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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20화)
chapter.7 태양왕의 징벌, 죽은 자들의 신(4)
거대한 나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그 나무가 하늘을 떠받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위대해 보이는 나무였다.
모든 것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 반짝반짝 빛나는 생명들은 모두 이 어머니 나무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 속에 ‘그’가 있었다.
가장 밝은 빛 아래 숨어 있는 어둠처럼.
성스러운 어머니 나무의 뿌리 사이로 섬뜩한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았다. 두꺼운 뿌리가 온몸을 칭칭 감고 있지만 꿈틀꿈틀 약동하는 무한한 힘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었다.
‘느껴지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미지의 어둠을 상상하며 베갯잇을 적시던 바로 그 느낌.
죽음, 공포, 어둠.
그 모든 것들의 화신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꺼져라.
우르릉!
굉음과 함께 세계가 무너졌다.
― 나는 사자(死者)의 왕. 죽은 자들의 신(神)이다.
팔랑―
어둠으로 물든 세계에 녹색의 깃털 두 개만이 남았다.
팟!
“커허…….”
오랜 시간 물속에 빠졌다가 올라온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그 환상은 뭐였을까?
고민하기도 전에 기이한 굉음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쩌억!
“……!”
벌써 여러 번 들은 소리였다. 뭔가가 쪼개지는 듯한 파열음도, 그 뒤에 머리 위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녹색의 파편들도 이젠 익숙할 지경이었다.
쥬드는 뭔가가 깨졌다는 것을 느꼈다.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그를 둘러싼 세계가 뭔가 변했다.
쒜에에엑―!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미처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붉은색 거신의 천벌이었다.
태산을 가르고 운명을 잘라 내는. 위대한 태양왕의 황금색 창날이 그곳에 있었다.
콰직!
“아…….”
첫 소리는 작았다.
강철처럼 단단한 나무 갑옷도, 창연히 빛나던 녹색의 오라도 버텨 내지 못했다. 조각조각 갈라지며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어깨에서 시작된 참격이 폭풍처럼 쥬드의 몸을 가로질렀다.
콰드드드득―!
쿠우웅!
가슴을 길게 가르는 상처.
땅을 흔드는 굉음.
그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chapter.8 고대의 유적, 살아 있는 열쇠(1)
“커헉!”
쥬드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갑옷이 탄력 있는 나무 재질이라 살아남았다. 단단한 갑옷을 가진 일반 거신병이었다면 지금의 일격으로 조종사가 흔적도 없이 뭉개졌을 터.
그 생각을 하자 등골이 오싹했다.
끼릭― 끼이익―!
쿠웅!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쥬드의 거신병이 균형을 잃고 휘청 다시 쓰러졌다.
‘큰일이다! 손상이 너무 심해!’
태양왕은 미동도 않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을 내려다보듯 여유롭게.
“제길!”
그 순간 패배를 느꼈다.
넘어설 수 없는 벽.
아직은 아득한 실력의 차이를 느꼈다.
― 기뻐해도 좋다. 근래 들어 싸운 상대 중엔 네가 가장 강했다.
― …….
― 곧 네 동료들도 따라갈 것이다.
기이잉―
징벌창의 창날이 다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 비스듬히 비추는 태양빛을 받아 화려한 황금색을 뽐냈다.
“여기까지인가…….”
쥬드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몸에서 힘을 뺐다.
전력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피곤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펠―릭―시―아―씨이이―!”
움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목소리였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끼릭―
바퀴 소리도 들렸다.
겁도 없이 대장군의 검은색 마차를 끌고 오면서 해맑게 손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쥬드가 알기로 한 명밖에 없었다.
지저분한 검은색 머리. 어린아이 같은 미소 위로 현자의 눈을 지닌 기괴한 인물. 제프였다.
“큐―브―를― 뽑―으―세―요오―!”
“……!”
어쩌면 생뚱맞은 한마디지만 쥬드는 단번에 모든 의미를 알아들었다.
즉시 마나 공급을 중단했다. 양손으로는 큐브를 잡고 아래에서 뽑아냈다.
딸칵!
우우우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진동과 함께 덜컹덜컹 몸이 흔들렸다.
철컥! 철컥! 드드드드―
한 몸이 되었던 나무 부품들이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골재 외벽 바퀴가 차례대로 합쳐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이런!
처음으로 들어 보는 대장군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징벌창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쥬드는 황급히 큐브를 다시 연결했다.
