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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17화)
7 뱀파이어(3)


“크오! 크오오!”
괴물은 눈앞에서 사라진 목표에 모습에 더 크게 울부짖었다.
“애처롭구나.”
진강이 손을 내리자 촉수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내려쳤다. 괴물은 그제야 자기의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검푸른 눈으로 진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그. 한때 산과 숲을 지배했던 자들아. 어리석은 욕망으로 이 땅의 신들을 모독하고 아직 오지 않았던 바깥 신들을 위해 제를 올렸던 자들아. 악마들조차 버린 구덩이에 그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한 결과가 그것이더냐? 프나코틱 필사본에 묘사되었던 고결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구나.”
“크오오오!”
가그, 라고 불린 괴물은 진강의 그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납게 울부짖으며 다시 촉수를 휘두를 뿐이었다.
“진정 애처롭구나.”
진강의 손이 움직이자 촉수는 그대로 잘려 나가 저 멀리 날아갔다.
“크, 크에……?!”
가그는 그 검푸른 눈으로 잘려져 나간 손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거늘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크에에!”
가그는 진강과 버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 거대한 몸집이라면 버스라도 종잇조각처럼 쉽게 짓뭉개 버릴 터였다.
“…….”
진강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가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린 듯 멈췄다.
“크, 크에……!”
“너희가 모셨던 신들은 자비 따윈 갖고 있지 않지만 너희의 그 어리석음에 경의를 표하며 자비를 베풀어 주마.”
화르르륵!
진강이 손바닥을 뒤집자 푸른 불길이 가그를 집어삼켰다.
“크, 크에에!”
가그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지만 정작 그 몸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작은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가만히 불길 속에서 타고 있었다.
“그 영혼에 안식이 있기를.”
진강이 몸을 돌렸을 때 가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그 거대한 몸체는 푸른 불길에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졌다.
“…….”
차에 오르자마자 진강은 인수와 성은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런 진강의 모습에 둘은 당황해서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진강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깊이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야 말로 멋대로…….”
진강은 다시 쓰러지듯 앞 좌석에 가 몸을 기댔다.
“제가 왜 이 경면주사를 모두에게 나눠드리지 않는지 아십니까?”
진강은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수와 성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물론 경면주사는 아주 소량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워커들은 감히 덤비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워커 같은 것들은 그리 큰 위협이 아닙니다.”
진강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들어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워커들 몇 마리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진짜는 저렇듯 눈앞을 걸어 다니지 않습니다. 사실 조금 전 보셨던 가그 따위도, 에레슈키갈이 이 땅에 보낸 에딤무들도 그리 큰 위협은 아닙니다. 양의 문제겠지만 경면주사로 충분히 물리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진짜는…… 전혀 다릅니다.”
그의 손짓에 창문 밖 워커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에게는 경면주사만으론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마음껏 나다닐 것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분명 그들의 눈에 띄겠지요.”
“…….”
인수와 성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 자신들의 행동이야말로 그 말을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가시죠. 생각보다 늦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져 가고 있었다.

버스가 마을 입구 쇠말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그들은 가게에서 챙긴 것들과 경면주사가 담긴 박스들을 들고 버스를 나왔다.
“경면주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우선 숨겨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괜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진강의 요청에 성진과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두었던 카트는…… 아무래도 가져가신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
인수의 눈에 바닥에 나 있는 바퀴 자국들이 들어왔다.
“이, 이건 뭐죠?”
인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진강과 성은은 바닥에 난 바퀴 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오토바이 자국 같군요. 그것도 꽤 많은 수에.”
진강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건물이 있는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분노에 찬 진강의 목소리에 인수와 성은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따라오십시오.”
진강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와는 달리 진강의 발걸음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라도……?”
“…….”
그런 진강의 태도에 불안한 듯 인수와 성은이 물었지만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발걸음 속도를 올린 뒤에야 한마디를 내던졌다.
“뱀파이어.”

그렇게 진강과 다른 이들이 서둘러 건물로 돌아오고 있을 때, 건물 내 계정 일행도 진강의 도착을 예상하고 있었다.
“대장.”
“그래.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구나. 엔진 소리가 가까이에서 멈췄어.”
계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갔고 그 순간 저녁 식사 뒤처리 중이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어떻게 할까요? 이 녀석들을 인질로……?”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이미 인형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멍청하기는!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이냐!”
“그럼……?”
“모두 내려가서 맞이한다. 동족이든 아니든 최대한 예우를 갖춰서.”
계정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대장. 자기 동료들한테 암시를 걸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 모두 내려가는 거다. 만약 그가 우리를 달가워 않는다면 힘으로라도 꺾어 버리면 되니까.”
계정의 신호와 함께 그들은 일제히 문을 나섰다.
“내가 1등이군.”
그들이 1층 입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몇 초 되지 않아서였다. 고작 몇 초 만에 그 모든 계단을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분명 신호를 주고 가장 마지막에 출발했던 계정이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점이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대장.”
“애초에 대장을 이길 만한 녀석이 우리 중 누가 있다고…….”
부하들의 투정에 계정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입구 쪽으로 조금 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어느새 챙겨 왔는지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풀고 셔터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멋을 내며 계정은 그렇게 외쳤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진강과 일행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은 뒤에 서 있는 부하들에게 몇 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신호를 본 부하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건물 밖으로 나왔다.
“…….”
조금 시간이 지나고, 진강과 다른 두 사람은 뱀파이어들 앞에 멈춰 섰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박계정입니다. 진강 씨와 성은 씨, 그리고 인수 씨지요?”
“…….”
계정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 왔지만 진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진강의 모습에 인수와 성은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음…… 이거 참 조금 어색하군요.”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계정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는 진강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끊임없이 살피고 있었다.
“이거, 이거 참…….”
그러나 계정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진강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계정은 다른 부하들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들 또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궁금한 거라도 있나 뱀파이어?”
진강의 그 말에 계정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확실히 동족은 아니었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해 들었던 그 놀라운 능력들과 자신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 것을 보아 평범한 인간은 확실히 아니었다. 거기다 상대는 자신들을 아는데 자신은 상대를 모른다. 확실히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은거 중인 동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군요.”
계정은 곧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눈동자는 천천히 붉게 물들어 갔다. 알아낼 수 없다면 직접 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매료나 암시 같은 건 안 통하니 괜한 수고 할 필요 없다.”
뒤쪽에 서서 반쯤 넋을 잃어 가고 있는 인수와 성은과는 달리 진강은 조그마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
계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동자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다시 검게 변한 순간 인수와 성은의 눈동자에도 점점 초점이 돌아왔다.
“이, 이건……?!”
“……!”
“진정하십시오. 잠시 최면에 걸리셨던 것뿐입니다.”
진강은 어지러움에 당황하고 있는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보다 동시에 여러 명이라니. 예상보단 훨씬 고위급인가 보군. 400년, 아니 500년 정도 되겠군.”
“아직도 귀여운 523살입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장난스런 제스처까지 취하며 답하고 있는 계정이었지만 그 눈빛에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어쨌든 정말 놀랍군요. 다른 분들께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과장이 섞이지 않았나 의심도 했는데, 직접 뵈니 오히려 부족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놈들! 우리 형한테 털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진정하십시오!”
다른 사람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려는 성은을 인수가 막았다.
“진정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할 겁니다. 그렇지요? 뱀파이어 씨?”
인수의 그 말에 진강만을 주시하고 있던 계정의 시선이 인수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