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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8화)
3장 토룡소의 괴인(2)


“어서 옵쇼!”
누각의 화려한 입구에는 그런대로 말쑥한 차림의 점소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넙죽 고개를 숙인다.
으레 커다란 주루나 기루에서는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무료한 시간을 때우던 차에 누가 입구로 다가오니 불문곡직 평소의 습관대로 한 거다.
그러나 숙인 고개를 든 족제비처럼 생긴 점소이의 얼굴이 싸늘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이도 자신보다 서너 살 어려 보이는 앳된 소년이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옷은 색이 다 바랜 황토빛 단삼이라 보기만 해도 추웠다.
“야, 애는 그만 가라.”
점소이 조비(曹飛)는 손을 내저으며 마초를 밀어냈다.
“저, 저기 말이죠. 여기선 일할 사람을 뽑지 않나요?”
애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귀찮은 표정을 짓던 조비가 손가락으로 안을 가리켰다.
‘그 사람 참, 고개가 뻣뻣한 것이 점소이답지 않군.’
마초는 머리를 흔들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
입구에 있는 점소이보다 한두 살 위로 보이는 얼굴 퉁퉁한 점소이가 인사말을 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입구를 대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조비 이 새끼! 너 이리 와 봐!”
“아씨, 왜 그러슈. 바빠 죽겠는데.”
말투가 뻣뻣한 걸 보면 평소에도 티격태격 싸우는 사이인 모양이다.
“새끼, 네가 바쁜 게 뭐가 뭐 있다고, 에이, 너 이 새끼. 야, 봐라. 네 눈깔에는 이 자식이 어딜 봐서 손님으로 보이기에 함부로 들여보내는 거야? 총관님에게 어디 한 군데 부러지고 싶어?”
고약하게 행동하던 조비가 그의 뒷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러고 보면 총관이란 사람이 무섭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 뭐, 저 자식이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기에…….”
조비가 주섬주섬 변명을 늘어놓자, 곰 같은 점소이가 동그란 째리며 소리쳤다.
“새끼야!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어디가 덧나?”
“여웅(呂熊)이, 무슨 일이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 듬직한 음성이 그들의 뒤에서 들려왔다.
‘이크. 괜히 여기 있다간 좋은 꼴 못 보지.’
조비가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가자, 흘깃 그를 노려보던 여웅이란 장한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예, 총관 어르신. 딴 게 아니고 이 애가…….”
“아, 아니 됐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지.”
총관이 여웅의 옆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마초를 응시했다.
‘빈궁하게 자란 아이로군.’
총관 송결(宋潔)은 첫눈에 그걸 느꼈다.
송결은 중키에 문사형 인물인데, 사십 평생 남의 관상만 보고 살아왔다고 할 만큼 사람 보는 눈에 일가견이 있었다. 춘양루를 신목원 제일 주루로 키워 온 것도 그의 남다른 수완 덕분이었다.
‘어디 보자.’
송결의 눈이 빠르게 마초의 전신을 훑었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옷이나 신발 등을 보고, 그다음에는 용모나 언행을 살핀 후, 마지막으로 눈을 본다.
마초를 보면 허름한 무명옷에 워낙 색이 바래서 원래 색깔을 추측하기도 힘든 옷을 입고, 대충 삼나무 껍질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더욱이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모를 만큼 덥수룩했고, 구부정한 자세와 입가에 흘리는 비굴한 미소는 아이가 천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크으. 눈빛도 흐리멍덩한 것이 바보스럽군.’
송결은 마초에 대한 판단을 끝냈다. 저런 녀석은 평생 남의 밑에서 천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객사할 팔자인 것이다.
“커흠…… 너, 힘은 좋으냐?”
“아, 예예.”
춘양루가 장사가 잘되는 만큼 점소이나 인부들의 일은 고되다. 아침부터 새벽녘까지 사람을 부려 먹으니 이직률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구직자에게 힘이 좋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힘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건 백이면 백 다 마찬가지였다. 송결은 마초의 대답을 무시해 버렸다.
