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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제9장. 리더가 되다(4)


에르웬이 혀를 내밀며 웃어 보였다.
일론과 바로크 셋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다 문득 에르웬이 손바닥을 짝 하고 맞부딪쳤다.
“맞다! 리더가 있으니까, 팀 이름도 정해야 하지 않겠어?!”
“바로크. 그것이 우리 팀의 이름이다.”
일론이 그녀의 말에 짧고 강하게 말했다.
바로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소리냐, 그게.”
“시끄럽습니다. 리더님. 리더 자리를 가지셨으니, 순순히 따르시죠.”
“후우…….”
바로크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앞으로 일론과 잦은 충돌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뻤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름으로 팀 이름을 정한 것이 좋았다.
그렇게 바로크라는 팀이 탄생되었다.
바로크.
아레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설과 신화를 알리는 이름. 그것이 바로 오늘 시작되었다.



제10장. 마지막 시험(1)


졸업식 당일 날이 되었다.
보통 아레스의 졸업식 때에는 아레스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모여 졸업하는 이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졸업식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설렁하고 허전하였다.
하지만 바로크나 일론, 에르웬에게는 아니었다.
졸업식을 주최하는 이가 바로 크론이었으며, 그의 옆을 지켜 함께해 주는 이가 브록이었다.
수년간 자신들을 위해 일해 준 사람들이었기에 그 둘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더군다나, 크론이 있었기에 자신들이 이렇듯 강해져 있음에 그에 대한 마음은 더욱 탄탄했다.
“조금 졸업식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하군.”
크론 본인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들은 이제 아레스 사상 최고의 졸업생들이 될 것이라고 크론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아이들의 졸업식에 자신과 브록만이 자리를 지키니 조금은 찝찝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크론의 생각을 읽은 것인 듯 일론이 말했다.
그의 얼굴로 미소가 감돌았다.
크론 덕분에 잘 만하면 커라테스 후작가의 이름을 대륙적으로 더욱 널리 펼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나에게 고맙나 보군.”
일론이 크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크론도 그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을 읽었다.
“후후, 어느 정도 그런 마음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크론 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요, 특히 그때 ‘죽음’을 투여했을 때는 말이지요.”
죽음이라는 부분에서 바로크와 에르웬이 흠칫했다. 아직도 그 고통이 잊히지 않았다.
온몸을 태우는 듯한 그 고통.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크크, 과거의 이야기는 그만하자구나, 오늘은 기분 좋은 졸업식이지 않느냐.”
크론이 작게 조소를 지었다.
일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딱히 졸업식이라고 하여서 졸업장 같은 것을 주는 곳은 아니니. 한마디만 하는 게 좋겠군. 모두들 축하한다.”
크론이 짧고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졸업생이 된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배운 것을 세상에 내보일 때, 노력의 결과가 낳는 것을 볼 때의 기분은 그 누구도 짜릿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들 축하한다.”
이어 브록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렇게 허탈하고 조금은 끔찍하였던 졸업식이 끝났다.
졸업식이 끝나고, 다섯은 술을 들었다.
크론과 브록이 졸업식을 위해 준비한 술이라고 한 만큼 오늘은 즐기기 위해 모두가 마셨다.
한 잔, 두 잔, 석 잔, 네 잔이 되어 갈수록 서서히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붉은 홍조가 생겨났다.
그렇게 술을 마시던 중, 크론과 브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너희 셋이 마셔라,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
“헤헤, 우리를 이렇게 취하게 해 놓고 주무시러 가시는 건가요?”
에르웬이 취기가 오른 얼굴로 ‘헤헤’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그에 크론이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브록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그 둘이 나서고, 술자리는 더욱 흥이 겨워지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이것이 졸업을 기념하는 하나의 새로운 탄생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마음 걱정 없이 그들의 입으로 술잔이 기울여졌다.
“후우우.”
밖으로 나온 크론과 브록은 한참을 그들과 훨씬 동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동하자, 크론이 연초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
“왜 이렇게 멀리 오신 겁니까?”
브록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후후, 바로크 녀석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테니까.”
크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로크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도 있는 건가요?”
브록은 여전히 의문 어린 표정이었다.
“오늘은 녀석들에게 기쁜 날이지. 또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싶을 거야, 하지만 녀석들에게 기쁜만큼 오늘은 나에게도 기쁘면서도 더욱 기대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후후, 녀석들을 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어.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지만, 문득 생각난 게 있지.”
“……?”
“녀석들은 앞으로 팀을 이뤄서 행동할 거야, 3인 1조. 더군다나, 녀석들 한 명 한 명은 상당히 강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워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나, 최악의 사태에 과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을지 보고 싶어졌어.”
“아…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설마가 맞네.”
크론이 그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크론의 눈으로 기대감이 떠올랐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시험이다. 잘 헤쳐 나와 다오.’

