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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7화)
chapter.3 반갑지 않은 재회, 세 개의 그림자(2)
아피스, 누트와 바니 남매, 세베크.
그들은 원래 이스트 웨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용병들이었다고 했다. 용병단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 용병들 중에서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전장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능력 있는 용병들이라고 했다.
그저 데면데면하게 얼굴이나 아는 사이였던 그들이 본격적으로 한 팀으로 모이게 된 건, 이스트 웨이의 신전에 돈을 내고 차례를 기다리던 그들을 당시 대사제였던 제프―이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가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프도 이렇지 않았어! 얼마나 깨끗했는데? 이렇게 말 많고 덤벙대고 더럽다는 건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니까?”
“으악! 너무해요. 누트 씨!”
“에잇, 진실이잖아! 받아들여! 그 머리는 언제쯤 감은 거야?”
“에…… 음……. 한…… 일주일 정도……?”
“거 봐! 그게 드러운 게 아니면 뭐야? 받아들여!”
“으윽!”
……어쨌든 그런 그들을 모아 두고 제프는 진지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원래 비밀인데요. 당신들에게 전달될 큐브는 녹색이에요.”
“……!”
당연히 그들은 턱이 빠질 정도로 경악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용병들은 모두 일반 기사들을 눈 아래로 볼 정도로 실력이 있는 자들. 그러니 의식을 치르면 최소한 노란색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녹색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 그걸 어떻게 압니까? 의식을 치르기 전까진 어떤 색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던데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저, 정말이에요?”
“네.”
진지한 대답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어, 어째서?! 어째서 내가 녹색인 거야?!”
“그건 당신들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
그 뒤에 이어진 제프의 말은 이랬다.
연구 결과, 매우 뛰어난 자들이 의식을 치렀을 때 녹색의 기체를 얻었다. 못난 자들이 아니라 뛰어난 자들이 녹색을 얻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랐다. 어떤 자들은 음과 양처럼 서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신의 법칙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녹색 거신병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학계에 미스테리로 남아 있고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단서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북서쪽에서 녹색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녹색의 거신병만이 그 유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연구를 위해 그들이 필요하니 의식을 치른 뒤에 함께 왕국군에 들어가서 함께 연구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세상에! 그럼 설마 그 북서쪽 유적이라는 게……!”
“그래, 여기지.”
쥬드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 모른다.”
“예? 어째서요? 작업이 끝난 게 아닙니까?”
“작업은 진행중이다. 거의 마무리 단계이긴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꽤 남아 있지.”
“그럼 지난 한 달간은 뭘 한 겁니까? 당연히 유적이 우선이잖아요? 어째서 나무만 패고 있었던 겁니까?”
“……이유가 있다.”
아피스가 대답을 망설이자 제프가 앞으로 나섰다.
“펠릭시아 씨, 저희는 마음대로 유적을 조사할 수 없어요.”
“어째서요?”
“이 유적에 대한 권리는 모두 야누스 대장군에게 있거든요.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대장군의 부하가 와서 지켜보고 있을 때만 유적을 연구할 수 있어요.”
“…….”
그 순간 대강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피스 일행은 용병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붉은색만큼이나 흔치 않은 것이 녹색 거신병이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최선의 방법은 연구는 계속하되 감시자를 붙이는 것.
‘아마 그 감시자들은 거신병을 타고 오겠지.’
굳이 한 달에 한 번이란 기간을 정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전투는 많이 일어나고 거신병의 숫자는 적다. 왕국의 군부에선 깐깐하게 모든 거신병의 행동을 체크했다. 그러니 교대조를 빼돌리기에 충분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터.
“아아, 몰래 들어가려고도 해 봤는데 말이야. 치사하게 입구에 마법을 걸어 놔서 감시자들이 풀어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가. 괜히 억지로 들어갔다가 꼬투리 잡히면 큰일이고…….”
“그렇군요.”
쥬드는 어깨를 으쓱하는 누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감시조는 거신병을 타고 옵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 노란색 두 대. 기사는 멍청한데다 성질까지 더러워.”
“대장군은 직접 안 오나요?”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는데 보통 오게 되면 감시조가 돌아가고 나서 일주일 안에 찾아와. 항상 보좌관이랑 같이 찾아오는데…… 실제로 보면 인상이 진짜로 살벌해. 함부로 입을 못 뗀다니까?”
누트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긴 맞는 말이다. 쥬드가 수도 궁전에서 지낼 때 자신이 눈을 똑바로 못 마주치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야누스 대장군, 다른 한 명은 메나스 기사단장.
특히 대장군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궁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었다.
“일주일이라…….”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무려 야누스 대장군이 이런 오지까지 직접 찾아오는 걸 봐서는 중요한 유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기도 힘든 게 이렇게 한 달에 한 번만 유적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당장 처리할 필요가 없는 느긋한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 혹시……?’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밀……인 건가?’
그렇다면 말이 되었다. 국왕, 대신관, 행정부 관료들 같은 고위층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면? 오로지 야누스 장군만 알고 있는 비밀 유적이라면?
당연히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 또 조심하면서 이 모든 일을 비밀에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군. 그런 거였어.”
퍼즐이 맞춰지듯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그림을 그려 냈다.
무엇이 묻혀 있는지 모르는 의문의 유적.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야누스.
