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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1권(14화)
Chapter 6 대동신공(3)
매년 3월이 되면 파운드 제국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작위 수여식이 거행된다.
대제국답게 귀족의 수도 많아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귀족의 작위를 나라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행사였다. 황제가 형식적인 심사를 통해 각 귀족 가문의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일이라 이 기간 동안에는 거의 모든 귀족이 수도로 모여들었다.
“황제 폐하께서 후계자를 임명하란 명령서를 보내셨구나.”
“해마다 오던 거 아닌가요?”
“해마다 왔지. 다만, 작년까진 당사자가 없었다는 게 다른 거고.”
“아, 그런데 작위 수여식은 3월에 하는 거 아니었나요?”
“물론, 내년 3월이지. 다만, 우리 가문은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단다.”
“영지… 순방을 말씀하시는 거죠?”
몬테규 가문의 오랜 전통 중 하나는 후계자로 지목된 아들의 영지 순방이었다.
그것은 물론 비공식 일정이었고, 수차례 신분을 감춘 채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영지 주민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여 훗날 영지민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조상들의 깊은 안배였다. 1남 1녀를 슬하에 둔 몬테규 대공의 후계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다만,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었다.
다정한 눈길로 몬테규 대공이 말을 건넸다.
“언제쯤이 좋겠느냐?”
“일정이 있으면 소문도 생기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럴 테지.”
“영지 순방의 취지와 맞지 않으니 제가 알아서 비공식 일정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좋지. 다만, 내년 3월 작위 수여식에는 늦지 않아야 한다. 할 수 있겠지?”
“그리하겠습니다.”
호쾌한 아들의 대답에 몬테규 대공도 영지 순방을 떠나던 때가 생각났다.
벌써 30여 년 전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추억들은 영지민들에게 존경받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주었고 아마 자신의 아들 또한 지금의 순간을 통해 그리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많은 동료를 만나고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의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자신을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는 그 시절에 만난 자신의 친구들처럼.
Chapter 7 카스티유 용병단(1)
파운드 제국은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수많은 몬스터들 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조금 깊은 숲이 있다 싶으면 거의 반드시 몬스터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지만 그 많은 몬스터를 정규군으로 일일이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몬스터 소굴이 인근에 있는 마을은 피해가 막심했기에 자구책으로 실력이 좋은 용병을 두둑한 보수로 고용해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실력 좋은 용병들끼리 하나의 길드를 만들었게 되었는데 그것이 용병단의 시초였다.
현재, 파운드 제국의 용병단 중 가장 명성이 높은 곳은 두 곳으로 카스티유 용병단과 라이카 용병단이 그들이었다. 다른 용병단은 몰라도 그 두 용병단은 정규전을 치룰 수 있을 만큼 많은 단원수와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을 자랑했다. 명성만큼이나 높은 보수를 주었기에 많은 용병들이 그곳에 고용되고 싶어 했지만 두 곳 모두 엄격한 수준의 심사를 거치기에 신규 인원으로 채용되는 것만 해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가슴에 푸른 백합 문양을 새긴 검은 로브를 쓴 마법사가 지나가자 카스티유 용병단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모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오는군. 저기 보이는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 말이야.”
“아까 자네가 말한 그 신입?”
“쉿! 자네들 말조심해. 4써클 마법사라 단장이 직접 파티장으로 초빙한 사람이란 말일세.”
“뭐?”
“뭐라고? 4써클?”
“그렇다니까. 알다시피 이번 파견 임무는 트롤을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트롤 무리 때려잡는 데 마법보다 좋은 건 없지. 그러니 단장이 직접 초빙하신 거고.”
“있긴 있구나. 4써클 마법사란 인간이.”
“난 사람이든 엘프든 처음 봐.”
“하긴, 나도 그렇군.”
지나가는 줄 알았던 마법사가 자신들 앞에 멈춰 서자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지미, 앤드, 케이지가 당황해 고개를 숙이며 서로를 원망했다. 마치 복화술이라도 하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조용한 목소리로.
“으. 니므으으즈으에이으아그아으!(야, 내가 목소리 줄이라고 그랬잖아!)”
“스므르. 나으이그야의으므르므으으으!(시끄러, 이제 와서 누구 잘못 따져서 뭐해!)”
“으으으. 아으아느르느으르그드르므으리으아!(여하튼, 네놈들이랑 같이 다니면 되는 일이 없어!)
마법사가 피식 웃는 듯하더니 로브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짙은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에 호수처럼 파란 눈동자였다.
“단장님께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 이리 오세요. 저희가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건물 몇 개를 돌고 가로지르더니 에메랄드 색 지붕을 가진 3층짜리 건물 입구에 멈춰 섰다.
“이 건물입니다. 입구에서 말씀하시면 경비단원이 단장님 실까지 안내해 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제니스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지미입니다. 편하게 짐이라고 불러 주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대마법사님. 케이지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뭐든 시켜 주세요.”
