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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13화)
5장 눈만 보면 안다(2)


“뭐라고? 마대공자가 앵앵 소저를 찾는다고?”
“예, 예. 총관어르신. 품속에 돈이 두둑한 모양입니다요.”
“그 자식이 어디서 돈이 나서……?”
송결은 마가제일장이 쫄딱 망해서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목원 삼가의 동태를 모른다면 신목원에서 장사할 생각도 말아야 한다.
‘제길. 거절하면 그자가 생난리를 피울 테고…….’
껄끄러운 일이었다. 장사, 그것도 술장사를 하려면 뒤끝이 깨끗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런데 망한 집안의 자식이 춘양루에 자주 드나드는 것도 남 보기 좋지 않지만, 녀석이 찾는 건 춘양루의 요화 앵앵이 아닌가.
‘가만있자. 놈이 도박이라면 환장을 하잖아?’
송결은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그 친구를 부르자.’
한편, 비슷한 시각 마초는 골망태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 버러지, 아니 지렁이 새끼야! 뭐, 제멋대로 놀다 와서는 다짜고짜 실내에서 청소나 하겠다고?”
주변에선 몇몇 인부들이 구경하고 있었지만, 골망태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좋은데다 순진하기까지 해서 놈이 예쁘게 보인 건 사실이었다.
녀석을 심할 정도로 부려 먹었으니 하루쯤은 끙끙 앓을 수도 있다고 이해도 했다. 그런데 총관의 지시라면서 청소나 하겠단다.
말없이 얼굴을 든 마초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였다. 입술이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지면에 부딪친 피부가 시뻘겋게 벗겨져 있는데, 거기에도 핏물이 송글송글 매달려 있었다.
스윽…….
마초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손등으로 입술의 피를 훔쳤다.
얼굴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꼭 땅벌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쏘아 대는 것 같았다.
“헤에…….”
마초는 웃었다.
“에이, 이 멍청한 자식아! 사내자식이 남한테 맞았으면 목숨을 걸고 대드는 맛도 있어야지.”
골망태는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저 비실비실 웃는 놈에게 신경을 쓰는 자신이 우스웠다.
마초가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골망태가 얼굴을 홱 돌렸다.
“에이, 순진한 놈인 줄 알았더니 말짱 바보 새끼였어.”
‘크흐. 나도 이젠 제법 자연스러워졌어.’
마초의 터진 입술에 기괴한 미소가 떠돌다 금세 꺼져 들었다.

춘양루는 일 층은 주루이고, 이 층은 도박장이다. 붉은 융단이 부드럽게 깔린 복도 양쪽에는 대여섯 개의 밀실이 있고, 그중 하나에 마조린이 죽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호오? 요새 대공자께서 경기가 좋은 모양이외다?”
밀실에 들어온 송결이 단정한 얼굴에 넉넉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걸자, 마조린이 대뜸 소리쳤다.
“이거 보슈. 앵앵은 왜 안 불러 주는 거요?”
마조린이 눈을 살벌하게 치켜뜨면서 소리를 질렀다.
‘새끼! 집안은 망하기 직전인데, 계집에게 홀딱 빠진 주제에?’
마음 같아서는 놈의 바지를 벗겨 놓고 볼기짝을 후려치고 싶지만, 아무리 같잖아도 마가의 대공자다. 폐인이 거의 다 되었다는 소문이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아직도 한가락 할 것이다.
“아핫핫. 안 불러 주다니요? 내가 앵앵에게 대공자의 말을 했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그래요? 그런데 왜 당신이 먼저……?”
“아, 무슨 말씀. 대공자님도 잘 아시겠지만,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여인의 마음이 아니겠소. 그러다 보니 몸치장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요. 그래서 공자님이 무료하실까 봐 그동안 말동무나 해 드리려고 온 거지요.”
“아아…… 앗핫핫. 그게 그런 거였군.”
마조린이 짐짓 대소를 터뜨렸다. 신목제일미 앵앵의 연인답게 대범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다.
‘자식! 앵앵이 연인으로 생각한다니 좋아서 까무러치는군.’
마조린의 속마음을 빤히 들여다본 송결이 속으로 비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휴우, 실은 요새 앵앵 소저가 걱정이 많아 얼굴이 크게 상했소. 그러다 평소에 연모하는 대공자님이 오셨다니 당장이라도 달려오고 싶겠지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여인의 마음이라…… 허, 이런! 내가 왜 오늘은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송결이 주먹으로 입을 콩콩 찧는 시늉마저 하자, 마조린은 그 걱정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앵앵 소저의 걱정이라니 그게 무엇이오?”
