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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3화)
chapter.1 의식의 날, 절망의 색(3)


‘제길……!’
쿵―!
인적이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간 쥬드는 벽에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했다. 발끈해서 한마디 쏘아붙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진 않았다.
“내가 어쩌다가…….”
호루스 기사단 최고의 검사.
아툼 신전 사제 서품 최단 기간 수료.
토너먼트 최초의 만점 우승.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광스런 기록들을 줄줄이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천하의 쥬드 펠릭시아가 자신의 약혼녀에게서 미래가 없다고 버림받다니.
아무리 잘난 척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토트가 승자, 그는 패자.
위로 올라갈 사람은 타냐, 아래로 떨어질 사람은 자신.
“젠장……!”
쿵― 쿵― 쿠웅―!
너무 세게 들이받았는지 이마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분노가 들끓어서 머릿속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인정해야 했다.
이젠 정말로…… 모든 것을 잃었다.
“빌어먹을―!”
어두운 뒷골목에서 쥬드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멤피스 왕궁 서쪽에 위치한 호루스 기사단의 본부.
해가 쨍쨍 내리쬐는 정오에 두 사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글쎄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그게 어떤 건데? 호루스 기사단의 상징이자 기사의 명예나 다름없는 메달을 그따위로…….”
“잠깐! 뭐라고? 메달을 던졌다고?”
“예! 그랬다는 겁니다! 이놈은 이제 호루스의 자긍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놈입니다!”
호루스 기사단의 부단장 푸타하는 특유의 벗겨진 머리가 빨개지도록 흥분해서는 숨을 씩씩거렸다.
반면, 차분한 눈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단장 메나스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메달을 던졌다고?”
“저, 저기 단장님? 그게 웃을 일이 아니잖습니까? 당장 불러서 처벌을 해야 할…….”
“아니지, 아니지. 사내놈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예?!”
“하여간 쥬드, 그놈은 재밌는 놈이야. 그럼 지금 그 녀석은 뭐하고 있나?”
“그게 지금…….”
푸타하는 덩치에 안 맞게 우물쭈물하며 잠시 고민했다.
“토트와 기사 몇 명이 교육을 시키려고…….”
“허어, 두들겨 패러 갔다는 소리구먼?”
“크흠! 패다뇨? 교육입니다. 철없는 녀석에게 좀 더 호루스 기사단에 걸맞은 정신을…….”
“됐어. 됐으니까 그 녀석을 이리로 불러오게.”
푸타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쥬드를 찾아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푸타하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쥬드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쯧쯧. 꼴이 그게 뭔가?”
“크흠, 단장님. 이건…….”
“됐어. 자네한테 안 물었네.”
푸타하는 민망한지 얼굴이 벌게져서 뒤로 물러났다.
“이봐, 쥬드.”
“…….”
“대답도 안 할 건가?”
“……아닙니다.”
“쯧쯧. 꼴이 그게 뭔가? 토너먼트 우승자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면 우리 호루스 기사단의 체면이 서겠나?”
메나스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여기저기 흙투성이인데다가 입술은 터져 있고, 팔다리는 멍이 들었는지 벌겋게 부어 있다. 누가 봐도 얻어터졌다고 생각할 한심한 몰골.
자존심이 상했는지 쥬드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비겁하게 세 명이서 덤비지만 않았어도…….”
“목숨이 걸려 있는데 비겁한 게 무슨 소용인가? 전쟁터에선 그보다 더한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또 그 말씀이시군요.”
“중요하니까 여러 번 말하는 거야. 머리가 좋건 나쁘건, 꼬맹이들은 한 번 말해선 못 알아듣거든.”
쥬드와 메나스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강직한 눈에 뜨거운 감정이 이글거리는 쥬드.
유들유들하게 웃는 얼굴 밑으로 차가운 빛이 감도는 메나스.
“저는, 꼬맹이가 아닙니다.”
“열여덟도 안 됐으면 꼬맹이지.”
“꼬맹이가 아닙니다.”
“오, 그래? 내가 기사단에 들어온 뒤부터 따져도 20년이 넘었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난 이미 기사였다는 소리지. 그런데도 꼬맹이가 아닌가?”
“예, 아닙니다.”
“…….”
어느 쪽도 양보하질 않았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이내 메나스는 푸타하에게 손을 내저었다.
“부단장, 잠시 나가 있게.”
“예? 하지만 단장님. 저도 여기에 있고 싶…….”
