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무신 1권(16화)
Chapter 8 니켈 상단 호위 임무(2)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제니스가 돌아와 분대장들을 소집해서는 오크 부족의 수가 제법 많다는 것, 그놈들이 전방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들을 알려 주었다.
“문제는 앞쪽에 있는 놈들이 전부인지, 일부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파티장님.”
제니스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니켈 상단의 부단장이 껴들었다.
“아, 로스님이시군요.”
제니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전방에 있는 놈들이 적의 전부라면 호위대와 저희 용병단을 동원해 쳐부수고 앞으로 나가면 그만이지만 그놈들이 병력을 나누었다면 아마 저희가 함정을 깨부수는 동안 상단 본진을 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일정이 조금 변경될 뿐 기한을 어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제니스였다.
전투 준비를 마치고 얼마를 기다린 걸까? 한참이 지나도 오크 무리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니켈 상단의 인원은 물론이고 전투가 주업인 카스티유 용병단의 긴장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30미터 외각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2분대원 하나가 신호음을 냈다.
삐∼ 삐∼ 삐∼
3회의 경고음. 그것은 적의 공격을 뜻했다.
제니스는 즉시 분대장들을 소집해 명령을 내렸다.
“11시 방향 적 발견, 1, 3, 4분대 11시 방향을 경계하고 2분대는 본대에 합류한다. 5분대는 상단의 수레를 지켜라, 이상.”
“예.”
“예.”
그리고, 얼마 후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창 하나가 날아와 짐을 가득 싣고 있는 마차에 꽂혔다.
쾅!
사람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월등히 높은 오크 하나를 상대하려면 훈련받은 병사 4∼5명이 필요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오크 하나의 힘이 사람 4∼5명의 힘과 맞먹으니까.
그런데, 11시 방향의 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오크의 수는 얼핏 봐도 150마리가 넘어 보였다. 아무리 수준 높은 카스티유 용병단이지만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릴 만한 적의 전력이었다.
“2분대를 제외한 모든 분대는 니켈 상단을 엄호하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2분대는 나와 함께 11시 방향으로 이동해 적의 접근을 차단한다.”
“파티장님, 하지만, 전방에는 적의 함정이 있습니다.”
“저 정도 머릿수면 함정은 비웠거나 소수만 남겨두고 왔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이동해, 작전 개시!”
“작전 개시!”
“작전 개시!”
큰 소리로 명령을 복창하며 사기를 끌어올린 용병단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짐꾼들을 다그쳐 수레를 몰게 했다. 한편, 2분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원래, 다수의 강력한 적이 쳐들어올 때 소수가 방어하는 방법은 한 지점에 뭉쳐 방어를 튼튼히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말 그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전법.
그런데, 지금 파티장이 내린 지시는 다수의 아군이 소수의 게릴라를 상대할 때 이동 시간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쓰는 전술이었다. 얼핏 말이 안 되는 지시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어쩌겠는가. 명령이 떨어졌으니 다만 따를 뿐.
숲이 우거진 산이지만 그나마 나무가 적은 공터가 나타나자 제니스가 대기 명령을 내린 후 지시했다.
“2분대는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한다.”
“예.”
“예.”
힘차게 대답한 2분대원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제니스의 행동을 관찰했다.
‘마법사답게 대규모 공격마법이라도 쓰려는 걸까?’
‘벌써 트랩을 걸어둔 거 아냐?’
‘전방으로 간 본대는 과연 무사할까?’
불안한 마음으로 생각을 이어가던 2분대원들은 어느새 다가온 오크 무리의 엄청난 머릿수를 목격하고는 그만 질려 버렸다.
‘이건 미친 짓이다.’
‘파티장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죽음의 공포가 이성을 이겨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찰나 2분대원들은 제니스가 느긋하게 주문을 외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스 레인!”
다음 순간 오크 무리의 머리 위로 하늘에서 얼음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우박도 아니고 비는 더더욱 아닌 뾰족한 창의 앞부분처럼 생긴 얼음이 폭풍처럼 쏟아 내리치는 광경이었다. 그 얼음비는 마치 송곳이 종이를 뚫는 것처럼 아무런 방해 없이 오크들의 몸뚱이에 구멍을 숭숭 뚫어 버렸다.
더러는 엄폐물을 찾아 숨어보려고도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방패삼아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얼음비를 피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얼음송곳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비늘이라도 뚫어버릴 기세로 더욱 맹렬히 내리칠 뿐이었다.
“꾸웩!”
“꽤액!”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오크들의 비명이 진동했다. 하지만, 잔인한 얼음비는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오크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오크가 주변의 몇몇 오크를 데리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제니스를 부셔버릴 기세로 맹렬히 돌진해 왔다. 그때, 다시 한 번 차분한 제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윈드 소드.”
갑자기 태풍처럼 거센 바람이 제니스의 앞에서 일기 시작하더니 맹렬한 기세로 뛰어오던 오크 무리를 덮쳐갔다. 너무나 거센 바람이기에 오크들이 튕겨져 날아갈 것을 예상했던 2분대원들은 다음 순간 마법의 공포란 것을 체험했다.
