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7화
제4장. 마법 소녀 에르웬(2)


그렇게 에르웬은 무기를 집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시선을 한곳으로 옮겼다.
‘역시 맨 마지막이구나, 저 아이는. 후훗.’
에르웬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자신의 시선을 끈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바로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언제나 과묵하고, 지금 나이에 맞지 않게 무언가 무게감 있고, 풍겨 오는 뉘앙스가 틀린 아이였다.
더군다나, 1차 관문 때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뭐하나, 네가 사용할 무기를 집어라.”
바로크가 묵묵히 있자 한 병사가 다가가 말했고, 그에 바로크가 잠시 병사를 흘긋 하고 바라보더니, 이내 터벅터벅 걸어가 무기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중, 가볍고 날이 선 검을 집어 들었다.
“너도 어서 무기를 골라라.”
“전 이거면 충분해요.”
바로크가 무기를 집고, 마지막으로 에르웬이 담당 기사가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자, 에르웬은 품속에서 나무로 깎아 만든 완드 비슷한 것을 꺼냈다.
“뭐… 네 뜻대로 해라.”
기사는 조금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관심을 껐다.
‘헤헤, 내게 저런 잔인한 물건들 따위는 필요 없지. 내게는 지식이란 게 있으니.’
에르웬은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이 보았을 때, 바로크나 일론 말고는 나머지 아이들 모두가 단지 운이 좋거나, 혹은 조금 보통 아이들보다 우월한 감이 있어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일론이나 바로크. 자신은 그 우월함을 넘어서, 일반 아이들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판단하였다.
“이제부터 3차 관문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이동 중에 혹시 이탈하려고 하는 아이가 있다면 즉결 처분하겠다.”
흠칫.
모든 아이들이 무기를 들자, 크론이 내뱉은 말이었다. 즉결 처분하겠다는 말에 아이들 모두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흠칫한 아이들은 혹여 그럴 생각을 조금은 갖고 있었던 아이들일 것이다.

