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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16화)
7 뱀파이어(2)
인수와 성은은 그런 진강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 검은 그림자부터 저 자동차들까지. 앞선 두 가게에 들를 때와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진강의 모습은 뭐랄까 확실히 위험해 보였다.
워커들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듯 도망쳐 댔고, 진로를 방해하는 장애물, 즉, 멈춰진 차들은 그 크기가 크든 작든 진강의 손짓에 장난감처럼 허공에 휘날렸다.
지금이야 진정된 듯싶었지만, 조금 전까지 그는 마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막강한 힘을 휘둘렀었다.
“…….”
차가 어느 정도 달렸을 때 성은은 소매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피곤하십니까?”
인수의 물음에 성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죠.”
“제게 대형면허가 있었다면 대신해 드렸을 텐데 말이죠.”
“이런 세상이니 무면허도 나쁘진 않을 텐데 말이죠.”
말장난에도 그의 피곤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단지 오래 운전을 해서라기 보다는 너무 오래 긴장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죠. 언제 운전 연습을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그러도록 하죠. 서로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순간 성은의 표정이 변했다.
“주유소에 들러야 하겠군요.”
어느새 기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는 진강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도착할 수 없습니다. 일단 주유소에 세워두고 기다리도록 하죠.”
성은은 버스를 돌렸다. 꽤 지나긴 했지만 분명 왔던 길에 주유소가 있었다. 물론 다른 주유소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있다면 진강이 정리해 놓은 도로들 빼고는 멈춰 선 차들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왔던 길을 다시 얼마쯤 되돌아가니 저 앞에 주유소가 보였다. 어느새 몰려든 워커들이 몇 마리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진강이 한 번 처리한 덕분에 그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성은은 주유기 앞에 버스를 갖다 댔다.
“…….”
그들은 다시 진강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기절한 듯 잠들어 있었다. 성은과 인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워커는 기껏해야 3, 4마리. 주유기는 작동하지 않을 테지만 성은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친 짓일 수도 있지만…….”
인수는 박스를 열어 경면주사 가루가 담긴 통을 꺼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하나를 또 하나를 성은에게 건넸다.
“문을 여세요. 같이 나가도록 하죠.”
“예?!”
“정다희 씨와 이창호 씨 때를 보셨잖습니까. 덤비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진강 씨는 이 모든 걸 들고 있었는데도 워커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건 아마…….”
인수는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인수의 눈빛을 보아 그는 뭔가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한 번 미친 척하고 믿어 주십시오.”
성은은 어쩔 수 없이 버스 문을 열었다.
“가시죠.”
성은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인수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크으으…….”
워커들은 그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달려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역시나.”
인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떻게 된 거죠?”
“뭐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빨리 기름부터 넣도록 하죠.”
성은과 인수는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한편에 놓여 있는 기름통과 휴대용 수동 펌프를 꺼냈다.
“크으으으……!”
성은이 기름을 넣을 동안 워커는 그들에게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이거 참. 이것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것도 없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기름통 하나를 다 채웠을 때쯤 그들의 눈에 길 반대편에 있는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름도 어느 정도 챙겨 가고 다른 것도 좀 챙겨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성은의 말에 인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름이야 그렇지만 다른 건 좀…….”
성은은 반대편에 서 있는 워커들을 보았다. 어느새 꽤 많은 워커들이 모여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신 분은 김인수 씨 아닙니까.”
“…….”
인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진강을 굳이 깨우지 않은 것은 워커의 수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고 단순히 그냥 기름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이라면 계획과는 달랐다.
“흔히 말하지요. 임무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계획 이외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활용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물을 많이 가져갈수록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
인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가게에만 잠시 들르도록 하죠.”
인수와 성은은 우선 주유소 내에 있는 모든 기름통을 짐칸에 실었다. 고작해야 작은 약수통 10개 정도였지만 보통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러오는 사람들을 위해 1, 2통만 미리 받아 놓는 걸 생각하면 좋은 수확이었다.
“그럼 가십시다.”
성은이 앞장서자 인수가 그 뒤를 따랐다.
“크르르!”
워커들은 위협성을 질러댔지만 그들이 다가가자 이내 뒤로 물러섰다. 성은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역시 걱정할 게 없군요.”
