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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제5장. 괴물(3)
그리고 에르웬도 마찬가지로 보였으며, 다른 아이들도 각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앞의 바로크는 단지,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즉 의미가 없다는 말처럼밖에 들리지 않았다.
뿌드득.
일론의 이빨이 갈렸다. 화가 치밀었다. 이딴 녀석이 아레스를 닮았다니. 화가 치밀었다.
스르릉.
“저번과 같이 공격하려는 거라면, 그만둬라.”
“그렇게는 못하겠다. 네 녀석 따위가 누군가 짊어진 아픔을 아는가? 누군가 짊어진 짐을 아는가? 네 녀석은 모를 것이다. 그런 네 녀석이 아레스를 닮았다니… 인정할 수 없어!”
일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보였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뽑아 든 검을 그대로 바로크에게 공격해 들어갔다.
챙!
바로크가 재빨리 검을 집어 들어 막아 내었다. 바로 이어서 일론이 다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움직여 그의 팔꿈치를 잡아 뒤로 밀며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익……!”
“그만둬라, 귀찮으니.”
“……!”
단지 자신과의 싸움이 귀찮다는 말에 일론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만둘 수 없다, 빌어먹을 자식아!”
일론은 자신의 팔꿈치를 막고 있는 바로크의 손 압박이 밀려왔지만 힘으로 억지로 밀쳐 냈다. 그리고는 검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챙챙!
바로크의 검이 너무나도 쉽게 일론의 검을 쳐내기 시작했다. 일론은 현재 따라갈 수 없었다. 바로크의 감각이 느끼는 시간차를.
“어떻게 하지?”
“둘 모두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막 바로크를 처리하려던 에덴과 토미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엿보며 입을 맞췄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에덴과 토미는 그 둘이 서로의 싸움 때문에 방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는 재빨리 움직이며 한 명씩 분담하여 단도를 찌르고 들어갔다.
수우웅.
채챙!
“이, 이럴 수가……!”
바로크를 공격했던 토미는 뒤에서의 기습을 너무나도 쉽게 막아 내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살생 기술은 웬만한 성인 암살자들 속도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크는 너무 쉽게 막아 낸 것이다.
스우웅.
“으아압!”
챙!
“……!”
그리고 연이어, 일론을 노리던 에덴의 검도 허용되지 않았다. 일론이 재빨리 몸을 돌리며 검을 쳐낸 것이다.
“끼어들지 마라. 끼어들면. 죽여 버린다.”
번뜩.
주춤.
순간 에덴은 일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놀라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럴 수가… 암살자 교육을 받은 내가 기에 눌려 몸이 반응하다니… 이, 이건 불가능해. 이 녀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섰어.’
에덴은 자신의 몸이 절로 반응하자 고개를 저었다. 어린 나이에 수많은 고문과 역경을 겪은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앞의 일론이라는 아이에게 주춤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둘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었다.
끄덕.
에덴과 토미가 서로 눈을 맞췄다.
그리고는 각자 앞의 두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챙! 챙챙!
“싸움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군.”
“닥쳐라! 이 녀석들을 죽이고 나면 그다음은 네 차례니!”
바로크가 여유롭게 검을 흘려보내고 태극검을 펼치며 말하자, 일론이 성을 내며 대꾸했다.
‘뭐지? 이건 대체 무슨 검술이냐, 공격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어… 대체 뭐냔 말이다!’
일론과 싸우는 에덴은 어느 정도 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바로크와 싸우는 토미는 달랐다. 자신의 모든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크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짐작이 안 갔다. 그 때문에 갑자기 그에 대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네 녀석이 그만두지 않는다면 할 수 없군.”
바로크는 태극검으로 모든 검을 흘려보내며 토미를 향해 말하고는 이내, 흘려보내던 검을 그대로 역이용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챙! 챙챙챙!
“으윽!”
검을 막아 내는 토미의 손이 저절로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압박감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길 수 없다.
챙! 챙챙!
푸슉.
“크으윽.”
바로크가 그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토미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검으로 몸을 지탱시켰다.
“후우, 피곤하군.”
토미를 처리했다고 판단한 바로크는 숨을 내뱉으며 다시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듯 보였다.
그에 토미가 눈을 번뜩이며, 그의 뒤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이번에는 다른 이가 난입하였다.
“누가 마음대로 내 먹잇감에 손대라고 했느냐!”
쾅!
그는 다름 아닌 카리로스였다. 카리로스의 도끼가 토미의 단도와 맞부딪치자, 토미는 자신의 몸이 힘을 이기지 못해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쾅!쾅!
그리고 연이어 두 번 정도 카리로스의 도끼가 더 내리쳐졌다. 그러자 손에 힘이 풀리며 몸이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카리로스의 도끼가 그의 어깨를 찍었다.
푹.
“끄아악!”
“토미!”
“한눈 팔 시간이 없을 텐데.”
스우웅.
푸슈육.
“억!”
에덴은 토미가 당하자 놀라며 외쳤다. 그 순간 일론의 검이 에덴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암살자로서의 방심. 그것은 죽음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으, 으아아!”
그리고 곧 카리로스의 도끼가 어깨에서 뽑혀져 나오며 토미를 처참히 보내 버렸다.
우직.
“크큭.”
카리로스는 자신의 얼굴에 흥건히 피가 묻자,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바로크를 향해 도끼를 겨눴다.
“다음은 네 녀석이다.”
“헛소리.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카리로스가 바로크를 향해 걸어가려고 하자, 일론이 그의 앞을 막으며 엄포를 놓았다.
그에 카리로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나를 무슨 수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꺼져라.”
“이런 빌어먹을 녀석이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
푸슈유육.
“커억?!”
