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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3화)
chapter.5 다섯 개의 바퀴, 네 개의 뿔(3)


“크로노스라고?”
“예!”
“그럼 녹색 거신병들은? 그들은 어디에 두고 두 사람만 후퇴하고 있는 거지?”
“녹색 거신병들은 적과 내통을 한 것 같았습니다.”
“……!”
퍼뜩 고개를 든 토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부정할 수도 없었다. 라울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토트는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덜덜 떠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통이라…….”
야누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적의 규모는?”
“그게…….”
라울은 토트를 다시 한 번 힐끗 바라본 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주황색 기체가 세 대! 노란색 기체의 숫자는 최소 네 대 이상입니다!”
“……!”
어차피 내친걸음이었다.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그 자신도 놀랄 만큼 술술 튀어 나왔다.
“많은 숫자군.”
“예! 죄송합니다!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누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말은 너무 많은 숫자라는 뜻이다.”
“……?!”
냉정한 목소리엔 짙은 한기가 깔려 있었다.
너무 놀라 딱딱하게 굳어 버린 두 사람을 보며 야누스는 나직하게 부관을 불렀다.
“부관.”
“옛!”
척― 척―
“어, 어……?!”
퍽!
“억!”
부관 두 사람은 토트의 다리를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한 사람은 토트의 머리를 붙잡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왼쪽 손을 발로 밟은 채 허리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스릉―
“대, 대장군님!”
토트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손목에 서늘한 뭔가가 닿는 듯하더니 뜨거운 피가 움푹 솟아 나왔다.
“히, 히익!”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올 정도였다.
야누스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토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하나라도 거짓으로 답하면 손목을 자를 것이다.”
“대, 대장군님!”
“멤피스의 기사는 거짓을 말해선 안 된다. 명을 어겨선 안 된다. 임무 중 사사로운 이득을 취해서도 안 된다. 묻겠다. 이 중에 네가 어긴 것이 있는가?”
“……!”
야누스의 위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겁에 질린 토트가 입만 뻥긋거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보다 못한 라울이 앞으로 나섰다.
“대장군님! 저희는…….”
“너에게 묻지 않았다.”
“……!”
야누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라울은 다리가 풀려 쓰러질 뻔한 것을 겨우 버텨 냈다. 마치 마법사의 언령(言令)처럼 단순한 말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어 생각을 지배했다.
그릇이 달랐다.
그를 질리게 만들었던 쥬드 이상으로 거대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저, 저는…….”
결국 토트의 입이 열렸다.
“죄, 죄송합니다. 어겼습니다! 세 가지를 모두 어겼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비참하게 흐느꼈다.
라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끝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라. 무슨 일이 있었지?”
“크, 크로노스가 쳐들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맹세코 그건 거짓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 다음을 말하라는 거다.”
야누스는 그들의 거짓말 속에서도 진실과 허실을 완벽하게 구별해 내고 있었다.
토트의 고개가 더욱더 수그려졌다.
“원래 제가 그…… 쥬드 펠릭시아와 감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적군을 보니까 겁이 나서…….”
“그래서?”
“이렇게…… 도망을……. 컥!”
땅에 꺼질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부관이 똑바로 말하라는 듯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쳐들었다.
“도망을…… 쳐, 쳤습니다.”
“그렇군.”
야누스의 목소린 여전히 얼음처럼 싸늘했다.
“결국 너와 싸운 상대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회피한 거군.”
“그, 그것이 아니라, 그저…….”
“아니 내 말이 맞을 거다. 너는 분명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
외면했던 진실은 잔인하게 마음을 꿰뚫었다. 핏기가 빠져 하얗게 질린 얼굴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했다.
“그리고 너는 그걸 말리지 않고 나서서 도와준 것이군. 오히려 부추기면서 앞에서 거짓말을 했고 말이다.”
“…….”
이번엔 라울이었다. 라울은 감히 시선을 맞받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묻겠다. 적의 규모는 얼마였지?”
“주황색이…… 한 대……, 노란색이 두 대였습니다.”
“그들이 나타난 시각은?”
“……30분쯤 지났습니다.”
야누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30분이면 녹색 거신병 다섯 대가 전멸하기엔 차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전략상으로 봤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
하지만 숨겨진 유적과 녹색 거신병들은 그리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것들이었다.
“곤란하군.”
스릉―
“히, 히익!”
“윽!”
부관들이 각자 칼을 꺼내 토트와 라울의 목을 겨누었다.
두 사람은 사색이 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엄청나게 두렵지만 어쩌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대대적으로 처형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늘한 기운이 목에 닿았다. 따끔따끔한 느낌과 함께 뜨겁고 끈적한 뭔가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1초가 1년 같았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조급함과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공포감이 뒤섞였다.
파르르―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을 구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야누스였다.
“잠깐. 멈춰라.”
야누스의 지시에 부관들은 칼을 집어넣고 야누스의 등 뒤로 돌아왔다.
토트와 라울은 주저앉았다. 더 이상 버텨 낼 힘이 없었다.
“토트 제프리, 라울 타르나코. 두 사람 모두 얼마 전에 소환 의식을 치르고 발령 대기 중입니다. 현재 호루스 기사단에 있습니다.”
“……!”
토트와 라울의 눈이 확 떠졌다.
부관 중 한 명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뭔가를 찾아 읽은 내용이었다.
“발령 대기 중?”
“예.”
“모두 취소시켜.”
“알겠습니다.”
“기사 자격도 취소한다. 명단에서 제외시키도록.”
“……하지만 토트 제프리는 행정부의 제프리 서기관의 장자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지금 나보고 궁의 눈치를 보라는 소린가?”
