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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24화)
9 지옥의 만찬(4)


“…….”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역겨움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주선의 시체는 이제 단순한 음식 봉지 정도로 취급되고 있었고 뱀파이어들의 뺨과 턱은 피로 얼룩져 가고 있었다.
특히나 바닥에 고인 피를 게걸스럽게 핥고는 환희에 휩싸이는 그들의 모습에 소연과 몇몇 사람들은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귀의 만찬이 끝나갈 때쯤 더 이상 뱀파이어들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을 따라가겠다며 나섰던 이들은 그 누구보다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서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
식사를 끝낸 뱀파이어들은 턱과 뺨에 묻은 피를 손을 닦으며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포만감과 환희가 자신들의 몸을 채우고 있긴 했지만, 이로써 그들을 따라갈 인간이 없어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진강을 바라보았다. 진강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게 물들었던 두 눈동자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고 그 옅은 검은 연기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희들은 그만 가 보도록 하죠.”
뱀파이어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워커들은 다시 저희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이, 이건……?!”
“……!”
그들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 전처럼 속박에 걸렸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그들을 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대로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살기에 감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데려가? 어떻게?”
진강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격렬한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평소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생명에 이끌린다. 빛과 소리, 그리고 네놈들의 잔재주를 이용해 이곳까지 잘도 끌고 오긴 했지만, 이미 이곳에 생명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시체에 불과한 네놈들이 그 어떤 짓을 한다 해도 돌아갈 리가 없지.”
진강은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뱀파이어들은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이 느끼는 공포란 계정의 분노를 마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그들 중 유일한 여성 뱀파이어는 이미 선 채로 기절해 있었다.
“……?”
사람들은 어째서 뱀파이어들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뱀파이어들만이 강렬한 진강의 살기를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 봅시다. 물론 마을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 더 많아 보이는 감도 있겠지만, 확실히 수가 만 단위로 보이는군요. 참으로 열심히 끌어모았군요. 뭐 먹이가 없다 보니 저 놈들도 절실하긴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을 보며 말하듯 부드럽고 대견한 듯 말하고 있었다. 그 눈에는 무관심을 담은 채로 말이다.
“음.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적은 편일까요? 훗.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그의 말투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의 눈빛도 마치 하늘 위에 있듯 다른 모든 것을 낮추어 보고 있었다.
탁!
진강이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변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무언가 변화가 있는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비교적 창문에 가까이에 있던 뱀파이어들은 달랐다.
“어, 어떻게……?”
뱀파이어 한 명이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로서는 그것이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소리였다.
뱀파이어들의 눈은 땅 밑 워커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을 완전히 덮어 버린 그 거대한 워커의 무리는 지금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쉿!”
진강은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각도에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부드럽게 한 번 움직이자
스스스스.
뱀파이어들은 그 눈을 의심했다. 워커들의 몸이 회색으로 변해 가더니 이내 재로 변해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단 두 번의 손짓으로 마을에 있는 모든 워커들을 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흙은 흙으로. 라고 어떤 신이 말하지 않았더냐.”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그렇게 말한 진강은 다시 몸을 돌려 뱀파이어들을 마주 보았다.
“오, 뱀파이어. 전염병을 퍼뜨리는 자. 밤의 귀족. 뱀의 자손. 무덤의 아들. 아이야 너는 너희를 부르는 이 수많은 이름들처럼 너희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느냐?”
소연과 인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진강은 평소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마치 딴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인간들 사이를 걸으며 스스로를 포식자라 여겼더냐? 저 버러지 같은 워커들 사이를 걸으며 특별함을 느꼈더냐?”
진강의 말이 이어질수록 뱀파이어들은 무언가를 잃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혼이 저 아래에서부터 바스러져 내리는 듯한 그 기분 속에서 그들은 영원한 상실을 느꼈다. 지금 잃는 것이 무엇이든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임을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어리석구나. 너희는 포식자가 아니다. 온화한 이 땅의 신들 사이에서 일어난 작은 어둠아. 네놈들 따위는 감히 어둠을 알지 못한다. 검은 달빛 저편 절대 심연의 어둠을 네놈들이 아느냐? 안식을 위한 밤과 공포를 숨기기 위한 어둠밖에 모르는 너희가 감히 어둠을 알겠느냐?”
진강이 그들 가까이로 걸어오자 그들은 두려움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 아……!”
그들은 마치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급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 마치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눈꺼풀 속 어둠 속에서 보고 말았다. 눈앞에 존재가 어떤 자인지. 어떤 존재인지.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감히 그 존재를 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눈앞에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사, 사, 사사…….”
살려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 없는 것임을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말 따위는 광활한 우주에 흩날리는 작은 먼지에 불과했다.
진강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보았나 보구나. 칭찬해 주마. 절대 심연의 조각 속에서 나를 마주했으면서도 그 혼이 흩어지지 않았구나. 그 보답으로…….”
진강은 가볍게 그들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탁. 탁. 탁. 탁.
“아, 아…….”
고작 한 번씩 어깨를 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조용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은 어떤 주술이나 힘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공포 때문이었다. 얼마나 강렬한 공포였던지 이미 일찌감치 정신을 잃고 있던 여인조차 그의 손이 닿자마자 생명을 잃을 정도였다.
“혼을 집어삼키는 것은 참아 주도록 하마.”
아무도 들리지 않게 그렇게 중얼거린 진강은 다시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뱀파이어들의 몸은 워커들과 마찬가지로 회색으로 변해 가더니 이내 재로 변해 바닥으로 쏟아졌다.
“…….”
사람들은 뱀파이어들이 느꼈던 공포나 그런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허나 지금 진강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기이한 이질감만은 그들로서도 느낄 수 있었다.
“지, 진강 씨?”
“괘, 괜찮으십니까?”
소연과 인수는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왜 그러시죠?”
마치 왕과 같이 여유롭고 기품 있는 손짓, 고아한 목소리. 확실히 평소의 진강과는 달랐다.
“아, 아니 평소와는 조금 다르신 것 같아서…….”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분 최고니까요.”
자세히 보니 그는 어딘가 취한 듯 보였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는 그런게 아니라 너무나 기분 좋은 그런 취기에 말이다.
“아, 그런데 여러분 졸리지 않나요?”
“……?”
뜬금없는 그 질문에 사람들은 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향해 진강은 다시 물었다.
“졸리지 않으십니까?”
다만 두 번째 질문이 끝났을 때 그는 다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
사람들은 갑자기 몰려든 졸음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훗.”
진강은 가볍게 웃어 보이더니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창문에 다다랐을 때 그의 몸은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10 아르카나, 디프원(1)


미국 메사추세츠의 인스머스라는 옛 항구도시. 그곳 작은 교회 맞은편에는 길먼 하우스라는 5층짜리 호텔이 있었다. 그리 고급스런 호텔도 아니었고 어딘가 싸구려 잡지에조차 소개된 적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고급스런 리무진 한 대가 호텔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정장에 보는 사람마저 위압감을 줄 만큼 건장한 체격. 험상궂게 생긴 그 외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뒷세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두 명의 흑인과 유명 배우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금발의 남성, 어딘가의 공주님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아름답고 기품 있어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복을 입고 있는 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인도인 소년이 리무진에서 걸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호텔 앞에 나와 있던 늙은 직원이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달려 나와 리무진 문을 열어 주거나 짐을 들어 주기는커녕 삐딱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정중하다 하기는 힘들어 보이는 태도였다.
“…….”
리무진에서 내린 다섯 명 중 두 흑인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지만 직원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제일 위층 방입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횅하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