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거신병 오시리스 1권(10화)
chapter.4 녹색의 비밀, 힘을 바라는 자(2)


기이잉―
콰아아아아―
오른쪽으로 다가오던 노란색 거신병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짓쳐 들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크로노스의 기사들이 진심으로 그들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콰아앙!
“큭……!”
직격은 피했지만 바닥이 터지면서 튀어 오른 파편들이 후두둑 몸을 강타했다. 거신병 특유의 샛노란 안광이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숨 쉴 틈도 없이 노란색 기체의 발이 쥬드의 어깨를 올려 찼다.
꽈아앙!
끼긱― 끼기긱―
30미터가량 날아갔을까? 바닥에 처박힌 후부터 오른쪽 어깨가 움직이질 않았다. 부서진 듯했다. 그의 손에 들린 큐브가 지직거리면서 흔들렸다.
‘이, 이런!’
콰지직―
날아오는 메이스를 피해 몸을 숙이자 뒤에 있던 나무가 맥없이 부서지면서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팔목을 붙잡았다. 손목을 꺾고, 팔목을 꺾고, 어깨 관절을 꺾는 완벽한 관절기. 하지만 그마저도 파리를 쫓듯 신경질적인 움직임에 힘없이 뒤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콰과광―
‘이런 것을 쓰러뜨렸단 말인가……?’
새삼 팀원들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덩치와 힘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것을 대체 어떻게 쓰러뜨렸단 말인가.
끼기기― 끼긱―
“크윽!”
그간 배운 검술이니 전투술이니 하는 것을 써 볼 틈도 없었다.
몸 위로 올라타서 왼쪽 한 손으로 몸을 짓누르는데, 쥬드는 양손 양팔을 다 사용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까드득―
“끄윽!”
있는 힘껏 버텼지만 서서히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손바닥이 점점 가슴을 향해 다가왔다. 양팔이 굽혀지고 양 무릎이 갈라졌다.
그리고 가슴이 박살 나려는 위기의 순간!
까아앙―!
옆에서 바람처럼 날아온 녹색 거신병 하나가 노란색 기체의 머리에 무릎을 박아 넣었다.
콰과과광―
놀라운 점프력과 민첩성. 야생동물처럼 유연한 몸놀림이 화려하게 결합된 움직임.
“허억! 허억!”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자 고양이처럼 생긴 얼굴을 가진 거신병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바니!”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시원하게 씩 웃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피스와 세베크가 쓰러져서 바동거리는 노란색 거신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누트는?’
고개를 돌려 누트를 찾았다. 그는 양손 위에 제프를 올려놓은 채 주황색 거신병의 공격을 피하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굉장한 속도였다. 정말로 그의 머리 모양처럼 진짜 들개라도 되었는지 방향을 전환하는 모습이 자유자재다.
“도―망―쳐―요―!”
“……!”
기이잉―
그 와중에도 제프는 손을 흔들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주―황―색―은― 안―돼―요―오―!”
파바밧―
제프의 말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 순간 팀원 모두가 동시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쥬드도 재빨리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넓은 보폭으로 달려오는 주황색 거신병을 피해 필사적으로 숲길을 내달렸다.
쿠웅― 쿠웅―
‘그렇지. 주황색은 무리겠지.’
사실은 노란색을 쓰러뜨린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날고뛰는 실력을 가졌다 해도 작은 크기의 녹색 거신병으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는 법.
출력이 10배나 차이 나는 주황색에게 그들의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속도? 기술? 관절기?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한 레벨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주황색과 녹색의 차이라는 것은 발로 무릎을 걷어차면 그들의 발이 박살날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콰지직―!
쿠웅― 쿠웅―
뒤를 쫓아오는 주황색 기체의 모습은 돌아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노란색 안광이 눈에 박혀 들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그저 스쳤을 뿐인데도 멀쩡히 서 있던 나무들이 콰지직 소리를 내며 무참히 쓰러졌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재앙. 살아 있는 자연재해.
기이잉―
쥬드는 가장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누트를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트의 손에 들려 있는 제프를 쳐다봤다.
