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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제8장. 무(無)의 검(4)
크론이 인정한다는 식으로 말하자, 브록이 되물었다. 대륙에서 인정받는 천재 검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오다니.
“저 세 녀석은 오랜 시간 지옥 같은 곳에서 수련을 했겠지. 분명 지금 저 녀석들이 가진 힘은 엄청난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 컨트롤 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야. 아직 경험이 없으니 그런 점에서는 미숙한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경험이 쌓인다면 나 또한, 저 녀석들 중 어떤 녀석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그런…….”
크론의 말에 브록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곧 크론의 시선은 다시 그들에게로 향했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일론?”
일론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듯 에르웬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내가 알바 아니다.”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해야겠어?”
“그만. 더 이상은 말하지 마라.”
에르웬의 말에 바로크를 매섭게 노려보던 일론이 다시 한 번 차갑게 에르웬을 보고는 말했다.
“좋아. 그렇게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면 나는 이제 그만할게”
에르웬은 꽤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론의 손이 검을 굳세게 잡아 냈다.
바로크는 여전히 편한 자세로 서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타타탓.
일론의 발이 빠르게 움직이며 바로크의 주위로 근접했다.
스우웅.
탱!
챙챙!
거대한 클레이모어의 움직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크는 가볍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뭐냐, 분명 지금은 내 몸이 녀석의 감각보다 빠르게 반응할 터인데, 녀석은 예전과 같이 내 검을 흘려보내고 있어, 이 녀석이 얻은 것의 영향인가?’
일론은 자신의 현재 몸이 바로크의 감각을 앞서 갈 정도로 빠르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수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의 검은 그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얻은 것을 보여 주마, 일론.”
“원하던 바다.”
검을 막아 내며 바로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에 피식 웃은 일론의 클레이모어가 더욱 커졌다. 그 크기가 거의 들고 휘두르기 힘들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일론은 능수능란하였다.
거대한 클레이모어가 무게를 머금은 채 강하게 바로크를 향해 휘둘러지려고 했다.
그 순간, 바로크의 검이 클레이모어의 검날의 한 부분을 살짝 막아 냈다.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크의 검이 자신의 검날을 살짝 막고 있는 것에 콧방귀를 끼고 힘으로 내려치려던 일론이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힘을 주고, 안간힘을 써 봐도 얇고 녹슨 검에 막힌 자신의 클레이모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이 부드러움이다. 일론.”
“헛소리.”
일론이 결국 이번 공격을 포기하고 검을 뒤로 빼내며 다시 앞을 향해 뛰쳐나갔다.
검이 매섭게 튀겼다.
스우웅.
후우웅.
‘아슬아슬하군.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내가 더 강한 것 같군.’
바로크가 자신의 몸을 간발의 차로 훑고 지나가는 클레이모어를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감각은 예전보다도 더 뛰어나져 있었다. 한데, 그 감각을 일론은 단순 빠르기만으로도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더욱 강한 것은 자신이었다.
“이제 보여 주지. 무의 검.”
화아아악!
계속 몰아쳐 오는 묵직한 느낌의 클레이모어에 바로크가 눈을 부릅뜨며 손목을 이용해 검을 움직였다.
그 순간, 엄청난 빠르기의 검이 일론의 주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태태탱!
태태태탱!
“크윽. 제길.”
일론이 클레이모어를 다시 작게 만들며 거칠게 들어오는 검을 튕겨 냈다.
하지만 그 빠르기를 자신이 주체할 수 없었다. 아마 지금 바로크가 어느 정도 봐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만약 바로크가 진심이었다면 지금 자신은 저 빠른 검에 갈가리 찢겨져 있었을 것이다.
푸슈육!
“크윽.”
탱그랑!
힘겹게 검을 막아 내던 일론의 손목을 바로크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피가 뿜어져 나오며 일론이 검을 떨어뜨렸다.
“역시 강하군.”
일론이 자신의 손을 감싸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보다 네가 얻은 그 검은 뭐지? 신비스럽군.”
바로크가 물었다. 아까부터 상당히 궁금하였다. 무언가 저것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생명이 깃든 것과 같은 느낌이 났다.
“내 스승이다.”
“스승……?”
“후후, 나는 발카스 던전에서 한 드워프를 만났다. 그곳에서 그를 만나 나는 강해졌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를 죽였다.”
“…….”
바로크는 그의 마지막 씁쓸하면서도 차가운 말에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필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론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득을 준 이를 죽일 사람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튼 다시 만나서 기쁘다. 일론.”
“나 역시.”
바로크가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일론이 한쪽 입을 올려 웃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계속 그런 표정 짓고 노려보기만 할 건가?”
손을 맞잡고 있던 일론이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시선에 말했다.
“쳇! 아까는 그렇게 무시하더니.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야?”
“그야 우리 셋이 다시 만난 날이니까. 어쩌면 새로운 전설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놀고 있네!”
일론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에르웬이 어이없다는 식으로 웃으며 화염의 구를 날렸다.
“이크!”
바로크와 일론이 그에 몸을 뒤로 빼냈다.
쾅!
“휘유, 정말 아까도 느꼈지만 저 마녀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아.”
피해 낸 화염의 구가 벽에 강타하자 그 폭발의 위력을 본 일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보고 마녀래! 그러면 너는 정상이야?! 냄새나는 드워프하고 시시덕거리고 온 주제에!”
