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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11화)
5 나이트곤(Night―Gaunts)(2)


“…….”
나이트곤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진강은 그대로 옥상 바닥에 몸을 눕혔다. 그는 눈을 감았고 그의 입에서는 다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훈구루이 무구루우나후 크툴후 르 리에 우가후나구루 후타군. 훈구루이…….”
그는 그렇게 거의 몇 시간이나 바닥에 누운 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은 별들과 달이 다른 자리에 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그 음산한 중얼거림을 끝내고 눈을 떴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운 듯 잠시 휘청이긴 했지만 이내 곧 중심을 잡았다. 그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자물쇠통을 집어 들고는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계단으로 내려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고 들어오던 별빛과 달빛마저 사라지자 계단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으로 변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훤히 보이는 것처럼 암흑 속에서 자연스럽게 고리에 자물쇠를 걸었다. 물론 열쇠 같은 건 없었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의 손짓 한 번에 자물쇠는 덜컥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리고 진강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그대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둠 같은 것은 그에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정확히 5층 사무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소파에 몸을 눕혔다.
“…….”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제대로 잠을 자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어느새 창문 밖 동쪽 하늘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

“……!”
진강은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저, 접니다! 진정하십시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성진이었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나가는 데도 내려오지 않는 진강을 깨우려 올라온 거였다. 성진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진강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
진강은 급히 손을 아래로 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침 준비가 다 끝나간다고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
진강은 멍한 눈으로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어느새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 버렸군요.”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대체로 조금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럼 내려가도록…….”
진강은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졌다.
“괘, 괜찮으십니까?!”
성진이 급히 그를 다시 소파에 앉혔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진강은 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성진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먼저 내려가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는……?”
“입맛이 없군요.”
성진은 진강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의 말대로 먼저 문을 나섰다. 홀로 남게 된 진강은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몸을 구부렸다. 책상 아래에는 어제 그가 매고 있었던 가방이 잘 숨겨져 있었다.
“…….”
그는 가방을 꺼내서는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는 막자사발과 막자가 들어 있었고 그 밑에는 투명한 비닐 봉투에 수없이 많은 붉은색 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이 붉은 돌들의 정체는 경면주사(鏡面朱砂)였다.
고급 한약재들 중 하나이자 과거 주술사나 무당, 도사들이 부적을 그릴 때 사용하는 광물이었다.
“하아.”
진강은 깊게 숨을 내쉬고는 돌을 꺼내 막자사발에서 빻기 시작했다. 돌은 쉽게 부서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운 가루로 변했다. 바로 유리병에 담긴 그 붉은 가루들이었다.
“…….”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 가루를 그대로 입으로 털어 넣었다.
“콜록!”
가루들 때문에 기침이 나왔지만, 진강은 가루를 뱉어내지 않기 위해 황급히 물을 들이켰다.
“하아.”
가루를 다 삼킨 진강은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너무 빨라. 이래서는 도저히…….”
그는 품속에서 노란색 부적 몇 장을 꺼내 들더니 사무실 벽과 문, 그리고 바닥에 붙여 갔다.

“왜 혼자 오십니까?”
“나중에 드신다는군요.”
인수의 물음에 성진은 그렇게 답했다. 식사 준비는 거의 끝나 있었다.
“그렇습니까?”
인수는 뭔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냄비에 밥이 지어지고, 사람들 손에는 각자에 취향에 맞는 반찬들이 들려 있다.
얼핏 어젯밤과 다를 바가 없는 풍경이었지만 다른 게 있다면 사람들의 수였다. 어제와는 달리 사람들 수가 몇 명 줄어 있었다.
“주선 씨나 다른 분들은요?”
성진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물었다.
“다른 분들은 따로 드시겠다고 방으로 가져가셨어요.”
“훗! 그딴 여자 안 보니 좋지 않아요?”
인수는 무관심하게 그렇게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 분열이라니요.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럴 수 없을 걸요.”
“그래, 그 말이 맞아. 형.”
방을 나서려는 성진을 정진과 성은이 막았다.
“애초에 트집 잡으려고 안달이 난 여자라고.”
“그렇습니다. 오히려 함께 있는 게 더 분쟁을 일으킬 겁니다.”
정진과 성은의 그런 만류에 성진은 하는 수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인수가 말했다.
“뭐 어차피 진강 씨께서 내려오시면 다 해결될 일 아닙니까. 분쟁이니 뭐니 해도 결국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인수는 소연이 나눠 준 그릇을 받아 들었다.
“반박할 수는 없군요.”
“애초에 분열이 무서운 건 힘이 나눠지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도 진강 씨가 있는 이상 그 어느 쪽도 해당하지 않지요. 결과가 뻔한 경우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몇 대 몇으로 나눠지든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진강이 속한 그룹이 무조건 이길 테니까. 애초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처리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그 여자 쪽에 붙은 세 사람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요.”
“김인수 씨. 그런 식의 말씀들은 서로 적개심만 일으킬 뿐이에요.”
소연이 주의를 줬지만 인수는 멈추지 않았다.
“뭐 어떻습니까.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방식의 생각들에 익숙해지면 결국은 문제를 일으킬 거예요.”
“하하! 이거 참.”
인수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순진하신건지, 아니면 그런 척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이미 말했다시피 우리의 생각이나 저들의 생각은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요. 우리가 서로를 향해 칼을 간다고 해도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인수의 그 말에 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얼마 안 남은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는 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에요.”
인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듯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어쨌든 지금 실질적으로는 이 세계에 우리밖에 남지 않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인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집단에서도 파벌은 생기고 그것을 조율하는 게 가능한 건 강력한 지도자뿐이라는 게 제 생각이지만, 다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앞으로는 제가 조심하도록 하죠.”
“고마워요.”
그들은 식사를 이어 갔다.
인수는 그가 한 말처럼 더 이상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고 다른 이들 또한 특별히 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식사는 어제보다는 오래 지속되었다. 아마도 어제보다는 덜 피곤해 허기 또한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생활용수가 급하긴 급하군요.”
정진은 가려운 듯 팔을 긁적거리고 있었다.
“설거지는 둘째쳐도 좀 씻고 싶습니다.”
“분명 아직 수도꼭지에서 물은 나오지만 이게 정확히 아직 수도가 나오는 건지 물탱크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인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쓸 수도 없고…….”
“만약 아직 상수도가 나오는 거라면 지금 미리 물을 받아놔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시 벽을 직면했다.
“우선은 옥상과 지하에 가서 관련 시스템들을 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요.”
“보면 아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 무리겠지만, 그래도 아무런 시도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요.”
“그렇겠……?”
사람들의 시선이 소연에게 향했다. 식사를 다 끝낸 듯한 그녀는 자기의 그릇을 정리하더니 이내 육포 봉지와 생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소연 씨……?”
“출출하시면 그냥 여기서 드셔도…….”
“네? 아, 제가 아니라 진강 씨 가져다 드릴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중에라도 드셔야지 않겠어요. 다음 식사 시간 때까지 그냥 기다리시게 할 수도 없잖아요. 하다못해 이거라도…….”
“그렇군요.”
소연은 강좌실을 나와 5층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나오자 1층에서 들려오는 셔터 소리가 요란했다. 아마도 밤중에 모여든 워커들이 셔터를 뒤흔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겠지?”
소연은 걱정스러운지 한 번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보일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
그런데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 보니 그녀의 귀에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야 겨우 들려오는 정도긴 했지만 뭔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마치 라디오 잡음과 같은 지지직 소리가 5층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연은 불안한 마음에 조금 더 발걸음 속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