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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제2장. 혼자였던 사내(2)
바로크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족하다고 여겼다. 태극검 자체가 마나와 하나가 되는 동작이기에 충만한 마나를 온몸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한데 문제는 그 방대한 양의 마나를 자신이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태극권을 태극검으로 아직 모두 바꾸지 못했다. 본래 틀이 되는 태극권이 있기는 했지만 권법을 검술로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매일같이 컵 하나 정도의 틈 안으로 들어오는 건량과 건포도를 씹던 바로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입니다.”
“흐으음…….”
현재 크론과 브록은 외진 숲 속으로 향해 있는 상태였다. 브록의 말에 크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형이 험하고, 바람 또한 일정치 않군.”
“예. 그리고 간혹 몬스터들이 나타나기도 하곤 합니다.”
“몬스터라… 좋군. 녀석들이 처리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될 터이지.”
크론과 브록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이곳이 3차 관문을 치루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험악한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만은 이곳에서 아마도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를 않을 것이다.
쿠오오오!
막 크론과 브록이 발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갑자기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포효 소리에 크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6m 되는 크기에 초록색 피부를 지니고 있는 몬스터가 포효하고 있었다.
“오우거이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냥 오우거 같지는 않은데?”
“믿어 주십시오.”
브록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허리춤에서 검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뽑혔다.
하지만 크론은 오우거가 보통 오우거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일반 녀석들보다 몸집이 1.5배는 크고, 성난 녀석 같았다.
자이언트 오우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우거 녀석들 중 상당히 강한 녀석으로 추정되었다.
하나, 브록은 크론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은 듯 그래도 앞으로 나섰다.
그것을 크론은 양 팔짱을 낀 채 바라보았다.
파아앗.
“흐아아압!”
순간적으로 달려 나가는 브록의 검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 빛은 푸른 오러를 만들어 내었다.
‘소드 마스터였던 건가? 대단하군.’
브록의 검에서 발하는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크론이 감탄했다. 저 나이에 소드 마스터라니, 확실히 아레스의 졸업생답다고 생각했다.
타앗.
“흐아압!”
브록이 높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려는 오우거의 손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수우웅.
푸슉.
크오오오!
챙!
손이 잘린 오우거가 오른손으로 저항하듯 브록에게 휘둘렀고, 검 면으로 막으며 몸이 뒤로 3m 정도 밀려 나간 브록이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굳세게 잡고, 아래에서 위로 검을 그으며 올라갔다.
지지직.
푸슈유육.
질긴 오우거의 가죽에서 피가 흩뿌려지며 이내 오우거가 뒤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처리했습니다.”
브록의 얼굴로 가뿐함이 나타났다.
하지만 크론은 조금은 고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의 시험 도중 이런 녀석이 또 나오면 상당히 고전하겠군.”
“아니요. 녀석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머물던 놈으로, 사실 잡으려고 노력했던 녀석입니다. 하지만 워낙 신출귀몰한 녀석이라 보기가 힘들었지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잡게 되는군요.”
“그렇군. 그보다 자네… 역시 아직 미숙하군.”
“예?”
쿠오오오!
스르릉.
슈우욱.
퍽.
브록이 그의 말에 되물었다. 그 순간 크론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며 그대로 던졌고, 검이 아슬아슬하게 브록의 옆을 지나가며 그대로 브록을 덮치려던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오우거의 두개골에 박혔다.
“돌아가지.”
“아, 예!”
브록이 단 한 번에 그것도 꽤 먼 거리에서 오우거를 즉사시킨 크론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곧 시작될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혈육전이.
“모든 이들은 아이들이 들어갔던 방의 앞에 서, 일제히 문을 연다.”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크론이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들은 아이들이 들어갔던 방의 앞에 섰다.
그리고 곧, 병사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바로크라는 아이. 기대되는군. 결코 이곳에서 무너질 아이가 아니다. 아니, 그 이상이 있을 것이야.’
크론은 병사의 손에 의해 문이 열리는 바로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제 나와도 된다.”
병사들이 방 안에 대고 한 소리였다.
그에 한 명, 두 명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흐흐흐 히히히히.”
방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상태였다. 입 주위에 흐르는 침들. 그리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 정신적 싸움에서 결국 이겨 내지 못한 아이들인 것이다.
“자살한 아이들도 상당하군.”
브록이 병사들에게 안겨져 나오는 이미 숨이 끊긴 아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목에 자국이 있거나, 혹은 손목을 그은 흔적이 있는 것을 보니 필히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일 테다.
“어서 나와라.”
뚜벅뚜벅.
바로크의 방 안에 선 병사가 말하자, 이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문 앞에 선 병사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
크론과 브록은 뒷걸음질 치는 병사를 의문 어린 시선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바로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우우웅.
‘뭐지……? 저 분위기…….’
크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습을 드러낸 소년 바로크. 1년 사이에 너무나도 변해 있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크론을 놀라게 한 것은 주위에서 풍겨 오는 분위기였다.
‘마치 자연이 된 것 같다. 굳센 자연… 무언가 감싸 안는 바람과 같은 자연의 느낌이야.’
왠지 모르게 바로크의 주위에서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겨 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따스함. 그중 병사는 두려움을 본 듯싶었다.
