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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19화)
7장 만류귀종(萬流歸宗)(3)


‘저놈이 과연 비룡이 되어 승천할까?’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녀석이 사진을 중독시키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사진이 어떤 방법으로 독기를 몰아낸 것인지도 당장 중요하지 않다.
‘큭. 토룡과 토룡의 싸움인가?’
마가장 식구들에게 지렁이로 불리던 자신이 진짜 토룡을 상대하는 것이 미묘한 감정을 부른다.
‘잡생각은 하지 말자. 저 녀석이 만약 승천을 앞둔 상태라면 놈을 죽여 내단을 꺼내 먹는 거야.’
고서에도 토룡의 내단을 먹으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놈의 내단을 먹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몸으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천지! 종횡!”
마초가 짤막한 기합을 넣으면서 높이 세운 칼을 일직선으로 내려쳤다.
까가강!
칼날이 토룡왕의 몸에 부딪치면서 흡사 쇠붙이끼리 부딪친 것처럼 골 때리는 금속성이 터졌다.
파아앙!
그와 함께 엄청난 반탄력이 칼을 잡은 손을 찌르르 울리면서 마초의 몸을 밀어붙였다.
‘으윽…….’
마초는 하마터면 칼을 떨어뜨릴 뻔했다. 손아귀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파.
‘헛!’
마초가 간신히 몸을 뒹굴듯이 물러나면서 언뜻 칼을 눈에 담다가 경악스런 신음을 토했다.
토룡의 몸과 부딪친 칼의 중간쯤에 손톱만큼 녹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떨어져 나간 녹을 보니, 거의 한 치 두께는 될 듯싶었다.
그러나 마초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녹이 떨어져 나가 드러난 거무칙칙한 도면에 음각된 글자, 그것은 용천(龍天)이란 글자였다.
용천(龍天)!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무런 감흥도 없겠지만, 마초는 그렇지 않았다.
용천도! 그것은 마가의 선조들이 동방을 떠나오면서 가져온 가문의 신물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녹을 뒤집어쓴 채 병기고에서 뒹굴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것이 마초의 손에 들어온 것은 기이한 인연임에 틀림이 없었다.
마초가 감흥에 젖은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지간, 뒤로 밀려났던 마초가 다시 한 걸음 접근하려다가 우뚝 발을 멈추었다.
동그랗게 빛나던 토룡왕의 눈이 낫처럼 쭉 째지면서 파란 광망을 토하는 것이다. 그 눈빛을 접하는 순간, 마초의 눈에서도 특유의 번갯불 같은 안광이 표출되었다.
‘놈이 본격적으로 덤빌 모양이야.’
마초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놈과 정면으로 눈싸움을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자니, 눈알이 금세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싸움은 기세가 승부의 절반을 결정한다.
마초가 그렇게 노려보면서 오히려 반걸음 정도 나아갔을 때,
치릿!
찌를 듯 마초를 응시하던 토룡왕이 몸을 뱅글 돌리면서 뱀처럼 꼿꼿이 세운 대가리를 앞뒤로 주억거렸다. 당장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격렬한 동작이었다.
‘저놈이 갑자기 왜?’
토룡왕과의 눈싸움이 싱겁게 끝나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던 마초가 눈을 크게 떴다.
‘엇? 저건 뭐지?’
토룡연의 주위로 물안개가 끼어 있는 새벽녘이라 처음에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늪 한쪽 끝에서 어른거리던 황금빛이 개구리가 뜀뛰는 것처럼 가까워지고 있었다.
빠르게 다가오던 황금빛이 토룡왕의 일 장 앞에서 멈추었을 때, 마초의 눈빛이 강해졌다.
작은 솥뚜껑처럼 퍼질러 앉아 손바닥만 한 넓적한 대가리를 곧추세운 놈, 놈은 바로 금두꺼비[金蛙]였다.
‘이거 점점 흥미로워지는걸.’
마초의 눈빛이 깊어졌다.
천하기괴전(天下奇怪傳)에 기록된 바로는, 금두꺼비는 천 년을 묵은 두꺼비가 영성을 가지게 될 때 나타난다고 했다.
만약 놈의 금안(金眼)을 먹을 수만 있다면, 무병장수는 물론 일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천하의 영물이었다.
마초가 지켜보고 있는 새, 꼼짝 않고 서로를 노려보던 두 놈이 천천히 주변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토룡왕이었다.
끼기기!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토룡왕의 똬리 튼 몸이 고무줄처럼 쭉 늘어나면서 튕겨나갔다.
께레렉!
이번에는 금두꺼비가 아가리를 크게 벌려 소리를 질렀다. 빠알간 두꺼비의 기다란 혀가 날름거리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토룡왕의 몸으로 뻗쳐올랐다.
쉬리릭!
금두꺼비의 길게 뻗은 혀를 꼬리를 휘둘러 물리친 토룡왕이 일자로 쭉 째진 입술에서 시퍼런 기운을 쏘아 냈다.
