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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6화)
chapter.2 국경 지대, 녹색의 병사들(3)


“후우, 후우―”
숨이 차오른 자신을 보며, 쥬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신병 싸움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던가?
물론 상대가 생각보다 빠르고 강했던 탓도 있겠지만, 거신병과 한 몸이 되어 전력을 다해 싸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기사단에서 했던 훈련은 아무 쓸모도 없잖아?’
호루스는 거신병에 탑승할 기사를 훈련시키는 곳이었다. 매일매일 일부러 무거운 중장갑을 착용하고 대련을 하고, 마나를 조절하는 훈련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방금 전의 싸움에서 도움이 되었다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았다. 체력적으론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차라리 갑옷을 벗고 했던 검술과 체술 훈련이 더 도움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푸쉬이이―
“으음…….”
가슴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온 아피스가 끝났다는 듯 양손을 내저었다.
쥬드는 뭔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푸쉬이이―
“몇 번이나 해 봤나?”
“후우, 예?”
“거신병 전투는 몇 번이나 해 봤지?”
대뜸 질문을 던지는 아피스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예, 거신병 전투는 처음이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누트, 바니, 세베크 세 사람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군. 알겠네.”
“예?”
“더 움직일 수 있겠나?”
쥬드는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마나와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예, 문제없습니다.”
“알겠네. 그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그 순간, 쥬드는 아피스가 그를 동료로 인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력을 인정받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쥬드는 그 순간 조금 뿌듯해졌다.
“축하해요! 펠릭시아 씨! 팀장님이 인정하신 거예요!”
“아, 예.”
“어? 안 기뻐요?”
아피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제프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 뭐……, 크흠!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오! 하지만 우리 팀장님이 생긴 거랑 다르게 까다로운 분이에요. 남을 쉽게 인정해 주는 분이 아닌데요?”
“그렇습니까?”
커허험―!
뒤에서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튀어 나왔고, 누트와 바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세베크도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입가에 은은한 웃음이 배어 나와 있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오지에 처박힌 사람들이 이렇게나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돈이 많건 적건, 권력이 있건 없건, 사람은 뚜렷한 희망이나 목표가 없다면 즐겁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대체 지금 뭘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용병 출신이라고 했다. 용병이란 자고로 돈을 좇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파는 족속들.
게다가 이스트 웨이의 자유 유적에서 거신병을 소환하려면 굉장히 많은 돈을 신전에 기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서약서까지 군부에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많은 돈을 투자하여 결국 얻은 것은 꽝이나 다름없는 녹색 거신병.
아무리 거신병을 가진 용병의 몸값이 높다지만, 그것도 전장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화살받이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녹색으론 전투를 치를 수 없을 터.
그렇게 희망을 뿌리째 뽑힌 자들이 이런 오지에 처박혀 나무나 베게 된다면 절망이나 후회에 찌들려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런데 밝았다. 마치 가족끼리 피크닉이라도 나온 것처럼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즐거워 보였다.
‘조금, 궁금해지는군.’
메나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위만 바라볼 게 아니라, 밑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쥬드! 이제 내려와! 작업장으로 가자고!”
“그래, 어서 내려와.”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하는 누트와 바니 남매를 보며, 쥬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의 생활도 조금은, 아주 조금쯤은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chapter.3 반갑지 않은 재회, 세 개의 그림자(1)

콰앙―!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굉음과 함께 커다란 도끼가 나무를 후려 패는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제프가 고함을 질렀다.
“넘―어― 갑―니―다―!”
나무는 끼긱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숲의 나무들은 모두 건장한 성인 열 명이 양쪽으로 팔을 뻗어도 모자랄 만큼 커다랗지만, 아피스가 휘두르는 거신병용 도끼는 그것을 어린 묘목 부러뜨리듯 쉽게 베어 버렸다.
나무가 넘어지자 옆에서 기다리던 누트와 바니가 달려들어 능숙하게 잔가지들을 쳐냈다. 세베크가 손에 들린 대패날로 껍질을 벗겨 내고, 다시 아피스가 달려들어 도끼로 통나무를 삼등분으로 뭉텅뭉텅 잘라 냈다.
“펠―릭―시―아―씨―!”
기이잉―
그리고 그제야 쥬드의 차례가 왔다. 신입으로서 처리가 끝난 나무들을 옮기는 것이 그의 일.
