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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9화)
chapter.4 녹색의 비밀, 힘을 바라는 자(1)


기이잉―
황급히 거신병에 탑승하자 어느새 대열을 만들어둔 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맨앞에 버티고 선 아피스, 양쪽 날개처럼 좌우에 버티고 선 누트와 바니,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세베크.
그들은 마치 여러 번 전투를 치러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펠릭시아 씨! 이쪽이요―!”
제프가 열심히 손을 흔드는 곳은 팀원들이 만들어 낸 대열의 중심이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적이 가까이 오면 공격하세요! 알았죠?”
기잉―
“나머진 팀원들을 믿기만 하면 돼요! 그럼 전 도망갑니다?”
후다닥 뜀박질을 한 제프는 오른쪽 수풀 속으로 쏙 들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쿠웅― 쿠웅―
기이잉―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적들은 쥬드와 일행을 지그시 바라봤다.
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는 지금 눈앞에 있는 적들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
“…….”
하지만 크로노스 쪽은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버티고 서서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쥬드와 팀원들 쪽도 마찬가지.
양쪽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국경 지부 북서쪽. 크로노스 제국 알비간 요새.
삐빅― 삑―
동그란 수정구에선 얇고 가는 경보음과 함께 밝은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장거리 통신에만 쓰이는 위급 신호였다.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그 신호를 기다리던 사내는 먹이를 낚아채듯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우웅―
― 각하! 보고 드립니다!
“수고한다. 상황은?”
― 봉인이 풀렸습니다. 현재 눈앞에 있는 적 네 대! 종류는 녹색 거신병! 처리를 할까요?
“아니, 잠시 기다려 봐라.”
각하라 불린 사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양쪽으로 잘 갈라진 콧수염이 고풍스럽게 길러져 있고 건장한 어깨가 딱 벌어져 있는 사내였다.
하얀 천을 몸에 둘둘 감은 것 같은 토가(Toga) 복장 위로 황금빛 월계수 잎사귀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봉인은 풀렸나? 만약 알람이 울려서 수도에 연락이라도 가면 많이 불리해진다.”
― 예! 봉인은 제대로 풀렸습니다!
“그렇군. 그럼 지원 병력은?”
― 주황색 기체 한 대와 노란색 기체 한 대가 있습니다만 현재 작업장에 간 뒤로 움직이질 않습니다!
“움직이질 않는다?”
― 예. 분명히 이쪽을 봤을 텐데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거할까요?
“아니.”
각하라 불린 사내는 시가의 끝을 잘라 내고 무뚝뚝하게 시가를 입에 물었다.
“자네, 개미 잡아 본 적 있나?”
― 아뇨,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그거랑 같은 것이지. 개미는 밖에 나갔던 한 마리가 죽으면 그 근처에 있던 개미들이 판단을 내려야 해. 호르몬으로 끝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한 가지를 결정하지.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빨리 피하고 도주를 하느냐.”
― …….
“맞서 싸운다면 죽이고, 도망친다면 내버려 둬라.”
― 예!
“대신 녹색 기체들은 다 제거하고 그 유적에 대한 소유권도 확실히 손에 넣어. 알겠나?”
― 예! 알겠습니다!

한가하게 뒹굴거리고 있던 라울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토, 토트! 큰일이다! 거신병이 나타났어!”
“거신병? 무슨 거신병?”
“저기! 저길 봐!”
라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토트는 이내 라울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조금 떨어진 거리지만 거신병이란 것들이 워낙 커다란 물건이다 보니 선명하게 보였다.
주황색 기체가 하나, 노란색 기체가 둘.
게다가 어깨에는 크로노스 제국을 뜻하는 검은색 독수리의 문장.
“제길! 이럴 줄 알았다면 늦게 오는 건데!”
“어쩌지? 어쩌지?”
“싸워? ……아니, 안 돼.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두 사람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훈련도 많이 받고 연습도 많이 했지만, 그래 봤자 싸움 경험에 있어서는 초짜다.
크로노스에서 마음먹고 침투시킨 거신병들을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
그 순간 토트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왜 그래? 무슨 좋은 생각 있나?”
“꼭 구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뭐? 무슨 말이야?”
“우리가…… 꼭 저 팀을 구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지?”
“너…….”
토트의 눈에선 섬뜩한 광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삐뚤어진 분노. 삐뚤어진 생각.
그는 선언하듯 조용히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구할 필요는…… 없어.”

