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거신병 오시리스 1권(24화)
chapter.9 이스트 웨이, 의외의 만남(3)


“으윽. 그 자식……!”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숨을 씩씩거렸다.
“작년 같았으면 반쯤 죽여 놨을 텐데!”
“동생, 진정해. 잘 들어왔으면 됐잖아?”
“아악! 짜증나!”
번뜩이는 살기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바니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런데 누트.”
“어, 왜?”
“그 돈은 어디서 나신 겁니까? 저흰 돈이 없지 않았습니까?”
쥬드의 의문이었다.
돈 쓸 일이 없는 작업장에서 나무를 패다가 갑자기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돈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에이,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그냥 좀…… 빌렸어.”
“예? 빌렸다고요?”
“응. 오는 길에 선원들한테 좀 빌렸지.”
“제가 계속 봤었지만 빌리는 모습은 못 봤…….”
고개를 갸웃하던 쥬드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왁자지껄한 선원들 사이로 숨어들었을 때, 누트는 분명 쓸데없이 선원들과 몸을 부딪친 적이 있었다. 선원들이 눈치챌 정도는 아니고 그냥 살짝 몸이 닿은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 그들 정도의 수준이라면 당연히 몸을 부딪칠 일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때 훔친 겁니까?!”
“쉿! 쉿! 에이, 훔쳤다니 실례야. 그냥 돌고 도는 돈. 조금 빌려서 나눠 쓰는 거지.”
“그게 훔친 거잖습니까!”
“덕분에 여기에 잘 들어왔잖아. 그게 없었다면 우린 들어오지도 못 했다고. 아니면 그 드러운 놈한테 바니를 내주고 올 셈이야?”
“…….”
쥬드는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석 달 전만 해도 그는 긍지 높은 호루스의 기사였다.
신분을 숨기고 밀입국하는 정도는 눈감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서 돈을 훔치고 그 돈을 써서 이득을 얻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납득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도 그리 고지식한 기사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치사한 짓을 하면서 들어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봐, 쥬드.”
그런 그에게 누트는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그동안 이쪽 주제로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돼. 넌 이제 기사가 아니야. 용병들인 우리 쪽 세계로 들어온 거라고.”
“…….”
“이쪽 세계에선 살려면 뭐든지 해야 돼. 성공하려면 동료 빼곤 뭐든지 밟고 일어서야 되고. 알겠어? 이 정도도 납득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랑 같이 다니기 힘들어.”
누트의 말엔 틀린 점이 없었다.
쥬드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자 말없이 누트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
쥬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납득하죠.”
“그래! 잘 생각했어!”
“하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건 싫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일은 이번을 제외하곤 하지 않는 것이 어떻습니까?”
쥬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누트는 하하 웃으면서 쥬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이지! 사실 우리도 나름 긍지가 있어. 이번처럼 특별한 경우 빼고는 도둑질 따위 안 해.”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누트는 갑자기 쥬드의 손을 붙잡고 만세를 외치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어둠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어이, 웃어 달라고. 농담이잖아, 농담.”
쥬드의 반응은 싸늘했다. 누트의 손을 탁 쳐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제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어, 어이.”
“어차피 저는 훔쳐 갈 것도 없습니다.”
“야, 야. 아까 그건 특별한 경우라니까? 평소엔 안 그래!”
나머지 일행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즐거운 분위기였다.
처음 만났을 땐 벽을 두고 떨어져 있던 쥬드도 지금 이 순간에 팀의 일원으로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여러분.”
“……?”
그때 제프가 앞으로 나섰다.
“저는 잠시 정보를 구하러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정보? 아…… 혹시……?”
반문했던 바니가 뭔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피스가 무표정하게 제프를 바라봤다.
“혼자 갈 건가?”
“네, 혼자 가는 게 나을 거예요.”
“시간이 꽤 지났을 텐데.”
“괜찮아요. 시간이 지났어도 아마 거긴 안 변했을 거예요. 그리고 개인적인 연줄이니……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구요.”
잠시 고민하던 아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하, 무모한 짓은 안 할 테니 걱정 마세요오∼”
“그래. 그럼 나중에 항상 보던 데서 보기로 하지.”
“넵!”
해맑게 웃은 제프는 일행을 보며 당부했다.
“오늘 안에 돌아올 거예요. 그동안 되도록이면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해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
“특히 누트 씨요. 지난번처럼 여자 꼬시다가 싸움 나면 안 돼요! 경비병이 알면 군부에도 알려지는 거예요.”
“야야! 언제 적 얘길 하는 거야?!”
발끈하는 누트에게 제프는 놀리듯이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며 골목을 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럼 우리도 쉬러 가자.”
아피스의 말에 일행 전원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쥬드는 이번에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잠시만요. 이번에도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돈이요. 우리 이젠 정말로 빈털터리 아닙니까?”
당연히 무일푼일 텐데도 일행 중 누구도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누트는 그런 쥬드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쯧 하고 혀를 차더니 품속에서 또 하나의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짠! 돈은 걱정 마! 뭘 그런 걸 걱정해?”
“그, 그거 설마……?”
“에이, 쥬드. 아까 분명히 납득했잖아. 앞으로만 안 하면 된다며?”
쥬드의 얼굴이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다.
“훔친 게 여러 개였을 줄은 몰랐잖습니까!”
“이런, 이런. 어차피 훔친 거 하나든 두 개든 상관없잖아?”
“그런! 설마 여러분도 알고 계셨습니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쥬드의 곧은 시선에 일행들은 난감한 얼굴로 딴청을 피웠다. 심지어 아피스까지도.
“이런!”
“하하! 팀원들은 내 편이라고오―!”
“제프처럼 말 늘이지 마십시오! 설마 그것도 다가 아닌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하십시오. 몇 개나 훔쳤습니까!”
“에잇, 안 가르쳐 주지!”
“이봐요!”
후다닥 도망치는 누트를 쫓아 쥬드가 달려갔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일행들의 웃음이 터졌다.
한적한 저녁 항구도시 이스트 웨이의 뒷골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이스트 웨이는 오히려 낮일 때보다 사람이 더 많이 붐비는 것 같았다.
환하게 불을 켠 각양각색의 주점들, 갱단이 지키고 있는 카드 하우스, 선정적인 옷차림의 여성들이 손짓하는 홍등가까지.
제프는 사람들의 흐름에 섞이듯 들어가 조용히 상업이 가장 번창한 중심부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중심부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앞에 서서 조용히 위를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