“바로크! 바로크 일어나 봐라!”
“으으음…….”
술에 취해 잠들었던 바로크는 자신을 거칠게 흔들며 깨우는 목소리에 저절로 낮은 소리를 흘리며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일론.”
바로크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뭐 이상한 점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일론의 뜬금없는 말에 바로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검이… 내 검이 사라졌어.”
“네 검이?”
검이 사라졌다는 말에 바로크가 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눈을 비볐다. 술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듯싶었다.
하지만 눈을 아무리 비벼도 자신의 시각은 흐릿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공기까지도 느낄 정도의 촉각은 마치 감각이 없는 것처럼 딱딱했으며, 멀리 있는 새소리도 듣던 청각은 앞의 일론의 목소리밖에 듣지 못하고 있었다.
“……!”
“왜 그러는 거냐, 바로크.”
자신의 검이 없어진 것에 잔뜩 당황한 표정이었던 일론이 바로크가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키자 물었다.
“모든 감각이… 둔해졌어…….”
“뭐……?”
바로크의 말에 일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평소와 달라.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기 힘들어… 이게 대체…….”
“설마…….”
바로크의 말에 일론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엎어져 자고 있는 에르웬을 깨웠다.
“에르웬! 에르웬!”
“으음… 무슨 일이야…….”
에르웬이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한껏 성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팔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벌떡 일어나 자신의 팔을 확인했다.
“해, 해루석……?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녀의 팔에는 팔찌로 만들어진 해루석이라는 마나를 억제하는 의문의 것이 묶여져 있었다.
“누군가 임의적으로 한 행동 같아.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져갔어. 나는 나의 검을, 바로크는 초감각을, 에르웬 너는 마나를.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일론은 이 상황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곧 한 사내가 생각났다.
크론.
매일같이 자신들에게 끔찍한 수련을 준 사내 크론. 혹시 그가 벌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길… 졸업해서도 우리를 안 놔주겠다는 건가?”
“설마 크론 님이?”
일론의 말에 에르웬도 직감한 듯 말했다.
“그보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한 거지? 크론 님이 하신 일이라면 평생 이렇게 우리를 억압시켜 놓으려는 것은 아닐 텐데. 무언가를 얻기 위…….”
“확실히 네 초감각이 사라졌구나 바로크.”
바로크가 줄줄이 말을 늘어놓을 때, 에르웬은 굳은 표정이 되었고, 일론은 바로크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 상당히 숫자가 많아, 그걸 우리가 느꼈는데, 네가 느끼지 못하다니… 확실히 초감각이 둔해진 것은 맞나 보군.”
“뭐……?”
바로크가 이곳으로 누군가 오고 있다는 말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거칠게 열고 검은색 옷에 가면을 쓴 사내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하였다.
타타탓.
에르웬과 일론, 바로크가 재빨리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복면을 쓴 의문의 이들은 셋을 둘러쌓았다.
“큰일이다, 바로크.”
일론은 이마로 식은땀을 흘리며 바로크를 힐끗 한번 바라봤다.
“이 의문의 사람들은 웬만한 이들이 아니야, 최소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다.”
“그렇다면… 강한 건가?”
“그래.”
바로크는 이곳의 경지에 대해서 확연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말끝을 흐리며 물었고, 일론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론, 싸울 수 있겠어?”
“물론.”
에르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이 검에 상당한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검이 없다고 하여도 본래의 그가 가진 경지는 상당하였다.
“나도 어느 정도 마법은 가능할 것 같아, 4서클의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이 해루석이 내 모든 마나를 통제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크군.”
일론과 에르웬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바로크로 향하였다.
어쩌면 가장 불리한 상황이 된 이가 바로크였다. 본래 가지고 태어난 감각을 한순간 잃어버렸다는 것은, 몸 자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린 것과 같다.
더군다나, 아레스의 검술은 초감각이 만들어 낸 것.
초감각이 없는 바로크는 어쩌면 허수아비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제길… 미안하다.”
바로크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지금 본인이 어떤 처지에 처했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눈이 보통 사람의 시력의 정도도 아니었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못 볼 정도로 흐릿하였으며 몸도 마비가 온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미안할 게 뭐가 있냐, 바로크. 너는 리더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힘도 있지만, 우리를 이끄는 카리스마와 지휘력도 필요하다.”
“일론 말이 맞아.”
일론과 에르웬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 바로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드디어 친구라는 것을 얻은 건가?’
바로크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도 드디어 진정한 친구라는 이들이 생긴 듯싶었다.
그리고 곧 일론과 에르웬, 바로크의 표정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누가 보낸 이들이냐.”
“대답할 용무는 없다!”
일론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그의 앞에 있던 사내가 자신의 검을 일론을 향해 쏘아 들어왔다.
사내가 휘두른 검은 하얀 오러를 짙게 머금었다.
일론은 재빠르게 움직여 몸을 비틀어 피해 내고는 팔을 꺾어 검을 뺏고는 그대로 목을 베었다.
타타탓.
한 명을 그대로 보내 버린 일론의 손이 이내 옆의 이에게 휘둘러졌다.
챙! 챙챙!
일론과 복면의 사내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흐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