“좋다. 근데 너 어디 사느냐?”
“예. 저기 북쪽의 초지에서…….”
“흐흠. 거기서 소나 양을 기른 모양이구나.”
송결은 아이의 말이 더 나오기 전에 끊어 버렸다. 저런 애들은 일이 고되면 며칠 못 가 그만둘 게 뻔했다. 이름을 물어볼 것도 없다. 아이에게 관심이 없어진 송결이 여웅에게 손짓을 했다.
“골 십장(骨什長)에게 데려다 줘라.”
“예, 총관님.”
“자식들, 빨리 나르라고! 그 일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야!”
후원 창고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덩치 큰 중년인이 있었다.
여웅이 마초를 데리고 옆에 서자, 골망태(骨望太) 십장의 눈이 삐딱하게 돌아갔다.
“바빠 죽겠는데 이 어린아이는 뭐냐?”
그러면서 골망태가 마초를 눈여겨보았다.
약간 마르긴 했지만 키도 크고, 손도 커서 억세게 보이는 아이였다. 다만, 덥수룩한 머리칼 속에 보이는 눈이 흐릿해서 멍청해 보인다.
“으음. 힘은 좋아 보이는구나. 그래, 네 이름은?”
“마, 마초라고 해요.”
“마초? 말여물 말이냐?”
내쳐 반문하면서도 골망태는 그의 성이 마가라는 곳에 주목했다. 신목원에 터를 잡은 고구려 유민들이 대부분 천방지축 마골피를 쓰니 드물지 않은 성씨였다.
“푸핫하. 아무려면 어떠냐. 자자, 반갑다. 일손이 달리니 당장 일을 시작하자.”
마초가 뭘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자, 골망태가 눈을 부라리며 등을 떠밀었다.
“멍청이! 저 사람들 하는 일이 안 보여? 수레 속의 쌀가마니를 창고로 나르란 말이다.”
“아, 예예.”
마초가 뒷머리를 긁으면서 수레 옆으로 접근하자, 인부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신참이 왔으니 일하는 것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쉴 요량이다.
마초가 그들을 흘낏 보면서 쌀가마니의 양쪽을 잡았다.
‘저 녀석이 쌀가마니 나르는 일은 처음 하는 모양이군.’
골망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수레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서 양쪽에서 가마니를 들어 수레 밖의 인부의 어깨로 올려 쌀가마를 나른다.
몇 가마라면 모르지만, 지금처럼 백여 가마를 나른다는 것은 사람 죽어날 만큼 힘든 일이었다.
신참이라면, 하루 쌀가마를 나르는 일을 하면 최소 며칠간은 끙끙 앓아누워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어깨에 올려 주는 쌀가마니를 지는 것만도 힘겨운데, 혼자서 쌀 한가마를 들기나 할까.
“응차!”
마초가 쌀가마를 양손에 단단히 잡고 덜렁 들었다.
“어어어?”
바로 옆에 있는 인부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러다가 놈이 힘이 달려 가마니를 놓치면 덤터기로 박살 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어엇?”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쌀가마를 덜렁 멘 마초가 힘든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허, 저런……?”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젊음의 힘일까. 오히려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힘은 늘어가는 것 같았다.
사실 쌀가마를 나르면서 요령이 생긴 것이었다.
“이 자식들, 뭐해? 빨리 아이를 도와서 쌀가마를 날라야 할 거 아냐?”
인부들이 허겁지겁 남은 쌀가마에 달려든 것은 아이가 십여 차례나 쌀가마를 나른 뒤였다.
“혀어, 저거 힘이 장사네?”
멍청이인 줄 알았더니, 아니 무식하면 힘도 세다더니.
골망태는 보물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우직하고 우둔해서 잔머리를 굴려 농땡이를 칠 줄도 모를 것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급료를 싸게 때릴 수 있다.
‘크흣흣. 다른 놈들은 아이가 일하는 걸 봤으니 급료를 비슷하게 줘도 끽소리 못할 거야. 그렇게 돈을 받아서는 꿀꺽…… 흐흐흐.’
