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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4화)
chapter.5 다섯 개의 바퀴, 네 개의 뿔(4)
우우웅―
“어?!”
문득 고개를 돌린 쥬드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마치 처음 변신했을 때처럼 은은한 녹색의 빛이 녹색 거신병의 몸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 위 두 개의 깃털 장식이 촛불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자, 기묘한 울림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철컹― 철컹―
드드드드―
“……?!”
그리고는 거신병의 몸에서 다시 분해된 나무 부품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바니와 누트가 놀라서 재빨리 옆으로 도망쳤다. 세베크도 몸을 피했다.
‘제프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의 모습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변신 해제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부품들이 바닥에서 다시 조립이 되며 은은한 녹색빛에 휩싸였고,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래 마차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허어……?”
쥬드도 밖에서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뭐라 말할 수 없이 신기했다.
유령이라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조립되는 마차. 그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녹색의 거신병.
‘잠깐 원래의 모습이라는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양팔이 뜯겨지고 무릎관절이 나가 버린 그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닌가?
끼릭― 끼릭―
쿠우웅―!
“우와앗!”
아니나 다를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쥬드의 거신병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더불어 안쪽에서 제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프!”
몸놀림이 가벼운 누트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 조종석으로 올라가 그는 제프를 끄집어내 주었다.
“아야야…….”
“제프! 괜찮아?”
“하하. 네, 괜찮…… 윽!”
부축한답시고 잡아 준 곳이 아팠는지 제프가 화들짝 놀라 팔을 뺐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팔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바니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뭐야? 넘어지면서 다친 거야?”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하하 별거 아니에요. 그냥 어디 부딪쳤나 봐요.”
제프는 그 대답을 하면서 슬쩍 쥬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쥬드가 아니었다.
“제프.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예? 하하…… 뭐가요?”
“상처요. 넘어지다가 다친 상처 맞습니까?”
제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쥬드의 냉철한 눈동자를 보니 어설픈 거짓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게……. 잘은 모르겠어요. 넘어지면서 다친 거긴 한데 아직 뭐라고 설명할 단계가 아니네요.”
“…….”
“정말이에요! 정말! 펠릭시아 씨가 사용법을 그냥 안 것과 같은 거예요!”
“……그거랑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같다니까요. 그냥 넘어가 주세요.”
아직 납득이 안 되긴 했지만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린애처럼 웃는 제프를 더 추궁할 수는 없을 듯했다.
쥬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분해가 된 겁니까?”
“아, 그건요…….”
제프는 조종석을 가리켰다.
“큐브를 분리시켜 봤어요.”
“큐브…… 말입니까?”
“네, 세베크 씨 말대로 나무 갑옷이 강철만큼 단단해진 건 큐브에서 흘러나온 마나 때문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험 삼아 큐브를 기체에서 분리시켜 봤는데…… 역시 마나가 끊기니까 변신이 풀려 버렸어요.”
제프는 마차에 다가가 손으로 툭툭 두드려 보았다.
“보세요. 이젠 재질이 보통 나무로 다시 돌아갔어요. 아직 연구해야 할 게 많지만 일단은 큐브가 나무를 미지의 물질로 강화시켜 준다는 건 확실한 것 같네요.”
“……!”
“사실 다른 거신병의 장갑도 일반 철이 아니라 미지의 물질이거든요. 아! 그거 아세요? 거신병은 색깔마다 장갑의 재질이 달라요. 지금 학계에선 출력이나 크기 때문에 빨강, 주황, 노랑으로 순서를 매기고 있지만…… 제 생각엔 색깔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펠릭시아 씨의 녹색 거신병이 의외의 능력을 발견해 낸 것처럼 아직 우리가 모를 뿐인 것 아닐까요?”
쥬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프의 눈에선 뜨거운 열정과 지혜로운 현명함이 동시에 번뜩이고 있었다.
왠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고대 문명은 너무나 광활해서 아직 발굴되고 해석된 것이 절반도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지금’의 인류가 모를 뿐.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쥬드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거신병을 쳐다봤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거신병은 이제 움직이기가 힘든데요.”
