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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14화)
5장 눈만 보면 안다(3)
주방은 한창 바쁜 시각이었다. 점심시간으론 이른 시간인데, 벌써 꾸역꾸역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춘양루는 주루와 기루는 물론 도박장도 겸하는 곳이라 식사를 하고 도박장에 들르는 손님도 꽤 있었다. 그중에는 신목제일미인 앵앵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도 많은 건 물론이었다.
신목원은 원래 감칠맛 나는 국수와 진흙을 발라 구운 통닭, 술은 토룡주로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주방 뒤편의 널찍한 공간을 차지한 숙수가 기다란 도마 위에서 양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들고 국수발을 만들고 있었다.
타다다닥!
밀가루 반죽이 도마 위를 칠 때마다 국수 가락이 가닥가닥 갈라지면서 어느새 얇은 국수발로 탈바꿈한다.
겨우 몇 번이나 반죽을 도마 위에 쳤는가 싶더니, 도마 위에 국수발을 내려놓은 숙수가 식칼을 들고 적당한 길이로 국수를 잘라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는 것이다.
“허야. 정말 콩 튀기는 속도만큼 빠르네?”
마초는 소리 내어 감탄했다. 무공의 고수라도 저런 속도로 국수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잠시 쉴 틈이 생겼을까, 가마솥에서 머리를 든 숙수가 마초를 째려보면서 소리쳤다.
“야, 새꺄! 너 뭐하는 새낀데 주방에서 얼쩡거리는 거야?”
능수능란하고 멋진 솜씨와 달리 얼굴 피부가 우둘투둘하고, 눈이 퉁방울 같은 것이 꼭 두꺼비를 연상시킨다.
‘그것참, 어째 요리와는 전혀 어울리는 생김새가 아니네?’
무엇을 기대했을까, 스스로도 그걸 모르면서도 마초는 왠지 실망스런 마음에 삐딱하게 대꾸했다.
“아, 일이 있어 온 거 아녀요. 총관님이 토룡주 한 통에다가 통닭 한 마리, 큰 잔 세 개를 가져오라고…….”
“됐어, 인마! 이 새끼가 호랑이 뼈를 삶아 먹었나. 말투가 삐딱하네?”
마초는 아차 했다.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신의 삼 할은 숨겨야 한다. 그 때문에 일부러 멍청한 체 가장한 것이 아니던가.
마초는 서슴없이 뒤통수를 긁으면서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에헤헤. 총관님 말투를 흉내 낸 거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새끼, 징그럽다.”
왕수(王守)는 손을 내저으면서 회계대 곁에 서 있는 점소이를 가리켰다.
“다음부턴 그런 일은 저 여웅에게 얘기해라. 야, 여웅! 너 이리 와 봐.”
“옛!”
여웅이 빠르게 다가서자, 왕수가 지시를 했다.
“토룡주 한 단지하고, 통닭 한 마리, 큰 것으로 잔 세 개를 저 녀석에게 들려 보내라.”
“따라와!”
여웅이 주방 옆에 있는 술 창고로 들어갔다. 술 창고에는 수십 개의 커다란 항아리가 지면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여웅이 그중 맨 앞의 열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켰다.
“저거 들고 올라가. 안주하고 술잔은 내가 가져갈 테니.”
여웅이 공기돌을 드는 일인 것처럼 아주 쉽게 말했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센 여웅도 술독을 들기는 하지만, 저걸 어깨에 메고 이 층으로 올라가라면 진이 다 빠져 버릴 것이다.
‘새끼. 네가 천하장사라고 소문이 났다만, 어디 두고 보자.’
여웅은 그런 생각으로 마초의 행동을 주시했다.
마초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술독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양쪽 손잡이에 양손을 대고 힘을 썼다.
“끄응차!”
마초가 힘을 쓰자마자 항아리가 번쩍 들리면서 마초의 왼쪽 어깨에 턱 올라앉았다.
“여어, 그 자식 진짜 힘이 장사네?”
그 소리는 술 창고의 입구에서 났다. 주방장 왕수가 놀랍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술독을 둘러메고 다가오는 마초를 응시하고 있었다.
“새끼가 힘은 장사지만,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냐.”
여웅이 볼멘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마초가 주방으로 지나 주루 안으로 가로질러 성큼 이 층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때, 이 층에서 막 내려오던 조비가 모른 척하고 비틀하면서 마초와 부딪쳤다.
“어어어?”
마초가 갑작스런 충돌에 몸을 뒤로 비틀하면서 넘어졌다.
여웅과 조비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이제 쾅! 소리와 더불어 술독이 박살 나면서 넘어진 마초가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벙벙해 있을 것이다.
“아이, 그 새끼!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는……?”
