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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4화)
chapter.2 국경 지대, 녹색의 병사들(1)
덜컹― 덜컹―
쥬드는 달리는 마차 안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녹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나무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이 끝없이 자라나고 있는 대수림(大樹林).
‘북서쪽, 국경 지대 제1지부였나?’
이곳은 이름도 없는 곳이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사람도 살지 않는 무인 지역. 그나마 이렇게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
‘이런 데서 계속 지내야 한단 말이지…….’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앞으로 계속 이런 곳에 처박혀서 썩어 가야 한다니. 천하의 쥬드 펠릭시아가 이 정도밖에 안 됐던 건가? 어릴 적에 반드시 출세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이제 끝나 버린 건가?
화려하게 빛나던 수도의 불빛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어 버린 건가?
“젠장!”
씁쓸한 기색이 넘쳐 나던 쥬드의 눈에 서서히 녹색이 아닌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었음이 분명한 황무지 위에 튼튼한 통나무로 만들어 낸 방책들.
히히잉―!
“내리십시오.”
쥬드가 마차에서 내리자, 무뚝뚝한 마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곳인가?”
홀로 남겨진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소위 작업장이라 불리는 곳을 살펴봤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대충 다듬어진 통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목재소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창 일할 낮 시간인데도 인부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벅― 저벅―
“여기 아무도 없습니까?”
웅― 우웅―
멀리서 메아리만 들려올 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북서쪽 국경 지대 제1지부 책임자 없습니까―!”
끼이익―!
“아함! 누구신지……?”
“……?”
그런데 그때, 옆에 세워져 있던 허름한 오두막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나오는데, 움직일 때마다 비듬처럼 보이는 하얀색 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머리가 검은색이라 더더욱 눈에 띄었다.
외모로 봤을 때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 정도. 꽤 마른 편이지만 그래도 적당히 필요한 근육은 붙어 있었다.
그는 졸린 눈을 끔뻑거리면서 멍하니 쥬드를 응시했다.
“누구……? 아, 혹시 오늘 온다던 신입 기사이신가?”
“……그렇습니다만.”
“아아! 그렇구나. 반가워요. 제 이름은 제프입니다.”
쓱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데, 쥬드는 감히 그것을 맞잡지 못했다.
‘비듬이 손에 붙어 있어!’
도시의 깔끔한 기사들만 봐 오던 쥬드에게 제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어? 악수를 싫어하시나?”
쥬드는 황급히 화제를 전환시켰다.
“커흠! 쥬드 펠릭시아입니다. 그런데, 제1지부에 다른 분들은 없습니까? 몇 분 더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제1지부? 아! 하하하! 그 이름을 오랜만에 듣네요. 편하게 작업장이라고 부르세요. 다들 그렇게 불러요.”
“……아, 네.”
“다른 분들은 다들 일터로 나갔어요. 그러고 보니 이제 돌아올 때가 됐는데…….”
멍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제프를 보며 쥬드의 얼굴이 티 안 나게 일그러졌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들었다. 짜증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대체 여기 인간들은 자존심도 없는 건가? 어떻게 스스로 작업장이라고 부를 수가 있지?
“쥬드 펠릭……. 아, 뭐라고 불러야 하죠? 쥬드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펠릭시아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예. 펠릭시아 씨. 펠릭시아 씨는 호루스 기사단에서 오셨다면서요?”
일부러 딱딱하게 선을 그었는데도 제프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역시! 왕궁 출신은 다르더라고요. 거신병 조정이 잘 되어 있던데요? 제가 딱히 조정할 게 없었어요.”
“조정……요?”
“예! 동조율도 높고, 관절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장갑은…… 원래 없지만. 하하! 뼈 대부분이랑 마나 회로 부분도 정돈이 잘 되어 있고요. 무엇보다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머리 부분의 깃털 장식인데, 거기가…….”
줄줄 말을 잇는 제프를 보며, 쥬드는 깜짝 놀랐다.
“잠깐, 잠깐만요. 조정이라뇨. 혹시 당신……?”
“예? 아, 예. 전 관리자예요. 하하! 그렇겐 안 보이죠? 그것 때문에 처음에 아피스 팀장님을 만났을 때도 한 소리를 들었었어요.”
“……!”
놀라울 따름이었다. 관리자라니…….
관리자는 전문적으로 거신병을 관리해 주는 사람을 말하는데, 아툼 신전에서 사제 서품을 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고고학, 회로 이론, 마법 공학까지 일정 기준 이상 공부해야만 하는 엘리트 직업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관리자라고?’
관리자들은 다 깐깐하고 깔끔하다는 건 속설에 불과한 건가?
쥬드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제프는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 작업장에서 관리자는 저뿐이에요. 국경 쪽에 인력이 부족해서……. 하하. 이해해 주세요.”
“……이해합니다.”
“근데 제가 혼자 네 대나……. 아, 이제 다섯 대네요. 기체를 다섯 대나 관리하다 보니, 팀원들이 직접 자기 기체를 돌보는 데 익숙해졌어요. 이젠 제가 손댈 곳이 없을 정도로요.”
