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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5화)
chapter.6 붉은 불꽃의 태양왕(2)
푸쉬이이―
결국 먼저 움직인 쪽은 태양왕이었다.
“오오!”
멤피스 유일의 붉은색 거신병 태양왕과 군부의 최고 실세 대장군.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몸이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로웠다.
특히 꽃봉오리가 열리듯 가슴이 네 갈래로 활짝 펴지는 모습은 징벌창을 봤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다그닥― 다그닥―
“어……?”
그때 검은색 군마가 이끄는 커다란 마차가 태양왕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키만큼 큰 바퀴와 커다란 본체, 그 위에 꽂혀 있는 멤피스의 국기까지.
대장군은 자신의 마차가 밑에 도착하는 순간 20미터가 넘는 태양왕의 몸 위에서 바닥을 향해 훌쩍 뛰어 내렸다.
파라락―
“우앗?!”
누트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 나왔다. 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렸는데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가 전부였다. 바닥에 내려설 때 쿵 하는 착지음조차 나지 않았다.
감탄과 부러움, 질시가 뒤섞인 시선으로 대장군을 바라보는 누트였다. 대장군의 육체 능력은 그가 선망하는 수준에 올라서 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두 명의 부관이 그림자처럼 야누스의 뒤를 따랐다.
다섯 명의 팀원들도 황급히 기체에서 내려와 야누스를 맞이했다. 가장 앞에 선 아피스가 다가오는 대장군을 정면에서 맞았다.
“…….”
“…….”
두 사람의 기세는 굉장했다.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의 주위로 강력한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뜨겁고 차가우면서 또한 폭풍 같은.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강렬한 기운.
“……!”
쥬드는 그 정체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스터의 마나……?!’
그는 평생 놀랄 것을 오늘 다 놀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라 마스터(Aura Master). 또 다른 말로 기공술사.
거신병을 제외한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전쟁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간은 보통 두 종류로 분류되었다.
고대 마법을 사용하는 유적 신관.
중장갑(Powered Armor)을 입은 전사.
하지만 그 이외에도 극소수의 인간에게 전해 내려 온다는 마나 로드를 익힌 오라 마스터들이 존재했다.
마나 로드는 말 그대로 마력의 길을 뜻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체내에 만들어 낸 마나 로드는 끝없이 마력을 유동시켜서 인간을 신의 육체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물론 그것은 전설일 뿐, 실제로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오라 마스터들이 전투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은 분명했다.
검술을 사용하든, 초능력과 비슷한 염(念)파를 사용하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라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오라는 마법을 파훼하고, 중장갑을 가르며, 거신병에게조차 상처를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점이었다.
쥬드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피스를 응시했다.
‘대체 어떻게…….’
파직― 파직―
둘의 기색을 보니 당장 육탄전을 벌이는 것도 사양하지 않을 듯했다 .
이미 뒤에 있던 두 명의 부관은 자신들의 칼을 반쯤 뽑아 들고 있었다.
누트와 바니도 살짝 긴장한 얼굴이고, 세베크는 이미 싸우기로 결정된 것처럼 결연한 얼굴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사아아―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들의 기파가 한순간에 줄어들었다. 산들바람이 부는 평범한 공기로 돌아왔다.
야누스는 재미있다는 듯 싸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살렘 신국과의 전투에서 만났었지 아마? 그때는 적이었던 것 같은데?”
냉정하며 위압적인 것이 그 주인을 꼭 닮은 목소리였다.
아피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이스트 웨이 바로 앞에서 벌어진 전투였지.”
“신기하군. 그때도 소문은 들었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우직한 사내라고 말이야. 멤피스의 군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 소리를 했었어.”
“과찬과 허명일 뿐이오.”
“항상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보게 되는군. 이곳에 시찰은 몇 번 왔었는데…… 그때마다 자리를 피해서 아쉬움이 컸었어.”
“…….”
주고받는 대화 사이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한가득 숨어 있었다.
