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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병 오시리스 1권(21화)
chapter.8 고대의 유적, 살아 있는 열쇠(2)
쒜에에에에엑―!
“……!”
이번엔 제프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상도 못할, 이전의 싸움에선 보인 적이 없었던 비장의 투창 공격이었다.
이대로 있었다면 몸통이 통째로 박살 났을 터.
그 위기에서 그들을 구한 것은 쥬드의 머릿속에 접촉한 신(神)이었다.
― 피해라!
“……?!”
쥬드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
단호하고 강력한 그 말은 지상의 명령이 되어 쥬드의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급격하게 꺾인 몸이 누군가가 잡아당긴 것처럼 옆으로 뒹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황금색 섬광이 관통했다.
콰과과과광―!
나무들이 쓰러졌다.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바위들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게다가 그런 현상은 그의 시야가 닿는 곳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신의 징벌’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얼떨결에 피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파삭!
“……!”
의식하지 못했던 새에 스쳤던 것일까?
어깨에 달려 있던 가시 뿔 두 개가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쥬드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있는 힘껏 던졌을 뿐인데, 그게 마나포와 같다고……?’
그냥 마나포도 아니었다. 이동형 마나포 출력의 10배 수준이라는, 요새에 장착된 고정형 마나포 수준의 힘이라니……. 뭐 이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와아…….”
제프가 입을 쩍 벌리고 그 무지막지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펠릭시아 씨! 빨리 유적으로 가요! 돌아옵니다!”
― 돌아온다고요?
“빨리요! 끈이 달려 있어요!”
― ……?!
그러자 쥬드도 발견했다. 태양왕의 왼손에 감겨 있는 붉은색 천을.
제 맘대로 늘어나고 제 맘대로 회복되던 기분 나쁜 천 조각이 창과 태양왕을 연결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큰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양왕이 손을 까딱거리자 지평선까지 날아간 징벌창이 쏜살같이 되돌아오며 황금색 창날이 다시 쥬드를 향했다.
― 빌어먹을!
“어? 펠릭시아 씨, 욕한 거예요?”
― 시끄럽습니다! 당신은 위기의식도 없습니까?
계속된 위기에 참을성 따윈 바닥난 지 오래였다.
제프에게 한마디 쏘아 준 쥬드는 유적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찌를 듯한 살기에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쥬드는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머릿속의 조언에 정신을 집중했다.
― 왼쪽!
콰과과과광―!
― 왼쪽 아래!
콰과과광―!
백발백중이었다. 조언을 듣고 피하면 어김없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새 유적에 도착했다. 고풍스런 신전의 건축물 아래에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 이건……?
쥬드는 그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문의 크기가 정확하게 녹색 거신병의 크기와 비슷했다.
“변신을 푸세요! 들어가야 해요!”
제프는 아니나 다를까 순수한 거신병인 채로 들어가자고 요구하고 있었다.
― 이 안으로……? 잠깐! 혹시 이 안에 다른 통로가 있습니까?
“아뇨. 통로는 이곳뿐이에요.”
― 그럼 갇히잖습니까! 동굴에서 죽자는 겁니까? 대장군이 여길 지키고 있으면 어쩌려고요!
지금도 태양왕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쥬드는 섣부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은 살겠지만 이 선택은 막다른 길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통로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대장군이 기다리기만 하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하하. 그렇긴 하지만…….”
그런 상황에 제프는 웃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괜찮다니까요? 저를 믿으세요. 다른 나라로 망명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냥 도망가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예요.”
― ……!
“그럴 바엔 녹색 거신병밖에 못 들어가는 이 유적 안으로 숨어야죠. 자자, 빨리 들어가요! 태양왕이 오겠어요!”
제프의 말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도 들었다.
‘……할 수 없지.’
마침내 마음을 먹은 쥬드가 큐브를 분리시키려는 찰나, 천둥 같은 고함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 뒤!!
쒜에에엑―
“……!!”
반사적으로 피했다. 손바닥 한 뼘도 안 되는 차이로 황금색 섬광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문제는 징벌창의 뒤로 이어진 붉은색 천에 손이 닿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티잉―
그 천은 고무줄처럼 출렁거리더니 곧바로 손을 친친 감아 왔다. 손목을 타고 올라와 어느새 팔꿈치까지 덮어 버렸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능동적인 움직임.
팔이 꽁공 묶여 잡혀 버린 그에게 야누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쿠구궁― 쿠구궁―
태양왕이 달려왔다.
오라를 뿜어 천을 찢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지난번에 그러다가 어찌 됐는지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쥬드는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는 그대로 마나 공급을 끊고 큐브를 뽑아 버렸다.
위이잉…….
철컥― 철컥―
드드드드―
본래의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품들이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갑옷, 다리, 바퀴, 그리고 양쪽 팔.
집요한 붉은 천은 그의 팔만을 가져간 채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쥬드의 기체가 쓰러졌다. 뒤로 쓰러지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몸체를 굴려 입구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 네놈들―!
분노의 외침.
그리고 제프의 해맑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죄송합니다아―! 대장군님―!”
― 너……!
“저는 펠릭시아를 택했어요. 군부엔 들어갈 수 없습니다아―”
쥬드는 의문이 들었다.
무슨 뜻일까? 지금 상황만 놓고 말한다고 보기에는 말투가 의미심장했다.
― 역사를 지울 것이다! 너희를 세상에 내보낼 수는 없다!
콰아아―
지하 계단을 굴러떨어지고 있는 쥬드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황급히 입구로 뛰어드는 제프와 황금색 창날을 높이 들어 올린 태양왕의 모습.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태양왕이 휘두른 징벌창이 일격에 유적의 입구를 산산조각 내며 부숴 버렸다.