“그렇군요.”
쥬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이런 곳에 제대로 된 관리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실력이 없나 보군. 그러니 팀원들이 스스로 기체를 관리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신병의 내부를 직접 손볼 이유가 없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 정말요?”
“예, 제 기체엔 손대지 마십시오.”
다행스럽게도 신전에서 공부할 때 거신병 관련 학문도 공부해 두었다.
괜히 고장 내지 마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제프는 감격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해 주시다니! 펠릭시아 씨는 좋은 분이셨군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군요.”
“에이, 쑥스러워하시긴.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짬을 내서라도 펠릭시아 씨의 기체는 신경 쓰겠습니다.”
“아니, 제 말은…….”
설명해 주려 했지만 해맑게 웃는 제프를 보니 이미 무슨 말을 하더라도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단순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예?”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곳엔 기체들을 놔둘 공간이 없는 것 같은데 평소에는 어디에 두는…….”
쿵―! 쿵―!
위이잉―
“……!”
갑자기 거대한 발소리 같은 것이 쿵쿵 울리면서 주변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거대한 존재들이지만 마치 보호색으로 몸을 감춘 도마뱀처럼 온통 녹색이다 보니 분명히 기척이 느껴지는데도 코앞에서 몸을 내밀 때까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아, 팀원들이 돌아왔네요.”
“…….”
“팀장님! 여기 신입이에요!”
기이잉―
제프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녹색의 거인들이 일제히 쥬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쥬드는 그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거신병은 총 네 대. 그림자처럼 갑자기 불쑥 나타난 그들은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완전히 똑같은 거신병은 하나도 없다지만, 이들의 생김새는 정말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났다.
어떤 기체는 물소처럼 뿔과 둔중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기체는 독수리나 고양이처럼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녹색이 아니었다면 한 팀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저기, 늑대처럼 생긴 쪽이 누트, 고양이처럼 생긴 쪽이 바니, 뒤쪽에 악어처럼 생긴 건 세베크.”
“…….”
“그리고 맨앞에 소처럼 커다란 녀석이 우리 아피스 팀장님의 거신병이에요.”
오자마자 거신병들에게 포위되다니.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쥬드는 오히려 가슴을 펴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살펴봤다.
실제로 이상한 점도 하나 있었다.
‘어째서 기척을 느끼지 못한 거지?’
녹색이 다른 거신병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장이 6미터에 중량도 18톤은 나가는 물건이었다.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일부러 기척을 숨겼어? 하지만,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일.
이제껏 많은 관리자들이 거신병에 마법을 걸어 보려고 애썼지만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고대 유물이 가진 역장은 너무 강력해서 어떤 마법도 통하질 않았던 것이다.
푸쉬이이―
그때, 맨앞에 있던 머리가 소처럼 생긴 거신병의 가슴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상체를 내밀었다.
“신입?”
“예.”
“아피스다.”
그걸로 끝이라는 듯 고개를 휙 돌리는 그를 대신해서 옆에 있던 제프가 설명을 이었다.
“우리 팀장님이에요.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따뜻하시고요. 사냥도 잘해요. 음, 원래 유명한 용병 출신이시고……. 아, 참. 펠릭시아 씨 빼고는 팀원 모두가 이스트 웨이 출신이에요.”
“이스트 웨이요?”
“네.”
거신병을 소환할 수 있는 유적은 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멤피스 안에만 총 세 군데.
첫 번째는 수도에 있는 아툼 신전.
두 번째는 멤피스의 속국인 비블로스 공국의 유적.
그리고 세 번째가 동부 국경 근처의 상업 도시 이스트 웨이의 유적.
그 중에서 이스트 웨이는 비싸긴 하지만 일정한 돈만 내면 용병들도 거신병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스트 웨이는 전투가 워낙 치열해서 녹색도 곧장 전투에 내보낸다고 하던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까?”
“아, 예. 그렇긴 한데…….”
제프는 우물쭈물했다.
“그게 사정이…….”
“사정이요?”
“하하, 예. 뭐……. 그런…….”
제프가 뭔가 말하기 곤란한 것처럼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자,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피스가 쥬드를 쳐다봤다.
“신입. 그게 중요한가?”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만.”
“그럼 됐군. 팀원들과 인사나 나누지.”
말을 끊는 아피스에게선 그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푸쉬이이―
그 사이, 나머지 세 대의 거신병에서도 팀원들이 빠져나왔다.
늑대 같은 얼굴의 거신병에서는 밝은 인상의 잘생긴 청년이, 악어 같은 얼굴의 거신병에서는 살기가 흐르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그리고 고양이 같은 얼굴의 거신병에서는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이 튀어 나왔다.
‘여자? 아니, 그보다 내려올 때 사다리 같은 것도 안 대 주는 건가?’
