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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1권(9화)
Chapter 5 론리 섬(2)
스캇 백작의 말을 들은 몬테규 대공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잠자코 있던 차니가 스캇 백작에게 물었다.
“론리 섬이 공격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스캇 백작이 곧 차니의 물음에 답했다.
“론리 섬은 바위섬을 겨우 벗어난 수준의 작은 섬입니다. 영지민들을 억지로 이주시켜 살게 하더라도 채 30가구를 넘지 못할 좁은 곳이죠. 또한, 비록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파운드 제국의 입장에서 풍부한 편일 뿐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아스카 제국에서 볼 땐 그저 흔한 수준의 어장일 뿐입니다.”
스캇 백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생각을 마친 몬테규 대공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자네가 파악한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스캇 백작의 얼굴에서 잠시 갈등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윽고 마음을 굳힌 듯 스캇 백작의 말이 이어졌다.
“올해 초 아틀란티스 자원협회 정기 모임에서 딱 한 번 론리 섬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론리 섬 인근 대륙붕에 다량의 천연 미스릴이 매장되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는데 우리 쪽 자원학자들의 부정으로 흐지부지된 일이었습니다.”
“먼저 언급한 쪽은 아스카 제국 측의 자원학자들이었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생각은 저들의 목적이 미스릴이란 것이군.”
“네.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스릴이라…….이거 생각보다 복잡해지는군.”
어떤 물건에 마법을 부여할 때 필요한 건 그저 마법사의 주문이다. 그런데, 무기에 마법을 부여할 때는 조금 다른 방법이 있다. 무기에 미스릴을 녹여 덧댐으로써 그 무기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강도와 예리함을 증폭시키는 것이 그것인데 값비싼 마법무기의 강도를 높여 무기 자체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미스릴은 마법의 불로만 녹일 수 있었고 그나마도 5써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가능한 작업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5써클 이상의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미스릴 자체가 원체 귀한 광물이란 것이었다. 그런 미스릴이 론리 섬 주변에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면 아스카 제국으로써는 이런 도발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 가려는 찰나 차분한 대공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쪽 피해 상황은 어떤가요? 죽거나 다친 사람은 혹시 없나요?”
대공부인의 물음에 스캇 백작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시 주둔하고 있던 1개 소대가 전멸했습니다.”
“아…….”
“아!”
대공부인과 앤이 동시에 안타까운 소리를 냈고 몬테규 대공이 다시 물어왔다.
“전멸이라면 대체 몇 명이나 죽었단 말인가?”
“네이럼 남작 이하 11명의 부대원들 전부입니다.”
“음…….”
몬테규 대공의 깊은 한숨이 이어지자 차니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제가 나서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당장 우리도 함선을 보내 적들을 물리치지 않으시는 겁니까?”
차니의 분노 섞인 말을 들은 몬테규 대공이 따스한 표정으로 차니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차니야, 앞으로 네가 공국을 책임져야 할 때가 올 것이니 지금 잘 듣기 바란다. 공국을 운영하다 보면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이 인명 피해란다. 12명의 죽음이 물론 애석하긴 하지만 더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의 복수를 시도할 수는 없는 거란다. 육지에서라면 아스카 제국은 분명 우리 몬테규 공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국토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아스카 제국의 해군과 바다에서 싸운다면 우리는 패할 가능성이 더 크단다. 적들이 내륙으로 침투해 오지 않는 이상 더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 우리가 바다로 나가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란다.”
몬테규 대공의 말은 담담했지만 차니는 그 안에 숨겨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보다 영지민과 수하를 아끼는 그의 아버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몬테규 대공이 스캇 백작을 돌아보며 최초 명령을 내렸다.
“스캇 백작.”
“예. 전하.”
“지금 즉시 전군에 비상 경계 태세를 발동시키고 본국에 이번 사태를 보고하시오. 또한, 본국에 3써클 이상 마법사 30명과 소드 레이더스급 10명을 파견 요청하고 공국 내의 마법사도 전원 동원하여 오늘 저녁 7시까지 전쟁기념관 앞으로 집합시키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속히 준비하시기 바라오.”
“네!”
대답을 마친 스캇 백작이 서둘러 방을 나가자 대공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몬테규 대공을 바라보았다. 항상 다정하고 자애로운 사람이지만 영지와 제국의 안위가 위협받을 때는 얼음보다 차가워지는 사람, 그가 바로 몬테규 대공이었다. 비록 차니에게 더 큰 피해가 우려되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직속부하 12명의 죽음을 결코 참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대공부인의 예감이 맞은 것일까? 몬테규 대공이 대공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니를 데리고 갈 생각이오. 괜찮겠소?”
“그리하셔야지요. 영지 백성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공국의 후계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모두들 비웃을 테지요.”
