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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6화)
chapter.6 붉은 불꽃의 태양왕(3)


나름대로 대담한 편인 쥬드지만 적막한 마차 안에서 하늘 같은 대장군과 단둘이 있게 되는 것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부관 두 사람은 입구 앞에 시립해 있었다. 마차 안은 넓었지만 자리는 서로가 마주 보게 되어 있는 두 자리뿐이었다.
한동안 쭈뼛거리며 서 있자 야누스가 자리를 권했다.
“앉게.”
“예.”
자리에 앉자마자 야누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자네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아나?”
“……?”
사건에 대한 질문도 아니고 유적에 대한 질문도 아니었다.
첫 질문으로 날아온 것은 난데없이 그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제 거신병이 녹색……이기 때문 아닙니까?”
“틀리다. 메나스가 아무 얘기도 안 해 주던가?”
“……!”
반사적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질문에 메나스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쥬드는 가슴속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운명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녹색 거신병을 가지면…… 모두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까?”
최대한 감추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동요하는군. 몰랐나?”
“……몰랐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는데.”
야누스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쥬드를 가만히 응시했다.
냉랭한 시선이 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다는 전설 속의 반인반수처럼 쥬드의 속을 낱낱이 살핀 뒤에야 그는 말을 이었다.
“멤피스 전체에 녹색 거신병이 몇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
“지금까지 몇 명이나 녹색 거신병을 소환해 냈다고 생각하지?”
“……!”
질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었다.
쥬드는 곧바로 인지 뒤에 숨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렇다.
그는 녹색 거신병이 몇이나 있는지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 모를 테지. 정보를 제한했으니까.”
“예?”
“아마 건너 건너 소문으로 들은 것이 전부일 것이다. 작고 약한 녹색 거신병이 나오면 무조건 변경의 일꾼으로 보내진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이야기만 들으면 꽤나 자주 일어나는 일 같지.”
“…….”
“하나 사실은 다르다. 이 나라에 있는 녹색 거신병은 이곳에 있는 다섯이 전부다.”
“……!”
번개 같은 충격이 머릿속을 꿰뚫었다.
하얗게 새어 버린 머릿속에서 야누스의 마지막 말만 계속 맴돌았다.

‘이 나라에 있는 녹색 거신병은 이곳에 있는 다섯이 전부다.’