보면 볼수록 열악한 환경이 여실히 느껴졌다. 수도에선 모든 거신병 기사들에게 관리자가 한 명씩 붙고, 거신병에서 내릴 때는 신입 기사들이 사다리에 수건과 물까지 챙겨 줬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암벽등반을 하듯이 거신병의 몸을 직접 타고 오르내리는 것이다.
“왼쪽에서부터 누트, 세베크, 바니다. 질문 있나?”
“아뇨, 없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쥬드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봤는지, 누트라 불린 청년이 손을 내저었다.
“에이, 팀장님 또 그러신다. 엘리트 기사단에서 왔는데 그렇게 무뚝뚝하게 하면 기분 나쁘잖아요?”
“내가 잘못했나?”
“아뇨. 잘못한 건 아니지만 좀 더 부드럽게 대하라고요. 기사님한테 우리 용병 출신들이 막 대하면 자존심 상할걸요?”
“그런 건가?”
아피스는 묻는 듯한 눈빛으로 쥬드를 쳐다봤다.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 아니긴 뭐가. 아까 얼굴 찡그려지던데?”
“…….”
“솔직히 말해 봐. 기분 나빴지? 아까?”
도대체 편을 들어주려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
누트는 잘생긴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하하, 어쨌든 친하게 지내자고. 나는 누트. 넌 이름이……?”
“쥬드 펠릭시아입니다.”
“아, 그럼 쥬드라고 부…….”
“아뇨, 펠릭시아라고 불러 주십시오.”
탁―!
딱 잘라 대답하며, 어깨동무를 하려는 누트의 팔을 쳐냈다.
“어……?”
당황하는 듯한 기색도 잠시…….
“에이, 까칠하긴. 성격 특이하구나? 솔직히 말해. 기사단에서 친구 별로 없었지? 그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것 봐. 아니라고 못 하잖아? 그럼 안 돼! 사람이 적당히 사교적이어야지. 난 쥬드라고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이것 봐요!”
“에이, 몰라 몰라. 안 들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황당하게 바라보는데, 아까 바니라고 불린 여성이 어느새 숨이 맞닿을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와선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뭡니까?”
“헤에, 잘 생겼잖아? 쥬드, 여자 친구 있어?”
“……!”
“아하! 있었지만 얼마 전에 없어진 듯한 표정인데?”
“……?!”
귀신같이 정확한 예측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분명히 펠릭시아라 부르라는 걸 들었을 텐데도 왜 쥬드라고 부르는 거지?
“야야, 동생. 신입 꼬시지 마.”
“에이, 뭐 어때? 잘생긴 남자는 오랜만에 보는걸. 난 여기서 갇혀 지내느라 욕구불만이라고.”
“여기 잘생긴 남자 있잖아?”
“흥! 친오빠가 잘생겨 봤자 아무 쓸모도 없네요.”
“뭐야? 야! 어릴 때 너네 친구들이 날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툭탁거리는 누트와 바니를 보며 쥬드는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친오빠라고?’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머리 색은 붉은색이 감도는 갈색이라는 것이 똑같고, 남의 말을 안 듣는 마이 페이스라는 것도 똑같았다.
처음엔 제프가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 둘에 비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척―
그 사이 성큼성큼 다가온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호쾌하게 손을 내밀었다.
“세베크다. 펠릭시아라고 부르지.”
“아, 예. 가…… 크흠! 네.”
당연한 일인데도 순간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하나같이 특이한 사람들이라, 그사이에서 정상적인 세베크가 오히려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세베크는 인사가 끝난 뒤,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바니를 쳐다보면서 혀를 찼다.
“쯧, 밝히기는.”
“뭐? 세베크, 너 뭐라고 그랬어!”
“밝힌다고 그랬다. 이래서 여자는 전쟁터에 나오면 안 돼. 그렇게 남자가 좋으면 수도에서 파티장이나 다닐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야?”
“뭐, 뭐야?!”
고양이처럼 눈초리가 추켜 올라간 바니가 성큼성큼 세베크에게 다가갔다.
바니는 쥬드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큰 키를 가졌지만, 세베크가 워낙 크다 보니 그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흥분한 것처럼 숨을 씩씩거리면서 으르렁거렸다.
“해 보자 이거지, 지금?”
“훗. 그걸 달고 싸울 수나 있겠어?”
“그거라니?”
“그거 말이다, 그거.”
쿡―!
세베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바니의 불룩한 가슴이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확 타올랐다.
“이게 진짜!”
“그거 달고 싸울 수나 있겠냐고.”
“오늘 너 죽었어!”
곧장 주먹을 내지르려는 두 사람 사이로 아피스가 끼어들었다.
“그만하지. 그리고 신입이 왔으니까 일을 가르쳐야 하지 않나?”
거대한 덩치에 진중한 목소리. 과연 팀장은 달랐다.
아피스의 말에는 두 사람도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아, 맞아요! 아까 펠릭시아 씨가 평소에 기체를 어디에 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나?”
“예, 거길 먼저 소개해 주는 게 어떨까요?”
밝은 얼굴로 싱글거리는 제프에게 아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거기서 테스트부터 하지.”
쥬드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아피스를 얼떨떨하게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