기이잉―
“어째서 안 오는 거지……?”
지원을 기다리던 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작업장에 가 있겠다던 라울과 토트가 눈앞의 적을 못 봤을 리가 없었다.
괜히 거신(巨神)의 병사(兵士)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특히 주황색 거신병은 거목들의 키도 훌쩍 넘어 버리는 거대한 몸체를 갖고 있었다.
키 12미터. 기본 출력은 500마력 이상.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하늘에 키가 닿을 듯한 거인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데 그걸 발견 못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인가?

쿠웅―!
기이잉― 기이잉―
가만히 서 있던 크로노스의 거신병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황색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서 있는 채로, 노란색 기체 두 개가 양옆으로 퍼져서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 있는 그들 사이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격―!”
펄럭!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콰아앙!
기이이이잉―
기다렸다는 듯이 제1지부의 4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마치 자석을 갖다 댄 것처럼 녹색 거신병들이 일제히 왼쪽을 향해 튀어 나갔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아피스. 양쪽 다리를 향해 쇄도하는 누트와 바니. 그리고 그림자처럼 아피스의 뒤를 쫓아가는 세베크.
“이런!”
쥬드는 자신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도 팀원들끼리 미리 연습해 두었던 것일까? 어떻게 동시에 왼쪽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일까?
‘아……!’
하지만 이내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에도 보인 것이다. 적기(敵耭)인 주황색 기체 바로 뒤에서 열심히 왼쪽으로 깃발을 흔들고 있는 제프를!
‘대단하다!’
대담하게도 적기의 바로 뒤에서 깃발을 흔드는 제프도 그렇지만, 그걸 알아채고 그대로 공격한 팀원들도 모두 대단했다.
까가앙! 까가앙!
쿠구궁―
상황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단단한 금속 장갑으로 둘러싸인 거신병이라지만 기본적인 신체 구조는 인간과 동일한 형태였다.
바람처럼 달려든 누트와 바니가 무릎 뒤쪽을 후려치며 매달린 순간, 그들보다 키가 두 배 가까이 큰 노란색 거신병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진 것이다.
콰과광―
크로노스의 기사들은 이 작전이 토끼몰이라고 생각했지, 그 토끼가 덤벼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특히 졸지에 무릎을 꿇어 버린 노란색 기체가 발악하듯 양팔을 휘둘렀지만 누트와 바니는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피해 버렸다.
기이이이잉―
아피스의 기체가 몸을 숙이자 세베크의 거신병이 아피스의 등 뒤로 바짝 붙어 힘을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베크가 있는 힘을 다해 아피스의 등을 밀어주는 순간…….
쩌어어엉!
포탄처럼 튀어 나간 아피스가 도끼로 노란색 거신병의 머리를 수직으로 후려쳤다.
‘세상에!’
쥬드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머리가 뭉개지고 가슴이 갈라진 노란색 기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참수(斬首)다.
강제로 무릎을 꿇리고, 두 사람의 힘을 더해 거대한 도끼로 머리를 후려쳤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른과 아이처럼 힘의 차이가 큰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모여서 어른의 목을 따 버릴 줄이야.
“…….”
“…….”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같은 편인 쥬드가 놀랐는데, 적인 크로노스의 기사들이 놀라지 않았을 리가 없을 터.
철컹―
그들은 황급히 등 뒤에 매달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슈퍼 메이스(Super Mace)!
끝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거신병 전용의 거대한 철퇴.
거신병끼리의 싸움은 가슴속에 탑승하고 있는 기사를 죽이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즉 두껍고 단단한 장갑을 관통해서 충격을 줄 수 있는지가 바로 승부를 가르는 관건인 것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검이라도 갑옷을 가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무기의 역사가 증명하듯, 갑옷을 깨부수는 데에는 육중한 무게의 둔기만큼 효과적인 무기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