콰과과과광―!
‘이런……!’
벌떡 일어서려는 쥬드의 동체에 무거운 돌 더미들이 쏟아져 내렸다. 온몸을 두드리는 강렬한 충격.
그리고 쥬드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푸쉬이이―
“콜록…… 콜록…….”
조종석에서 빠져나온 쥬드는 몸을 수그리고 기침을 했다.
탁한 공기와 거칠거칠한 돌가루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기다리자 어둠에 적응이 됐는지 시야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돌 더미에 깔린 건가?’
무릎을 꿇고 있는 쥬드의 거신병을 제외하고는 주변은 온통 바위뿐이었다. 그나마 돌 더미들을 거신병이 막아 준 덕분에 이렇게 숨쉴 공간이나마 있는 것이었다.
“이걸 어쩌…… 어?”
자세히 둘러보니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거신병의 무릎 앞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는 한 남자, 지저분한 검은색 머리와 허름한 로브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제프?”
“콜록! 콜록! 펠릭시아 씨?”
제프는 반색을 하고 달려왔다.
“우와아―! 펠릭시아 씨! 살아남았군요!”
“……그건 이쪽이 해야 할 말 같은데요? 맨몸으로 어떻게 살아남으신 겁니까?”
“헤헤. 저는 운이 좋거든요. 어쩌다 보니 여기로 들어와 버렸네요.”
끌어안으려는 제프를 밀어내며 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위기 상황에서까지 이러고 싶진 않지만 너무 의심스럽다. 돌 더미가 쏟아지는 극한상황에서 쥬드의 거신병 밑으로 숨은 게 운이라고?
이런 건 운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운입니까?”
“네? 으음……. 그럼 운 말고 뭐가 있어요?”
“…….”
오히려 반문하니 할 말은 없었다.
“하하. 어릴 적부터 절 키워 주신 노신관님들이 항상 그러셨어요. 저는 좋은 운을 타고 나서 어딜 가서도 안 죽고 잘 살 거래요.”
“……그렇습니까?”
“네, 하하. 창고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산 적도 있고요. 오래된 기숙사가 무너졌는데, 꼭대기 층에 있던 제 방만 멀쩡한 적도 있었어요.”
“…….”
“전쟁터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는데 저는 한 발도 안 맞은 적이 있고요. 또 뭐가 있더라……. 아! 번개에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적도…….”
재잘거리는 제프를 보며 쥬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남들은 평생 한 번 경험할까 말까한 불운의 현장을 줄줄이 경험하면서 매번 털끝 하나 안 다치고 살아났단다.
‘……불운을 몰고 다니는 행운의 요정 같은 느낌이군.’
참고로 절대 예쁘게 봐줄 수 없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은 무슨 죄란 말인가.
“으으.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저 밖에서 깔렸으면 엄청 다쳤겠어요.”
“뭐…… 그랬겠죠.”
쥬드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진지한 눈으로 바위들을 살폈다.
아까 조종석에 있을 때 움직이려고 해 봤지만 변신하지 않은 녹색 거신병이 움직이기엔 바위 더미가 너무 무거웠다.
빠져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후두둑―
“……음?”
갑자기 옆에서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쥬드는 귀를 기울였다. 뭔가 쿵쿵 하는 진동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건……?”
“어? 설마……?”
쥬드와 제프가 본능적으로 서로 등을 맞대고 주변을 경계했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쿵 하고 땅이 흔들렸다.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바위 더미들이 옆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무슨……?!”
“우, 우와악―!”
돌 더미들은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쥬드는 발뒤꿈치가 따끔따끔했다. 한 발자국만 뒤에 있었어도 석류(石流)에 휩쓸려 크게 다쳤을 것이다.
쥬드의 눈빛이 흔들렸다.
딱 두 사람 정도만 서 있을 수 있을 듯한 원형의 공간을 제외하곤 온통 무거운 돌 더미들로 뒤덮여 버렸다.
‘이게, 대체……?’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제프에게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행 중의 행운?
아니면 행운을 위한 불행?
이렇게 두 사람만 멀쩡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콰득! 콰득!
“……?!”
드르륵―
뭔가가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정면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은은한 녹색빛이 흘러들어 왔다.
숨이 탁 트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듯한 고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멍청아! 함부로 무너진 곳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안에 있는 사람이 죽으면 어떡할래? 네가 책임질 거야? 앙?”
“……시끄럽긴. 계집애들은 이래서 안 돼. 제프나 펠릭시아가 그 정도로 죽을 것 같은가?”
“이게 진짜! 지 잘못도 모르고!”
“구하면 될 거 아냐! 구하면!”
“조심스럽게 구해야지! 네가 너무 멍청해서 구하려다가 오히려 죽일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
티격태격하는 것이 반가웠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듯이 음울했던 기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환한 웃음을 지은 제프가 방방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바니 씨∼! 세베크 씨∼! 여기예요! 여기! 우리 살아 있어요∼!”
밖에서 들리던 싸움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기쁨 반 의심 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제프? 제프야, 지금?”
“네! 저예요. 제프―!”
“꺄악―! 제프! 잠깐만 우리라고 그랬지? 쥬드는? 쥬드는 살아 있어?”
“네―! 멀쩡해요! 둘 다 같이 있어요오―!”
꺄악거리는 바니의 환호성과 수군거리는 주변의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구해 줄게!”
“네에―!”
“방향은? 이쪽이야? 이쪽? 아니면 이쪽?”
“이쪽이요―!”
제프와 바니의 대화가 잠시 있은 뒤, 기잉 거리는 거신병 특유의 작동음과 함께 조그맣던 구멍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구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