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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제6장. 전설로 남은 검술(2)


“끄으윽……!”
‘차라리…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어…….’
어느새 괴성을 지르는 바로크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끔찍한 고통에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순간, 입에서 포기하겠다는 소리가 흘러나올 뻔했다.
틱.
“한 병씩 더 주입하게.”
“하, 하지만 크론 님… 그렇게 되면…….”
“잔말 말고 주입하게, 명령이네.”
크론이 또 한 병을 주입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에는 안에서 약을 주입하는 이들이 당황해하였다.
방금 전 주입한 두 병의 약 기운이 떨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남았다. 이 상태에서 약 한 병을 더 주입하면 즉사할 수도 있었다.
당황해하던 그들이 그의 목소리에 하는 수 없다는 듯, 한 병을 더 주입했다.
“끄아아악!”
“꺄아악!”
“크으윽……!”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갈수록 커져 갔다.
“흐음…….”
크론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머릿속은 더 이상은 아이들에게 위험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본능은 그들의 한계를 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때문에 무리해가면서까지 약을 투입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포, 포기하자… 그래…….’
바로크가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이 인재 양성 기관을 포기하겠다고 그가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저, 저건 괴물이야…….’
‘말도 안 돼. 사람이 아니다.’
‘다가가지 마. 저런 녀석하고는 말도 섞으면 안 돼.’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던 이들의 시선. 알려주고 싶었다. 또 인정받고 싶었다. 단지, 조금 다를 뿐이라고 나는 너희들과 다를 뿐이고, 자신이 가진 이 초감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인정받아 마땅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단순 돈벌이 도구로 사용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인재 양성 기관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초감각이 인정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힘이 곧 인정이니까. 초감각이 있으면, 그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자신은 기대감을 얻었다. 인정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런 기대감을 지금 깨 버릴 수는 없었다.
“모두들 포기하지 마아아!”
우우웅.
포기하겠다고 내뱉으려던, 바로크의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방 안이 진동할 정도의 큰소리였다.
“……!”
크론이 눈을 부릅떴다. 방이 꽤 우렁차게 진동했다. 그의 눈이 떨렸다.
‘서, 설마…….’
크론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른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로크의 목소리를 들은 듯, 서서히 의지를 잃어 가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은 다짐으로 변했다.
“말도 안 됩니다. 완벽한 방음 처리가 되어 있는데…….”
“그의 목소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타고 흘러 나가 의지가 전달되니, 세상은 그를 하늘과 땅,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불렀다.”
브록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크론이 아레스 전기에서 보았던 한 구절을 읽었다.
아레스의 의지가 모든 것을 타고 흘러가 모든 이들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보면 마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마법이 아닌 것이었다.
물론 마법 중에 이런 마법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마법을 배우지 않는 기사 중, 유일하게 아레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전설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것이 바로 크론의 앞의 한 소년에게서 나타났다.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크론의 입가로 희열이 생겨났다. 아레스 같은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올지도 모른다가 아니었다. 나올 것이다. 분명 저 소년은 아레스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를 꼭 빼닮았으니까.
그가 가진 것을 하나하나 가지고 있으니까. 그는 아레스가 될 것이다.
“포기 안 한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네깟 녀석 뛰어넘어 주마! 크아아악!”
“포기 안 해, 절대 포기 안 해……! 아버지를, 아버지를 위해서!”
“…….”
씨익.
흠칫.
바로크의 목소리를 들은 일론과 에르웬이 외쳤다. 분명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크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크는 마치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강렬한 고통 속에서 웃어 보였다.
크론과 브록이 자신들도 모르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해 주마. 셋 모두.”
틱.
“약 투입을 중단하고, 해독제를 투입해.”

포근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지쳐 있던 몸이 한순간에 사르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포근함과 안락함 속에서 바로크의 눈이 조심스럽게 떠졌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천장이었다. 오랜 시간 청소를 하지 않은 듯 꽤 지저분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덮고 있는 이불은 정말이지 따뜻하였다.
벌떡.
바로크가 몸을 일으켰다. 아직까지도 몸 곳곳에 뜨거움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정신이 들었군.”
그때, 바로크의 침대 앞에서 의자에 앉아, 양다리를 꼬고 앉아 기다리고 있던 크론이 말했다.
“당신……!”
바로크가 절로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현재로서 살아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상했듯이 아레스 측에서 자신들을 버렸다는 말은 거짓일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 거짓을 말한 겁니까.”
바로크가 도끼눈을 뜬 채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크론이 피식하고 웃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너희들의 육체가 ‘죽음’이라고 불리는 약물에서 얼마나 버텨 낼지, 그리고 너희들의 정신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그리고 ‘죽음’을 투입함으로써 난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의 이상이라는 것을 후후후.”
크론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감돌았다. 바로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는 장난감같이 농락을 당해, 상당히 짜증스러움과 불쾌감이 치솟고 있었다. 근데 이 앞의 이는, 자신이 얻어 내려고 했던 것을 얻어 내어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로써 너에게도, 아니, 너희 셋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있을 것이다.”