야누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징벌창에 꽂혀 있는 주황색 기체를 쳐다봤다.
“이번에 거창하게 해냈더군.”
“우리 잘못이 아니오.”
“그래, 아니지. 하지만 분수에 걸맞지 않은 일을 하면 그것 또한 잘못이다.”
꿈틀―
아피스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무슨 뜻이오?”
“내가 처리하지 않았다면 주황색은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
“이 주황색 기체가 본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가? 분명 멤피스에서 미지의 기술로 녹색 거신병을 강화시켰다. 이 유적에서 뭔가가 발굴된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전력을 투입해 그곳을 빼앗아야 했다.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거라고 생각 안 되나?”
“…….”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다. 지금 살렘과의 전투만으로도 바쁜데, 북쪽 국경에서도 크로노스와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왕국의 위기라 불러야 마땅하겠지. 자네들은 차라리 도망쳤어야 했다. 어설픈 공명심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바에는 도망치는 것이 나았어.”
“공명……심……?”
“그렇다. 공명심.”
분노가 일행을 휩쓸었다.
칭찬이나 공적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뻔했다면서 역적 취급을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쿵!
아피스가 발을 굴렀다. 그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누스!”
채챙―
바람처럼 달려 나온 부관들이 아피스의 목에 검을 겨눴다.
“죽고 싶은가?”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용병.”
정제된 살기, 군더더기 없는 몸동작.
그 부관들의 실력 또한 일류였다.
하지만 아피스는 죽일 테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부리부리한 눈에 살기가 가득 담겼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애초에 경계를 더 잘했어야 할 일 아닌가! 위기의 순간에 도망이나 치는 멍청이들을 호위로 보내 놓고, 살겠다고 발버둥 친 우리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인가? 우습군. 멤피스 최고 실세라는 자의 그릇이 고작 그거라니. 그 자리까지 그렇게 올라갔나? 자기 잘못을 약한 자에게 뒤집어씌우면서?”
“…….”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그 꼴을 보아하니 이 나라도 오래가긴 그른 모양이군!”
당당하고 직설적인 말투의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일침에 일행 모두가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하나 선을 넘은 언행이었다.
대장군을 모욕함은 물론 나라의 미래에 악담을 내뱉았다. 부관들의 손에 들린 장검형 커틀라스가 휘둘러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푸욱―!
“티, 팀장!”
팀원들은 대경해서 앞으로 튀어 나왔다.
당연히 피하거나 막아 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피스는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원한다면 목이라도 내주겠다는 듯. 그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똑바로 야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찌릿―
아피스를 부축하려던 팀원들은 이를 갈며 뒤로 물러섰다.
아피스의 양쪽 어깨에 칼을 박아 넣은 부관들이 더 다가오면 칼을 비틀겠다는 듯 위협적인 눈빛으로 팀원들을 바라봤다.
‘대체……!’
쥬드는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성적인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피스의 뜨거운 열의만큼은 그에게도 감흥을 줬다.
꼿꼿하게 편 허리와 넓은 등이 아프도록 눈에 박혀 들었다.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얼음처럼 싸늘하던 대장군조차 그런 그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지?”
야누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깟 일로 팀원들을 다 죽일 수는 없지 않소.”
아피스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그래서 공격을 그냥 받았다?”
“죽이지 않을 것은 알았으니까.”
“양팔 정도는 받아 갈 수 있었다.”
“얼마든지. 팀원들만 살려 준다면.”
팀원들은 몰랐다. 그 대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어 있는지.
그렇기에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팀장! 그냥 다 죽여 버립시다.”
특히 가장 분노한 것은 세베크였다.
“유적은 이미 열렸잖아요?”
“그래, 팀장. 우린 어차피 계약 용병이야. 떠나면 그뿐이라고.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어.”
바니와 누트 남매의 눈에서도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쥬드는 옆에 서 있는 제프를 힐끗 바라봤다. 역시 제프는 무거운 표정으로 나서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공기가 감돌았다.