“냄새나는 드워프라… 이거 에스온 님이 들으면 화내겠군… 조용히 해라, 에르웬. 에스온 님은 너 같은 마녀에게 그런 소리 들으실 분이 아니시다.”
“마녀, 마녀! 좋아 이번에는 6서클의 최고위 급 마법을 시전해 주지.”
“진정해, 에르웬!”
“후후후후.”
6서클의 마법이라는 말에 일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바로크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보이는가?”
“예?”
“저 아이들, 아니, 저 녀석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후후, 나는 보이는군. 정말 광대한 그 길이 말이야.”
세 사람을 보며 크론의 입가로 함박웃음이 맺혔다. 이제 시작이었다.
세 사람의 거친 행보가.
제9장. 리더가 되다(1)
5년 만에 아레스로 돌아온 바로크는 1주일 동안 이제까지 피곤에 쌓여 있던 몸을 풀었다.
매일같이 냉기만이 흐르던 곳에서 자다가 몸을 감싸 안는 포근함 속에서 잠에 빠지니, 3일을 꼬박하고 잤으며, 정상적인 음식을 보니 질 좋지 않은 빵이라고 할지라도 예전보다는 3배 정도는 더 섭취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르웬이나 일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였기에 체면상 음식에도 많은 것을 가렸던 일론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무엇이든 잘 먹었다.
또 에르웬은 본래 살이 찌지 않은 체질인지, 웬만한 성인 남자만큼씩 먹어 대었다.
“내일이면 졸업이군.”
“벌써 그렇게 되었나? 네 녀석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의자에 앉아서 각자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중, 바로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일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셋 모두는 엄청난 성장을 겪어 냈다. 이 아레스라는 단체로 인해서 말이다.
“너는 졸업하면 뭘 할 거냐, 바로크.”
“글쎄, 단지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리고 싶다.”
“후후, 그렇군.”
바로크의 말에 일론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는 것은 어쩌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일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할 거지?”
“난 이 아레스를 장악하려고 한다.”
“……!”
일론의 말에 바로크와 에르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일론?”
에르웬이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레스라는 단체는 인재 양성 기관이라고 불리며 아스란트 제국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관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다. 인재 양성 기관 아레스는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 개입되어 있지.”
일론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
“여러 일 중 하나를 말한다면 ‘살인’이다.”
“살인?”
살인이라는 말에 에르웬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아레스에서 죽어 나가는 아이들이 수천이었기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하지만 살인은 달랐다. 누군가 누구를 죽이는 것. 그것이 살인이다.
“그래, 살인.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일부이지만, 아레스는 아스란트 제국에 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한다고 들었다. 사실 아레스는 매년 배출되는 세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의 아이는 사망하였다고 세상에 알리고 두 명의 아이만을 인재로 내놓는다. 그리고 두 아이는 제국에서 떠오르는 인재가 되고, 남은 한 아이는 남은 아이보다 혹한 수련을 받고, 각 제국의 중요 인사를 암살하거나 혹은 꼭 수행해야만 하는 임무에 투입된다고 들었다.”
“미쳤어… 다른 제국 측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에르웬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일론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살인’을 위해 키워지는 그들은 이미 아스란트 제국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죽은 걸로 되어 있고, 또한 이곳에 존재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들었다. 덧붙여 말하면 그들은 버려지는 이들이다. 만약 그들이 잡힌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게 되어 있다. 제국에서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켜놨다고 하더군.”
“설마 너도 그렇다면 그런 쪽으로 가겠다는 거야……?”
에르웬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에 일론이 폭소를 하였다.
“하하하, 나는 그런 짓을 하고 싶어도 그런 짓 따위는 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거냐, 에르웬? 나는 커라테스 후작가의 일론이다. 내가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은 거냐?”
“아…….”
일론의 말에 에르웬이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일론은 상당한 인물이었다.
“내가 말하는 아레스의 장악은 이 손안에 넣겠다는 것이다. 내가 얻은 이 힘으로.”
꽈아악.
일론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말에 바로크와 에르웬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한 가지 내가 아는 비밀 사실은, 아레스의 총지휘관은 언제든지 바뀐다고 들었다.”
일론이 자신이 한 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총지휘자가 바뀌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힘과 능력이다. 아레스는 총 네 가지 직위가 부여된다고 들었다. 이렇듯 이곳을 지휘하는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화이트’며 브록 님 정도는 아마 ‘블랙’일 것이다.”
“브록 님이 블랙이라고? 설마 그 블랙이 화이트의 바로 앞 직위는 아니겠지?”
“안타깝지만 맞다.”
“…….”
에르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브록은 소드 마스터의 실력자. 한데, 그런 브록이 블랙밖에 되지 못하다니, 믿기 힘들었다.
“네가 말한 능력과 힘대로라면 브록 님은 이 아레스라는 단체 내에서 블랙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크론 님은 아마 ‘실버’일 것이다. 그리고 최정상의 자리. 그것은 ‘골드’라 불린다. ‘골드’ 실상 아레스는 아스란트 제국에만 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 대륙에 존재한다. 때문에 어쩌면 이 아레스라는 단체에서의 ‘골드’가 황제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화,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