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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1화)
chapter.4 녹색의 비밀, 힘을 바라는 자(3)


초가속 마나 응집포.
통칭 마나포.
요새에 장착되는 고정형 마나포, 평야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이동형 마나포 등등.
이제껏 전쟁용으로 사용되는 많은 종류의 마나포를 봐 왔지만 거신병이 들고 다닐 만큼 작은 형태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크로노스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더니 벌써 그 정도까지나 간 것인가 하는 감탄이 나왔다.
마지막에 몸을 비틀지 못했다면 그대로 몸통이 통째로 날아갔을 위력인 것이다.
끼릭― 끼릭―
“크윽!”
쥬드는 간신히 무릎을 꿇는 것까진 성공했다. 양팔이 없어진 탓인지 겨우 그것뿐인데도 온몸이 삐걱거렸다.
그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이걸로 끝인가?”
기다란 포신(砲身)이 여전히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젠 도망갈 힘도 없었다. 한 번만 더 마나포가 날아온다면 이번엔 정말로 살아남을 수 없을 터.
‘어?’
그런데 주황색 기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나포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숨을 멈추고 굳어 있는 느낌이랄까.
“설마?!”
쥬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나포의 소형화. 그것만으로도 이전에는 없던 놀랄 만한 발전인데, 그 기술이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들이 맞춰졌다. 비밀스런 습격에 굳이 노란색 기체를 두 대나 데려온 것도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마나포를 사용한 뒤 경직된 주황색을 지키려면 호위병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지금 도망가야 한다!’
끼릭― 끼릭―
“크으읍!”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쥬드는 비틀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쿠웅― 쿵―! 쿠웅― 쿵―!
한 40미터 정도 갔을까?
숨을 헐떡이는 쥬드의 귓가에 작은 기계음이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기이잉―
“……!”
주황색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황급히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지만 주황색은 마나포를 쏘지 않았다. 포신은 등 뒤로 돌려 맨 채 원래 들고 있던 메이스를 다시 꺼내 들었다.
기이잉―
쿠궁― 쿠궁―
거대한 모습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끼긱거리던 관절이 나가 버렸는지 왼쪽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젠장―!”
쾅!
쥬드는 큐브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치직거리던 화면이 팍 하고 나가 버렸다.
이젠 정말 도리가 없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정말로 여기서 끝인가? 소환 의식 때부터 그를 배신하더니 이젠 아예 죽이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것인가?
다그닥― 다그닥―
“어?”
쥬드는 귀를 의심했다.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황급히 다시 큐브를 잡고 감각을 연결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길목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그닥― 다그닥―
“진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꽤 높은 언덕이 하나 솟아 있었다.
말발굽 소리는 그쪽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것처럼 느긋하고 경쾌하게 언덕을 넘어왔다.
“안 돼! 돌아가! 눈치채!”
다급하게 외쳤지만 밖에서 들릴 리가 만무했다.
말발굽 소리를 동반한 마차는 언덕을 넘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순간 쥬드에게 달려오던 주황색 기체도 동작을 멈췄다.
히히잉―
“우, 우와악―!”
말들이 놀라서 경기를 일으켰다. 마부 또한 폐허나 다름없는 난장판을 보며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거신병의 위용이란 익숙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거대한 신이 눈앞에 강림한 듯 보일 터였다.
기이잉― 기잉―
주황색 거신병의 시선이 쥬드와 마차를 번갈아서 바라봤다.
자기 몸도 주체 못 하고 나무에 기댄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쥬드.
황급히 말 머리를 돌려 도망가려 하고 있는 마차.
적군의 시선으로 봤을 때 둘 중에 무엇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콰아아아―
“안 돼―!”
쥬드는 큐브를 붙잡고 온힘을 다해 외쳤다.
“움직여라!”
끼릭―
“움직여!”
끼릭― 끼릭―
“움직여―!”

쩌억!

“……!”
뭔가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에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일까? 일어설 수도 없던 거신병의 몸이 폭발하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멀리 보이던 광경이 확대되듯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힘차게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막 메이스를 내리찍으려는 주황색 기체의 허리를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쳤다.
까가가가강―!
철벽에 몸을 들이박은 것처럼 아찔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격이었던지 주황색 기체도 몸을 움찔 굳혔다. 휘청하고 균형이 흔들렸지만 아슬아슬하게 넘어지진 않았다.
‘조금만 더!’
까드득―
입술 사이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차는 이제 막 방향을 돌리는 중이었다. 말이 말을 잘 안 듣는지 채찍을 내리치는 마부의 손이 다급했다.
‘조금만 더!’
끼릭― 끼릭―
진동이 뚝 그쳤다. 균형을 잡았는지 주황색 기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쿵쾅거렸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마침내 쥬드의 입에서 결정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조금만 더 힘을―!”

쩌어억―!