쥬드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거늘, 어째서 그걸 몰랐단 말인가.
“놀랐나?”
“……예.”
“사실 저 넷은 용병들이니 진짜 멤피스가 보유한 녹색 거신병은 자네 하나뿐이라는 것이 맞다.”
“그렇……습니까?”
멍하니 대답하는 쥬드를 보며 야누스의 눈이 찌푸려졌다.
“모르는 모양이군.”
“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현재 멤피스가 보유한 거신병은 노란색 기체가 백여든아홉 대. 주황색 기체가 아흔두 대. 그리고 붉은색 기체가 내가 가진 태양왕 하나다. 즉 녹색 거신병은 태양왕만큼이나 잘 나오지 않는 기체란 말이다.”
“……!”
쥬드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여러 가지 진실들이 파도처럼 그를 덮치고 있었다.
“유적 탐사는 위험이 많지. 난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되도록 유적 탐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네를 이곳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어.”
“그렇다면……?”
“그래, 메나스가 직접 부탁했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말도 했지. 자네가 유적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쥬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자신이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했다니? 그리고 대장군은 그걸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잠시만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제가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기밀이다.”
“예?”
“자네는 알 수 없는 기밀이다.”
“……?!”
“나야말로 이해할 수가 없군. 메나스는 어째서 자네에게 녹색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은 거지?”
야누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실을 꿰뚫는 눈으로 쥬드의 마음속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반응. 유적에는 들어가 보지 않은 거로군. 맞나?”
“예, 크로노스 쪽의 침입 때문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쥬드는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일단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주황색 기체는? 누가 그렇게 만든 거지?”
“제가…… 했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예.”
쥬드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전의 그라면 즐겁게 대답했을 질문이었다. 그의 꿈과 야망에 걸맞은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최적의 질문이 아닌가.
녹색 거신병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다시 수도로 올라갈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그를 우습게 보고 쓰레기처럼 내던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금의환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답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것처럼 느낌이 좋질 않았다. 몸속의 본능이 위험의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다.
“야망이 있다고 들었다. 위로 올라가려는 욕구가 강하다더군.”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달간 이곳의 용병들과는 잘 지냈나? 친해졌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묻겠다. 자네의 야망과 이곳의 용병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거지?”
“……!”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선택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목에 뭔가가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야망……입니다.”
“고민하는군.”
“…….”
“자넨 아직 멀었어.”
쥬드를 향한 목소리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들개가 사람의 품에 안겨 버렸다. 따스함을 알아 버린 개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예……?”
“똑바로, 진실만을 대답하라!”
야누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위압적인 시선이 쥬드를 압도했다.
“크로노스 쪽 노란색 기체 두 기는 이미 확인했다. 조직적인 습격에 의한 급소 파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머리나 가슴을 파괴하는 전략적인 전투였겠지. 그 정도는 밖에 있는 용병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놀랍다. 야누스는 기체에 남은 흔적만으로도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나 주황색은 다르다. 레벨이 달라. 녹색 기체의 성능으론 다섯이 아니라 열이 있어도 상처 하나 낼 수 없다.”
“…….”
“그런데 주황색 기체를 녹색의 기체 혼자서 압도적으로 쓰러뜨렸다고? 그것도 한 팔을 뜯고 가슴 장갑을 뜯어내어 공포심에 도망가게 만들 정도로?”
사아아―
‘큭!’
야누스가 뿜어내는 것은 이제 완연한 살기였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렬한 기세가 온몸을 옥죄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사실을 말하라. 오늘 있었던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용서치 않겠다. 너는 멤피스의 기사다. 네가 아는 모든 것과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멤피스의 것이다!”
“큭…… 저는…… 사실을…….”
“유적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없다? 그런데 주황색 기체를 혼자서 이겼다?”
“그렇……습니다. 그사이에 한 가지……. 한 가지가…….”
쾅!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거센 호통이 심혼을 뒤흔들었다.
쥬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것이 군기(軍氣). 그리고 군왕이 가지고 있다는 패기인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었다. 숨을 쉬지 못한 쥬드의 몸이 점점 땅으로 꺼져 들었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멀어질 것처럼 정신이 아찔했다.
채챙― 챙―
“……!”
그때 쥬드를 구원해 주는 소리가 있었다. 몸을 옥죄던 살기가 풍선이 터지듯이 확 풀려 버렸다. 격렬하게 부딪치는 병장기 소리와 부관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채챙―
“네놈들!”
“큭……! 감히!”
하지만 오래지 않아 마차에 쾅 하고 뭔가가 부딪치더니 바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불길한 공기가 감돌았다.
야누스는 마차 벽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소리가 나는 쪽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철컥―
“쥬드!”
“여어, 다시 보는구먼.”
문이 열리며 나타난 것은 바니와 누트 남매였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평소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 세상에! 쥬드 얼굴 좀 봐. 하얗게 질렸어.”
“아아, 그럴 줄 알았지. 마차 밖에서도 소름이 끼치던데, 정면에서 받으면 어땠겠어?”
두 사람은 너스레를 떨며 쥬드에게 손짓했다.
“하긴, 그래. 쥬드, 이리 와. 내가 호∼ 해 줄게.”
“……바니.”
“아이 참. 이리 오라니까, 어서.”
살가운 말투와 달리 차갑게 식은 바니와 누트의 눈은 야누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혼란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살기를 뿜어내는 야누스도 그렇고 갑자기 부관들을 쓰러뜨리고 쳐들어온 바니와 누트도 그렇다.
쥬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야누스는 쥬드가 바니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아무 말없이 자리에 앉아 쳐다보고만 있었다.
파바밧―
“……!”
바니와 누트는 쥬드의 신병이 확보되자마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쥬드는 눈을 크게 떴다. 피범벅이 된 마차의 외벽이 보였다. 그리고 일류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부관 두 명은 둘 다 목과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로 마차의 외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죽은…… 겁니까?”
“아직은 살아 있어.”
누트의 대답은 태연했다.
그제야 쥬드는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바니와 누트는 온통 피범벅이지만 그들의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이 남매는 일류의 실력을 가진 부관 둘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제압한 것이다.
‘난…… 아무것도 몰랐다.’
자괴감이 들었다.
메나스 단장과 녹색 거신병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팀원들의 진짜 능력과 그에 걸친 비밀 이야기들까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허접한 능력으로 무슨 출세를 바랐는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쥬드! 정신 차려!”
“그래,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아직 갈 길이 멀어!”
바니와 누트가 이끄는 대로 달려 나가자 유적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팀원들의 거신병이 보였다.
세베크의 손 위에 서 있던 제프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펠릭시아 씨―! 미안해요! 제 계산이 틀렸어요! 선택권은 이미 없었더라고요!”
“……뭐?”
“우린 계속 팀이에요! 그러니까. 잘해 봐요―!”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제프에게선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바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제프가 부탁했어. 만약 마차 안에서 한 번이라도 살기가 터져 나오면 곧바로 쥬드를 빼내서 탈출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다고요?”
“응. 야누스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하더라고. 뭐,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배시시 웃는 바니에게서는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쥬드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렇다. 이 느낌이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도 한없이 유쾌했다. 세상이 모두 변해도 이 사람들만은 언제나 즐거울 것 같다는 예감.
휙―!
“자, 그럼…….”
“좀 있다가 봐. 쥬드∼”
누트와 바니는 곧장 자신들의 거신병으로 올라탔다.
쥬드는 제프를 바라봤다.
“펠릭시아 씨도 거신병에 올라타세요!”
“뭐? 아니, 잠깐…….”
“대장군은 녹색 거신병에 대한 것들을 모두 없애려 하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요. 이미 저 사람은 펠릭시아 씨도 없애려고 하고 있다고요!”
“나도 없앤……다고요? 확실한 겁니까?”
“예, 확실해요!”
“……!”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그리 놀랍지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을 텐데 지금은 마음 한편에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