껌뻑껌뻑.
오랜만에 보는 빛무리에 눈을 감고 나왔던 바로크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껌뻑이던 그가 앞의 병사에게 말했다.
“아이들을 빨리 빼내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곧 무너질 터이니.”
“뭐……?”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던 병사가 그의 알 수 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바로크가 있었던 방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며, 연달아 그 주위의 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르르.
우르르.
우르르.
“어, 어떻게…….”
병사의 표정이 그를 괴물 바라보듯 쳐다봤다. 방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고 있다니, 그 어둠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이 무너져 내리다니, 저곳에서 대체 무엇을 한 것이더냐.’
크론의 눈이 바로크에게서 떠나지를 못했다. 바로크가 있던 방이 무너져 내리며 그대로 주위의 열 개 정도의 방이 무너져 내렸다.
‘필히 녀석은 무언가를 얻었다.’
크론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을 바로크가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 크론이 눈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무너진 방들의 사이에서 한 아이가 갑자기 뛰쳐나오며, 그대로 한 병사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어, 바로크에게 던졌다.
수우웅.
타탓.
“네 녀석 짓이더냐.”
바로크는 귀에서 들려오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뒤에서 날아오는 검이었지만, 몸을 트는 것만으로 피해 냈다.
그리고 이내, 뒤에서 아직 여리지만, 카리스마가 모든 것을 압도할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말이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1년 전보다 체격이 커지고, 눈 또한 예사롭지 않게 변한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일론.
“내가 있던 방이 무너졌다. 네 녀석 짓이더냐고 물었다.”
일론이 바로크의 앞으로 걸어와 그의 눈을 쏘아보았다.
“나는 단지 내가 있던 방 안에서 수련했을 뿐이고, 그로 인해 내 방이 무너져 연달아 네가 있던 방까지 무너졌을 뿐이다.”
“그 말은 즉, 네 녀석 때문이라는 것이군.”
수우웅.
타 타탓.
수우웅.
타타타탓.
바로크의 말과 함께 그대로 일론의 주먹이 매섭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바로크의 몸을 가격하는 것은 없었다. 아니 되레, 일론이 주먹을 치면 그것을 흘려보내어 일론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일론이라는 아이의 움직임 상당합니다. 역시 커라테스 후작가의 아이답군요.”
어느새 브록이 크론의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렇군. 1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어.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바로크인 것 같군.”
크론의 눈이 바로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동작 본 적 있나?”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쏘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자신에게 오면 없애듯이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있어. 저건 대체 무엇을 토대로 나온 동작이지.”
크론은 바로크의 동작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명한 검술도, 그리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검술의 동작 같은 것도 아닌 걸로 보였다.
자신이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동작들이 바로크의 몸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방이 무너져 내릴 거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거지…….”
크론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어둠 속에서 방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다니, 물론 혼자만이 있는 공간이었기에 소리로 방이 무너질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나, 바로크라는 아이는 자신의 방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주위의 방들 또한 무너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 크론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로크를 바라봤다.
“…호, 혹시 처, 청각……?”
“예. 녀석의 청각은 특별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녀석의 움직임을 보십시오. 일론의 동작 하나하나를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팔을 뒤로 젖히고 앞으로 쏘아지기 전에 어디로 올지 어떻게 궤도를 바꿀지 모든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는 모든 감각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것 같습니다.”
“자네는 알고 있었던 건가?”
“예. 1차 관문 때 보았습니다. 녀석은 1차 관문 때 병장기들이 어디서 날아올지 미리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앞을 향해 가던 녀석이었기에 시각적인 면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청각적인 면이 뛰어나다고 여겼었습니다. 한데, 지금 움직임을 보니 청각뿐 아니라, 시각, 촉각,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이 남들의 배는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레스를 닮았다는 이야기인가…….”
“네. 우연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레스를 닮은 것 같습니다.”
아레스. 이 인재 양성 기관의 이름이기도 하였지만 본디 아레스라는 이름은 대륙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한 사내의 이름이었다.
무척 과거의 일이었다.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가 남긴 검술서가 세상에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검술서를 익힌 사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검술서는 사람의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검술서였던 것이다.
그에 고고학자들은 이 검술서를 익히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일반인을 월등히 초월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아레스라는 인물 자체가 그 모든 감각을 초월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아레스와 같이 모든 감각을 초월한 사람은 미래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었다.
‘한데, 그 아레스와 같이 모든 초인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 바로 저 소년이라는 말인가……?’
크론의 시선이 일론의 주먹을 흘려보내는 바로크를 바라보았다.
“후욱후욱, 어째서 맞지 않는 것이더냐!”
“그만하지.”
일론의 성난 목소리에 바로크가 짧게 말했다.
“닥쳐라!”
거친 숨소리의 일론이 아직까지도 얼굴 기색 하나 안 변한 바로크를 보며 말했다.
자신의 숨은 가빠지는 것에 반면 바로크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자신의 몸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퍽!
“……!”
그때였다. 자신의 주먹이 바로크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그에 일론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퉤!”
“이제야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더냐!”
일론이 입안의 피를 뱉어 내는 그를 보며 희열 어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바로크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한 대 맞았으니, 방이 무너진 일은 없던 걸로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