야누스와 부관 둘, 아피스와 팀원 셋.
거신병에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선 어느 쪽이 이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 제프가 조용히 쥬드에게 다가왔다.
“펠릭시아 씨.”
“예?”
“출세를 원한다고 하셨죠? 아마 오늘 기회가 올 거예요.”
“……!”
제프의 눈은 진심이었다. 가라앉은 안색 너머로 섭섭함까지 살짝 엿보였다.
‘이건 또 무슨……?’
현자 모드의 제프다. 평소의 활발한 모습이 아니라 진지하고 지혜로운 눈빛 아래 세상을 조소하는 듯한 씁쓸한 천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당신은 그쪽이 어울려요. 선택권이 있을 때 확실하게 방향을 정하도록 하세요. 군왕인 사자좌 아래 태어난 사람은 누굴 밟고 올라설 줄도 알아야 해요.”
“제프, 그게 대체…….”
“이크! 이 이상은 안 되겠네요. 대장군이 노려봐요.”
진지해졌다 싶었더니 어느새 다시 장난스런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화들짝 놀라더니 쪼르르 누트와 바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대장군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피스를 넘어 팀원들을 넘어 야누스의 시선은 정확하게 쥬드를 향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다?’
쥬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폐부 깊숙한 곳부터 싸한 냉기가 올라왔다.
“그렇지. 너희는 용병들이었지.”
모두에게 말하는 담담한 말투였다. 하지만 눈이 쥬드를 쫓고 있으니 그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돈을 좇아다니는 용병들에게 애국심이란 술 한 잔 값도 안 되는 값싼 것이겠지.”
“…….”
“부관, 칼을 거둬라.”
촤악―
“팀장!”
커틀라스는 칼등에 뾰족한 톱니가 박혀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 것을 거칠게 잡아 뽑으니 강건한 아피스조차 버텨 내지 못하고 일순간 휘청 몸이 흔들렸다. 동맥을 다쳤는지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큭!”
비틀거리는 그를 팀원들이 황급히 부축하고 천을 찢어 상처를 지혈했다.
“호루스의 기사, 쥬드 펠릭시아.”
“……!”
바로 그때, 난데없이 쥬드의 이름이 불렸다. 휙 돌아간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아프게 박혀 들었다.
“하나 자네는 다르지. 멤피스 제일이라는 호루스의 기사이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자네에게 들어야겠군. 따라오게.”
그걸로 끝이라는 듯 몸을 돌려 마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쥬드의 얼굴이 혼란스러움에 일그러졌다. 당연히 따라가야 했다. 출세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 아직 그는 호루스의 기사이자 멤피스의 군인이었다. 군부의 수장인 대장군이 따라오라는데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
하지만 쥬드는 갈등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피스가 한 걸음 옆에 서 있었다. 의심, 분노,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시선 또한 한 걸음 옆에 있었다.
쥬드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변방으로 배치된 지 한 달.
한 달이라는 기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팀원들과는 쉽게 동화되었고, 그만큼 마음을 열고 친해져 버렸다. 아마 호루스 기사들이 지금의 그를 보면 상상도 못 했다며 눈을 의심할 것이다.
이전의 그는 무리에서 떨어진 들개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경계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던 존재였으니까. 이렇게 한 집단에서 한 가족처럼 섞여 있을 수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바로 출신이었다.
계급이 어쩌니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이뤄야 할 목표와 기사 출신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들에 관한 문제였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볼 걸 그랬어.’
꽉 움켜쥔 주먹 사이로 핏방울이 맺혔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손을 등 뒤로 돌렸다.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목표를 제대로 들어 뒀으면 좋았을 것을.
마음이 안 좋긴 하지만 듣지도 못한 목표에 동조해서 그의 꿈을 포기할 순 없게 되어 버렸다.
“미안합니다.”
작은 사과. 뒤로 미뤄져 버린 후회.
쥬드는 야누스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남겨진 팀원들의 시선이 그의 등을 좇았다.
해질 무렵,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