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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제9장. 리더가 되다(3)
감았던 눈을 그가 뜨는 순간 주위로 거센 바람이 흩어져 나갔다.
“호흡은 생명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바로크의 말에 일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당연히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바로크가 그에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뭐, 나는 너희들처럼 화려한 게 없네.”
에르웬이 입을 조금은 내놓고 투덜거리듯 말했다. 일론과 바로크가 그녀의 말에 표정을 굳혀 그녀를 노려봤다.
에르웬에게 언제 어떤 마법이 날아올지 몰랐다. 그만큼 그녀는 어쩌면 제일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네가 얻은 최선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붙어 보면 알겠지.”
일론이 자신의 검을 바로크에게 겨눴다. 역시나 지금도 에르웬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에르웬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후우우.”
일론의 말에 바로크는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일론이 뛰쳐 들어왔다.
화아악.
‘마치 악귀 같군. 마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야.’
자신에게 뛰쳐나오는 일론이 검을 휘두르자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느낌을 바로크는 받았다. 아마도 검의 능력인 듯싶었다.
하나, 바로크는 침착하였다.
호흡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수우웅.
탱탱탱탱!
“하… 이것이 네가 얻은 거냐?”
일론이 자신의 검을 막아 내는 바로크를 보며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바로크의 검은 그가 늘어뜨려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늘어뜨려져 보이는 그 검은 무척 빠르게 움직이며 자신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잘 보았다. 이것은 무의 검.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으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검이다. 나에게는 검이라는 것 따위의 굴레는 존재하지 않지.”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 크큭. 으아압!”
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일론이 눈살을 한번 씰룩이고는 온 힘을 양팔에 담아 휘둘렀다.
챙!
콰아아앙!
그에 바로크는 그의 검을 막아 냈고, 그 순간 붉은 피의 폭발이 일어나며 바로크의 주위를 감쌌다.
“크으윽! 뭐냐.”
“1:0.”
바로크가 빠르게 몸을 빼내며 짙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또 간다. 바로크.”
일론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번 굳게 쥐어진 그의 검이 바로크를 향해 날아갔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정말 보여줘야겠군.”
바로크는 일론이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자신도 자신이 얻은 힘을 보여 주기로 하였다.
그가 자신의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하니 몸 자체가 부드러움과 함께 깃털처럼 되었다.
그리고 곧 그의 앞으로 일론이 휘두르는 검이 보였다. 또 분명 방금 전 그 알 수 없는 피의 폭발이 일어날 터.
또 한 번 당한다면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번뜩!
곧 부드러운 눈에서 눈을 부릅뜬 바로크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챙!
가장 먼저 그가 한 일은 일론의 검을 쳐내는 것이었다.
“뭐지? 어째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거냐?”
일론이 놀란 눈이 되었다. 자신의 검과 닿으면 일어나야 할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검은 무의 검. 닿았다고 닿은 것이 아니다. 나도 보여 주마. 일론.”
스우웅!
스우웅!
채채채챙!
채채채챙!
검을 쳐내고 몸을 살짝 뒤로 빼낸 바로크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반 사람이라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 그의 검이 허공을 계속해서 가르기 시작했으며, 그의 몸은 일론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미친 것이냐? 무엇 하는 거냐, 바로크!”
일론이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말에도 바로크는 묵묵히 움직였다.
그리고 곧, 에르웬의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게 대체 뭐지? 분명 마법은 아니야. 그런데 저렇게 뚜렷이 보이는 건 대체 뭐야?”
놀라움과 의문의 시선으로 바로크를 향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에르웬이 말했다.
그녀의 앞에는 태극 문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바로크가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면서 완성된 태극 문양. 그것이 일론을 안에 가두고 만들어져 있었다.
“내 검술의 동작은 총 256동작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완성하였을 때, 그 힘을 발휘하는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마지막으로 허공을 향해 또다시 검을 휘둘렀던 그가 하려던 일이 완성되자 말했다.
“이건 대체 뭐냐… 이건 무엇이냐 바로크.”
일론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푸른색은 마나이고, 붉은색은 자연이다. 본디 푸른 마나는 세상에 널리고, 생명을 위한 것이지만 붉은색의 자연은 다르다. 일론.”
“…….”
바로크의 말을 일론이 묵묵히 들었다.
“자연은 인간에게 득을 주기도 하지만, 피해 주기도 한다. 지금 그 붉은 자연은 피해다. 자연이 만들어 낸 하나의 공포. 그것이다. 계속할 것이냐, 일론?”
바로크가 일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론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검을 허공에 휘두르고 이 알 수 없는 문양이 완성되었다.
단순 허상일지도 몰랐지만, 어쩌면 정말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일론은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검을 굳게 잡았다.
“덤벼라, 바로크.”
“그래.”
바로크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푸른색과 붉은색이 오묘하게 회오리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일론을 향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강하게 찌르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채채채챙!
“크으윽!”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알 수 없는 검을 본능으로 막아 낸 일론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곧 주위에서 수십 개의 의문의 기운이 느껴졌다. 모두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인 듯 보였다.