께렉!
옆으로 빙글 몸을 돌린 금두꺼비가 곧바로 이빨 사이에서 황금빛 기류를 쏘아 토룡왕의 푸른 독기와 마주쳐 갔다.
카카칵!
푸른 기류와 황금빛 기류가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무지개 색깔의 안개비 같은 액체가 우산을 펼치듯 떨어져 내렸다.
절정고수들의 대전을 구경하듯 흥미진진해하던 마초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안개비에 머리를 흠뻑 적시고 말았다.
“어엇?”
마초가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진짜 한심스런 일이었다. 두 놈의 싸움에 정신을 팔다 금와의 독기와 토룡왕의 독기를 한꺼번에 맞은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황하던 마초가 휘청 몸을 움직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두 놈의 극렬한 독기를 동시에 맞아 버렸으니 금세 머리가 흐물거리며 썩어 나갈 것이다.
마초가 걱정스레 젖은 머리를 만지다가 언뜻 손을 내려다보니, 푸르고 노란 독 기운은 어느새 무채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두 영물의 독 기운이 중화된 현상이었다.
‘이상하게 달콤한 향기가 나네?’
마초가 그런 생각으로 독기가 묻은 손을 코끝에 살짝 대었을 때, 갑자기 몸이 들끓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강렬한 열기와 함께 냉기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끄으으…….”
마초는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고통에 배를 움켜잡았다. 그러면서도 빛살처럼 부딪치는 영물들의 싸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번쩍!
영물들이 머리 위, 삼사 장 위에서 교차하면서 내뿜는 기운이 노을 같은 붉은 기류로 화해 쏘아져 내렸다.
그 기운이 멍하니 서 있던 마초의 단전에 틀어박히는 순간, 그의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서로 무섭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꽈르릉, 꽈앙…….
흡사 천지를 개벽하는 우레가 마초의 몸속에서 횡행하는 것 같았다.
“끄으으으…….”
마초는 내장이 온통 가루로 분쇄되는 것 같은 극렬한 통증에 신음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마초가 허공에서 싸우는 영물의 움직임을 환상처럼 눈에 담고 있을 때, 마초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코끝을 뭉개버릴 것 같은 견디기 힘든 악취. 그와 함께 단전 한가운데 놓고 당기고 밀던 양기와 음기가 충돌을 그치고 단전에서 자리 잡았다.
‘큭…… 그것참, 이제야 조용해지는군.’
속이 편안해지자, 손으로 배를 쓱쓱 문지르던 마초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어쩐지 음기는 십자형의 얼음기둥이 되어 단전 한가운데를 점유했고, 양기는 십자형 기둥 주변을 속속들이 채운 채 사화산처럼 가라앉은 것 같았다.
마초가 눈앞에 번쩍이던 노랗고 푸른 기류가 사라졌다 싶어 문득 고개를 들다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잘 놀라지 않는 마초에게는 무척 보기 힘든 태도다.
마초의 눈길이 향한 땅바닥. 마초의 이삼 장 앞에 새우처럼 잔뜩 몸을 구부린 토룡왕이 떨어져 있었다.
“쯧. 금와는 어디 가고…….”
마초가 혀를 차면서 토룡왕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전혀 미동도 없는 것을 보면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마초가 구부러진 토룡의 몸을 뒤집다가 해연히 놀라고 말았다.
알맹이가 없었다. 흡사 매미가 탈각을 하듯 껍질만 남기고 몸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그놈이 승천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한 마초의 눈이 먼 하늘로 향했다. 동이 터오는 발갛게 물든 하늘이 마초의 눈동자를 적시고 있었다.

잠시 용천검을 응시하던 마초가 손에 든 껍질을 보다가 문득 그 껍질이 장갑처럼 보여 오른손을 껍질 구멍 속에 집어넣었다.
‘음? 이게 뭐야?’
손목까지 찰싹 달라붙은 껍질은 아예 착용감도 없을 뿐 아니라 손가락 피부색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자 헛간 안은 후덥지근해졌지만, 토룡각(土龍殼)을 낀 오른손은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멋진 놈을 얻었는걸.’
그렇게 생각하니 마초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마초가 밖에 나가 스스로 이름 붙인 빙고(氷庫)에서 식량과 고기 등을 가져왔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큭.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마초가 잠시 기다리다가 손에 든 꾸러미를 섬돌 위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마초가 춘양루에 들어갔을 때, 숙수들과 점원들이 모여 어제 벌어진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귓등으로 그들의 말을 듣던 마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장가쌍걸이 마가장에 난입해서 전각을 불태우고, 마가장주 등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마초는 이 일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연이긴 했지만, 마쌍린이 숨은 것을 발설한 탓에 마가장은 물론 병석에 누워 있던 마가장주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이건 모른 척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마초가 몸을 빼서 주루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주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주방장 왕수였다.
“야, 인마. 너 어디 가?”
“예, 예. 그냥 잠깐 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이려고…….”