“이득……?”
이득이라는 말에 바로크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 내고 얻게 될 이득이라니.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강함’이다. 말했듯 너희들은 4차 관문을 걸쳐야 한다. 아레스 측에서 형식적으로 만들어 낸 관문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4차 관문이다. 너희들은 ‘죽음’과의 싸움에서 정신력과 신체적으로 이겨냄으로써 4차 관문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조건을 얻었다.”
“…….”
바로크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강함을 원하기는 한다. 하나,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개처럼 끌려다니면서 얻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한껏 인상을 쓸 때, 다시 크론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네 녀석은 아레스를 닮았다.”
“아레스… 아레스. 대체 그 사내가 누구입니까?”
바로크는 매일같이 자신만 보면 아레스를 닮았다는 둥 하는 이야기가 짜증이 솟구쳤는지 물었다.
그에 크론이 웃음을 싹 지우고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 아스트 대륙에서 전설로 남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꽤 오래된 일이기에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일컫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검술서가 떡하니 세상에 있으니, 거짓일 리는 없겠지.”
바로크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아레스 전기라는 책을 읽어 보면 그는 상당히 신적인 존재로 저자되어 있지. 고작 인간인 주제에 신이 만들어 낸 하늘과 땅을 가졌고, 모든 자연을 얻은 존재이며, 하나의 일심동체를 이루는 존재라고 표기되어 있지.”
‘태극… 권?’
크론의 말에 바로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의 권법. 아니, 이제는 검술이 되어 버린 태극검을 떠올렸다.
태극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사상이 강한 권법. 또 어떤 이들은 자연과 일심동체가 되는 권법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태극권의 단전호흡을 했을 당시, 자연의 일부인 마나가 엄청난 힘을 발휘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 그 아레스라는 인물은 너와 비슷한 힘을 사용했다.”
“……!”
바로크가 자신이 태극권을 생각하고 있자, 생각을 꿰뚫어 보듯 말하자 조금은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아직 너의 검은 미숙하다. 하지만, 가끔 보는 너의 검은 내가 책에서 떠올리던 아레스의 검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일심동체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니. 그는 자연이고, 자연은 그이요. 참으로 멋진 말이지 않나?”
“고작 그것 때문에 저를 그와 닮았다고 하는 겁니까? 비슷한 검을 사용하는 것만으로요?”
바로크가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졌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고작 분위기나, 사용하는 검술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매일 아레스 아레스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크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 그는 너와 같이 모든 감각이 뛰어난 초감각 인간이었다.”
“……!”
크론의 결정적인 말에 바로크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과 같은 초감각 인간. 놀라웠다.
“그는 너와 같이 소리만으로도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것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배운다고 하였다. 또,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고 책에는 저자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가 초감각을 지닌 인간이라고 판정 지었다. 더군다나, 그가 남긴 검술서. 그것은 모든 감각이 일반 인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이가 아니면 익히기가 불가능하다고 세상은 인정했다. 그리고 바로 네가 그 검술을 익힐 아레스 그다음의 인간이다.”
“그의 존재 여부가 검술서가 존재한다고 하여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비해 당신이 그런 확신하는 표정을 짓다니, 당신은 그를 존경하는 겁니까?”
바로크는 놀란 표정을 추스르고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크론이라는 인물이 무언가를 존경하거나, 아니면 전설 같은 것을 믿을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조작된 것일지도 모르는 검술서 때문에 그는 너무나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 보였다.
“존경이라. 아니다, 너 때문이다 바로크.”
“저 때문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바로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레스라는 인물은 전설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책에 저자된 인물이다. 아레스 전기에 저자된 것들을 읽어 보면 사람으로서 믿기 힘든 부분이 상당하다. 물론 초감각이라는 것도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초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지 않느냐, 이러한 인간으로서 믿기 힘든 것을 가진 이가 내 앞에 존재하는데,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크는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기대감과 믿음을 보았다.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지금 자신의 존재로 하여금 아레스라는 인간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네가 하게 될 4차 관문을 아레스의 검술로 확정 지었다.”
“아레스의 검술요?”
바로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익히지 못했다는 그 검술. 그 검술을 아레스와 같이 초감각을 지니고 있는 자신에게 배우게 하려 한다는 것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는 기대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레스의 검술은 책에 저자된 대로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검술보다 위대하다. 아니, 위대한 정도를 넘어서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한데, 네가 그 검술을 완벽히 익히게 된다면 너는 이 대륙의 최정상의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 ‘인정’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
“…….”
크론은 이미 바로크가 갈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인정’. 사람들에게 괴물 같은 인간이 아닌, 단지 특별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바로크가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지 안 할지 선택 여부는 너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4차 관문에 네가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
크론이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자신이 그에게 해 줄 말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끼이익.
쿵.
그대로 크론은 밖으로 나갔다.
“최정상의 자리…….”
바로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최정상의 자리.
자신이 이곳 아스트 대륙의 최정상의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
본래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자신은 인정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최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묘한 흥분감과 함께,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끊임없이 강해지고 싶어 하는 본능.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