챙!
채채챙!
채채채챙!
푸슈유육!
푸슈유육!
그 수십 개의 기운을 일론은 본능적으로 쳐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쳐낼 수는 없었다.
쳐내지 못한 것들이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연달아 다리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으윽.”
일론이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기운은 더욱 거세졌다.
“나의 검은 정확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만들어 낸 하나의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바로크가 말했다. 그의 모든 감각이 만들어 낸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라벨혼 산맥에서 얻은 것.
또한, 바로크가 만들어 낸 태극 문양이나 아직까지 보이지 않은 것은 바로크가 아레스의 무덤에서 발견한 또 다른 유산과도 같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레스에 대한 정보. 그것이 무덤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더 이상 버틴다면 네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바로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일론이 위험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채채채챙!
스우웅!
푸슈육!
푸슈육!
하지만 일론은 그의 말을 들었음에도 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오는 것들을 쳐낼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피는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론이 중얼거렸다.
“드디어 되었다.”
“……?”
바로크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일론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그의 괴성이 홀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론의 몸 주위에서 흐르던 피를 그의 검이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으며, 곧 검은 더욱 짙은 붉은빛을 띠우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압!”
순간 공기가 요동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일론이 높게 치켜 솟은 검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더니, 이내 앞을 향해 그어졌다.
그 순간, 회오리치던 태극 문양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는 듯 술렁였다.
“하… 너도 대단하구나…….”
바로크가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극 문양을 흔들 정도의 힘을 일론이 발휘하다니,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바로크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검술의 초입 부분이었다.
검술의 초입 부분의 50동작 그것을 바로크가 펼치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아!”
콰아아앙!
몇 차례를 일론이 검을 휘두르자 진동하던 태극 문양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눈과 몸 전체가 붉게 변한 일론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버서커 모드다. 내 피를 갉아먹은 이 검은 나에게 더욱 강한 힘을 준다.”
일론이 입 한쪽을 올려 웃었다.
“그렇군, 대단하다. 일론,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 줄 생각은 없다. 타핫!”
바로크의 검이 마지막으로 허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리고 곧 일론이 두고 볼 수는 없다는 듯 뛰쳐나와 바로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탱!
콰아앙!
일론과 바로크의 검이 만나는 순간 강렬한 폭발이 일었다. 홀 전체가 진동할 정도의 폭발이었다.
“콜록콜록!”
이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던 에르웬이 흩어져 오는 먼지바람에 헛기침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론과 바로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아하아, 제길…….”
“후욱후욱.”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 중 승자는 바로크였다. 바로크의 주위로 둥둥 떠다니는 수십 개의 검들. 그것은 각자 오묘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일론은 바닥에 쓰러진 채 천장을 바라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 버서커라는 것. 너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 아닌가?”
“후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친 표정의 일론이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의 바로크에게 말했다.
“이제 이 검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 이 검이 사라지는 날, 나 또한 사라진다.”
일론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언가 어려운 말이었다.
“그렇군.”
“그보다… 너에게 대체 그런 알 수 없는 기술들은 몇 가지나 있는 것이냐.”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레스의 검술을 배웠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아레스가 남긴 것. 모든 초감각을 이용하여야만 완성되는 그런 것들이며, 동작 하나하나가 힘을 가지고 있다.”
“아레스의 검술……?”
일론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바로크가 5년 동안 한 일이 아레스의 검술을 익힌 것이라니, 더군다나 지금 그 아레스의 검술을 그가 펼쳤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 결국은 네가 두 번째 아레스가 되었구나…….”
일론이 자신의 패배를 수긍하듯 말했다. 바로크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너는 그 두 번째 아레스와 필적할 사내가 되었지. 후후후.”
“크큭,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냐.”
“네 생각대로 받아들여라. 나는 너를 내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자, 친구고, 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나 역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일론과 바로크의 사이로 깊은 우정이 스쳐가는 듯하였다.
그리고 곧 일론을 일으킨 바로크가 에르웬을 바라봤다.
“너도 리더 자리가 탐나나?”
“쳇……! 내가 너를 어떻게 이겨! 생각을 해도 진짜!”
에르웬이 그의 말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르웬은 방금 전 그 둘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잘 갈고닦는다면 어쩌면 정말 아레스의 ‘골드’자리를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포기하겠다는 건가?”
“흥! 난 어차피 그런 거 관심도 없었다고∼ 리더 자리는 너희 둘이 그냥 싸워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에르웬이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으면서 무슨 말이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에 바로크가 피식 웃었다.
“축하한다, 바로크. 우리들의 리더가 된 것을.”
일론이 바로크의 목에 팔을 감고 부축받으며 그에게 말했다.
바로크가 피식 하고 웃어 보였다.
“그래, 앞으로 리더이니 개개지 마라.”
“네, 네 알겠습니다. 리더 나으리.”
“후후후후.”
“헤헤헤헤, 잘 부탁해. 리더 바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