그것은 바람의 형태를 가졌을 뿐 실제로는 검이었던 것이다. 바람이 스쳐간 부분은 검에 스친 듯 베어졌고 바람을 정통으로 맞은 부분은 그만큼의 난도질을 당한 듯 처참하게 찢겨져 나갔다. 제니스를 향해 돌진하던 오크들의 몸뚱이는 두 조각, 네 조각, 여덟 조각으로 쪼개지더니 어느새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바람의 검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도도하게 오크들의 무리를 덮쳐갔다. 사방에서 오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 무리 중 온전히 서 있는 수는 몇 마리 되지 않았다. 그제야 제니스가 뒤를 돌아보며 차갑게 명령했다.
“척살.”
공포에 휩싸여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앞으로 뛰어나가며 2분대원들은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척살.”
“척살.”
그 순간 자신들의 검과 몸에 강화마법을 거는 제니스를 볼 수 있었다.
‘저게 사람이야?’
‘마법을 동시에 3개 쓰는 것도 가능한 거야?’
‘이건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거야.’
Chapter 9 트롤 따위!(1)
“자, 이제 거의 다 왔으니 힘을 내자고.”
“킬리만 산만 넘으면 남은 거리는 모두 큰 길이니 안심하라고.”
분대장들이 큰소리로 용병단원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굳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몬스터들의 위협에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니켈 상단의 사람들에게 이동 지점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컸다.
또한, 실제로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치 미로 같던 킬리만 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이동 속도라면 반나절로 충분할 것이다. 드디어 킬리만 산의 끝자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산의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취∼익. 취치치익.(인간들로 보이는 무리가 마을로 오고 있다.)”
“취익.(알겠습니다.)”
“치∼익. 취∼취익.(전 병력 끌어 모아 전투 준비시켜.)”
“취익.(알겠습니다.)”
그 마을은 트롤들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사실, 트롤은 오크에 비해 한결 나은 상대였다. 일단, 외형적으로만 봐도 오크는 2∼3미터에 이르는 큰 덩치였고 힘도 인간의 4∼5배였지만 트롤은 거의 사람과 비슷한 키에 비슷한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압도적인 트롤의 우위가 이어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트롤이 가진 말도 안 되는 신체 회복력이었다. 트롤은 검에 아무리 깊이 베여도 몇 초의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처가 회복되었다. 심지어, 팔이나 다리가 통째로 베어져 잘려나가도 주워다 붙이기만 하면 금세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트롤은 어떻게 해치울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것인데, 방법은 간단했다. 회복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뇌수를 멈추게 하는 것, 다시 말해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키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트롤들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철저히 머리와 목을 방어하니 도무지 그 방법을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고수들의 경우에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몬스터들이 아무리 강해 봤자 그레듀에이트 급의 기사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일반적으로 그레듀에이트 급의 기사는 한번에 5마리의 트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번 임무에 참여한 니켈 상단 호위대와 카스티유 용병단이 보유한 그레듀에이트 이상의 검사가 카스티유 용병단 파티의 분대장 5명과 부파티장까지 합쳐 6명이 전부라는 거지만. 눈앞에 마을이 보이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공간이 생겼다는 희망으로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쥐어짜내 달려왔던 일행은 공포를 초월한 허탈함을 느꼈다.
“맙소사. 저건 트롤 마을이잖아.”
“길을 들어도 무슨 이따위 길을…….”
하고 외치며 원망과 재수 없음을 탓하는 니켈 상단.
“트롤 마을?”
“뭐, 트롤 마을이 있다고 해도 우회할 필요는 없지.”
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카스티유 용병단의 전혀 다른 반응이 재밌었다.
그들은 복귀한 2분대에게 파티장의 능력을 들었던 것이다. 오크 마을도 없애 버렸는데 트롤 따위야! 하지만, 사연을 모르는 니켈 상단은 비상이 걸렸다. 상단의 책임자인 로스가 급히 이동을 멈추게 하고 카스티유 용병단의 파티장을 찾았다.
“로스님, 어쩐 일이십니까?”
“앞에 보이는 게, 사람이 사는 마을이 아니라 트롤 마을이란 걸 알고 오신 겁니까?”
제니스가 공손한 말로 인사했지만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로스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미친놈아. 왜 길을 골라도 하필 이따위 길을 골랐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아. 미리 말씀 못 드려 놀라셨군요. 물론, 알고 가는 겁니다.”
“그래요?(뭐라고? 이 미친놈이 대체 뭐라는 거야.)”
“트롤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 아마 모레까진 도착할 수 있을 테니 기한을 어길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이런 미친놈아, 지금 도착 시간이 문제냐 도착을 할 수 있긴 하냐가 문제라고!)”
“안심하시고 자리로 돌아가 쉬셔도 됩니다.”
“그러시다면 저는 카스티유 용병단만 믿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아! 혹시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으니 만일 트롤과 전투가 시작되면 절대 마차에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지요.(협상? 장사꾼 30년 동안 트롤과 협상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고! 무슨 고블린 풀 뜯어 먹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마음을 터놓은(?) 진실한 대화를 나눈 상단과 용병단의 대표가 짧은 대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