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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9화)
3장 토룡소의 괴인(3)


일이 끝난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시각이었다.
골망태로부터 기름종이에 싼 통닭 한 마리를 받은 마초가 신바람 나게 집으로 향했다.
거의 십 리에 가까운 한적한 숲 속 길은 찬 모래바람이 휭휭 불어 대어 걷기도 힘들다.
마초는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통닭 꾸러미를 품속에 집어넣고 종종걸음을 쳤다.
그때,
“으헤헤. 아이야, 네가 가진 것이 통닭이 틀림없으렷다?”
흡사 까마귀가 우짖는 듯한 불길한 목소리였다.
마초의 흐릿하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싶은 순간, 어느새 흐리멍덩한 예전으로 돌아갔다.
“누, 누, 누구시죠?”
놀란 마초가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
거기, 길가에 흑의를 걸친 사십 대의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의 옆에는 작은 수레가 세워져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얼굴은 화상을 당한 것처럼 여기저기 얽어 있어 보기만 해도 흉악스럽다. 더욱이 반쯤 감은 듯한 눈에서는 새파란 흉광이 뻗치고 있었다.
‘참, 꿈속에서도 보기 무서울 만큼 흉측하구나.’
마초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놔라!”
“뭐, 뭘요?”
“이 새끼가 귀가 쳐 먹었나. 본 좌가 배가 고프니 네 통닭을 달란 말이야. 알겠어?”
중년인이 손에 든 쇠꼬챙이로 마초의 품속을 가리켰다.
‘이상한 아저씨로군.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통닭을 강탈하려고 하다니.’
마초는 흉한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뒤를 넘겨보면서 소리쳤다.
“어엇? 다, 당신도 내 통닭에 욕심이 있어요?”
‘어엉? 이게 무슨 소리야?’
중년인이 마초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후다닥! 마초가 옆으로 튀어나갔다.
“크흐. 숨바꼭질을 하자는 거냐?”
마초가 숲 속으로 들어가자, 중년인의 눈에 가소롭다는 기색이 들었다.
사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해도 대로변으로 튀어야 혹시 있을지 모르는 행인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숲 속으로 숨었다는 것은 그런 가능성을 지워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힐끔.
서두를 것이 없다는 태도로 습관적으로 수레를 살핀 중년인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휘리릭!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지만, 중년인의 발걸음은 빨랐다.
마초와는 거의 십여 장 정도의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순식간에 꼬리를 잡힐 것이다.
그걸 깨닫자 마초가 양손과 발목에 달린 고리를 떼어 던져 버렸다.
‘어엉? 저놈이?’
흉면의 중년인은 금방 줄어들던 거리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무공도 모르는 애를 쫓는 데 경공을 펼칠 것도 없다. 그런데 방심하던 사이에 아이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건 도대체가?”
탄식을 발한 중년인이 그제야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없어!’
중년인은 바람처럼 숲 속을 달려 마초의 행적을 찾았다.
삼백 장 길이의 숲 속의 끝에 도달한 중년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아이의 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자신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다.
‘그 녀석이 주걸에게 경공을 배웠다고 해도 겨우 이 년이야. 말도 안 돼.’
중년인은 한 달에 한 번, 평소처럼 춘양루에 토룡주를 납품하러 갔다가 아이의 이름을 듣고 무릎을 쳤었다.
마초!
신목원 주민이라면 대부분 신목삼가의 직계를 빠듯하게 알고 있지만, 마가장에서 쉬쉬해서 시비 출신 소생의 마초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유로 마초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주걸이 마가장에 침입했다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주걸의 뒤를 쫓아 마가장에 잠입한 그는 마초가 이복형에게 당하는 꼴은 봤지만, 주걸이 마초의 오두막에 숨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일이 되느라고 병든 할아버지 운운하는 아이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럼 아이를 잡으면 아이의 입을 통해 주걸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아이니까 녀석을 구슬리건, 위협을 하건 극히 쉽게 말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가 다람쥐처럼 잽싸게 도망쳐 버린 거다.
‘자식이 숲 속에 숨어 있어!’
사진(史眞)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그 시각, 마초는 숲 속을 돌아 처음의 위치에 와 있었다.
“크큭. 그 사람은 숲 속에서 나를 찾느라 눈이 벌게서 돌아다니겠지.”
그자의 목적은 통닭 한 마리가 아닐 것이다.
그자가 무슨 목적으로 길을 막았을까.
수레에 놓인 커다란 구박을 내려다보던 마초의 눈이 번쩍 빛났다.
구박 안에는 반쯤 진흙이 차 있었고, 어른 손가락 굵기에 팔뚝 길이의 토룡들이 마구 엉켜 꿈틀대고 있었다.
‘그럼 저 사람은 토룡소의 괴인?’
그런데 그자가 왜 춘양루에 토룡을 납품하지 않고 마초를 기다린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주방 밖에서 엿들은 자가 저 사람이라면……?’
하지만 마초가 한 말이래야 병든 할아버지 얘기를 꺼낸 것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을 떠올린 마초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그래!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목적이야…….’
