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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1권(15화)
Chapter 7 카스티유 용병단(2)
“안녕하십니까? 이번 임무의 파티장을 맡게 된 제니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인사말이 오갔다.
“이번 임무가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한 가지 여러분 전원의 의견을 듣고 싶어 모두 참석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애덤이 무리를 대신해 대답했다.
“니켈 상단이 제시한 요구 조건은 15일이라는 기한입니다. 자신들이 나헬 항구까지 최단거리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고 기한에 맞추면 계약금의 두 배. 기한을 어기면 계약금의 절반만 지불한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곳 리빙 시에서 나헬 항구까지 그 기간 안에 가려면 킬리만 산을 넘는 동선이 가장 빠를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분은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볼멘소리와 불만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킬리만 산은 안 되죠.”
“거긴 오크와 트롤 부족들이 얼만큼 살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 곳이라구요.”
킬리만 산은 파운드 제국 서쪽에 위치한 대표적인 몬스터 밀집 거주 지역으로 이동 시에는 우회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킬리만 산이 워낙 넓고 높은 산이라 우회하는 거리가 너무나도 만만치 않았다.
“니켈 상단의 자체 호위대의 병력만 해도 200명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우리 파티까지 합류하면 저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혹시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교묘하게 자존심을 긁는 말이었지만 단순한 용병단원답게 바로 걸려들었다.
“자신이 없다니요. 그까짓 몬스터들 따위.”
“귀찮은 거였죠.”
“더러워서 피하자는 거였고요!”
언제 그랬냐는 듯 여기저기서 킬리만 산을 돌파하자는 의견으로 대세가 바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출발은 내일 오전. 이동 동선은 나헬 항구까지의 최단 직선 코스로 하겠습니다. 이만 해산하셔도 좋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며 당했다는 느낌이 든 파티원들이 역시 마법사라 머리가 좋다느니 교활하다느니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한편, 그날 저녁 부파티장인 애덤은 도무지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초짜 파티장이라는 것도 불안한데 어려보이는 외모에 4써클 마법사란 것도 의심스러웠다.
킬리만 산을 돌파하자는 계획도 경험 없는 초보자의 객기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파티원들은 처음 보는 파티장보다는 오히려 부파티장인 자신을 더 믿고 있을 것이었다. 바로 그 점이 부담스러웠다.
똑똑.
“들어오게.”
철컥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리고 애덤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애덤?”
“단장님, 상의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뭔가? 자네가 이 시간에 그런 표정으로 날 찾아올 정도면 보통은 아니겠구먼.”
“파티장으로 초빙해 왔다는 그 마법사 말입니다. 실력을 검증해 보신 것입니까? 4써클 마법사를 검증할 마법사가 우리 용병단에는 없지 않습니까?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습니다.”
“하하하, 꽤나 긴장한 모양이구만. 자네가 그런 약한 소리를 하다니.”
“제가 약한 게 아니라 파티장이 정한 이동 경로가 문젭니다. 킬리만 산을 돌파해 나헬 항구까지 최단거리 직선코스로 가겠답니다.”
“킬리만 산을 뚫고 직선 코스로? 하하하, 그 사람답구먼.”
같이 염려해 줄 거라 믿었던 단장이 크게 웃어젖히자 애덤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걱정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단장님, 웃을 일이 아닙니다. 킬리만 산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하하하.”
여전히 웃기만 하던 단장이 웃음을 뚝 그치고 정색하며 말했다.
“이보게, 애덤.”
“네, 단장님.”
“자네는 내가 처음 본 애송이 따위를 이런 중요한 임무의 파타장으로 세울 바보로 보이나?”
“그, 그럴 리가요. 다만, 4써클 마법사란 제국 내에서도 워낙 귀한 존재라 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말고는 제대로 검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카스티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 지난달에 우리 용병단에서 오크 부족 학살을 위해 네이튼 산으로 향했던 것을 기억할 게야.”
“물론입니다. 네이튼 산에 있는 오크 놈들에게 용병단의 세이크와 히스가 당해 복수해주러 출동했었죠.”
“그런데, 그때 자네, 네이튼 산에서 오크를 본 적 있나?”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교활한 오크 놈들이 대부분 도망쳤었죠. 그 때문에, 후방에 있던 저는 분하지만 그놈의 오크들을 보지도 못하고 철수했었습니다.”
“난 봤네. 그 오크들.”
“네? 그런데 왜 쫓지 않으셨습니까? 끝까지 쫓아가 복수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럴 기회가 없었어. 그 오크 부족이 무슨 원한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들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전멸당했어. 단 한 명의 마법사에게.”
“서, 설마 그 마법사가?”
“맞네. 이번 임무의 파티장이지. 자네도 곧 보게 될 거야. 윈드 소드(바람의 칼날)란 마법을.”
“바람의… 칼날요?”
“무시무시하더군. 마나의 바람이 오크를 어찌나 잘게 자르던지 결국 흔적도 안 남더군.”
“그, 그랬군요.”
이마에서 괜스레 뿜어져 나오는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애덤이 단장을 바라보았다.