원래대로 작아진 몸. 한껏 가벼워진 육체를 움직여 제프가 타고 온 마차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직―
애꿎은 ‘첫’ 마차만 박살이 났다.
쥬드는 엉망으로 땅을 구르면서도 시선만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프가 후다닥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검은색 마차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쥬드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투명해졌다.
화아아악―
철컥― 철컥― 우우웅!
변신은 순식간이었다. 녹색의 빛에 휩싸인 마차가 분해되고 한 몸으로 합쳐졌다.
대장군의 마차는 보통 마차보다 훨씬 더 컸다.
그 때문인지 쥬드는 변신 후의 기체가 아까보다 좀 더 커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끝까지 해 볼 셈인가!
노기 어린 야누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곧바로 쿵쿵 지축을 울리며 달려와 징벌창을 휘둘렀다.
쥬드는 몸을 굴려 피해 냈다.
그리고 잡아 달라며 손을 흔드는 제프를 재빨리 손으로 잡아챘다.
“도망쳐요오―!”
“…….”
“이런 이런 1분은 한참 지났잖아요! 그럼 도망쳤어야죠―!”
“아……!”
빙글빙글 웃는 제프를 보니 왜 그 생각을 못했나 싶었다.
쥬드답지 않은 일이었다. 승부에 너무 몰두해 원래의 목표를 잊고 있었다.
“유적으로 가요!”
― 도망치는 게 아닙니까?
“예! 유적으로요!”
제프의 목소리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누가 뭐래도 제프는 이 팀의 책사였다.
쥬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꽉 잡으십시오.
“예에―!”
후우우웅―!
휘두르는 창날을 피해 쥬드는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유적 앞 작업장까지 나 있는 일직선의 길.
쥬드는 미끄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의 다리에 매달린 바퀴들이 미친 듯이 회전했다.
카가가강!
콰드드드드―
“우야하아아―!”
제프의 주책스런 환호성을 들으며 쥬드의 거신병이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졌다.
뒤에서 바짝 쫓아오던 태양왕이 점점 뒤로 멀어졌다.
하지만 쥬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바퀴에 더욱 힘을 더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가속도가 붙은 거신병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기만 했다.
“방심하지 마세요! 태양왕에겐 ‘그게’ 있어요!”
― 알고 있습니다!
콰드드드―
끼이이이익―
몸을 뒤틀며 방향을 꺾자 바닥에 긴 바퀴 자국이 남겨졌다.
재빨리 바퀴를 멈추고 일어나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앞부터는 나무들이 즐비한 좁은 오솔길이었다. 바퀴로는 지나갈 수 없었다.
우우웅―
“……!”
그때 나타났다.
무대의 장막을 걷은 것처럼 붉은색의 거대한 육체가 갑자기 공중에서 튀어 나왔다.
“그거예요! 플레인 워크!”
― 큭! 길이…….
“뛰어넘으세요! 할 수 있어요!”
제프의 외침에 쥬드의 눈에서도 기광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안목으로 치명적인 빈틈을 찾아냈다.
앞에 선 태양왕이 붉은색 뿔을 내밀고 샛노란 안광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에 이어 이제 막 가슴까지 제 색을 되찾은 상태였다.
쥬드는 공격을 가하려는 듯 양손에 오라를 뿜어내며 태양왕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휙―
쒜에에엑―!
그러자 곧바로 창날이 날아왔다. 빈틈 따위는 없다는 듯 어느새 밖으로 빠져나온 커다란 징벌창이 공간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팟!
“……!”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쥬드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공격을 멈추고 위로 뛰어올랐다. 나무를 박차고 한 번 더 뛰어오르더니 원숭이처럼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놀라운 동작, 놀라운 순발력.
무려 30미터에 가까운 태양왕의 머리를 뛰어넘었다.
무거운 거신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쥬드의 높은 동조율과 녹색 거신병의 가벼운 동체, 뛰어난 유연성이 만나니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 감히! 도망치려는 것인가!
하나 그것은. 군부의 대장군. 태양왕을 화나게 만들었다.
기이잉―
태양왕의 몸이 비스듬하게 돌아갔다. 창끝에 달린 붉은색 천을 왼손에 휘감고 오른손으론 거대한 창을 어깨 너머로 들어 올렸다.
노란색 안광이 섬뜩하게 타올랐다.
출력 최대 전개.
손끝에 모인 것은 산도 무너뜨릴 수 있는 태양왕의 전력(全力)이었다.
그 모든 힘을 담아, 태양왕의 징벌이 앞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