“흐음―?”
“왼쪽 무릎이 고장 나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수리부터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심각한 이야기였지만 대답은 곧바로 튀어 나왔다.
“고민할 게 뭐 있어?”
“……?”
“다시 합체하면 되지! 보여 줘! 안 그래도 보고 싶었어∼!”
눈빛이 뜨거워진 바니가 등 뒤에 매달려 꺅꺅 소리를 질렀다.
“그래! 변신! 변신!”
“예에! 변신하세요! 펠릭시아 씨! 저도 궁금했어요!”
쥬드의 얼굴이 살짝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그를 응원했다.
아피스는 여전히 흔들리는 나무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평소에 별말이 없는 세베크는 쥬드에게 변신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종석으로 올라탔다.
chapter.6 붉은 불꽃의 태양왕(1)
기이잉―
쿠웅―! 쿠웅―! 쿠웅―!
네 대의 거신병이 열을 맞춰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네 대다.
꽤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결국 합체에 실패한 쥬드의 거신병과 마차는 각각 아피스와 세베크의 손에 들려 이동하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뭔가 특별한 조건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으음…….”
누트의 손 위에 함께 올라 탄 쥬드와 제프는 변신이 실패한 이유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처음에 변신했을 때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 혹시 시동어 같은 게 있는 것 아닐까요?”
“시동어라고요?”
“예 ‘무적 파워 변신!’이라던가. ‘달의 보석이여, 나에게 힘을!’이라던가. 그런 거요.”
“…….”
쥬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고대 유적에서 발굴된 병기에 그런 어린애들 동화책에 있는 마법 주문 같은 것이 통할 리 없지 않은가?
“아! 혹시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이런 것일지도……”
“…….”
“아니면 두 사람이 일렬로 서서 양쪽 손가락 끝과 끝을 마주치는 그런 특별한 자세가…….”
“아뇨!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왠지 끝이 없을 듯한 느낌이라 쥬드는 황급히 제프를 제지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했다. 하나같이 직접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요. 그 때의 동작과 말, 감정을 모두 되살리는 게 변신하는 방법을 찾는 지름길이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때 뭔가 말하지 않으셨어요? 아무 말도 안 하셨나요?”
쥬드는 그때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조금만 더 힘을―!’
“……!”
쥬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 필사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았다.
“아! 있죠? 있죠? 분명히 뭐라고 했었죠?”
“크흠! 없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에이! 거짓말! 저 바보 아니에요! 얼굴 보니까 분명히 뭐라고 한 것 같은데요!”
평소엔 둔하기 이를 데 없더니 이럴 땐 점쟁이 뺨치게 예리했다.
쥬드는 결사적으로 부정했다. 그딴 낯부끄러운 대사를 모두의 앞에서 시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크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에이, 거짓말!”
“아닙니다!”
“했잖아요! 빨리 말해 줘요∼!”
쿠구궁―
“어……?”
움직임이 멎었다. 즐거운 대화가 끝났다.
때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쳐 버렸다.
기이잉―
일행은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뒤를 돌아봤다가 돌이 되어 버렸다는 미신 설화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채 숨도 쉬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저건……!”
이윽고 쥬드와 제프도 발견했다.
길목의 끝에서 보이는 작업장.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주황색 기체.
푸쉬이이―
아피스, 누트, 바니, 세베크.
네 사람 모두 가슴을 열고 거신병에서 빠져나왔다.
“저거…… 진짜 맞지?”
“믿어지지가 않는군.”
“저 모양…… 들은 적이 있어. 우리 팀장님께 물어봐야겠는데?”
누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피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평소의 무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긴장한 것처럼 굳어져 있었다.
“맞다.”
“……!”
아피스의 동의에 일행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작업장의 중심에 그것은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박제된 벌레처럼 고요하고 적막하게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쪽만 남은 팔이 쓸쓸하게 흔들렸다. 고개 숙인 투구 아래 살아 있을 때 보여 주던 샛노란 안광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의 천벌처럼 수직으로 내리꽂힌 거대한 창이 그 기체의 가슴을 꿰뚫고 땅 깊숙이까지 박혀 있었으니까.
