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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14화)
6 수확(3)
“여, 여기인가요?”
성은은 버스를 멈추고 그렇게 물었다. 진강이 건네준 쪽지대로 찾아간 곳은 한 재래시장의 입구였다.
“예, 그렇습니다.”
진강의 답에 성은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시장 안에는 족히 수백은 될 것 같은 많은 워커들이 버스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아니, 시장 골목이 문제가 아니라 이곳까지 오며 지나쳐 온 수없이 많은 워커들이 버스 소리를 따라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버스에 가까이 오지는 않고 있었지만 내린다면 일제히 달려들 게 분명했다.
“정확히 뭘 찾으면 되는 겁니까?”
인수의 물음에 진강은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은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진강은 성은을 향해 손짓을 했다. 앞문을 열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인수가 먼저 앞으로 나와 문을 가로막았다.
“단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라면 따라온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진강은 가만히 인수를 바라보았다.
물러설 생각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진강의 그 말에 인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허락으로 듣겠습니다.”
인수의 그런 태도에 진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곁에 꼭 붙어 있도록 하십시오.”
성은은 문을 열었다.
“저는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진강과 인수는 버스에서 내렸다.
“크오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 있던 워커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탁!
진강이 손가락을 튕기자 워커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두 마리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주변, 그들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의 워커들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과, 과연 대단하시군요!”
“곧 깨어날 겁니다. 그러니 빨리 움직이도록 하죠.”
진강은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인수는 그런 진강의 뒤를 따랐다.
“…….”
인수는 쓰러진 워커들 때문에 걷기 어려웠다. 깨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어도 쓰러져 있는 워커들을 밟을 수 없다.
“괜찮습니다. 그냥 밟고 지나오십시오.”
“아, 아니 그래도 좀…….”
진강은 더 좁은 골목 안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멈춰 선 곳은 허름한 가게 앞이었다. 부적들부터 갖가지 제기용품, 조잡한 가짜 만다라와 가짜 옥, 가짜 수정. 그리고 화려한 옷들. 바로 무속 도구점이었다.
“여, 여깁니까?”
“그렇습니다.”
탁!
진강은 다시 한 번 손을 튕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게 안쪽에서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시죠.”
인수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진강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보기보다 넓었다. 수없이 많은 신상과 무구들이 쌓여 있었지만 진강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여기 있군요.”
그리고 마침내 그는 뭔가 찾아낸 듯 선반에서 박스들을 꺼냈다. 그 안에는 진강의 가방 속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인 반짝이는 붉은 돌들이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다른 상자 안에는 포스터 물감을 담는 작은 통들이 가득했는데 그 안에는 붉은 가루들이 담겨 있었다.
“이, 이거였습니까? 경면주사?”
“아시는군요?”
“예. 알고 있습니다. 부적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거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떠난 신들의 힘을 아직도 잡아두고 있는 유일한 광석이죠.”
진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박스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고급 포장지를 열어 다시 빈 상자 안에 쏟아 넣었다.
“신들이…… 떠났다고요?”
인수는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아니 애초에 진짜 신이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수없이 많은 신들께서 계셨지요.”
진강은 모든 돌들을 상자에 풀어 놓고는 이제 가루가 담긴 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가짜가 많군요. 진짜 포스터물감을 말려서 빻은 것도 있고요.”
그는 들고 있던 통을 들고 선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워커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뚜껑을 열고는 내용물을 그대로 워커 위에 쏟아부었다.
“크에! 크에에!”
워커는 고통스럽게 몸부림 쳐댔다. 하지만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버렸던 전과는 달랐다. 워커는 한참 동안이나 몸부림친 뒤에야 검은 액체를 온몸에서 흘리며 죽었다.
“역시나군요. 고작 이런 놈 하나도 간신히 처리하다니.”
진강은 선반에서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물그릇을 꺼내서는 통들에 담긴 가루를 쏟아부었다. 꽤 많은 통들이 있었지만 모아 놓으니 고작 한 사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인수에게 건넸다.
“이걸 가지고 계십시오. 특별히 쓸 수는 없겠지만 버리기는 아까우니까요. 가면서 거리에 뿌리도록 하죠.”
인수는 멍한 얼굴로 그 사발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요. 신들이 떠나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세상이 멸망을 맞이할 때 지금까지 이 땅에 있던 모든 신들께서는 이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하셨지요. 그들의 아래에 있던 모든 것을 데리고요.”
“모든 것이라면……?”
“대다수의 동물과 인간이지요. 세상의 죽음 직전에 모든 인간과 동물들의 영혼을 데리고 신들은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대체 어디로 말입니까? 그리고 왜요?”
“반고 신화를 아십니까?”
“예. 중국의 창조 신화지요. 반고라는 거인이 죽고 그 시체가 변해 이 세상이 되었다는 독특한 신화였죠.”