“…….”
버스를 나올 때와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었다. 여유만만한 성은과는 달리 인수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성은은 장난스럽게 워커들 쪽으로 다가갔다. 워커들은 질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고 그 모습에 성은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보십시오. 걱정할 것 따윈 없습니다.”
하지만 인수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은과는 달리 인수는 진강에게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쓸데없는 분쟁을 피해 이 땅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떠나보내게 만들 만한 또 다른 신들의 존재. 확신할 수는 없어도 그들 혹은 그들에 가까운 존재들에게 이 경면주사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물을 챙겨오도록 하죠.”
“그리고 음식도요.”
성은과 인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통조림부터 과자, 음료, 향신료와 양념 등 챙길 것은 산더미처럼 있었다.
“우선은 물부터 챙겨 가도록 하죠.”
창고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그들은 대용량 쓰레기봉지를 챙긴 뒤 물과 통조림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들려온 어떤 포효에 인수와 성은은 그대로 멈췄다.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이것의 주인은 결코 워커 같은 게 아니었다.
“서두르도록 하지요.”
인수의 말에 성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손은 바빠졌다.
포효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커다란 봉지 두 개가 찢어지기 직전까지 가득 찼을 때 그들은 가게를 나섰다.
“어서 가십시다.”
그들은 버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작해야 2차선 도로. 금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까운 거리에서 뭔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빨리……!”
“……!”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발걸음을 더 빨리 내디뎠다. 이제 고작해야 몇 미터.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와당당탕!
비닐봉지가 찢기며 내용물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부디 포효의 주인이 그 자신이 내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이 소리를 못 들었기를 기도했다.
“크오오오!”
하지만 신들이 떠난 세상이어서인지 그 기도는 부질없었다.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포효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마침내 그들은 포효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크아아아!”
그것은 족히 4미터는 될 것 같은 거인이었다. 아니,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채 질질 끌고 있는 두 팔은 팔이라기 보다는 촉수에 가까워 보였고 두 다리는 파충류의 것처럼 비늘 같은 게 돋아 있었다.
“어, 어서 빨리 들어갑시다!”
그들은 잘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재촉해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버스에 올랐든 말든 괴물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 검푸른 눈동자는 정확히 버스 안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 진강 씨…….”
그들은 서둘러 진강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요지부동. 그는 기절한 듯 자고 있을 뿐이었다.
“크오오!”
어느새 그 괴물은 그 끔찍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제, 제길!”
인수는 박스를 열고 아직 광석 그대로인 경면주사들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뭐, 뭐하시려는 겁니까?!”
“어떻게든지 해 봐야지요!”
인수는 그대로 버스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길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이쪽이다! 이쪽으로 와!”
인수의 외침에 괴물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크오오!”
“제, 제길!”
아직은 그래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순간. 괴물의 기다란 촉수가 그의 옆 가로등을 내려쳤다. 아마도 세밀한 조준은 불가능한 듯했지만 인수로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이, 이거나 먹어라!”
그는 한 주먹 가득 들고 있던 경면주사를 던졌다. 대다수는 무의미하게 그냥 바닥에 떨어졌지만 몇 개는 확실히 괴물의 몸에 맞았다. 그런 경면주사는 그대로 괴물의 몸에 박히듯 하더니 이내 괴물의 피부를 녹여 가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아……?”
괴물은 갑작스런 통증에 의아한 듯 걸음을 멈춰 서더니 경면주사가 파고들고 있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경면주사는 완전히 안으로 파고들어 보이지 않았다.
“크아!”
하지만 단지 그뿐.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인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 역시 안 되는 건가!”
인수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괴물의 촉수가 만들어 낸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
인수는 눈을 감았다. 피하기는 늦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어째선지 아무리 기다려도 충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살짝 눈을 뜨자 괴물의 촉수는 허공에 그대로 멈춰 있었고 괴물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거나, 아니면 화가 났는지 팔을 움직이려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가루만 믿지 말하고 했잖습니까.”
진강은 버스에서 괴물을 향해 손을 뻗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인수는 서둘러 진강을 향해 달려왔다.
“버스에 타시죠.”
진강의 말대로 인성은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