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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18화)
chapter.7 태양왕의 징벌, 죽은 자들의 신(2)
“큽! 콜록콜록!”
눈이랑 목이 따끔따끔했다.
쥬드의 허리가 굽혀졌다.
“펠릭시아 씨이이―!”
“……!”
놀랍게도 그 짧은 새에 제프는 꽤 멀리까지 도망가 있었다. 짙은 흙먼지 사이로 장난스럽게 흔드는 손바닥이 보였다.
“저희 목숨은 펠릭시아 씨한테 달려 있어요―!”
“뭐……? 콜록! 뭐라고요?”
“제 계획에는 펠릭시아 씨가 원격 감응을 하고 변신도 멋지게 성공해서 활약하는 걸로 되어 있어요! 태양왕을 혼자서 일 분 정도 막아 주셔야 돼요―!”
쥬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태양왕을 일 분? 그것도 혼자서?’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안 그러면 우린 다 죽어요오―”
“제프!”
“마차는 저쪽! 기체는 저쪽에 있어요!”
“이것 봐요!”
손가락으로 양쪽 방향을 가르쳐 주더니 그걸로 끝이라는 듯 후다닥 도망쳤다.
“아, 참! 한 가지 더!”
“콜록― 콜…… 뭐라고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결국엔 당신이 이길 거예요.”
“……!”
마지막에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해 봤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제프는 정말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주 제멋대로다.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으려는데 싸움 현장에서 날아온 파편들이 또다시 쥬드를 덮쳤다.
후두두둑―
“콜록! 콜록! 헛?!”
기침을 하느라 허리를 굽히는 순간 사람 몸통만 한 돌덩이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땅에 쾅 틀어박혔다.
쥬드의 표정이 굳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제프가 떠나고 나니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느껴졌다.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었다. 그들을 잡으려는 거인과 필사적으로 피해 내면서도 도망치지는 않는 팀원들.
어느새 아피스는 바니와 함께 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세베크는 옆구리뿐만 아니라 팔 한쪽도 날아가 있었다. 누트는 특유의 빠른 발을 살려 약 올리듯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금방이라도 잡힐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해결책은 역시…… 나뿐인가.’
쥬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전략가들은 전장에서 서로의 의중을 교환한다고 했던가? 지금의 전황을 보니 그도 알 수 있었다.
제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저희 목숨은 펠릭시아 씨한테 달려 있어요오―!
“쳇! 하여간 제멋대로…….”
쥬드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최대한 편한 호흡을 하며, 최대한 편안하게 머릿속의 긴장을 풀었다.
정신을 집중했다. 몸의 중심선에 박혀 있는 세 개의 요점을 느꼈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수축하고 팽창하길 반복하는 동그란 주머니들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나 로드 연구학에선 그것들을 교차점, 혹은 링크(Link)라고 불렀다.
비강의 뒤쪽, 뇌의 중심에 위치한 업 링크(Up Link).
심장의 바로 옆, 명치와 척추 사이에 붙어 있는 미들 링크(Middle Link).
배꼽과 비부 사이, 인체의 무게중심에 위치한 다운 링크(Down Link).
그 세 가지 요점들을 잇는 길은 인체에 있는 모든 혈관의 개수만큼이나 무궁무진하고 또한 그만큼 무한히 위험했다. 길을 모르는 자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죽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쥬드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닫혀 있던 것을…… 연다.’
긴장한 그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서 닫혀 있던 업 링크의 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 일부러 닫아 놓았던 문.
위기의 순간 그 봉인을 깨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엿보았다!
파드득!
“큽!”
쥬드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눈앞이 번쩍거리면서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10여 년간 업 링크에 가둬져 있던 힘은 엄청났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혈관들이 펑펑 소리를 냈다.
뇌가 곤죽이 되는 느낌이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지…… 않아…….”
이를 악물고 버텨 내는 쥬드의 모습은 흉신악살처럼 기괴했다.
얼굴에 뚫린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시퍼런 핏줄이 피부 위로 툭툭 튀어 올랐다.
뇌의 과부하였다. 정제되지 않은 강렬한 힘은 모세혈관을 터뜨리고 뇌를 박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
쥬드는 머릿속에서 미친놈처럼 널뛰는 힘을 최대한 아래쪽으로 비틀었다.
업 링크에 모여 있는 힘은 번개와 성질이 비슷했다. 가만히 놔두면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지만 피뢰침을 꽂는 것처럼 올바른 방향만 잡아 준다면 오로지 그 방향을 향해 온힘을 다해 질주했다.
‘아래로…… 모으고…… 모은다……. 모든 힘을 집중해서…….’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힘을 꾹꾹 눌러서 잡아당겼다.
아래쪽의 미들 링크를 향한다?
아니, 그 반대였다.
쥬드가 노리는 곳은 단 하나. 머리 위!
‘터져라!’
꽈앙!
“……!”
등이 활처럼 굽어졌다. 반쯤 떠진 눈에서 흰자위가 드러났다.
인체엔 천개 영역이라는 곳이 있었다.
머리가 숨을 쉬는 곳. 신(神)이 깃드는 통로.