진강은 박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제로도 그 신화와 비슷합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반고는 거인이 아니고, 또한 죽어서 세상이 된 게 아니란 거죠. 세상은 일종의 하나의 생명체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의 기준과는 다르겠지만 말이죠. 어쨌든 우리는 그 생명체 속에 존재해 왔습니다. 그 어떤 위대한 신들 또한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그 생명체가 바로 어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 오면서 워커들한테 조금씩 뿌리십시오.”
인수는 진강의 말대로 쓰러져 있는 워커들에게 조금씩 뿌렸다. 그리고 워커들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쳐 댔다.
“신들은 놀랐지만, 재빨리 해야 할 일이 뭔지 깨달았지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 가능한 모든 영혼을 데리고 이 땅을 떠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고 당신이 말한 다른 사람들은 왜 남겨진 겁니까?”
“실수지요.”
인수는 순간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질 뻔했다.
“시, 실수요?”
“예.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고 급하게 하다 보니 모두 데려가지는 못한 거죠.”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인수는 들고 있던 사발을 던져 버리고는 앞서 걷던 진강의 앞에 섰다.
“신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하셨잖습니까? 하지만 당신께서는 분명 멸망이 올 것이란 걸 알고 계셨습니다.”
“…….”
진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해 주십시오. 대체 어떻게 신들조차 알 수 없었던 일을 당신은 알고 계셨고 또 우리가 남겨질 거라고는 어떻게 아셨던 겁니까?”
“…….”
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딱히 저도 당신을 추궁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이것만 가르쳐 주십시오. 설사 세상이 죽었다고 해도, 신들은 왜 그리 급히 떠나야 했던 겁니까?”
“신들은 괜한 분쟁을 피한 겁니다.”
“분쟁이라니요?”
“죽은 세상의 시체를 찾아 드는 것들과의 분쟁 말입니다.”
“워커 같은 것들 말입니까?”
인수의 물음에 진강은 실소를 참지 못했다.
“하하! 말했다시피 이것들은 기껏해야 구더기에 불과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한 자들은 신들에 의해 세상 밖으로 쫓겨난 신들, 그리고 세상 밖에 존재해 온 또 다른 신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또 다른 신들이라니 무슨……?!”
그런데 순간 쓰러져 있던 워커들이 술렁였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조금 있으면 깨어날 모양이군요. 빨리 버스로 가십시다.”
진강의 그 말에 인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들이 버스에 도착하기 전에 워커들은 그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귀찮게 되었군요.”
진강이 손을 움직이자 그들 앞에 있던 워커들이 옆쪽 벽으로 그대로 날아갔다. 하지만 단지 그뿐 워커들은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인수는 진강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이미 그들 사이에는 워커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또 손가락을 튕기면 안 됩니까?”
“안타깝게도 연속으로 통하진 않거든요.”
진강이 또다시 손을 움직이자 워커들이 양쪽으로 날아가며 길이 만들어졌다.
“뛰십시오!”
인수는 전속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
워커 몇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지만 진강의 손짓에 그대로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뒤돌아보지 말고 뛰세요!”
진강의 목소리가 어느새 꽤 멀어져 있었지만 인수는 속도를 늦추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진강이 돕는 최선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침내 인수는 버스에 올라탔고 워커들은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았다. 대신 진강이 있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인수와 성은은 걱정스럽게 진강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족히 수백은 될 것 같은 워커들이 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지금까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진강이라도 눈앞에 상황을 쉽게 어떻게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크오오!”
“크아!”
실제로 진강이 손짓을 한 번 할 때마다 수십의 워커들이 옆으로 날아가거나 뒤로 쓰러졌지만 그때마다 그 뒤쪽에 서 있던 그 자리를 메워 갔다. 진강이 포위되는 것은 금방이었고 진강은 한 손에는 상자를 든 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 어쩌면 좋겠습니까?”
인수와 성은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길 자체는 그리 좁지 않았지만 내다 놓은 온갖 물건과 진열장들 때문에 버스를 몰고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억지로라도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그러다가 차가 망가질 수도 있었고 못 나오게 될 수도 있었다.
“저, 저런……!”
어느새 진강은 완전히 포위된 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게 되었다. 인수는 조금 전 사발을 던져 버린 걸 후회했다.
“어, 어쩔 수 없습니다!”
성은은 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억지로라도 버스를 몰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
“……!”
바로 그때 성은과 인수는 온몸을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음습함에 온몸이 굳어 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진강이 있는 곳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게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무, 무슨…….”
인수와 성은은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 영혼이 얼어붙는 듯했다.
“크에…….”
그리고 그것은 워커들 또한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워커들은 눈앞에 있는 그 거대한 그림자에 두려운 듯 낑낑대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