조비가 미리 선수를 치다가 그만 째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뒤로 넘어가던 마초가 어느새 털퍽 주저앉아 술독을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새끼! 정말 운수는 끝내주는구나.’
여웅은 자신이 엉겁결에 조비와 부딪쳤다 상상해 보니,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여지없이 술독을 박살 내고, 좔좔 바닥을 흐르는 술 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있을 것이다.
“휘유. 큰일 날 뻔했네?”
마초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아등바등 다리를 일으켜 덜렁 술독을 도로 어깨에 올렸다.
“새끼! 조심해야지!”
조비가 지나치는 한마디를 남기고 재빨리 뺑소니쳤다.
‘자식이 나한테 골탕을 먹이겠다?’
마초의 흐릿한 눈동자에서 번갯불 같은 광채가 튀어 오르다가 금세 꺼져 버렸다.
“헤헤, 진짜 조심해야겠네요.”
“어구, 이 바보 자식! 빨리 올라가기나 해!”
여웅은 바보스런 마초의 행동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등을 떠밀었다.
“으흑!”
여웅은 마초의 등에 손을 대는 순간, 뼈골을 얼릴 듯한 냉기에 그만 진저리를 쳤다.
‘크으. 이건 얼어붙은 시체를 만지는 것 같구나.’
여웅은 마초의 등에 손을 대자마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마초가 밀실에 들어가 술독을 내려놓자, 고대팔의 퉁방울 같은 눈에 놀라움이 서렸다.
덩치는 대충 어른을 방불케 하지만,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묵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술독으로 저리 쉽게 다루다니.
“자자, 옆 탁자에다 안주를 차려 놓아라.”
송결의 말에 고대팔이 슬쩍 왼쪽 옆에 앉은 벽창호를 곁눈질했다.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마조린도 마초를 흘낏 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놈인데……?’
마조린은 당장 마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삼 년 전의 마초는 비리비리한 체구지만 눈빛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 언뜻 인상이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체구도 그렇고, 눈빛이 죽어 있는 것이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이 판에 내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해!’
마조린은 앵앵의 얼굴에 떠오를 눈부신 미소를 상상했다.
오늘은 정말 억세게 운수가 좋은 거다. 신목원의 호구로 알려진 두 사람이 돈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벌컥, 벌컥!
그러는 사이에도 고대팔이 커다란 주발에 담긴 술을 아낌없이 아가리에 부어 대고 있었다.
‘크흣. 술에 취하면 판단이 흐려지는 건 인지상정, 정말 어리석은 자로구나.’
마조린의 신경이 우측에 앉은 벽창호에게 쏠렸다.
놈은 목젖을 꿀꺽대면서도 손이 술잔에 가지를 않는다.
‘좋아! 저자는 행여 술에 취해 돈을 잃을까 봐 조심하고 있는 거야.’
마조린은 이 자리에서는 벽창호만 신경 쓰면 될 것으로 단정했다.
“자자, 시작해 봅시다!”
마조린이 좌중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토룡주를 벌써 몇 잔이나 연속으로 마셔 댄 고대팔이 입가를 쓱 문지르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게슴츠레한 눈빛에는 곧 굴러 들어올 황금덩이를 떠올리는 듯하다.
송결이 미리 얘기가 된 듯 모두 일부터 십까지 모두 삼 조, 삼십 개의 골패를 하얀 보가 덮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 먼저 돈을 바둑돌로 바꿉니다.”
그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품속에서 은자 꾸러미를 꺼내 올려놓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바둑돌 한 개가 은자 한 냥이오. 일단 삼백 냥씩 가지고 시작합니다. 세 개의 패로 십, 이십을 짓고, 남은 끗수나 십을 짓지 못하면 세 개를 합친 끗수가 높은 쪽이 이기는 거요. 두 번째 패부터 돈을 걸고, 세 번째에 포기하더라도 돈은 돌려주지 않소. 아참, 점수가 안 나오는 망통(亡通)은 제일 높은 끗수가 나오는 판을 먹는 겁니다?”
제일 높은 끗수는 구이고, 망통은 십이나 이십, 삽심을 지어 끗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최고 끝수가 나오는 판에 망통이 함께 나올 확률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없으란 법도 없으니 보통 재미로 만든 규칙이었다.
“이를 말이겠소!”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자와 은자를 바둑돌과 바꾼 세 사람이 삼십 개의 패를 하나씩 확인한 다음, 순번대로 먼저 마조린이 양손으로 패를 섞기 시작했다.
타다닥!
패를 섞는 마조린의 손길은 번갯불에 콩 튀기듯 빨랐다.
탁!
첫 번째의 패가 세 사람 앞에 놓였다.
“끄으음.”
살짝 자신의 앞에 놓인 패를 들여다본 고대팔이 돌 열 개를 덜어 앞으로 내밀었다.
“열 냥!”