단장은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애덤에게 다시 말했다.
“대답이 되었나?”
“예. 충분히.”
“그럼 나가 보게. 걱정 말고 푹 자고 출발하게나.”
“네, 그럼 이만.”
다 죽어 가던 들어올 때의 분위기와 달리 지금 애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Chapter 8 니켈 상단 호위 임무(1)
“대체 누가 이걸 산이라고 이름 지은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이게 무슨 산이야. 이 정도면 산맥이라고.”
“내 말이!”
리빙 시를 떠난 지 겨우 3일 만에 킬리만 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어쩌면 일주일도 안 걸려 임무가 끝나리라 기대했던 용병단과 니켈 상단의 인원들이 애매한 산에 대고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맥이란 산들이 여러 개 겹쳐졌을 때나 쓰는 말이고 아무리 높고 넓은 산이라도 단독으로 존재할 때엔 그저 산이라 부를 수밖에.
물론, 봉우리라 부르기엔 규모가 너무 큰 것들이 많다는 게 문제였지만.
빠∼앙. 빠∼앙.
휴식을 알리는 경보음이 들리자 대열을 맞춰 걷던 사람들이 서둘러 자기 근처의 나무에 기대앉기 시작했다.
무리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니스가 지시했다.
“정찰조에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 이동한다. 1분대는 전방을 확인하고 보고하도록.”
“네, 자 1분대 출발.”
그레듀에이트인 1분대장 미키의 뒤로 남은 1분대원 4명이 뒤따라 사라졌다.
용병단의 파티는 기본적으로 5개의 분대로 나눠지고 각 분대의 정원은 5명이었다. 한 명의 분대장이 남은 4명의 분대원을 이끄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분대장은 그레듀에이트 급으로 선별되는데 방금 떠난 1분대장은 미키였고 2분대장은 제니스가 카스티유 용병단에 처음 방문했을 때 길을 안내해 준 지미, 3분대장 역시 그 무리인 앤드, 4분대장은 케이지, 5분대장은 베이크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니켈 상단의 부단장인 로스가 뚫어져라 카스티유 용병단의 파티장을 쳐다보았다. 처음 볼 때엔 어색하고 못 미덥기만 했던 젊은 파티장이었지만 함께하는 5일 동안 관찰해 본 결과 어쩌면 외모에 마법을 쓴 노친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행군의 시작과 휴식은 구성원들의 체력을 철저히 계산하여 진행되었고 그것은 수레를 끌고 가는 말과 노새의 체력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육체적인 훈련을 받은 상단 호위대와 용병단은 그렇다 쳐도 상단 짐꾼들까지 별 무리 없이 이동 속도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루 이동 거리는 엄청나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니켈 상단의 주인인 니켈의 오른팔로 지난 35년간 상단을 이끌어 온 로스가 보기에도 저 젊은 파티장의 인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기에 대체 얼마를 부르면 저자를 상단 호위대로 스카우트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조용히 녹차를 즐기던 제니스가 튀어 오르듯 전방을 향해 달려갔다.
고위 마법사답게 다리에 미리 근력 강화 마법을 걸어놓은 듯했다. 이윽고 피투성이가 된 1분대원들의 모습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일행들의 눈에 들어왔다.
애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전투 준비. 대열 정비.”
명령을 받은 용병단원들이 복명복창으로 멀리 있는 동료에게 알렸다.
“전투 준비. 대열 정비.”
“전투 준비. 대열 정비.”
전열이 가다듬어지자 애덤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5분대는 후방에 있는 사제님들을 모셔오고 치료가 끝날 때까지 1분대와 사제님들을 엄호한다.”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5분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애덤이 1분대장인 미키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나?”
“저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만 부대원들의 부상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전방 정찰을 끝내고 복귀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오크들이 창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매복해 있었군.”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용케도 빠져나왔구먼. 다행이네.”
“그런데, 그게 이상합니다. 오크들이 뒤에서 창만 던질 뿐 저희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목숨은 건져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몬스터들은 지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무리를 지어 마을을 형성하고 사는 고블린, 트롤, 오크들이 어찌 지능이 없겠는가.
한참을 생각하던 애덤이 다급히 소리 질렀다.
“앗! 그놈들은 자네들을 도망치게 해 본진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던 거야!”
“네? 아…….”
“놈들의 무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으니 이거 답답하게 됐군.”
미키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그렇다고 자네들이 거기서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러나저러나 복귀하는 게 맞지.”
애덤이 차분하게 타이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 오면서 제니스님은 못 뵈었나? 자네들이 나타나기 직전에 분명히 그쪽 방향으로 사라지셨는데…….”
“경황이 없어서 확인은 못했지만 누군가 복귀하는 저희의 뒤를 지켜 주러 왔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마법사란 원래 검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후방에서 마법이나 날리는 게 정석인데, 단독으로 돌격을 감행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의 약점은 주문을 외는 시간이다. 높은 써클의 마법일수록 주문을 외는 시간은 더 길었다. 그러니, 아무리 수준 높은 마법사라 할지라도 단독으로 행동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애덤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역시 4써클이라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