“아뇨,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부관이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야누스는 냉랭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장군님!”
라울이 절박하게 야누스를 쳐다봤다.
대장군은 그들을 살려 주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나 일단 살려 주었다는 것은 뭔가 쓸 일이 있다는 뜻일 터.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었다. 반드시 이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
“대장군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쿵!
곧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야누스의 눈에서 이채가 감돌았다.
“무슨 뜻이지?”
“어떤 일보다 대장군님의 명을 우선시하겠습니다! 대장군님의 명에 목숨을 걸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라울은 토트에게 재빨리 눈짓을 보냈다.
토트 또한 라울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변방 국경 지대 숲 속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충성 서약이었다.
영악하고 영특한 행동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좋다.”
그 점이 야누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사보다 상인이 더 어울리는 녀석이군.”
“…….”
“잔머리는 통하지 않는다. 하나 그 집념만은 높이 사 기회를 한 번 주겠다.”
“가, 감사합니다!”
“쉬운 일이 아닐 테니 좋아할 것 없다. 그리고 기사와 군부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예……?”
두 사람은 멍하니 야누스를 올려다봤다.
기사로 복귀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기회란 말인가?
“너희는 기사가 맞지 않는다. 이쯤에서 포기하도록.”
“대, 대장군님……?”
“여기서 곧바로 이스트 웨이로 가라. 그리고…….”
야누스는 부관에게서 수첩을 받아들고 뭔가를 써내려 갔다. 알아볼 수 없는 글씨 몇 개와 야누스를 뜻하는 사인이었다.
“신전에 가서 이걸 보여 주면 된다. 명심해라. 수도에 들려서도 안 되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해서도 안 된다. 알겠나?”
“예, 예!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야누스는 마차에 다시 오르며 한마디를 남겼다.
“기대하지.”
“……!”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떠나갔다. 스산한 바람이 주변을 흔들었다.
멍하니 무릎을 꿇은 두 사람에게 종이 한 장만이 허무하게 남았다.

쥬드는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팀원들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특히 가장 눈을 빛내고 있는 사람. 거신병의 조정자이자 유적 연구가인 제프는 불이라도 뿜을 듯한 눈빛으로 뒤쪽에 서 있는 쥬드의 거신병을 올려다봤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마차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분해돼서 몸에 달라붙더니, 몸이 커지고 엄청나게 힘이 세졌다. 이거죠?”
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거 참 흥미롭네요. 그럼 사용법은요? 바닥에 남은 흔적이랑 싸움 과정을 들어 보니 새로운 기체 사용법을 잘 알고 싸운 것 같은데요?”
언제 또 그런 것은 다 확인한 건지 물어 오는 질문이 날카로웠다.
“그냥…… 알았습니다.”
“그냥 알았다고요?”
“다르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원래 제 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알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 싶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제프는 그 대답에 감탄하며 기뻐했다.
“호오! 자가 인식이군요! 아니, 아니지. 제로 소통인가? 아냐 그것보다는…….”
“…….”
“영혼 감응? 아냐, 아냐. 어째서 능력이 개방되었을까? 계기가 있었을 텐데……. 역시 회로를 통한 자극보단 직접적인 제로 소통이…….”
제프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기만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등 뒤에선 바니와 누트 남매의 대화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오빠! 이것 봐! 가슴에도 바퀴가 하나 달렸어! 그럼 바퀴가 총 다섯 갠데……. 마차는 바퀴가 네 개 아냐? 하나는 어디서 난 거지?”
“바보야. 마차는 항상 비상용 바퀴를 하나씩 위에 싣고 다닌다고! 그러니까. 다섯 개지.”
“오오! 그래? 대단한데 이 녀석? 그런 것도 다 생각해서 변신하는 거야?”
“그런가 보지. 으아아―! 나도 변신하고 싶다! 어디 노는 마차 없나? 시험해 보고 싶은데?”
“나도! 나도! 나도 해 볼래!”
즐겁게 방방 뛰어다니는 두 사람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한편 다리에 있는 바퀴를 툭툭 건드려 보던 세베크는 제프를 큰소리로 불렀다.
“이봐! 제프!”
“……소통을…… 뒤집으면…….”
“제프!”
“예? 예?!
“이 장갑 말이야. 강철만큼 단단한 것 같은데? 마차를 만든 나무면 그냥 보통 목재일 텐데 이렇게나 재질이 바뀔 수 있는 건가?”
“아! 그건 저도 아까 살펴봤는데요. 아마 회로 쪽에서 나온 마나가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제프는 쥬드에게 손을 흔들었다.
“쥬드 씨! 조종석이랑 회로 좀 살펴봐도 될까요?”
“……그러십시오.”
“감사합니다∼!”
해맑게 웃으며 뛰어가는 제프를 잠시 허탈하게 바라보던 쥬드는 문득 뒤쪽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아피스를 발견했다.
모두가 호들갑을 떠는 이때 유일하게 쥬드의 거신병에게 관심을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에 펼쳐진 푸르른 수림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팀장.”
“……?”
아피스는 대답도 없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팀장은 어째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까? 약하다고 멸시받는 녹색 거신병의 신세를 탈출할 수도 있는 기회인데요?”
“그런 얘기였나?”
아피스는 다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별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예? 무슨 말입니까? 팀장도 녹색 거신병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요?”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다면 제프가 말해 주겠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
쥬드의 얼굴이 허탈해졌다.
“아아, 그런 말이셨군요.”
상관없다는 말은 정말로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제프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마음을 비우고 가만히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얼핏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솔직하고, 우직하고, 든든했다.
아피스는 용병보다는 기사가 더욱 어울리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