“이해해 주니 고맙소.”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처우가 정해지는 장면을 목격한 차니였지만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배제하고 무언가가 이뤄질까 봐 불안하던 참이었다. 그런 차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몬테규 대공이 차니에게 물어왔다.
“영지의 군인이 12명이나 전사했다. 애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너는 어떠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저도 이렇게나 분한데 아버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구나. 그래서 애비는 마법사들이 동원되는 대로 아스카 제국의 수도로 마법진을 통해 쳐들어 갈 생각이다.”
“네?”
“뭐라구요?”
“아, 아빠?”
자리에 있던 가족들 모두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외딴섬 하나를 공격하는 것은 분명 국지전이지만 수도를 공격하게 되면 아마도 필시 전면전으로 확전될 것이었다. 차니가 나서서 그런 몬테규 대공을 말렸다.
“수도를 공격하신다면… 설마 황궁은 아니시죠?”
“왜 아니겠느냐. 황궁으로 바로 쳐들어갈 생각이다.”
“소드 레이더스 10명과 마법사 30명으로요? 더군다나 마법사들은 왕복 이동 마법진에 힘을 쏟고 나면 전투에 도움이 안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위함이다. 실제 전투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공국의 기사단이 주도한다. 본국에 요청한 소드 레이더스 10명은 황제 폐하께 전면전을 알리는 암호일 뿐이다.”
“암호… 라구요?”
“그렇단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단다. 그가 비록 오래된 충신일지라도 말이지. 론리 섬을 점령한 아스카 제국의 함선이 물러나지 않고 계속 우리 바다를 점령하고 있다면 결국 우리도 함선을 출항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야.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건 승산 없는 싸움이지. 그렇다면, 아스카 제국의 함선을 회항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뭐가 있겠느냐?”
“본국에 대한 공격이군요.”
“그렇단다. 아까 말한 소드 레이더스 10명은 그런 내 뜻을 말씀드린 거고 영민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내 뜻을 알아차리시고 아마도 전면전을 준비하실 거다.”
몬테규 대공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차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목표는 아스카 제국의 황제입니까?”
“아니, 그건 불가능하기도 할뿐더러 설사 성공시킨다고 해도 더 큰 위험이 생기게 될 뿐이지. 우리가 아스카 제국의 황제를 시해한다면 비잔틴 제국이 아스카 제국과 연합해서 공격해 올 게 뻔하거든.”
“그러면 황궁을 공격하되 황제는 다치지 않아야 하는 거군요.”
“아마 황궁을 공격하지는 못하겠지. 마법진을 쓴다고 하더라도 아스카 제국의 수도로 이동할 수 있을 뿐, 이동 방해 마법으로 가득한 황궁으로 바로 이동하지는 못한단다. 다만, 아스카 제국의 수도를 공격함으로써 전면전의 의지를 알리는 거지. 아마도 아스카 제국은 전면전을 선택하기보다는 미스릴을 포기하는 쪽을 택할 거야.”
“정치라… 어렵군요.”
“어렵지. 하지만, 죽은 병사를 위해 또 살아 있는 국민을 위해 누군가가 움직여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란다. 혹시, 두려우냐?”
“하하하. 아버지도 참. 저 아버지 아들이라구요.”
“그래. 몬테규 대공가의 핏줄이라면 두려움 따위는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나라의 안녕과 영지군의 죽음을 떠올리며 담담히 따라오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전쟁이란 단어가 오가자 잔뜩 겁을 먹은 앤이 두려운 마음으로 몬테규 대공을 향해 물었다.
“아빠. 오빠도 꼭 데려가야 해? 오빠는 아빠처럼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나 무섭고 걱정돼.”
앤의 걱정 어린 말에 차니가 다정하게 앤을 바라보았다. 앤만큼은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은 대공부인의 손이 부드럽게 앤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불안에 떠는 딸을 자상하게 바라보던 몬테규 대공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앤, 얘야.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스카 제국에는 소드 마스터가 없단다. 큰일이 생기진 않을 거야.”
“아이 참. 그건 아빠한테나 맞는 얘기잖어. 오빠는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거잖어. 힝∼”
이제 고작해야 12살인 앤에겐 지금 벌어진 모든 일들이 무섭기만 한지 울기 일보 직전인 얼굴을 몬테규 대공이 큼직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오빠한테도 맞는 말이야. 네 오빠도 소드 레이더스의 끝자락에 서 있거든.”
“응? 정말?”
그럴 리가 있냐는 눈으로 앤이 황급히 차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앤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준 19살의 차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오. 멋지잖아! 남자는 명예지! 오빠, 가서 용감하게 싸우고 와!”
태도가 시시각각 급변하는 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