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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2장. 혼자였던 사내(3)
바로크는 맞은 것이 아니라, 맞아 준 것이었다. 그에 일론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바로크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에 일론이 뒤돌아가는 그에게 주먹을 날리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아챘다.
“그만해라. 네 녀석은 이길 수 없다.”
“이익… 제길!”
팔을 잡은 이는 브록이었다. 브록과 눈을 마주쳤던 일론이 팔을 빼기 위해 애쓰다가, 이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뒤돌아 가는 바로크를 노려볼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저 소년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레스로 보이는군. 후후.’
브록이 뒤돌아가는 바로크의 뒷모습을 보며 그림이나, 동상으로만 보던 아레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제3장. 아레스를 닮은 소년(1)
2차 관문에 참여한 아이들의 수는 정확하게 103명이었다. 그중에서 20명 정도가 자살을 하고, 10명 정도가 미쳐 자신이 할 일도 찾지 못해 굶어 죽었으며, 나머지의 아이들의 대부분은 반쯤 미친 상태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중 정신적 싸움에서 이겨 낸 아이들의 수는 대략 15명 정도였다.
이 15명 중에서도 아레스는 단 세 명 정도의 아이만을 3차 관문을 걸쳐서 뽑을 것이었으며, 3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아이들에게는 아레스의 인재로 거듭나기 위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고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차락.
아레스의 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의 검이 대지를 찢었고, 그의 검이 하늘을 울리며 세상을 동요케 만드니, 그는 자연을 움직이는 하나의 신과 같은 존재요. 이 세상의 이치를 어긋나는 유일한 생명이라 말할 수 있었다.
또한 아레스는… 생략
크론이 페이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책을 덮었다. 소년 바로크를 본 후에 다시 이 아레스 전기에 적혀 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읽을 때마다 일어나는 몸의 전율과 짜릿함. 아레스라는 존재는 그러한 존재였다.
분명 만들어 낸 이야기도 있겠지만, 대부분 실제의 그의 모습과 그가 겪은 일생을 적은 이 아레스 전기를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레스라는 인물은,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자연과 일심동체의 힘을 발휘하니, 그는 자연이고, 자연은 그이며 그의 움직임은 세상과도 같다. 후후, 재밌어.”
크론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근처에는 이 책의 주인공과 흡사한 소년 바로크가 있었다.
“과연 정말 아레스의 뒤를 이을 녀석인지, 아니면 단지 흉내 내기만 할 녀석인지는 앞으로 차차 더 지켜보아야겠지.”
크론이 책장에 책을 꽂아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2천 명의 지원자 중에서 2차 관문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각 선별된 기사들의 지휘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나마 살아남은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평균으로 보자면, 이상에 서 있는 이들이었기에 기사들의 지휘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째서 저를 말리셨던 겁니까!”
일론을 맡게 된 이는 브록이었다.
일론은 브록이 자신을 한 달 정도 지휘하고, 통제할 기사라는 사실을 방금 전 알았으며, 아까의 그 일이 떠올라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차분한 표정으로 일론과 마주앉아 있던 브록의 주위에서 짙은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라지만, 앞으로 한 달 간 너를 맡아 줄 나에게 언성을 높이다니, 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힘을 믿고 까부는 것인가. 일론!”
‘수,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일론은 브록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압박감에 숨쉬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몸으로 표출되었다.
일론의 얼굴이 급격히 발개지고, 호흡 또한 거칠어졌다.
하지만 브록의 거센 압박감은 더욱 심해져만 갔고, 결국 일론이 꼬리를 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후후.”
“하아하아.”
자존심 강한 기사 가문인 일론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나, 브록이라는 이에게는 고개를 숙여도 아무런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비록 브록은 크론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있었지만, 크론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총괄하고 통제한 것은 브록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브록의 제국에서의 칭호는 ‘질풍의 기사’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생각보다 강한 사내였다.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인 너는 바로크라는 소년을 경멸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 내가 보았을 때 너는 그 아이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호흡을 고르던 일론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제국에서 알아주는 기사 가문의 차기 가주인 자신이 고작 그딴 녀석 하나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또다시 발끈할 뻔하였다.
“너의 주먹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로크의 얼굴을 때렸던가? 아아, 맞아준 적은 있는 것 같군.”
‘빌어먹을…….’
일론이 욕을 속으로 삼켰다.
브록이 아니라 다른 이가 자신을 감독했다면 분명 입 밖으로 욕설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분하다는 표정 따위는 짓지 않아도 된다.”
브록의 당연하다는 식의 말에 일론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것을 보고 피식하고 웃은 브록이 말을 이었다.
“이 인재 양성 기관의 이름 아레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스란트 대륙에 남은 한 기사의 이름이라는 것은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는 것 갖자, 일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연과 일심동체가 된 것과 같은 그는, 동물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초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물론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인 너라면 어리지만 그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아레스라는 기사는, 모든 감각이 보통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며 그 때문에 그가 남긴 검술서 또한 익힌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남긴 검술은 그 모든 감각이 특화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범접할 수 없다고 하니까요.”
일론의 우상 또한, 아레스라는 인물이었기에 이야기는 새는 듯하였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답변해 주었다.