첫 번째에 열 냥을 건 고대팔이 막판엔 이십 냥을 걸었다. 합쳐서 삼십 냥.
다른 사람이 쫓아가려면 이십 냥을 더 걸어야 한다.
“아, 씁. 난 죽었어.”
벽창호가 손을 들었지만, 마조린은 자신 있게 이십 냥을 더 걸었다.
“핫, 이런 또 한 끗 차이로 먹네?”
마조린은 신이 났다. 처음에는 신중하던 벽창호도 판이 돌아갈수록 점점 열에 받혀 거침없이 돈을 걸고 있었다.
“제기, 돈 안 되네!”
“컥! 이게 뭐야? 아이구,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아이구, 또 한끝이네?”
두 번째 패를 받으면 무조건 돈을 걸어야 하지만, 세 번째에 포기를 해도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판 위에 쌓인 돌을 보니 벽창호는 반 이상 잃었는데, 그가 잃은 돌은 거의 마조린이 따고 있었고, 고대팔은 처음과 엇비슷했다.
‘크흣…… 아홉 끗! 흐흐. 승부는 끝이야.’
마조린은 자신의 손아귀에 든 세 개의 골패를 열심히 보면서 상대의 패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자, 삼백 냥 추가!”
촤르르!
돌 구르는 소리가 돈 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지막이었다. 마조린이 가진 돈은 모두 오백 냥, 첫 번째에 삼백 냥을 걸었으니 전액을 한 번에 건 것이었다.
“오, 오백 냥?”
벽창호는 떨떠름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돌을 세어 보았다. 세어 보나마나 겨우 남은 건 이십여 개. 마조린을 쫓아가려면 그만한 은자를 돌로 바꾸어야 한다.
“크윽. 오늘은 왜 이렇게 패가 안 붙는 거야?”
벽창호는 마조린과 고대팔의 눈치를 살폈다. 마조린은 전액을 마지막 한 번에 걸었을 만큼 자신만만한 표정이고, 고대팔은 무척이나 망설이는 표정이다.
어느 쪽이 진짜냐!
“아, 쓰벌! 모르겠다. 돈이 인생의 전부라더냐!”
벽창호가 호기롭게 외치면서 품속에서 돈을 꺼내 남은 돌 위 올려놓았다.
벽창호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고대팔의 살찐 얼굴이 푸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크크. 여기서 끝내자 이건가?’
고대팔이 고민하는 얼굴로 왼손을 천천히 들어 턱에 받히고 뚫어질 듯 돌무더기를 노려봤다.
‘제길! 저자는 왜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마조린은 벽창호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시간을 끌자, 무슨 수를 쓰지 않나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다른 패를 어디 숨겨 놓고 바꿔치기하는 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큭. 쓸데없는 생각. 내 패가 얼만지 알아야 수작을 부릴 텐데…… 흐으. 내 패는 아홉 끗이야!’
그것도 십, 십, 구(九)! 십을 두 번 짓고, 아홉 끗이다. 골패 최고의 끗수인 것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 아니더냐!”
따라락!
돌이 허물어지는 소리와 함께 탁자의 중앙에 커다란 돌무더기가 생겼다.
모두 천오백 냥! 그야말로 한 가족이 평생을 호의호식할 만큼 큰돈이었다.
이제 패를 들쳐 보면 거액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대팔이 속이 탔는지 마초를 흘낏 째려보면서 소리쳤다.
“아, 심장이 미친 말처럼 뛰는 게 진짜 미치겠어. 술 한 잔 따라 봐!”
그러는 새, 마조린이 패를 까면서 소리쳤다.
“자, 아홉 끗이요!”
마조린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더니 먼저 벽창호가 올린 은자를 잡았다.
바로 그때!
“커어!”
엎어진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고대팔이 하마 다리 같은 팔을 들어 마조린의 손을 막았다.
‘헛!’
마조린은 내심 깜짝 놀랐다.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고대팔의 손가락이 마조린의 맥문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조린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을 부릅떴을 때, 고대팔이 슬쩍 손을 치우면서 메기 입술을 벌렸다.
“난 망통이야!”
“마, 망통, 망통이라고?”
마조린은 어느새 고대팔의 동작은 잊어버리고, 고대팔이 펼쳐 놓은 패를 보았다.
삼, 삼, 사! 틀림없이 망통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마조린은 혼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그 말만을 되풀이했다.
저자가 내 패를 읽지 않았으면 어찌 망통을 들고도 거액을 걸 수 있단 말인가.
넋이 반쯤 나간 마조린이 어느덧 실내가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벌건 눈을 들었을 때, 송결이 안쓰러운 눈길로 그를 보고 있었다.
“내, 내 돈? 내 돈!”
송결이 있거나 말거나 목이 찢어지도록 절규한 마조린이 우당탕거리면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