골망태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흥. 저 감탄하는 얼굴 좀 봐?’
마초는 일이 생각보다 쉬워서 골망태의 태도를 살피고 있었다. 저 만족스런 입매를 보면 당장 잘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을 거의 마쳤을 때는 오정 때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다른 인부들이 마지막 쌀가마를 메고 창고로 들어가자, 마초가 골망태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어……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나요?”
“흐음. 점심때가 다 되었으니 밥이나 먹고 하자고.”
“네, 알았어요.”
후원과 맞닿은 춘양루 주방과 붙은 작은 골방. 거기가 바로 인부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고, 피곤할 때 잠시 쉬는 곳이었다.
“자자, 많이 먹어라.”
골망태는 신입 인부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특별히 주방에 몇 마리의 암탉을 고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푹 고운 암탉의 부드러운 살을 뜯으면서 마초는 잠시 울적해졌다. 주걸이 닭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을 떠올린 거다.
마초가 허겁지겁 고기를 뜯다 반쯤 남기고 동작을 멈추자, 골망태가 마초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자식. 왜 먹다가 그러고 있냐? 먹는 게 힘이다.”
“아, 아뇨. 실은 병든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분이 생각나서요.”
‘어엉? 이 녀석이 효자네?’
골망태는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가끔 약발이 떨어질 때쯤 해서 닭 한 마리만 안기면 놈은 감격해서 죽을 똥 말 똥 일을 할 것이다.
“커어, 요즘 세상에 드문 효자로고! 걱정 마라. 일 끝나면 한 마리 싸 줄 테니까.”
“고, 고마워요, 십장님.”
마초가 눈물이 글썽해서 재삼재사 머리를 조아렸다.
‘짜아식. 내가 고맙지, 뭐. 대신 네 급료는 내 거다.’
골망태는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입가에 띠었지만, 그 순간 마초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후원의 입구에서 수레가 구르는 소리가 뚝 그친 얼마 후, 주방으로 다가오던 발길이 근방에서 멎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주방에 일이 있으면 당연히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에서 사람을 찾아야 정상이었다.
‘거참, 꼭 누가 밖에서 말을 엿듣고 있는 느낌이네?’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몰래 엿들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큭. 처음 집 밖에 나오니 별생각이 다 드네?’
마초는 그렇게 생각하고 닭고기를 뜯는 데 열중했다.

‘어라? 병든 할아버지라고? 저 녀석한테는 병든 아비밖에 없잖아? 하기야 그 아비란 것도 아비라고 부르지도 못하지만 말이야.’
막 수레를 끌고 후원의 문으로 들어온 흉한 얼굴의 중년인이 무릎을 쳤다.
‘아이가 말하는 게 그놈인지도 모른다! 이 년간 소식이 없더니 마가장에 짱 박혀 있었던 거야.’
중년인의 입술이 절로 보기 싫게 비틀렸다.
수년 전, 신목원을 드나드는 어중이떠중이들의 틈에 섞여 들어온 보잘것없는 늙은이.
도박장에서 그자에게 사기를 치다가 놈에게 들통 나서 쫓겨난 것이다. 놈은 중원에서 도귀(盜鬼)로 유명세를 타는 도둑놈이었지만, 그건 나중에 안 일이었다.
이후, 토룡소에 숨어 들어간 그가 먹고살려고 벌인 짓이 바로 토룡을 잡아 파는 일이었다.
중년인은 흉측한 자신의 얼굴을 자신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꺼끌꺼끌하다. 역용한 얼굴이지만, 신목원에서 먹고살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후에는 각종 야채들을 나르는 일이 이어졌다. 볏짚처럼 삼나무 껍데기로 묶인 야채 묶음을 나르는 일은 무척 쉬웠다.
“야채를 들 때는 옆구리를 잡아야 해. 잎사귀 쪽을 잡으면 야채 망가진다?”
골망태가 노파심으로 주의를 줬지만, 처음에 몇 번만 시행착오를 겪더니 그다음에는 알아서 착착 잘도 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