“새끼! 금방 밖에서 들어와 놓고 또 바람을 쐐? 좋아. 네가 바람을 쐬고 싶다면 나하고 함께 나가자.”
“어, 어디을요?”
마초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어디긴 인마, 오늘은 도축장에 가는 날이거든.”
왕수가 마초의 등을 탁 치면서 말을 하다가 앗 뜨거라! 하고 손을 떼고 말았다. 전에는 얼어붙은 시신을 만지는 느낌이더니, 오늘은 화덕 속에 손을 들이댄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하. 이 자식, 몸이 정상이 아닌 거 같아?’
몸의 체온이 자꾸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건 속 어딘가에 탈이 났다는 증좌다.
‘근데 저 녀석은 전혀 그걸 못 느끼는 것 같단 말이야?’
왕수는 의문을 느끼긴 했지만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 버렸다.

악수 방향의, 신목원의 동쪽 끝에는 반쯤 무너진 고창성이 쓸쓸한 황야 위에 꼬리가 군데군데 떨어진 도마뱀처럼 누워 있었다.
수백 년간 번창하던 고창은 영화롭던 전성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놓고 쓸쓸한 흙벽돌 잔재 위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는 것이다.
신목원 일대의 유일한 고창 도축장은 이름과 마찬가지로 옛 고창성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초가 멀리 황야 위에 우뚝 선 화염산을 등에 지고 왕수의 뒤를 따라 고사목이 드문드문 서 있는 고창성으로 들어섰을 때, 꾸에에엑! 돼지 멱따는 비명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처음에는 돼지 멱따는 소린지 알았는데, 도축장 안에 돼지는 없었다.
사방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그 사이로 네 방향의 길이 난 넓은 도축장의 중앙. 거기에 십여 마리의 수소들이 말뚝에 매인 채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축을 겸하는 도축장에는 거의 만 마리가 넘는 소를 기른다.
신목원이나 악수 등에 위치한 정육점이나 굵직한 주루 같은 데서 고기를 주문하면, 그때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중앙의 원형 도축장은 반원 오육 장 정도의 크기였는데, 사람 어깨 높이의 목책 뒤로 수십 명이 둘러선 채 도축하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도축장 안에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서 있는 뱁새눈의 도살부(屠殺夫)는 벌겋게 탄 상체를 드러내고 도끼를 잡은 손에 퇘퇘 침을 뱉고 있었다.
“마지막이요. 준비됐수?”
소리를 친 자는 여우처럼 뾰족한 턱을 한 오십 대의 중노인이었는데, 둥그렇게 둘러쳐진 방책 안에서 막 고삐를 끄르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를 보니 꼭 춘양루의 조비가 나이 든 모습이었다.
“좋다!”
그 소리와 함께 여우 같은 장한이 방책 문을 열고 소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우와아!”
목책을 둘러섰던 구경꾼들이 일제히 흥분에 찬 고함을 질러 댔다.

“저 시커멓게 생긴 자식은 집안대대로 도살부가 직업인 걸 자랑하는 놈이야. 아주 흉악한 놈이지. 아예 소를 묶지도 않고 도살을 한단 말이야.”
“저러다 다치는 일도 있겠네요.”
마초의 반문에 왕소가 낄낄 웃었다.
“다쳐? 저 자식이? 아, 그렇지. 그런 일도 있었군. 저 녀석이 처음 도축을 시작한 게 열다섯 살 때거든. 근데 도축을 시작하자마자 소한테 오지게 박혀 버렸다는 거지. 목살과 가슴이 너덜너덜 찢겨서 다들 죽은 줄 알았다는 거야. 근데 말이야. 저 새끼가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났는데, 그전에 소뿔에 받히면서 도끼를 놓쳤으니 빈손이란 말이야. 구경꾼들이 안타까워하는데, 놈이 한 짓이 뭔지 알아? 달려드는 소의 대가리를 잡고 자기 머리로 수십 번을 박았다는 거야.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그날 도축할 나머지 소들을 다 죽인 다음에 그제야 푹 쓰러지더래. 그러고는 또 다음 날 붕대를 하고는 멀쩡히 나왔다는 거지. 어때? 진짜 지독한 악바리지?”
“네네……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마초는 실제로 그의 독한 근성에 감탄하고 있었다.
“암, 보통 놈은 아니지. 그래서 놈의 별명도 흑면야차(黑面夜叉)라고 하는데, 저 끔찍스런 몰골에 딱 어울리는 별명 아니냐?”
빠각!
왕소의 말과 동시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황소가 기이한 울부짖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통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수소를 보고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 역시!”
“도축이라면 천하에서 최고일걸?”
구경꾼들의 환호성 사이로 감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경꾼이 있으면 이래서 좋다. 환호성과 찬사의 목소리. 그것은 구경 잘했다고 으레 하는 소린지 알지만, 석두한은 거기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바닥에 모로 누운 놈을 흐뭇하게 보던 흑면야차 석두한이 생각난 듯 왕수에게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