태어났을 때는 열려 있지만 몸이 자랄수록 점점 닫혀서 4살가량이 되었을 때는 완전히 막혀 버리는 곳이었다.
주술사들은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인간이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오라 마스터들은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어린 시절 순수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쥬드는 지금 그 천개 영역을 다시 열고 있었다.
7살까지도 열려 있던 곳이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일부러 닫아 뒀던 곳이니 이제 와서 못 열 리 없었다.
번개의 힘이 두개골의 중심을 꿰뚫었다. 가로막는 모든 방해물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꽉 닫혀 있던 4개의 머리판을 사방으로 밀어 버렸다.
구멍이 뚫렸다.
문이 열렸다.
하늘로 날아오른 정신이 위대한 대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화아악―!
마치 바람이 일어난 것처럼 자욱했던 흙먼지들이 사방으로 밀려 나갔다.
쥬드는 달라져 있었다.
보석처럼 투명한 눈동자, 신기(神氣)가 깃든 눈으로 현실 뒤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정갈하게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이 느낌…….’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감각을 되새겼다.
그리고 운명의 붉은 실로 매여 있는 고대의 영혼을 불렀다.
공간을 넘고 시간을 건너.
정육면체의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거신병을 불러 보았다.
“오너라.”
쿠우우웅―
그러자 눈앞에 있었다.
작지만 강력한. 생명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녹색의 거신병이었다.
한쪽밖에 쓸 수 없는 다리와 양팔이 날아가 버린 처참한 모습으로도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기이잉―
철컥― 철컥―
쥬드는 그 안에 탑승했다. 큐브에 손을 얹고 보석같이 투명한 눈동자로 바닥에 세워져 있는 마차를 응시했다.
“지배하라.”
기이이잉―!
쥬드의 거신병으로부터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차가 분해되었다. 생명을 얻어 꿈틀거리는 나무 조각들이 쥬드의 몸에 달라붙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었다.
찰칵― 찰칵―
드드드드―
양팔이 되고, 다리가 되고, 든든한 갑옷이 되었다.
어느새 거대해진 육체.
샛노란 안광으로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쿠우웅!
그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음인가? 태양왕 또한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새롭게 나타난 적을 바라봤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태양왕의 징벌창이 그 끝을 쥬드에게로 향했다.
― 그것이었군. 주황색을 찢어발긴 힘.
천신의 목소리 같은 우렁우렁한 소리였다.
하나 더욱 놀라운 것은 쥬드의 화답이었다.
― 그렇습니다. 이 힘입니다.
― ……놀랍군. 말하는 법은 언제 얻은 것이지?
― 지금 얻었습니다. 대장군님 덕분이라고 말해야겠군요.
쥬드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딱딱하고 오만하지 않았다. 마치 세속을 초월한 듯 허무하고 무감각한 목소리였다.
― 안타까운 재능이군. 이 자리에서 못 본 걸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 어째서 저희를 없애려 하시는 겁니까?
―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운명이라 할 수밖에.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것을 원망하라.
― 대의……라는 겁니까?
― 그보다 더욱 큰 것. 시대와 역사를 아우르는 인류에의 의지다.
쥬드는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릇이 너무 크기 때문인가? 신기(神氣)를 얻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음에도 대장군의 생각은 도저히 측량이 불가능했다.
기이잉―
자세를 낮추고 도약을 준비했다.
대화는 실패였다. 대장군의 적의 또한 변함이 없었다.
― 정말로…… 보내 주실 수 없겠습니까?
― 그럴 수 없다.
― 저는 이제 군부의 적입니까?
―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 ……알겠습니다.
최종 통보. 그것은 전투의 시작과 같았다.
파아앙―!
쥬드의 발밑이 터져 나갔다. 뿌연 흙먼지가 주변을 뒤덮었다.
태양왕은 곧바로 창을 휘둘러 흙먼지를 날려 버렸지만 이미 쥬드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뒤였다.
일순간 모두가 당황했다.
그사이 태양왕의 시선만이 차분하게 허공을 향했다.
경이로운 점프력으로 야생동물처럼 뛰어오른 거신병이 그곳에 있었다.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처럼 날카롭고 치명적인 공격이 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까아앙!
하지만 상대는 태양왕.
빈틈없이 날아간 징벌창이 견고하게 벽을 쌓아 올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창대를 비틀고 허리를 돌리더니 마치 돌을 날리는 투석기처럼 창끝에 매달린 쥬드를 가차 없이 날려 버렸다.
콰과과광―!
두꺼운 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땅거죽이 뒤집어지고 단단한 바위들이 깨져 나갔다.
보통의 거신병이라면 일어나지 못할 타격.
하지만 쥬드는 일어났다. 탄력 있는 몸놀림으로 구르듯이 몸을 일으키더니 날아간 것과 비슷한 속도로 곧장 다시 달려들었다.
어느새 양손은 녹색의 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섬뜩한 살기가 주변을 짓눌렀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적의 멸살(滅殺)!
― 좋다! 덤벼라!
맹렬한 쥬드의 기세에는 냉정한 야누스조차 호승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