주황색이 덩치가 크다고 해서 속도도 느릴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크나 큰 오산이었다. 출력이 높다는 것은 낼 수 있는 속도도 높다는 뜻. 만약 이곳이 장애물이 많은 숲속이 아니었다면 잡혀도 아까 잡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다. 어느 쪽으로, 어느 길을 이용해 도망칠 것인가?
쫓아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이 점점 다급해졌다.
“작―업―장―! 으로 가―세―요―!”
“……!”
과연 제프라고 해야 할까?
가장 필요로 했던 질문을 알아채고 먼저 대답해 주었다.
그들의 몸이 쏜살같이 바람을 갈랐다. 중간 중간에 속도가 느린 세베크가 몇 번이나 잡힐 뻔했지만 그때마다 간신히 나무를 방패 삼아 피해 내며 작업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기이잉―
“이건……!”
제프의 얼굴에 경악이 담겼다. 직접 작업장까지 왔음에도 수도에서 온 두 사람. 라울과 토트는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주변을 살폈지만 그들이 타고 온 거신병 두 기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정말로…… 도망친 건가?”
추측이 확신이 되고, 확신은 위기를 가져왔다.
전에 없는 위기다. 적국에서 침입해 온 것은 간부급 주황색 기체. 반면 그걸 상대할 지원 병력은 모두 도망쳐서 없어져 버린 상태.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제프조차 이번만큼은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콰지지직―
쿠쿵―! 쿠쿵―!
마침내 그들의 뒤를 쫓던 주황색 거신병이 나무들을 헤치고 숲속에서 튀어 나왔다.
한 걸음씩 내딛는 발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 손에 들린 메이스의 철퇴가 섬뜩하게 빛났다.
그 순간 주황색 기체의 모습은 그들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괴물처럼 보였다.
‘방법이 없나!’
쥬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택권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쪽도 죽음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다.
푸쉬이익―
“제프!”
재빨리 기체의 가슴을 열고 튀어 나온 쥬드가 소리를 질렀다.
“예?”
“흩어집시다!”
“……!”
떨리는 제프의 눈을 보며 쥬드는 확신했다. 제프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너무 물러 터졌어.’
전쟁터에서 인정을 가지면 어쩌자는 소린가?
쥬드는 냉정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외쳤다.
“제가 미끼가 됩니다!”
“잠깐만요. 그건…….”
“논쟁할 시간 없습니다! 제프도 이미 알고 있잖습니까? 위급 상황에서 위험한 임무를 맡는 것은 도움이 안 되는 부상병이어야 합니다!”
“……!”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후방을 맡는다. 그것은 부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당연한 일.
제프의 얼굴에서 감탄과 자괴감이 뒤섞였다.
고개를 돌리자 나무 방책을 부순 주황색 기체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는 300미터 정도.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기이잉―
팀원들의 거신병이 고개를 돌려 제프를 바라보았다.
“아피스 팀장님과 싸울 때의 몸놀림이면 죽지는 않겠죠.”
“당연합니다.”
“15초. 15초만 버텨 주세요.”
결정을 내린 듯했다. 안타까운 눈빛이었지만 목소리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처음에 마차를 타고 왔던 길로 가세요. 그리고 도주에 성공하면 근처 마을에서 수도에 지원을 요청하세요. 아마 3시간 이내에 대장군이 직접 올 테니까요. 그리고 접선은…… 내일 이 시각 작업장에서 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쥬드는 잊지 않겠다는 듯 팀원들의 모습을 한 번씩 응시한 뒤 다시 거신병에 탑승했다.
푸쉬이이―
“흩―어―져―요―!”
파바밧―
4명의 팀원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양이 같은 얼굴의 거신병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결국 잠시 후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기이이잉―
그에 놀란 것은 쫓아오던 주황색 기체였다. 당황한 듯한 동작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내 제자리에 서 있는 쥬드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쿠웅! 쿠웅! 쿠웅!
콰아아아―
정면으로 달려드는 거신병의 눈에서 샛노란 안광이 터져 나왔다. 일격필살로 죽여 버리고 다음 적을 쫓겠다는 급박한 의지가 그곳에 있었다.
‘잘한 거겠지?’
이성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한 거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린 거다.
손이 떨릴 정도로 두렵지만 스스로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쒜에에엑―!
“큭!”