“내가 나가라고 했잖나?”
“……알겠습니다.”
푸타하가 툴툴거리면서 밖으로 나가자, 방 안에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메나스는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리고는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후우, 쥬드. 넌 모범생 타입이지?”
“……?”
“지금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지? 아, 어째서 이런 불량한 놈이 최고 엘리트 기사단의 단장으로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왜 변방으로 쫓겨나야 하는 거지?”
“……!”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쥬드를 보며 메나스는 피식 웃었다.
“내 거신병이 무슨 색인지 아나?”
“노란색입니다.”
“그래. 그럼 푸타하 부단장의 거신병은 무슨 색인지 아나?”
“주황……색입니다.”
“그렇지. 그럼 분명히 주황색 기체가 더 강할 텐데, 어째서 내가 푸타하 부단장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걸까?”
쥬드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망설였다.
물론 답은 알고 있었다. 메나스 테프누트. 이제껏 듀얼(Dual)에서 져 본 적이 없다는 거신병 전투의 일인자. 평범한 노란색 거신병을 가졌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호루스 기사단장이란 직위가 모자란 인물.
세간에선 만약 메나스가 최강의 거신병 태양왕을 가진 야누스 대장군과 싸우면 어떨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둘의 듀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고작 평범한 노란색 기체일 뿐이었다. 주황색 기체에 비하면 출력이 1.5배나 약하고, 붉은색과 비교하면 신장은 2배, 출력은 4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그 승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나오다니.
그 정도로 지금껏 메나스가 보여 준 능력은 이례적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글쎄? 무슨 말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저는 단장님과 사정이 다릅니다. 녹색 거신병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그래, 힘들겠지. 녹색은 거신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성능이니까. 출력이 노란색 기체보다 7배나 약하다지? 장갑도 장착되어 있지 않고. 확실히 싸움터에 내보내면 10초도 세기 전에 포격만으로도 박살날 거야.”
쥬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요?”
“길거리 싸움 해 봤나?”
“……아뇨.”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덩치만 크면 싸움을 잘하는 줄 알지만, 사실 싸움에선 순발력, 그리고…… 이 머리가 가장 중요하지.”
톡톡―!
메나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자넨 머리가 좋아. 그리고 자신이 머리가 좋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그건 굉장한 장점이야. 아마 일터에서 일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면 높은 곳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걸세.”
“……놀리시는 겁니까?”
“아니, 너무 위만 바라보는 것도 멍청한 짓이라고 말하는 거야.”
흠칫―!
메나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차갑고 냉정하고 섬뜩한. 시체를 바라보듯 무감각한 눈빛을 보며 쥬드는 순간적으로 크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멤피스는 큰 나라지만, 거신병 숫자를 세면 300대도 되지 않아. 지금 자네는 녹색이 나왔다고 투정 부리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것마저도 말단 병사들에겐 꿈에 그리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게나. 아무리 못해도 수만의 군사 중에 300위권 안에 들어 있는 거야.”
“…….”
“전쟁터에 나가 보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중장갑(Powered Armor)을 입고 마나포가 쏟아지는 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자들이 수두룩해. 지금 자네가 하는 건 배부른 투정이다, 이 말이야.”
메나스가 뿜어내는 기세는 엄청났다.
과연 최강의 듀얼리스트. 무적자란 별명을 지닌 호루스 최강의 기사였다.
그 앞에서 똑바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쥬드는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기 위해 손등이 새하얘지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속에서 끄집어냈다.
“꿈을…… 꾸는 것도…… 잘못입니까?”
“뭐라고?”
“목표를…… 높게 잡는 건…… 죄가…… 아니잖습니까……?”
메나스의 눈빛에 가슴이 짓눌려서 터져 버릴 것 같았지만 쥬드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오히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허리를 쭉 폈다.
“……발밑을 보지 못하는 자는, 언젠간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지.”
“예……?”
“내가 할 말은 거기까지다. 나가 봐.”
어느새 그의 압도적인 기운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평소의 유들유들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온 메나스였다.
“뭐하나? 나가 보라니까?”
“아, 예.”
“어서!”
“예!”
당황한 쥬드가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갔다.
메나스는 책상에서 다리를 내렸다. 팔짱을 끼고 편안한 의자에 몸을 푹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열일곱인가……. 그 나이에 내 기세를 버텼다는 거지?”
씨익―
자연스레 입가로 의미심장한 웃음이 떠올랐다.
“……기대해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