“아, 이런…… 내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소. 이만 못 들은 척하시지요.”
말할 듯, 말할 듯 하면서도 말을 돌리니 괜히 진이 빠진다.
“나 마가의 대공자요! 아무리 요즘 집안의 사정이 조금 안 좋다고 하지만,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소?”
마조린이 가슴을 퉁퉁 두들기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쯧. 조금 안 좋을 정도가 아니지.’
송결은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꺼냈다.
“실은 앵앵 소저가 본 루에 기녀로 들어온 이유가 있었어요. 크윽. 쓸데없는 소린지 몰라?”
“이, 이보시오, 총관!”
마조린은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 아니오. 실은, 실은 말이오. 집안이 큰 빚을 지고 있어 그 빚을 갚으려고 본루에 들어왔는데, 근래 그 빚쟁이란 자가 당장 은자 천 냥을 갚으라고…… 갚지 않으면 빚을 갚을 때까지 몸종으로 삼겠다고 그런다는 겁니다.”
“그, 그런 무도한 자가! 대체 그자가 누구요? 내 당장 그자를 잡아 그런 짓을 못하도록 단단히 버릇을 고쳐 주겠소.”
의외로 별일이 아니었다. 총관이나 앵앵이야 그런 일을 가지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고민에 휩싸이겠지만, 마조린은 아니다.
굳이 마가제일장이란 이름을 내세우지 않아도 좋았다. 놈은 틀림없이 빈궁한 사람들의 등을 처먹는 고리대금업자가 분명하지 않는가.
마조린이 그자에게 손을 쓰면 마가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만방에 과시하는 쾌거가 될 것이다.
“휴우…… 그런데 그자가 그리 쉬운 자가 아니외다.”
“으휴! 정말 답답합니다! 대체 그자가 누구이기에 그렇게 뜸을……?”
“자, 장가장의 이공자 장룡입니다!”
송결이 말을 내뱉다가 노랗게 질린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함부로 입에 올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비룡장가장의 장룡(張龍)!
비록 둘째로 태어나 가통을 잇지는 못하지만, 비룡장가장의 잠룡이라는 장룡이다.
소문에는 감가천하장의 감대형과 필적할 만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지만, 문제는 세 가문의 싸움은 가주나 가문의 후계자인 장자 위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비룡장가장의 대공자 장각(張角)은 애초부터 감대형의 적수로는 미흡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상태.
장가장에서 감대형과의 싸움을 일찌감치 포기한 후 감대형이 마조린을 가볍게 꺾고 중원으로 진출하게 되자, 사흘밤낮을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감가장의 정문에서 버티면서 감대형 나오라고 생난리를 부렸다는 자신만만하고, 흉포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컥……. 앵앵에게 눈독을 들이는 자가 그자라면…… 제기랄…….’
마조린이 그만 찔끔해서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완전히 똥 밟은 표정이었다.
‘크흥. 네가 그러면 그렇지.’
송결이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올 때가 됐는데……?’

“에이씨, 그 새끼들이 사기를 친 게 틀림없어.”
복도가 떠들썩해지면서 누군가 된소리를 쳤다.
“맞아요. 누가 도박의 귀신인 고 대인의 돈을 딸 수가 있겠어요?”
곧장 맞장구를 치는 얄팍한 목소리는 고대팔을 데리러 간 조비였다.
‘옳지. 시간은 제대로 맞췄군.’
송결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눈이 커진 마조린이 귓속말로 물었다.
“혹시 저 사람들은……?”
“아, 예. 월하마방(月下馬房)의 주인인 고대팔 맞습니다.”
“조, 조용히?”
송결이 눈치도 없이 큰소리를 내자, 마조린은 똥줄이 탔다.
덜컥!
그때, 그들이 있는 밀실의 문이 떨어질 듯 열리면서 비대한 거한이 찐빵 같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이, 송 형! 거기서 뭐하쇼?”
‘크윽. 진짜 무지막지하군. 어째 사람이 저렇게 뚱뚱할 수도 있단 말인가.’
마조린은 소문보다 훨씬 비대한 고대팔(高大八)을 보면서 실소를 흘렸다.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큰 얼굴에 볼살이 떨어질 것처럼 축 늘어지고, 턱살은 삼겹살은 저리 가라였다. 더욱이 그리 덥지도 않은 날씨에도 얼굴에 번지르르한 땀방울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 연신 땀을 훔치는 그를 보니, 대체 저런 몸으로 걷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손목은 통나무 같고, 불룩 튀어나온 뱃살은 쌍둥이를 임신한 만삭의 임부 같았는데, 눈은 밀가루 반죽에 송곳 구멍을 뚫어 넣은 것 같았다.