재빨리 수그린 머리 위로 커다란 메이스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풍압만으로도 머리가 띵하면서 몸이 휘청 흔들렸다.
‘빠르다!’
노란색 기체 이상의 빠르기. 게다가 허리에서 손목까지 돌아가는 공격 자세는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피했다고 안심할 틈이 없었다. 곧바로 왼쪽 발을 내딛으며 왼쪽의 완장으로 밀어붙이는데, 공격을 막아 낸 팔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까드드득―
“……!”
손과 손목이 동시에 우그러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뒤이어 몸이 위로 붕 떠올랐다. 다시 날아온 메이스에 얻어맞은 팔이 뚝 끊어지면서 공중에서 박살이 나 버렸다. 한 호흡이 끝났다 싶었는데 공격이 그치질 않았다.
한순간에 팔목을 끊어 내고, 팔꿈치를 뜯어내고, 어깨를 날려 버렸다.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연속 공격.
특히 메이스가 정통으로 허리 부근을 후려치는 순간, 쥬드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콰아앙―
“커허!”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턱 막혔다. 손에 들린 큐브가 지직거리면서 충격을 경고했다.
장갑(Armor)이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육체에 직접 새겨졌다.
폭풍에 휘말린 낙엽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이 산산이 바스라진 몸뚱이는 점점 작아져 간다.
기이잉―
콰당탕탕―
꿈틀거리면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메이스는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제길! 이제 3초…….’
몸이 녹초가 되도록 처 맞았는데도 시간은 겨우 3초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도망쳐야 했다. 있는 힘껏.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유롭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 누트처럼!’
익숙지 않은 움직이지만 연습할 시간 따윈 없었다.
위기가 닥치자 머릿속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던 누트의 움직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파아앗―
다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움직였다.
머리, 척추, 고관절, 무릎, 발목.
모든 관절을 동시에 움직이며 단단한 몸뚱이를 고무처럼 유연하다고 상상했다. 누트처럼 유연하고, 바니처럼 탄력 있게.
상상과 행동이 일치되는 순간 그의 몸은 바람이 되었다.
후우우웅―
세계가 바뀌었다. 그토록 빠르던 메이스가 손에 잡힐 듯 느리게 보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쥬드의 거신병을 메이스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된다!’
위기를 뛰어넘어 강해졌다. 필사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대담한 결정을 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결단력이야말로 바로 쥬드의 재능이었다.
파바바밧―
반짝 빛나는 눈에서 강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지그재그로 통통 튀듯이 움직이는 쥬드는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빨라 보였다.
이젠 주황색도 필사적이었다. 거치적거리는 건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주변의 목재 건물들을 모래성처럼 부숴 버리며 난폭하게 움직였다.
특히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메이스를 쥬드가 몸을 낮춰 피해 내는 순간…….
콰지지지직―
옆에 있던 아름드리 나무 대여섯 개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위험하다!’
저런 걸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았다간 즉사였다.
다급하게 바닥에 있는 통나무를 집어던졌지만 주황색 거신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몸으로 튕겨 냈다.
쥬드의 움직임이 더욱 다급해졌다.
기이이잉―
콰광― 콰광―
목숨을 건 추격전이었다.
당장이라도 꼬꾸라질 듯 위태위태하게 달리는 쥬드의 등 뒤로 연신 메이스가 휘둘러졌다.
위기의 연속.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쥬드의 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제 8초!’
이대로만 하면 15초는 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끌어들이면, 조금만 더 따라오면!
우우웅―
“어?”
뒤따라 오던 굉음이 멈췄다. 발소리가 멈췄다.
무거운 적막 사이로 바람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진동만이 느껴졌다.
고개가 돌아갔다. 마치 처음에 적군을 발견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목 뒤를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
눈에 보이는 것은 충격, 경악, 공포.
그 순간 날카로운 빛의 기둥이 그의 몸을 갈랐다.
피슈웅―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는 동안 그는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때론 철판이 찢어지는 굉음보다, 종이에 손을 벨 때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더욱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지금이 그랬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고막을 찢고 들어와 머릿속을 진탕시켰다. 바싹 마른 낙엽을 밟은 것처럼 파삭 하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어깨가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마나포라니!!”
터무니 없이 작기는 하지만 주황색 기체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은 분명 마나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