“…….”
일행은 모두 말을 잃었다.
적장의 머리를 베어 창끝에 꽂아 효시하는 것처럼, 그 모습은 하나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누구든 이렇게 될 수 있다.
주황색 기체가 일격에 당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저 창의 주인을 안다면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아피스가 확인해 준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 사람’의 창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맞다고 인정했으니 이젠 의심의 여지도 없을 터였다.
반월형의 황금색 창날과 피처럼 진한 붉은색의 창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신비로운 문양 위로 창끝에 매달린 붉은색 천이 불꽃처럼 화려하게 나부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외양. 뜨겁고 광폭한 태양의 불꽃처럼 머릿속으로 아찔하게 파고드는 특별한 이름.
“태양왕의 징벌창(The Spear of Punishment)!”
꿀꺽―!
팀원들은 왠지 모를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대륙 전체에 다섯 개 뿐인 S급 고대 병기. 유물에서 직접 발굴된 거신병 전용의 대형 무구.
그 병기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물건의 특별한 주인 또한 직접 이곳에 나타났다는 뜻일 터.
아니나 다를까, 그 뒤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감히 사람이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거신(巨神)이었다.
육중한 붉은색의 장갑(裝甲). 산만큼 거대한 몸집의 움직이는 일인 요새.
멤피스의 유일한 붉은색 거신병, 태양왕이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나타났다?’
쥬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스케치만 되어 있던 그림에 서서히 색을 칠하는 느낌이랄까?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서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머리가 나타나고, 가슴이 나타났다. 팔다리가 색을 되찾고 내딛는 발걸음에 그제야 무게가 실렸다.
쿠우웅―!
새빨간 외양을 보니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상식을 벗어나는 거대함은 사람에게 공포심을 자극했다. 신장이 30미터에 가까우니 머리가 하늘 끝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리는 아름드리 나무 다섯 개를 한데 뭉쳐 놓은 것만큼이나 두꺼웠다.
전체적인 모습은 두껍고 육중한 플레이트 갑옷을 온몸에 갖춰 입은 근위 기사를 보는 듯했다.
이 크기에 비한다면 전에 봤던 주황색 기체는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크기도 육중함도 비할 바 없이 압도적이었다.
투구 위로 솟은 커다란 일각(一角) 밑으로 샛노란 안광이 팀원들을 쏘아봤다.
― 주황색의 팔을 뜯은 자가 누구인가?
“……!”
경악했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산울림처럼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거신병이…… 말을 했어?”
“저게 가능한 거야?!”
“…….”
당황스런 순간에도 쥬드의 날카로운 안목은 팀원들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모두가 놀랐지만 제프와 아피스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어째서?’
저 기능은 아마 태양왕만 가진 특별한 능력일 것이다. 아피스는 전에 본 적이 있다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프는 어째서 놀라지 않는 것일까? 그도 태양왕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 대답하지 않을 텐가?
재촉하듯 강압적인 목소리에 숨이 가빠 올 지경이었다.
태양왕의 위압적인 존재감이 그 목소리에도 한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쥬드는 순간적으로 내가 그랬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대답을 들으려면 얼굴을 내밀어야 할 것이 아니오?”
“……!”
아피스였다.
쥬드를 제지하고 대담하게 앞으로 나선 것은 아피스였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그런 그를 돌아봤다. 상대는 태양왕. 멤피스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군부의 대장군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건방진 언사라니 상상치도 못했던 돌발 행동이 아닌가?
― 재미 있군. 역전의 용사라는 건가?
“그런 거창한 게 아니지. 이건 그저 사람끼리의 당연한 예의라 생각하오만.”
아피스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선 채 태양왕의 샛노란 안광을 정면으로 받아넘겼다.
‘대단하다!’
쥬드는 감탄했다. 한 달 넘게 알아 온 아피스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싶었다.
예전에 제프가 분명 팀원 모두가 용병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들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장군 야누스조차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적수를 만난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피스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모조리 바꿔야 할 만한 대사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