“……!”
강렬한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에서 파편 같은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쥬드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은은한 녹색의 빛이 마차와 주변의 나무를 집어삼켰다.
까득― 콰지직 콰직―!
콰아앙―!
강력한 척력에 의해 주황색 기체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마부와 말들이 끈 떨어진 연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히힝―!
“저, 저게 뭐야!”
마차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로 분해되고 꿈틀거리더니 쥬드의 거신병에게 날아가서 제 몸처럼 달라붙었다.
철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맞춰지고 있었다. 모자란 부품은 나무들이 채워 넣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이.
큐브를 심장으로, 녹색의 거신병을 뼈대로 삼아, 그 위에 살을 붙이고, 갑옷을 껴입았다.
드드드드―
공기가 떨렸다. 땅이 진동했다.
어느새 같아진 눈높이로 주황색 기체를 응시하며 쥬드는 멍하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야……?”
양쪽 다리에 매달린 둥그런 바퀴. 어깨와 가슴에 돋아 있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뿔.
그의 거신병은…… 변신해 있었다.



chapter.5 다섯 개의 바퀴, 네 개의 뿔(1)

“히, 히이익!”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천둥 굉음이 연이어 터지더니 눈앞에는 이제껏 본 적도 없는 거신병이 두 대나 서 있었다.
혼비백산한 마부는 말고삐를 잡아채고는 말이 사람을 끄는 건지, 사람이 말을 끄는 건지 모를 정도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기이잉―
“…….”
“…….”
원래대로라면 목격자를 살려 둘 리가 없는 일.
당장 따라가서 죽여야 맞겠지만 주황색 기체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끼릭― 끼릭―
방해라도 받는 것처럼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지만 끼릭거리며 덜덜 떨리는 손끝이 나타내는 것은 단 하나.
‘공포!’
지금 주황색 기체는 미지의 거신병을 앞에 두고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쥬드는 새로운 감각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주황색 기체만큼이나 커진 육체, 산들바람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진 감각. 그리고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강력한 힘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착각마자 불러일으켰다.
“이게…… 진짜 모습이었던가?”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녹색 거신병의 비밀.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감지, 동기화, 변신……. 이게 절반 정도인가?”
쥬드는 큐브가 전해 주는 감각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이전보단 강력해졌지만 아직 채워지지 못한 뭔가가 느껴졌다. 뱃속이 허기졌을 때와 비슷한, 미묘한 공복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하지만 강해.”
그럼에도 강했다.
절반에 불과하다고 하나 눈앞에 있는 주황색 기체는 눈 아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쥬드의 눈에서 희열이 차올랐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의 자존심이 다시 한 번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 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터.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찬찬히 거신병의 힘을 점검했다.
“몸이 가볍다. 재질이 나무라서 그렇겠지. 출력도 늘어난 느낌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탄력성과 유연성.”
보통 거신병들이 양쪽으로 팔을 벌리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다면 지금의 그는 등 뒤에서 깍지까지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탄력. 몸속을 흐르는 충만한 마나. 거기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의 든든함까지.
“힘이 있으면 시험해 봐야겠지?”
철컥―
쥬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기사회생. 일발역전이었다.
몸을 수그린 쥬드의 거신병이 다리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육체가 고무공처럼 위로 뛰어올랐다.
파아앙!
“……!”
놀라운 탄력과 경악스런 점프력.
주황색 기체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쥬드의 거신병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바람이 갈라졌다.
주황색 기체의 뒤로 내려선 쥬드의 거신병은 깍지 낀 양손으로 주황색 기체의 등 뒤를 후려쳤다.
까앙! 콰과과광―!
앞으로 튕겨 나간 주황색 기체가 나무를 여섯 개나 쓰러뜨리며 구석에 처박혔다.
쥬드는 무릎을 굽혔다. 그와 동시에 다리에 달린 바퀴 네 개가 일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콰과과과!!
거대한 육체가 앞으로 쏘아졌다.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전차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육중한 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심을 유발시켰다.
게다가 가슴과 어깨에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다면 그 공포심은 더욱더 커질 터.
까아아앙―!
방어할 틈도 없이 정면에서 들이받힌 주황색 기체는 뿔에 찔린 견갑이 움푹 들어간 채로 뒤로 쓰러졌다.
쥬드는 들이받은 힘을 그대로 살려 쓰러지는 주황색 기체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기체의 주먹이 미친 듯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까앙―! 까앙! 까앙!
“하아압―!”
주먹질을 할 때마다 적 기체의 갑옷이 움푹움푹 들어갔다. 공격당한 주황색 기체의 머리가 이리저리 휘둘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쥬드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필요했다.
강한 힘. 더욱 강한 힘. 일격에 모든 걸 깨부술 수 있는 무적의 힘.
“힘……. 힘……. 힘!!”
웅웅―!
그 순간 그의 오른쪽 손 위로 녹색의 빛이 모여들었다.
쥬드의 눈빛이 잔인해졌다. 그는 빛으로 감싸인 손으로 주황색 기체의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뜯어냈다.
콰지지직―
“……!”
산산이 부서져서 튀어 오르는 주황색 파편들. 끼릭 거리는 거신병의 비명. 그리고 처참하게 뜯겨진 왼쪽 팔 하나.
그건 이미 싸움이 아니었다. 강한 자에 의한 철저한 살육일 뿐.
웅웅웅―
요령을 깨달은 쥬드는 왼쪽 손에도 초록색의 빛을 모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누군가가 가슴속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죽여라.
때리고, 짓밟고, 갈기갈기 찢어서 눈앞의 적을 완전히 말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