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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2화)
chapter.5 다섯 개의 바퀴, 네 개의 뿔(2)


콰직―
왼쪽 손이 주황색 기체의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듯이.
장갑을 뚫어 버린 손이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순간 갑작스레 옆에서 날아온 공격이 쥬드의 머리를 강타했다.
빠악!
콰당탕―
옆으로 튕겨 나간 쥬드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곧장 다시 일어섰다.
기이잉―
앞을 보자 주황색 기체가 일어서고 있었다.
방금 전에 휘두른 메이스를 꼭 쥔 채로 비틀거리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한쪽 팔은 잡아 뜯기고 가슴 장갑은 너덜너덜해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공포, 적의, 두려움.
마치 궁지에 몰린 야생동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찌릿―
“큭?!”
그 순간 쥬드의 등이 새우처럼 굽어졌다. 묘한 이질감과 함께 갑작스런 두통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내가…… 왜……?”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제정신이 들자 회의감이 들었다. 도저히 자신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잔인한 행동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가슴속에 손을 박아 넣고 기사를 잡아 뽑을 뻔하지 않았는가?
기이잉―
쿠궁― 쿠궁― 쿠궁―
주황색 기체는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쥬드는 뒤를 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갑작스레 얻은 힘은 잃었던 자신감과 야망을 되찾아 주었지만, 언제 제정신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정신을 잃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법.
그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사이, 주황색 기체는 언덕을 넘어 사라져 버렸다.
기이잉―
쿠웅― 쿠웅― 쿠웅―
“……?”
문득 뒤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작지만 활기찬 기운. 주변의 푸르른 나무들처럼 청량하고 쾌활한 사람들.
툭―
쥬드는 큐브에서 손을 떼고 긴장이 풀린 것처럼 몸을 늘어뜨렸다. 다가오는 네 개의 기척.
그들은 국경 지부의 동료들이었다.

30분전. 국경 지대 근처 숲속.
주황색과 노란색 거신병 두 기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듯 다급한 몸동작으로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한 걸음에 가던 거리가 두 걸음이 되고, 두 걸음에 가던 거리가 세 걸음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급하고 스산한 바람이 주변의 나무들을 흔들었다.
푸쉬이이―
밖으로 빠져나온 두 사람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헉……헉……. 이제…… 된 거 아냐?”
“아니……. 후우, 어찌 될지…… 몰라. 후우……. 나중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좋겠지.”
두 사람의 정체는 라울과 토트였다. 크로노스의 거신병들을 보고 도망쳐 나온 청년 기사들이었다.
“아까 도로 쪽으로 지나간 마차가 마음에 걸려.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괜히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죽어 버릴 텐데?”
토트는 마음에 걸리는 듯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말했잖아. 목격자는 만들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일반인인데…….”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이봐! 애초에 도와줄 필요 없으니 모른 척하고 도망치자고 한 건 너였어! 이제 와서 착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
라울의 날카로운 일침에 토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때의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쥬드에 대한 분노와 전투에 대한 공포가 뒤섞이는 바람에 성급한 판단을 내려 버렸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는 건데…….’
그랬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치밀어 오르는 죄책감 때문에 숨이 막혀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봐, 토트. 진정해.”
표정이 심각하다 싶었는지 라울이 토트를 달랬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일단은 우리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어?”
“…….”
“겨우 마부 하나야. 그가 희생한 만큼 우리가 성공해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되지. 괜히 어설프게 도와줬다가 말이라도 새어 나가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알겠어? 인정 봐주면서 대충대충 처리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토트의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은근히 고집이 센 토트로선 드문 일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정해. 우린 공범이야. 그리고 쥬드 그놈은 당해도 싼 놈이라고. 그놈이 건방지게만 안 굴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냐? 안 그래?”
“그래…… 그렇지…….”
“우리도 살아야지. 어쩔 수 없잖아? 크로노스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하다던데 숫자도 적은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고? 솔직히 녹색 일꾼놈들은 전력에도 포함 안 되잖아?”
라울의 말은 묘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변명거리를 찾고 있던 토트는 순식간에 그 논리에 빠져들었다.
“그래, 맞아. 녹색은 쓸모가 없어.”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뒤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거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좋아. 그러니까 최대한 멀리 떨어지자고. 싸움이 끝날 때쯤 야누스 장군님께 보고하면 모든 일이 잘 되는 거야.”
“알았어. 그렇게 하자.”
토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끊임없이 괜찮다고 중얼거렸다.
합리화다. 처음엔 양심이 그를 괴롭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고 믿게 되기 시작했다.
라울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짙어졌다.
토트의 눈빛이 바뀌었다.
“가자.”
“그래.”
그들은 다시 떠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근처의 마을에서 군부에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
다그닥― 다그닥―
“어?”
기이잉―
그런데 그들의 감각에 또 하나의 말발굽 소리가 잡혔다. 기껏 추슬렀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푸쉬이이―
“뭐, 뭐야?”
라울과 토트는 긴장한 얼굴로 옆의 도로 쪽을 바라보았다.
마차가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니다. 어차피 하나를 그냥 보낸 이상 그게 두 개가 되든 세 개가 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차가 향하는 방향이 그들이 있는 쪽이라는 것이다.
‘숲 속을 가로지르고 있어?’
‘어째서? 길도 울퉁불퉁할 텐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도망쳐야 하나 하는 온순한 생각부터, 죽여서 입을 막아야 하나 하는 난폭한 생각까지.
그런데 그들이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마차는 시야에 들어 올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저, 저건!”
경악한 두 사람은 허둥지둥 거신병에서 내려와 경직된 자세로 시립했다.
마차를 이끄는 것은 사람보다도 훨씬 더 큰 검은색의 군마 두 마리. 그리고 육중한 마차 위에 당당하게 매달려 있는 것은 멤피스의 국기였다.
처척―
두 사람은 양발을 공손하게 모으고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마차 위에 국기를 달 수 있을 정도의 인물들 가운데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장군님을 뵙습니다!”
“대장군님을 뵙습니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쭉 타고 내려갔다. 긴장으로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마차에서 내리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양 갈래로 기른 콧수염과 갈색의 피부, 잘 단련된 탄력 있는 육체와 날카로운 눈매에서 칼날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남자였다.
그가 바로 멤피스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까지 불리는 군부의 수장 야누스 대장군이었다.
“기이한 곳에서 대기 중이군.”
“……!”
날카로운 시선이 거신병과 두 사람을 훑어 내렸다.
가슴속을 저며 내는 듯한 느낌에 두 사람은 얼음처럼 굳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향하는 방향이 국경 지부와 반대쪽이라니. 어째서 임무지에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인가?”
“…….”
“대답하지 않을 건가?”
철컥―
야누스의 등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부관이 허리에 찬 칼로 손을 가져갔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잔뜩 얼어 있던 두 사람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가 있습니다.”
라울은 힐끗 토트를 쳐다봤다. 사색이 된 얼굴 위로 죄책감이 잔뜩 깔려 있었다. 상황에 떠밀려 악랄한 결정을 내리긴 했으나 그 우유부단하고 고지식한 본성은 고쳐지질 않은 것이다.
“말하라.”
“그것이…….”
망설이던 라울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살아야 했다. 토트가 멍하니 있으니 그라도 정신을 차려야 이 위기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다.
“지원 요청을 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어째서?”
“크로노스 제국이 쳐들어왔습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아서 맞서 싸우는 것보단 후퇴하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뒤쪽에 있는 부관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누스는 라울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