마초가 황급히 몸을 움직이려다가 순간 움찔했다. 토룡은 그자의 생계 수단이다. 그렇다면 수레를 엎어 버리면 그자는 지렁이를 잡아 구박에 가두느라 약간의 시간을 지체할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렇지 않은가.
마초 그 생각이 들자마자 수레를 번쩍 들어 엎어 버렸다. 졸지에 횡액을 만난 지렁이들이 엎어진 데서 벗어나려고 아우성이었다.
‘됐어!’
빙글 입가에 미소를 지은 마초가 도로를 달려가려다 이내 생각을 바꿔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도로를 이용하면 자신의 흔적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이 지렁이, 아니 미꾸라지 같은 놈!’
눈빛도 흐리멍덩하고 멍청하기까지 한 녀석이 의외의 행동을 보인다. 놈이 살수처럼 은신술을 익혔을 리가 없다는 것은 녀석에게 무공을 가르쳤을지도 모르는 주걸을 생각해도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에이, 이 새끼가 대체 어디로 튄 거야?”
투덜투덜 잇새로 욕설을 뱉은 사진이 수레가 있는 곳으로 나오다가 눈이 홱 뒤집혔다.
“이, 이,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사진은 뒤집힌 수레에서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사방으로 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이가 갈렸다.
사실 토룡소의 지하 늪에 서식하고 있는 지렁이들은 지렁이답지 않게 감각이 뛰어난데다가 동작이 기민해서 한 마리 잡는 데도 온갖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무려 수십 마리다. 한 달 내내 밤잠을 줄여 가면서 지렁이 사냥에 나서야 먹고살 만한 돈이 벌리는 거다.
밤잠을 줄일 수밖에 없는 건 놈들이 늪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가 활동을 개시하는 시각이 오밤중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애써 잡은 지렁이를 놓친다면 밥줄이 끊어진다. 가벼이 내버려 두고 갈 일도 아니었다.
“제, 제기랄! 제발 좀 잡혀다오.”
수년간 산전수전을 겪은 놈들이라 쉽게 잡히지가 않는다. 사진은 거의 반시진이 지나서야 지렁이들을 잡아 구박에 가둘 수 있었지만, 절반은 죽거나 땅속에 파고들어 어쩔 수 없었다.

비슷한 시각, 허겁지겁 통닭을 뜯던 주걸은 이어진 마초의 얘기를 듣고 그만 눈을 감고 침묵했다.
‘틀림없이 사진, 그놈이다.’
생김새는 다르나, 체구와 눈빛이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사진 그자였다.
하지만 주걸은 급박한 때인데도 움직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미 골수까지 스며든 지병이 그의 다리를 붙들어 매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서……?”
“휴우…… 초(草)야…… 사람의 인생이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는가 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단다.”
“그럼……?”
‘지금은 하지 말아야 할 때구나…….’
주걸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때리는 생각.
그게 아니었다. 놈이 아이의 뒤를 쫓아왔다면 자신을 해한 다음에 아이를 그대로 둘까?
‘아니야. 놈의 지독한 성격상 아무리 아이라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어.’
결심을 굳힌 주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끄으으…….”
그러나 뼈골이 으스러지는 통증에 주걸은 이를 악다물었다.
“저, 절대 나를 따라오면 안 돼!”
“할아버지……?”
“헛헛. 그놈은 나에게 철전지 원한을 가지고 있구나. 놈을 어떡하든 바깥으로 유인할 테니…….”
주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쾅, 푸당탕!
장지문이 소리 내어 으깨지면서 방 안에 부서진 문살이 파편처럼 쌓였다.
“흐흥! 도귀 주걸!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으으음. 늦었구나.’
사진의 말에 주걸이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몸이 멀쩡해도 대적하지 못할 자다. 그런데 이미 병마가 깊이 스며든 몸은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다.
‘틀렸어…….’
주걸은 이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의 주걸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이렇게 쉬운 일이 있을까. 벌써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줄 알았더니, 한심스럽게도 통닭이나 뜯다가 자신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도망치려고 하다니.
“흐흐흐. 도망칠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좋을걸? 잘못하면 애 다쳐.”
사진은 의기소침한 주걸을 보면서 위협을 하였다. 사진다운 말이었다.
“오오, 오랜만에 자네를 보니 참으로 반갑군.”
‘엉? 이 자식이 못 먹을 걸 처먹었나?’
사진은 태연자약한 주걸의 언행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자, 이왕 밥 먹을 때 왔으니 이거나 뜯으시게.”
“어헉!”
주걸이 마지막 남은 뼈다귀를 던지자, 혹시 뭔 수작을 부리나 싶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투툭.
약간의 살점이 붙은 닭 뼈다귀가 물러난 사진의 발치에 떨어져 소리를 냈다.
‘엉? 아닌가?’
사진은 심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허헛. 먹게. 난 자네처럼 사기는 치지 않네. 먹을 자신이 없으면 그냥 놔두고 나를 죽이시게.”
“하. 이거, 도귀 주걸이 해탈을 했네?”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주걸을 죽이기 위해 앙앙불락하는데, 상대는 생의 미련을 버린 것처럼 무덤덤하다.
