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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1권(6화)
Chapter 3 프레너미
(Friend+Enemy)(2)


한바탕 우여곡절 끝에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숙소로 뛰어올라갔다.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제이는 아직 교실에 남은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왜?”
아니나 다를까 제이가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가?”
까칠함으로 둘째라면 서러울 차니 역시 곱게 대답하지 않았다.
“왜 쳐다보고 있냐고.”
제이가 다시 쏘아붙였다.
“아…, 괜찮나 싶어서.”
차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남의 일에 신경 꺼.”
차니의 걱정에도 제이는 여전히 까칠하게 반응했다.
“그건 내 맘이지!”
요즘 애들 빠르다 빠르다 하지만 5살 꼬맹이들의 대화치고는 상당히 조숙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한참을 티격태격 쏴붙이던 둘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차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에휴∼ 넌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
“특별하다고 말한 적 없어.”
“말로 하진 않았지만 넌 지금 우리 반 전체를 무시하고 있잖아. 마법 쪼금 빠른 것 가지고 거들먹거리긴.”
“거들먹거린 적 없다고!”
“니가 하는 게 거들먹거리는 거라고!”
“이게 정말!”
약이 오른 제이가 다짜고짜 차니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쪽은 이미 기본 무예를 제법 익힌 몬테규 대공가의 후손이었다. 마법이라면 몰라도 육탄전은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직선으로 돌격해오는 제이를 옆으로 한 발짝 움직이며 가볍게 피한 차니의 오른쪽 주먹이 차니를 막 지나쳐 가고 있는 제이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혔다.
“헉!”
태어나서 처음 맞아본 제이의 고통에 찬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짝을 차 버리는 시크한 차니. 철퍼덕 바닥에 처박히는 제이.
“니가 먼저 덤볐다.”
덤덤하게 말하고는 교실을 나가는 차니.
하지만, 몇 걸음 안 가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뭐지? 하며 돌아보던 차니는 불타는 구슬이 자신에게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차니의 귀에 다시 제이의 외침이 들렸다.
“파이어 볼!”
쾅!! 쾅!!
건물 한 귀퉁이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황급히 현장으로 뛰어오는 아카데미 관계자들과 정말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차니와 제이.
제이의 마법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차니가 어느새 제이에게 뛰어들어 다시 한 번 제이의 오른쪽 옆구리를 뻥 찼다. 저만치 튕겨져 나간 제이의 입에서 쉼 없이 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이어 볼!”
마무리 일격을 날리기 위해 제이에게 뛰어들던 차니는 피할 새도 없이 파이어 볼을 맞고 말았다.
쾅!
족히 5미터 이상은 튕겨져 나간 차니를 향해 마치 끝장을 보려는 듯 제이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파이어 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차니는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껏 옆으로 굴렀다.
콰광!
가까스로 일어나서 제이를 노려보던 차니가 다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뛰어들어 역대 최고의 사고를 친 제이와 차니의 몸을 제압했다.
“아! 아! 놔주세요. 저놈이 먼저 덤볐어요.”
“니가 먼저 약 올렸잖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괴물 같은 꼬맹이들이었다.
그때부터였다. 그 둘이 정규 과정에서 제외된 것은. 또한, 질기고 긴 인연이 시작된 것은.