덜컹덜컹.
아이들을 실은 마차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실은 다섯 대의 마차 중 한 마차 안에는 침묵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필이면 이 녀석과 함께라니.’
침묵이 감도는 마차 안에는 바로크, 일론, 그리고 에르웬이 있었다. 침묵 속에서 에르웬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일론과 바로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일론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으며, 바로크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너희 둘 모두 상당한 미남이구나?”
“…….”
에르웬이 침묵을 깨기 위해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일론은 ‘뭐야 이거,’라는 표정으로 바라봤고, 바로크는 흘끗 한 번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후후, 둘이 서로 사이가 안 좋지? 저번에 싸우는 거 봤어, 둘 모두 그 나이에 대단한 경지이던데? 뭐, 너는 조금 저 애에 비해 부족한 것 같지만.”
에르웬이 일론을 보며 말했다.
일론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죽고 싶은 거냐?”
“어머! 숙녀에게 죽고 싶나니! 그런 험악한 말이 어딨어∼!”
에르웬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에 일론의 표정이 더 좋아질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아까 집은 검을 뽑아 들 모양새였다.
그에 에르웬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보였다.
“그 검 빼 들지 않는 게 좋을 걸? 과연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뭐……?”
일론의 표정이 의아함과 함께 찌푸려졌다. 고작 계집 주제에 자신의 앞에서 마치 농락하듯 말하는 것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언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모르겠어? 우리 셋이 왜 이 마차에 타고 있는지, 너나 나나 저 바로크라는 아이나, 지금 아레스라는 인재 양성 기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모르니? 아마 아레스 관계자들이 장난을 친 것일 걸?”
“그거하고, 네년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게냐.”
일론도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던 사실이었기에 날카롭게 그녀를 쏘아보았다.
“헤헤, 못 믿겠으면 검 한번 빼 들어 보던가.”
스르릉.
그녀가 혀를 내놓고 배시시 웃으며 말을 끝내는 순간.
일론의 손에서 검이 뽑혀져 나오려 했다.
턱.
그 순간 바로크의 손이 일론의 손을 잡으며 그대로 다시 힘으로 그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무슨 짓이냐! 한번 해보……!”
자신의 검을 집어넣는 바로크의 행동에 일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의아함을 느끼며, 이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에르웬을 바라봤다.
에르웬은 여전히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스, 스턴 마법……? 서, 설마… 저 나이에 시동어도 없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이 짧은 시간에 마법을 시전했다는 건가?’
일론은 바로크나 자신 외의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에르웬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때문에 그녀의 마법으로서의 경지를 몰랐다.
“조용히 가자, 괜히 소란스러워서 좋을 것이 없다.”
바로크가 일론을 흘끗 보며 말했다.
그에 얼굴이 일그러지던 그가 다시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거친 욕설을 내뱉은 뒤, 시선을 돌렸다.
“빌어먹을!”
“헤헤.”
에르웬이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에르웬의 입놀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내뱉는 말은 대부분 자신의 자랑이었다. 자신 나이에 이토록 대단한 여 마법사가 어딨냐는 둥, 자신은 한 미모 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에르웬은 얼굴도 예쁘고, 마법 실력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 맞았다. 하지만 듣고 있는 이로 하여금 얼굴이 찌푸려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참! 그보다 너희들은 내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뭐, 너희도 착하고∼ 얌전하고∼ 괜찮다라고 말해 줄거…….”
“재수 없다.”
“재수 없다.”
“…….”
에르웬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바로크와 일론의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온 말이었다.
에르웬의 얼굴이 어색함과 함께, 살벌한 미소가 감돌았다.
“호, 호호호. 그, 그래에? 그렇구나.”
에르웬의 얼굴은 비록 웃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거 괜한 말을 한 것 같군. 자칫하면 피곤해지겠어.’
바로크가 이 앞의 아이와 어울리면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에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 먼저 내릴게, 너희도 빨리 내려∼”
“정말 재수 없다.”
“정말 재수 없다.”
윙크를 쨍긋하고 내리는 에르웬을 보며 또다시 일론과 바로크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왔다.
‘빌어먹을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젠장!’
일론이 자신의 입에서 녀석과 같은 말이 나오자, 마치 더러운 무언가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린 채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 바로크도 마차에서 내렸다.
웅성웅성.
마차에서 차례대로 내리기 시작한 아이들은 서서히 불안감과 초조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풀숲이었다.
나무와 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높게 솟은 풀들만이 있었으며, 외진 암벽들이 주위를 꽉꽉 막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쪽으로 걸어가면 꽤 기나긴 길이 나올 것 같았다.
“읏샤!”
쾅!
아이들이 모두 내리자,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마차에서 짐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짐이 내려지자, 기다리고 있었던 크론이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너희들 한 명에게 지급된 식량은 1주일이다.”
“에……?”
지급된 식량이 1주일이라는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한 소년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러면 남은 3주일은 무엇으로 버티죠……?”
“간단하다. 이곳에는 짐승이 많다. 몬스터도 간혹 있지. 녀석들을 사냥해 끼니를 때워도 되고, 아니면 서로의 식량을 빼앗아도 된다. 그것은 너희들의 판단이다.”
“빼앗… 으라고요?”
“그렇다. 3차 관문. 그것은 즉 배틀 로얄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며, 그중에서 단 세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
“……!”
크론의 말에 아이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에르웬이나 일론 말고는 모두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바로크도 포함해서 말이다.
놀란 표정의 바로크의 눈이 다시 침착함을 찾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아직 여린 마음이 남아 있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모두 빼앗고, 살인을 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기 위한 관문이군.’
바로크는 아레스 측에서 서로를 죽이게 한 의도를 이렇듯 파악했다.
“너희들 한 명 한 명에게 한 개씩의 목걸이를 지금부터 지급해 줄 것이다. 한 달 뒤 이곳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목걸이 다섯 개가 필요하며, 한 달 뒤에 이곳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목걸이 다섯 개가 없다면. 우리 측에서 즉결 처분이다.”
“아아…….”
“으으으…….”
크론의 살벌한 표정과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기운이 아이들의 공포감을 더해 주었다.
벌써부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만큼 서로를 죽이는 일은 무서운 일인 것이다.
“우리는 한 달 뒤에 올 것이다. 혹여 몬스터가 등장한다면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또 미리 말하지만,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마차 다섯 대에 너희 세 명씩을 태워서, 각기 다른 길로 왔다. 하지만 그 각기 다른 길 중 옳은 길로만 왔을 뿐. 이곳을 나가면 무수한 길이 있으며 그곳으로 자칫 잘못 가면 황천길 가기 십상이지.”
크론은 마지막 경고의 말을 끝으로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인재 양성 기관의 인재들로 거듭날 아이들을 위한, 희생자들일 뿐이니까.
이내 병사들과 기사들이 차례로 마차에 타기 시작했고, 이내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넓디넓은 공간에 아이들과 식량만이 남게 되었다.
“호호, 상황이 좀 그렇게 됐네?”
“네년 알고 있지 않았나.”
“알고 있기는 했지. 그야말로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일론이 능청스럽게 웃는 에르웬을 노려봤다. 그에 에르웬이 받아쳤다.
일론은 아레스라는 곳의 3차 관문을 이미 들은 바가 있었고, 에르웬은 이곳에 오기 전 상당한 정보 수집을 거쳐서 알고 있었다.
때문에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너 말이야…….”
“…….”
에르웬이 이내, 일론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차가운 눈으로 바꾸며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년’이라… 헤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웃고 있을 것 같아?”
일론은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에 에르웬이 웃으며, 자신의 식량이 담긴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목에 걸고는 유유히 한적한 곳으로 가 나무 그늘에 몸을 기대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로크도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어, 연초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후우우.”

덜컹덜컹
“이미 정해진 결과 같습니다. 에르웬, 바로크, 일론. 이 셋이 남을 것입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브록이 뱉은 말이었다. 무의미한 시험이라고 그는 판단하였다.
그에 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무리 다른 아이들이 1년간 독방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녀석들에게 상대가 될 리 없지. 하지만, 만약 그 셋 중 누구라도 붙게 되면 어떤 상황이 생길 것 같나? 후후, 재밌을 것 같군.”
“…그렇겠군요.”
브록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셋 중 누군가 붙게 된다면 상당히 화려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었다.
“그보다 본래 인재 양성 기관의 관문은 3차까지가 끝인가?”
“예, 저는 그때 이 3차 관문을 통과하고, 곧 바로 훈련을 받으며 키워졌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말일세. 이번에는 내가 4차 관문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지.”
“4차 관문이요?”
4차 관문이라는 말에 브록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렇네. 생각대로라면 우리가 예상하는 세 아이가 남겠지. 그 아이들은 웬만한 훈련 가지고는 성장하지 못해. 그만큼의 경지란 말일세. 그러니 그들에게 맞는 훈련을 시켜 줘야지. 후후.”
크론의 입가로 진득한 미소가 걸렸다. 그에 브록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크론이 생각하는 그 아이들에게 맞는 훈련이 무엇일지 의아했다.
‘바로크에게는 아레스의 검술을, 일론에게는 발카스 던전을, 에르웬에게는 거울의 방을… 후후, 정말이지 재밌겠어. 모두가 너무나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왠지 나는 이 아이들이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
그가 가슴속에서 벅찬 무언가가 커져 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