로이니스의 입이 살짝 열렸다.
그녀의 몸이 떨렸다. 날씨 변화가 심한 프로시안 영지의 특성상 제법 추운 탓도 있었지만, 기사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매일같이 아침에 나와 이상한 자세로 명상을 하고, 명상이 끝나면 땅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밥을 먹을 때도 명상을 했고, 잠을 자도 연무장에서 잤다.
그렇게 열흘.
이제 그들은 땅에 찍힌 발자국을 완벽히 따라 하고 있었다. 그저 간단한 사교파티의 스텝이라고 생각했던 발자국이 기사들의 발로 빠르게 시전되자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로이니스의 눈이 반짝였다.
“빠른 공수전환, 가공할 스피드, 그리고 엄청난 마나 상승까지…….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린 거지?”
마나가 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기사나 마법사가 고된 수련을 쌓으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들은 고작 열흘 만에 마나의 양을 대폭 상승시켰다. 몇몇 기사들은 벌써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익스퍼트의 높은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그녀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세요?”
로이니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자 단아하게 차려입은 세리아가 보였다. 꽤나 신경 쓴 모습인 듯했다.
“그냥. 이안을 찾다 보니 이곳에 와서 우연히 수련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그러는 넌?”
“본관에 가고 있어요.”
“왜?”
“일이 좀 있어서요.”
“그래? 그럼 잘 가.”
로이니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세리아는 주저 없이 로이니스를 뒤로한 채 본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세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이니스는 한껏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이 왠지 신경 쓰였다.
“잠깐!”
“……?”
“설마 이안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아요.”
로이니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딴에는 세리아가 이안을 만난다는 것이 아니꼬웠던 것이다.
그때, 이안을 찾아보라 보냈던 실프가 돌아왔다. 실프의 얘기를 살짝 들은 로이니스가 얼굴을 굳혔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나도 가자.”
* * *
청령은 속보(速步)로 본관으로 향하던 중 도중에 있는 병사들의 훈련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가 마침 훈련 시간이었는지 청령의 눈길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흐아아압!”
“산개하라!”
병사 백 명 정도가 손에 목검을 꼬나쥔 채, 그들의 중간에 선 기사들을 중심으로 멀리 퍼졌다. 기사들의 숫자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다.
‘뭐 하려는 거지……?’
청령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관심 있게 쳐다봤다. 기사 다섯 명은 병사 백 명에게 갇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서로의 등을 맞댄 채 목검을 쥐고 있었다.
‘목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로군.’
목검은 예민하기 때문에 청령처럼 기(氣)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나무가 마나를 견디지 못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훈련장에 이번에 훈련대장으로 임명된 한스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모두 공겨∼억! 기사라 생각하지 마라! 저들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우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