* * *

아카데미 본관 건물의 회의실.
전날 발생한 역대 최악의 교내 사고를 조사한 젊은 교사가 한참을 설명하는 도중 아카데미의 교장은 쾅 하고 테이블을 치며 언성을 높였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사실입니다. 라필드 백작님.”
“아무리 뛰어난 가문의 자제들이라고 해도 겨우 5살짜리들일 뿐이야. 자네,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건가? 파이어 볼을 날렸다고? 더군다나 그걸 또 피했다고? 그리고 그걸 몇 번씩 반복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가?”
교장이 언성을 높이며 열을 내자 앉아 있던 교사들 중 몇 명이 조심스레 나서 사건 조사를 담당한 젊은 교사의 편을 들며 말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거야?”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정 의심스러우시다면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러 교사들이 한입으로 말을 하니 일단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든 라필드 백작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지금 당장 데려오게.”
흥분한 교장을 깨우쳐 주듯 사건 조사를 담당한 젊은 교사가 다시 나서 말했다.
“하지만 아직 수업시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들 말대로라면 정규 수업 따윈 받을 필요가 없는 수준이지 않는가? 잔말 말고 당장 데리고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아 두 명이 나란히 교장실로 들어왔다.
검소함과 청렴을 미덕으로 삼고 한평생 교육자로 지내온 라필드 백작의 방답게 교장실은 책상 하나와 손님용 테이블 하나 그리고 테이블에 딸린 의자 4개가 전부일 정도로 단순한 구조였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쭈뼛쭈뼛 어색한 침묵을 지키는 꼬마 악마 둘과 그들을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라필드 백작.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라필드 백작이 입을 열었다.
“몬테규 공작 저하.”
“네? 네.”
“아카데미 합숙 기간 동안에는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 똑같은 학생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죠?”
“네.”
“아카데미를 정상적으로 수료하지 못하면 황제 폐하께 후계자 임명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흠칫 놀라는 차니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에 같이 놀라는 제이.
“아니요. 그건 오늘 처음 들어요.”
“네, 아무튼 규정은 그렇습니다. 저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황제 폐하께 숨김없이 보고해야 한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귀족 아이나 평민 아이나 가장 무서운 건 부모님께 이르겠다는 협박일 것이다. 황제 폐하께 보고된다면 아마 자신의 부모님 귀에도 좋지 않은 아카데미 생활에 관한 것들이 들어갈 것이다. 무늬만 5살이지 영특함은 이미 성인을 뛰어넘는 제이와 차니가 라필드 백작의 협박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어제 오후 아카데미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혹시 그것과 여러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나요?”
다시 쭈뼛쭈뼛 침묵을 지키는 작은 악마 둘.
“대답이 없으시다는 건 여러분과 그 사고가 상관이 없다는 뜻인 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라필드 백작의 물음에 차니가 먼저 입을 연다.
“제이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사소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라필드 백작이 되물었다.
“사소한… 다툼요?”
“네, 거의 혼자만 있는 제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말을 했는데 되레 저한테 화를 내길래 그만…….”
라필드 백작이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이를 향해 물었다.
“제이 군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장소와 인물에 상관없이 까칠한 제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아니요. 저를 놀리고 때리기까지 하길래 도저히 못 참아서 저도 저놈을 혼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제이 군. 차니 군을 어떻게 혼내주려고 했나요?”
“파이어 볼로 서너 대 때려주려고 했어요.”
라필드 백작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이 꼬마 놈들이 대체 뭐라는 거야?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는 게 정말이란 건가?’
라필드 백작은 당황스런 마음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었다.
“제이 군, 파이어 볼 서너 대를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군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흠칫 놀라는 제이.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네.”
라필드 백작이 고개를 돌려 차니를 향해 말했다.
“다행히 차니 군은 무사하군요. 어디 다친 데는 없나요?”
“네. 괜찮아요.”
차니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라필드 백작이 잠깐 침묵을 지키다 이내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정규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른 반을 만들 동안 잠시 쉬도록 하세요. 준비가 되는 대로 여러분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도록 하죠.”
“네.”
“네.”
웬일로 같은 말을 하는 문제아들. 역시 교장 선생님의 권위(협박?) 앞에서는 그저 꼬마일 뿐이다.
며칠 뒤 차니와 제이만을 위한 반이 만들어졌다.
역사, 문학, 음악 같은 기본 교양 과목은 동기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것으로 했지만 아카데미의 주요 수업인 검술과 마법은 둘만을 위한 새로운 반이 편성된 것이었다.

* * *

어느새 시간은 흘러 1년이 지난 어느 날.
“자, 오늘 배울 것은 아틀란티스의 역사입니다. 지난 시간에 숙제로 내준 대륙 연대표 외우기는 모두 해 왔겠죠? 일단, 테스트부터 한 후에 수업을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테스트의 목적은 여러분의…….”
“아∼”
“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아이들의 탄식과 비난을 사뿐히 지르밟고 엄격함과 깐깐함으로 무장한 듯 보이는 여교사가 차가운 분위기로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
“자, 여러분 그럼 우리 다시 한 번 복습해 볼까요? 이 몬스터가 뭐라고 했죠?”
여선생이 들고 있는 액자에는 매우 정밀하게 그려진 그림이 들어 있었는데 피부색은 녹색이었고 마치 쥐가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모든 몬스터의 공통점은 피부와 피의 색깔이 녹색이란 것이었다.
“고블린이요∼”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자 여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은 다 자라도 1.2∼1.3미터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몬스터지만 매우 많은 개체가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영장류(인간, 엘프, 드워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예요. 특히 함정을 잘 만들고 석궁을 잘 쓰니 꼭 조심해야 한답니다. 알겠죠?”
자세한 선생의 설명이 이어졌고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자, 이건 뭐라고 그랬죠?”
그 후에도 2종류의 몬스터를 더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요약해 보면 이랬다.
개의 얼굴에 사람 몸통을 가지고 역시 피부색이 녹색이며 사람과 비슷한 키를 가진 몬스터를 ‘트롤’이라고 부른다. 그들도 역시 집단생활을 하고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어 영장류에게 피해를 주는 몬스터이다. 특이한 점은 엄청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서 칼에 심장이 찔리더라도 금방 회복된다는 것이다.
또한, 돼지의 얼굴에 사람 몸통을 가진 크기가 2∼3미터에 이르는 몬스터가 있는데 ‘오크’라고 부른다. 힘이 인간보다 4∼5배나 좋기 때문에 적은 숫자의 오크라도 영장류에게는 매우 큰 위협이 된다. 거기다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수차례 오크를 토벌하려 노력했었다.
다른 희귀한 몬스터도 있지만 오랜 시간 인간과 반목하는 가장 대표적인 몬스터는 고블린, 트롤, 오크니 이놈들은 꼭 기억해 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