“엉? 혼자인 줄 알았더니 손님이 있었네?”
고대팔이 그제야 마조린을 발견했는지 처진 눈두덩을 애써 틀어 올렸다.
“고 대인, 오랜만이오. 안 보는 새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군요.”
“그, 그렇지요? 하, 정말 미치겠소. 이래 봬도 내가 신목원에서는 도박의 귀신이라고 불리지 않소? 그런데 그놈만 만나면 쪽박을 차니, 아무래도 놈이 뭔가 술수를 부리지 않고서야.”
‘크윽. 도박의 귀신이라고? 그렇군. 도박에 미쳐 죽은 귀신이라면 말이 되겠지.’
마조린도 워낙 노름에 빠져 지내고 있어 어렵지 않게 고대팔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도박을 했다 하면 열에 아홉은 잃는데도 자신이 돈을 잃은 것은 그날따라 재수가 옴 붙어서 그랬다느니, 상대가 사기를 쳤다느니 길길이 날뛰다가 또 어느새 도박장에 나와 돈을 잃는 것이다.
그가 주인인 월하마방(月下馬房)이란 곳이 신목원의 십여 개 마방 중 가장 큰 곳이지만, 그렇게 돈을 잃고도 버티는 것이 용했다.
꿀꺽.
마조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넘겼다.
만약 저자와 도박을 해서 돈을 따면 앵앵의 빚은 쉽게 갚을 수 있을 게다. 그렇다면 괜히 장룡이란 놈과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돈만 갚으면 앵앵은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
일이 되느라 그랬을까, 아니면 송결도 앵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까, 송결이 마조린에게 슬쩍 눈짓을 하면서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실은 이분은 마가장의 대공자시오. 어떻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두 분이 한 번 패를 섞어 보시는 것이?”
“뭐요? 마가장의 대공자라고요?”
고대팔이 믿기지 않는 눈으로 마조린을 힐끔거렸다. 누가 봐도 우연히 만난 티가 역력하다.
“근데 말이오. 둘이서 하라는 소리요?”
고대팔이 은근슬쩍 바람잡이는 없냐고 묻는다.
줄곧 돈을 잃어 줘서 호구의 마음을 풀어 준다. 바람잡이의 역할은 그렇다.
그때,
“케헴!”
감기 걸린 새끼 양이 재채기하는 듯한 헛기침 소리였다.
“나 벽창호요. 들어가도 되겠소?”
‘벽창호라고?’
마조린의 뇌리에 빈대떡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신목원에 유일한 장의사의 주인이다. 성질이 미친개 같아 은연중 사람들이 무서워하지만, 그의 뒤에는 감가천하장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장의사를 차릴 생각도 못한다. 그야말로 장의사 일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벽창호는 신목원 굴지의 부호 중 한 사람인데, 그런 그가 춘양루를 찾는 것은 앵앵 때문이었다.
“오오, 벽 가주. 마침 잘되었소. 그러지 않아도 사람이 부족해서 판을 못 벌리고 있는 상태요.”
송결이 자기 마음대로 벽창호를 불러들였지만, 마조린도 내심 잘되었다 싶었다. 아니, 어쩌면 억세게 재수가 좋은 거다.
벽창호 역시 고대팔처럼 돈을 물 쓰듯 쓰면서 도박만 하면 돈을 왕창 털리는 소문난 호구가 아니던가.
“자자! 이 좋은 날에 술이 없으면 되겠소?”
고대팔이 메기 입술을 크게 벌리며 소리치자, 송결이 바깥을 향해 외쳤다.
“밖에 누가 없느냐?”
‘응? 나한테 하는 소린가?’
수수 빗자루를 들고 복도를 청소하던 마초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서 있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송결의 모습이 보였다.
“어? 너밖에 없느냐?”
“아, 예예.”
“너, 그럼 말이다. 주방에 가서 토룡주 한 단지하고 큰 잔을 세 개만 가져오너라. 안주는 통닭 한 마리면 된다.”
“예? 토룡주에 통닭을요?”
“커험. 그래, 내가 달랬다고 하면 두말없이 줄 게다. 자, 냉큼 갔다 오너라.”
텅!
마초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송결이 재빨리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