“씨발!”
사진은 발 앞에 떨어진 닭 뼈를 들었다. 뼈다귀에 달려 있는 살점들이 어서 먹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좋아! 이 도둑놈아! 이 뼈다귀를 다 뜯은 때가 네가 우화등선하는 때야.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와그작!
뼈다귀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 사진의 눈알이 불그죽죽 빛났다.
“이 도둑놈아! 이젠 끝이야!”
사진이 허리춤의 쇠꼬챙이를 쑥 뽑아 들었다. 끝이 양쪽으로 갈라진 쇠꼬챙이는 지렁이를 잡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것이었다.
‘이걸로 콱! 저 자식의 목줄을 집는 거야!’
사진은 쇠꼬챙이로 놈의 목줄을 집는 순간, 놈이 보잘것없는 도둑놈의 본색을 드러내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사진이 꼬챙이를 들어 올리려고 할 때, ‘끄으으…….’ 하는 신음 소리와 더불어 주걸의 입술 사이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혀를 깨문 모양이었다.
“헉! 하, 할아버지!”
마초가 주걸의 팔을 잡고 비명을 질렀을 때, 주걸이 무슨 힘이 남았는지 마초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사진, 모자란 이놈을 부탁하네!”
“뭣, 이, 이게 뭔 소리……?”
사진이 자기도 모르게 마초를 흘낏 돌아보면서 속으로 침음했다.
“난 병마가 골수까지 치밀어 자네가 손을 안 쓰더라도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네.”
이미 주걸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 머문 희미한 미소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개지랄!”
본의 아니게 주걸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사진이 빽 하니 소리쳤다.
‘제, 제기. 이건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셈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진이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저으려고 할 때,
“개새끼!”
마초가 방 한쪽에 있는 녹이 팍팍 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크흐. 그것도 칼질이라고! 허깨비가 춤을 추는 것 같구나.”
사진은 코웃음을 날리며 마초의 칼을 피하면서 손가락을 튕겨 도면을 튕겼다.
놈의 엉성한 칼질을 보면, 그 정도만 해도 칼을 떨어뜨리고 충격을 받은 한 손을 붙잡고 쩔쩔대며 물러설 것이다. 그만큼 사진의 손가락은 삼 성의 진력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이 기대한 것처럼 팅! 하고 도면을 두들기는 소리는 없었다.
사진은 자신의 손가락이 묘하게 빗나가면서 마초의 칼이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것을 알았다.
“허엇!”
사진은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려다 정면으로 밀려오던 칼이 한 바퀴 휘돌며 괴이한 궤적을 그리자, 뒤로 납작 몸을 숙이면서 그 반동으로 옆으로 튀어나갔다.
파삭!
이를 악문 마초의 칼이 벽면을 스치면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헉.”
경호성을 내지른 사진의 쇠꼬챙이가 떨어지는 칼을 휘어 감고 밀어붙였다.
찌르르…….
그러나 오히려 마초의 칼을 휘어감은 사진의 기형도가 이 앞으로 쭉 달려가면서 사진의 몸마저 끌려갔다.
‘윽! 이 새끼가 힘은 장사네?’
사진은 황당했지만 끌어 올린 내력을 배가시켰다.
그 순간, 마초의 왼손가락이 버들가지처럼 휘청 휘어지면서 사진의 옆구리를 찍어 붙였다.
그러나 사진의 몸이 팽이처럼 한 바퀴 도는 순간, 마초의 공격은 허사로 돌아갔다.
기형도와 마초의 칼이 떨어지면서 기기깅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마초가 허리를 살짝 낮추면서 이번에는 사진의 오금을 걸었다.
기형도를 떨쳐 마초의 허리를 베어 가던 사진이 도리 없이 오금이 걸려 뒤로 공중제비 하는 찰나, ‘끄윽’ 소리를 내며 마초의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치며 넘어졌다.
사진이 오 성의 공력으로 자신의 오금을 걸은 마초를 잡아당기어 내팽개친 것이었다.
‘허어…… 아이가 내공이 이십 년만 있었어도 낭패를 당하는 것은 나였어.’
사진이 방바닥에 머리를 박은 마초를 노려보면서도 등줄기가 써늘해졌다.
“쳇.”
마초는 상대의 공격이 이어지지 않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천지종횡도에 마가장의 피 부인이 사용하던 수법을 유효 적절히 사용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새끼! 이제 된맛을 보여 주지.”
사진이 기세등등하게 노려보면서 한 걸음 더 다가섰을 때,
“그만! 그만…….”
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주걸의 음성이 끊어질 듯 방 안을 울렸다.
“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주걸을 돌아보았다.
주걸은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는 눈으로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없다.
“죽었어.”
사진이 혀를 찼다. 자살한 주걸을 보는 사진의 눈꼬리가 시시각각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죽은 주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마초가 오열을 터뜨렸다.
죽음.
무림을 살자면 수없이 접하는 흔한 풍경이다. 그러나 사진은 애써 무심하려고 했지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씨발.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사진은 스스로의 반응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주걸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