“안녕하세요. 앤드라고 합니다. 소문보다 더 미남이십니다.”
아무래도 자신들보다 상관으로 발령날 가능성이 큰 새로운 인물에게 서로 뒤질세라 아부를 떨고 있는 꼴값 삼인방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제니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앤드가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 대마법사? 에라이∼ 자식들아!”
“지랄, 지는! 소문보다 더 미남? 무슨 소문? 저런 사람 있다는 건 알았냐?”
“내 말이! 앤드, 니가 제일 심했거든!”
“시끄러, 소문… 그 뭐냐. 그 소문 나도 들었거든?”
“뭔 소문!”
“에이∼ 몰라.”
“하하하!”
용병단에서 삼총사라 불리는 명성 자자한 그들이었지만 4써클 마법사라는 존재는 그 생소함 때문인지 괜스레 그들을 주눅 들게 했던 것이다.
“근데, 너무 젊지 않냐? 4써클이래서 완전 노인네라 생각했는데.”
“아∼ 이런 무식한 놈. 무식한 놈!”
“아, 아파. 왜 남의 어깨를 때리고 그래. 모를 수도 있지. 말로 해!”
“마법사잖아! 자신의 외모에도 당연히 마법을 걸었을 거 아니야!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응?”
“아∼ 그렇구나. 역시 지미의 똑똑함이란.”
꼴값 삼총사 중에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지미가 그들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었다. 물론, 변변찮지만. 맞으면서 갈굼당하던 금발의 근육질은 앤드로 무리 중에서는 물론이고 용병단 내에서도 힘 하나만은 최고란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금발은 무식하게 힘만 쎄단 속설이 앤드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눈치 따윈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둘이서 하는 양을 한 발 물러서 지켜보던 케이지가 둘 사이로 파고들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자, 귀한 손님 모셔다 드리는 임무를 완수한 기념으로 맥주나 한잔 하러 가는 게 어때?”
“난 찬성! 아주 힘든 임무였거든. 흐흐.”
“나도 찬성! 머리를 너무 썼더니 더워져서 말이야. 하하하.”
“그럼 가자!”
용병단 단원들은 임무가 없는 날에는 용병단 안에 대기하면서 수련하는 것이 공식적인 지침이었지만 그 조항을 준수하는 단원은 거의 없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험한 임무가 대부분이었기에 매순간 인생을 즐기자는 주의가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저들처럼.
“카르페 디엠(Carpe Diem)∼”
“맞아, 카르페 디엠∼”
얼마나 마셨을까? 얼큰하게 취한 그들에게 전령이 단장이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놔. 하필 이때.”
“케이지 너 때문에 대낮부터 술을 마셔 버렸잖아, 단장한테 욕먹으면 다 너 때문이야.”
“맞아, 케이지 녀석. 당최 규칙을 준수하는 꼴을 못 봐. 에이.”
역시나 서로를 진심(?)으로 원망하며 서둘러 아까 그 에메랄드 지붕의 건물로 뛰어갔다.
“어서들 오게. 이리 가까이 와서 앉아.”
“아닙니다. 단장님. 저희는 여기 서 있는 게 더 편합니다.”
카스티유 용병단의 단장인 카스티유가 테이블에 앉으라고 해도 한사코 출입문 바로 앞에 서 있는 그들이었다.
“시끄러. 술 마신 거 다 아니까 이리 와서 앉아.”
“네.”
행여나 술 냄새가 더 퍼질까 쥐 죽은 듯 숨 쉬며 꼴값 삼총사가 테이블에 앉았다.
“인사들 해, 이번 니켈 상단 호위 임무에 파티장을 맡게 될 제니스야.”
“엇, 제니스님.”
“뭐야? 벌써들 인사 나눴어?”
의아한 듯 단장이 묻자 제니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단장님이 계신 곳을 물었더니 직접 이곳까지 데려다 주더군요. 인사는 그때 나눴습니다.”
“아. 그래. 보다시피 이놈들이 술을 좀 좋아해서 그렇지 인성이 나쁘지는 않은 놈들이니 잘 좀 데리고 갔다 오라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벌써 이 세 사람이 좋아졌거든요.”
시원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제니스를 보며 알 수 없다는 듯 세 사람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내려왔다.
* * *
니켈 상단은 파운드 제국 내에 가장 큰 상단 중 하나로 비잔틴 제국, 아스카 제국과의 무역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상단 내의 호위대도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이번엔 제법 큰 거래인지 카스티유 용병단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것도 10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자랑하는 25명의 풀 파티를. 천 골드면 4인 가족이 살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니 5만 골드란 비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번 거래가 그만큼 중요하단 방증이기도 했다.
“다들 모이셨습니까?”
“네. 24명 전원,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 봅시다.”
제니스가 부파티장인 애덤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