쿵.
카리로스가 성을 내며 도끼를 움직이려던 때였다. 일론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의 다리를 그어 버렸다.
카리로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일론을 올려다봤다.
“네깟 쓰레기 녀석 죽일 필요도 없겠지.”
일론이 거칠게 몸을 돌려 바로크 쪽으로 향했다. 그의 말에 카리로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내 남은 한쪽 다리에 힘을 주며 일론을 공격하려던 때였다.
“그만해, 카리로스!”
“에, 에르웬.”
에르웬이 자신을 향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더 이상은 그만둬, 카리로스…….”
“그럴 순 없어, 그러면 우리 둘이 함께 살아 나가지 못해.”
“바보… 어서 그만두란 말이야… 더 이상… 더 이상 네가 그러면…….”
에르웬이 애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카리로스는 정말이지 이 아이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곧 에르웬은 히죽 웃어 보였다.
“네가 더 이상 그러면 재밌는 구경을 못하잖아, 이 등신아.”
“뭐……?”
“아아… 힘 좀 쓰는 녀석이 필요했는데, 일론의 검 한 번에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역시 별로 쓸모없는 녀석이었나 보네. 뭐 일론과 바로크가 맞붙으려고 하니, 더 나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일 수도.”
“서, 설마… 네년…….”
“년이라니! 숙녀에게. 헤헤.”
에르웬이 여우같이 웃어 보였다. 카리로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농락당한 것이었다. 이 앞의 내면에 가식을 한껏 품고 있는 소녀에게 말이다.
“으아아아, 이런 빌어먹을 년 죽여 버리겠어!”
카리로스가 괴성을 지르며 마지막 남은 힘으로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에르웬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다.
그 순간, 에르웬이 손을 한번 저었다.
“실드.”
쾅!
“헤헤. 어때 멋지지?”
“네, 네년… 네년!”
카리로스는 시전어 한 번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놀라는 한편, 더욱더 원망감과 증오감이 증폭되었다.
그에 다시 실드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곧 에르웬이 그것을 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재미없다, 너. 웨폰 브레이크.”
콰지직.
파파파팟.
탱! 탱탱탱!
푸슈유육.
“크어억!”
에르웬이 그의 도끼를 향해 웨폰 브레이크를 시전하자, 도끼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더니, 이내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나며 잔해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잔해는 실드와 부딪치거나 카리로스의 몸 곳곳에 박혔다.
“뭐, 그래도 네 덕분에 잠은 잘 자고, 먹을 것은 잘 먹었어.”
얼굴 곳곳에 도끼의 잔해가 박힌 채 뜬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카리로스를 바라보며 에르웬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쿵.
그리고 곧 카리로스는 쓰러졌다.
“이제 우리 셋만 남았네. 헤헤.”
“끼어들면 네년도 성치는 않을 것이다.”
“뭐 나야 상관없지.”
일론의 싸늘한 말에 에르웬이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일론이 바로크를 향해 걸어갔다.
“용납 못한다. 너의 존재를.”
“후우, 하는 수 없군…….”
바로크가 한숨을 내뱉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자신도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일론이라는 아이가 자신에게 매일 딴짓을 걸어왔지만 상처를 입히고 싶지는 않은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상대해 주지.”
“원하던 바다.”
일론의 입가에 희열이 생겨났다. 드디어 매일같이 건성으로 검을 튕겨 내던 녀석의 눈에 의욕이라는 것이 보였다.
과연 마음을 먹은 아레스를 닮은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기대가 되는 한편, 조금은 불안감도 구석에서 밀려왔다.
“흐아압!”
우우웅.
“오, 오러?! 그것도 중급의?!”
먼저 앞으로 나서는 일론의 검에서 하얀 오러가 맺혔다. 에르웬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그 정도면 어디를 가도 기사 대접을 받고도 남는 경지였다. 더군다나, 아직 15살이나 됐을 법한 아이가 저 정도라니.
만약 바로크가 없었다면 일론이 기사로서는 아레스 역사상 최고의 사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챙! 챙챙!
‘이건 틀리군. 자칫 잘못하면 검이 못 견디겠어.’
바로크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오러의 등장에 조금은 당황했다. 이 오러라는 것. 생각보다 훨씬 위험해 보였다.
검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충격은 흘려보내려고 하면 자신의 검을 잡아 낸 채 부숴 버릴 것만 같았다.
일론처럼 오러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 않은 바로크였기에, 평소 때보다 그의 검을 막는 것이 벅차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단지, 벅차졌을 뿐.
일론의 검은 바로크에게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채, 챙!
“……!”
일론의 찔러 들어오는 검을 위로 살짝 한번 쳐낸 바로크의 검은, 손목을 이용해 한번 돌아가며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거세게 내리쳐졌다.
일론의 검이 바닥으로 힘을 잃고 내려갔다.
‘역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
일론은 자신이 오러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바로크의 모든 초감각이 반응하고 있는 이때에 자신의 검이 먹힐 리가 없다고 판정 지었다.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오기라는 것은 질 것을 알면서도 더욱더 열을 내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일론의 검이 미친 듯이 매몰차게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챙! 챙챙챙!
엄청난 속도의 빠르기. 하지만 그것마저도 바로크는 모두 막아 내고 있었다. 일론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힘에 부쳤다. 하지만 오직 정신력 하나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만하자.”
스우웅.
푸슈육.
“크으윽!”
바로크가 그의 검을 옆으로 쳐내며 그대로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일론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 상황이 되었다.
“더 이상은 그만해라, 네가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집착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득이 없다.”
“닥쳐라! 네깟 녀석이 아레스를 닮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레스… 아레스… 매일같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그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단지, 내가 아레스를 닮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