“그래. 그렇지, 그가 남긴 검술은 아무도 익힐 수가 없지. 하나, 네가 상대했던 소년 바로크가 그 검술을 익힐지도 모른다면 너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후후.”
“그, 그게 무슨…….”
일론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갑자기 아레스의 이야기에서 바로크의 이름을 거론하는 그를 보며 일론의 표정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가 문득 무언가 스쳐 지나간 듯 놀란 표정이 되었다.
“서, 설마!”
“그래, 그 설마가 맞다. 나와 크론 경께서 녀석을 주시한 결과 모든 신체적 감각이 뛰어나다. 청각도, 시각도, 후각도, 그리고 촉각까지 모두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일부를 보았을 뿐, 아직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만약 녀석의 신체적 감각이 우리가 보았던 그 이상이라면 아레스의 검술을 익힐 단 한 사람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
“……!”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 어린 브록의 말에 일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레스의 검술을 익힐지도 모르는 소년의 등장. 그리고 그 소년을 경멸하는 자신.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였다.
아이들을 담당하는 15명의 기사 중, 바로크를 담당하게 된 이는 크론이었다.
자신이 일부러 그를 맡기로 한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기대가 되고, 그 어떤 것도 놀라움을 주는 소년의 잠재력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직 너무 미흡해. 1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이야.”
바로크는 결국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극검을 완벽히 창안해 내지 못했다.
아니, 어느 정도 그 구성만 잡았을 뿐. 핵심을 잡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을 잡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로서는 지금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끼이익.
쿵.
바로크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바로크.”
“제가 그것까지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크론이었다. 그의 물음에 바로크는 차갑게 답했다.
보통의 이들이라면 크론 하면 허리를 굽실거리며 영광 어린 표정을 짓는 게 정상이었다.
하나, 바로크는 그런 것에 흥미가 없었고, 크론이라는 인물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방은 마음에 드나? 2차 관문을 통과한 아이들에게 우리 아레스 측에서 한 달 동안 제공해 준 것이니, 편하게 쓰도록 하지. 뭐, 그 독방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그의 말에 바로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1년 동안 머문 독방보다는 나은 방이었다. 하지만 좋다고 볼 수는 없는 방이었다. 낡은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고, 좁디좁은 방 안이었으니까.
“한 달 동안 너를 통제해 줄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 냉담하군.”
“통제 따위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저를 귀찮게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후후후후, 후후후후, 하하하하.”
“……?”
갑자기 조소를 띠는 크론을 바로크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크론에게는 신선한 것이었다. 이렇듯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아직 한참이나 어린 녀석이 말이다.
자신이 비록 지금 힘을 숨기고 있다지만,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기운이 있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과 한 방에 있는 것 자체로도 숨을 못 쉬는 것이 정상이었다.
“초감각 소년 바로크.”
“……!”
한참을 웃던 크론의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하며 내뱉은 말이다.
그에 바로크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한편, 놀라운 표정이 되었다.
“내가 그런 것조차 모를 줄 알았나?”
“제 감각이 일반인들보다 이상이라는 것쯤 알아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후후, 그래,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일반인들보다 이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군. 그 이상을 뛰어넘는 감각을 지녔으니. 이거 괴물… 이라고 표현해야 맞으려나?”
부릅.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괴물’ 부분에서 바로크의 눈이 부릅떠지며 크론을 노려봤다. 순간, 크론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몸이 반응하여 자신도 힘을 표출할 뻔하였다.
“상당히 민감하군. ‘괴물’이라는 부분에서 민감하다면, ‘축복’이라고 해 주지.”
“축복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사실 바로크는 자신의 이 능력이 싫었다. 남들과 다른 이 능력이. 잠을 자도 발달된 청각 때문에 제대로 잘 수 없었고, 냄새를 맡아도 주위의 모든 냄새가 느껴지기에 코가 썩는 느낌이다.
또 몸은, 위험하지 않아도 절로 반응하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 아니었으며, 그중에서 가장 자신이 원망하는 이 능력은 외로움이었다.
괴물이라고 불리던 자신이었다.
인간이 아니라고 불리던 자신이었다.
그랬기에 누군가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에 사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때 죽을 당시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은 자신을 증오하는 것인지, 또다시 이런 삶을 살게 만들었다.
“축복이 아니라면 저주인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것보다 말이다. 바로크. 네게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역시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크론은 입에 조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허리춤의 검이 뽑혀져 나오며 바로크를 향해 휘둘러졌다.
타탓.
수우웅.
“빠르군.”
“현재 아레스를 통괄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좋지 않은 것 같군요.”
분명 크론의 검이 뽑히기 전에, 바로크는 몸을 움직였다. 크론이 검을 뽑는 속도와 휘두르는 속도는 웬만한 이들이 아니면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크의 초감각은 미리 그것을 예상하고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역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다르다는 건가?”
크론은 아직 확인하고 싶은 것이 남은 듯 검을 집어넣지 않으며 바로크를 바라봤다.
바로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하는 겁니까.”
땡그랑.
“검을 들어라.”
크론이 그의 앞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그리고 품속에서 조그마한 단도를 꺼냈다.
“제가 이 검을 들어야 할…….”
스으윽.
덥석.
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