성공을 위해 도박을 하고 있는 팀원들.
문득 이 일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 배치된 게 우연인가 하는 문제인데…….’
낄낄대며 웃는 메나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우연이라 믿고 싶지만 메나스와 얽히면 그런 우연도 필연이 되었다.
잘못하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상황. 사소한 것 하나도 함부로 놓쳐서는 안 되었다.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조심해야 했다.
스윽―
쥬드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이 아피스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아마 감시자들은 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다. 그때까진 쉬어 두도록.”
“예!”
“제프.”
“네.”
“기사들이 오면 쥬드와 네가 마중을 나가라.”
“네, 그럴게요.”
제프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장에서 맞는 아침은 언제나처럼 상쾌했다.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푸르렀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엔 초가을의 나무 향이 듬뿍 묻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산중의 새벽 공기야말로 하루를 생활하는 데 가장 큰 활력을 준다는 것을.
눈을 정화시키는 초록의 나무들과 촉촉하고 시원한 새벽 공기. 거기다가 은은하게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까지.
평소대로라면 쥬드도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 평소대로라면.
“벌써 두 시간은 지나지 않았습니까?”
“네, 그 정도 지났어요.”
“그 사람들 원래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킵니까?”
“에……. 음……. 예, 생각해 보니까 항상 두세 시간 정도는 늦었네요.”
근처 바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하품을 하는 제프는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반면 쥬드는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겁니까?”
“가끔 야누스 대장군이랑 같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1분도 넘기지 않고 정시에 도착해요.”
“허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
“인간이 덜 되었군요. 그자들 기사가 맞습니까?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같거늘. 눈치 봐야 할 상급자가 있을 때만 약속을 지킨다니!”
“에……. 하하, 펠릭시아 씨는 약속을 잘 지키시나 봐요?”
“물론입니다! 단 1분도 어기지 않습니다!”
“와아―!”
제프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대단하시네요!”
“……아뇨, 대단한 게 아닙니다. 기본이죠.”
“그래도요! 지금 오는 기사님들은 그 기본을 안 지키잖아요.”
방긋방긋 웃는 제프를 보자 화를 냈던 자신이 왠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제프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얼굴은 본래 나이보다 10년이나 더 늙어 보이는 주제에 행동과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해 보였다.
어떤 때는 놀랄 만큼 해박하지만, 어떤 때는 바보처럼 멍청하고, 어떤 때는 현명한 현자 같지만, 어떤 때는 단순한 어린애 같았다.
‘천재……라는 건가?’
쥬드 그 자신도 남들에겐 천재라 불리는 사람이었지만 정말로 제프의 속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십니까?”
“네? 아, 그냥 기억을 더듬고 있었어요.”
“기억이요?”
“예! 할 일없을 때 시간 때우기엔 좋아요. 으음 2살 때 봤던 동화책 내용을 기억해 보려 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요정이 주인공에게 했던 대사가 생각나질 않아요. ‘돌아가세요! 이 앞은…… 이 앞은…….’ 으음, 그 다음이…….”
제프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잇!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역시 기억은 2살 반까지밖에 안 올라가네요. 그 뒤론 다 기억하고 있는데…….”
“동화라고요?”
“예, 주인공이 ‘두더쥐가 내 아침을 다 먹어 치웠어!’라고 하니까, 요정이 ‘그럴 리가요!’라고 하고, 주인공이 다시 ‘아냐! 확실하다니까!’라고 말하니까, 요정은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라고 말하고…….”
중얼중얼 다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는 제프를 보며 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대단한 건지 대단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역시 그 속을 읽으려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 같았다.
꼿꼿하게 서서 묵묵히 기다리는 쥬드와 바위에 널브러져서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제프.
두 사람이 뭔가를 발견한 것은 그 뒤로 한 시간은 더 지났을 때였다.
쿠웅―! 쿠웅―!
나무가 흔들리고 땅이 울렸다. 하늘을 찌를 듯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 두 개가 성큼성큼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노란색 기체……가 아니라……. 어?’
제프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그림자를 살펴봤다.
“어, 어?! 주황색이네요? 저건 처음인데요?”
“……!”
“으음, 담당자가 바뀐 걸까요?”
쥬드는 묵묵히 제자리에서 그 거신병들을 응시했다.
호루스에 있을 때는 노란색이건 주황색이건 별거 아니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녹색만 줄곧 보다가 봐서 그런지 노란색만 봐도 거인을 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노란색 거신병의 신장은 10미터 정도. 키가 6미터 정도에 불과한 녹색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까운 크기인데다가 출력으로 따지면 7배나 차이 난다.
주황색은 더했다. 12미터 신장에 출력은 10배. 게다가 두꺼운 갑옷을 온몸에 착용하고 있으니 그 차이는 더더욱 커 보였다.
콰드득―!
쿠웅!
팀원들이 도끼를 들고 후려쳐야 넘어가던 나무들이 노란색 거신병이 귀찮다는 듯 손으로 민 것만으로도 뿌리째 뽑혀서 넘어졌다.
‘이거 곤란하겠는데……?’
쥬드가 생각해 둔 시나리오 중에는 저 감시자들을 물리쳐야 할 경우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어른과 아이의 싸움.
군부가 녹색을 전투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