사실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거신병용 도끼가 하나밖에 없는데다가, 이미 저들의 팀워크가 너무나 견고해서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로써 벌써 한 달째.
한동안 겉돌기만 하던 쥬드도 서서히 이들과 친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푸쉬이이―
작업이 끝난 뒤, 각자의 거신병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며 기지개를 켰다.
“으다다다―! 오늘도 평소보다 일찍 끝냈네. 쥬드가 들어온 뒤로 작업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그렇지? 확실히 사람이 하나 느니까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어.”
“그래. 쥬드가 거신병 안에서 버티는 시간도 늘어났고 말이야.”
“아하하! 맞아, 맞아. 처음엔 조루처럼 빨리 지쳐서 쓰러졌는데 말이야.”
“……바니, 여자애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에이, 뭐 어때? 쥬드! 빨리 지치는 남자는 사랑받지 못해!”
깔깔거리고 웃는 누트와 바니 남매의 대화를 들으면서 쥬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이까짓 거 금방 끝내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일을 시작했건만, 이 ‘작업’이라 불리는 일들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문명이 발전할수록 전쟁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무기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승부가 빨리 나 버렸다.
한 예로, 이스트 웨이 요새에 설치된 고정형 마나포가 중장병 3소대를 없애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도 55초가량이 마나를 충전하는 시간이고, 3초가량이 타겟을 조준하는 시간, 그리고 2초가 발사하는 시간이었다.
즉 1분마다 100여 명씩 죽일 수 있는 병기가 전장마다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투가 빨리 끝날 수밖에 없었다.
거신병이 출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기사끼리의 듀얼(Dual) 승부로 정정당당하게 겨루지 않는 다음에야 하나의 전투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마나포에 얻어맞든, 다른 거신병에게 박살이 나든, 살고 죽는 것은 각각의 5분 안에 결정이 난다는 소리.
결국 이동하는 시간까지 다 합해도 한 번의 전투에서 거신병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은 많이 잡아야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여긴 얼마나 움직이지? 다섯 시간? 일곱 시간?’
부끄럽지만 쥬드도 첫날엔 한 시간을 움직이고 뻗어 버렸다.
물론 전투에서처럼 목숨을 건 긴장감은 없지만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거신병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팀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마나량으로만 따지면 쥬드가 더 많을 텐데도 오히려 더 능숙하게 오랜 시간 동안 거신병을 움직이다니.
‘나도 지구력을 길러야 해.’
오랜 시간 큐브를 각성시키고 거신병과 동화될 수 있는 집중력. 그리고 마나 소모를 버텨 내는 지구력.
그것이야말로 쥬드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로 벌써 한 달째네?”
“어? 벌써 그렇게 됐나?”
“으음, 확실해.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야.”
누트와 바니는 눈치를 보듯 아피스를 힐끗 쳐다봤다.
“그럼 오늘 또 그놈들이 오겠네?”
“그럴 거야.”
“아아, 정말 싫다. 그것들 얼굴을 또 봐야 한다니!”
“어쩔 수 없잖아.”
어쩐지 두 사람은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특히 항상 웃고 있던 바니가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처음이라 쥬드도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곳으로 올 사람이 있는 겁니까?”
“으음, 그게…….”
누트와 바니는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고, 세베크는 침묵을 지켰다.
언제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제프조차도 이번엔 곤란한 얼굴로 아피스만을 쳐다봤다.
‘뭔가 감추고 있다?’
고개를 돌리자 무거운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아피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모여 있는 팀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더니 이내 쥬드를 향해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한 가지 묻지.”
“예?”
“자네는 수도의 군부와 관련이 있나? 가능하다면 군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숨길 것은 없기에 쥬드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관련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돌아가고 싶습니다.”
“왜?”
“출세하고 싶으니까요. 저는 이런 오지에서 생을 끝마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야망이 있군.”
“예,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숨기시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군부의 고위직에 데려다 줄 만큼 큰 비밀이 아니라면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배신자는 결국 어느 쪽에 서든 제거되기 마련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눈빛과 눈빛이 마주쳤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조용히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했다.
주변에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아피스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에 대해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진심이군.”
“물론입니다.”
“분명 아직은 고위직에 데려다 줄 만한 정보는 아니야.”
“……아직이요?”
“좋아. 받아들이지.”
아피스는 호탕하게 결정을 내리더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라. 이야기가 꽤 길다.”
그는 쥬드가 자리에 마주 앉자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