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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쟁천 1권(22화)
8장 차도살인(3)


마쌍린은 두세 시진이나 놈의 동태를 살피면서 주저했다.
새벽이라 일꾼들이 모두 잠든 천상낙원장. 천상낙원장은 신목원의 북쪽 화염산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본래의 색깔은 누런 황토빛이지만, 해가 비치면 산은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진다 해서 유명한 화염산.
완만한 구릉 같은 화염산을 넘으면 불타의 전설이 서린 천불동 계곡이 있지만, 수백 년 묵은 빽빽한 원시림이 발길을 막아 오래 전부터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마쌍린은 천상낙원장에서 혹시 누가 나오나 하고 신경이 쓰였다. 그의 눈길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그 증거다. 괜히 천상낙원장의 일꾼들에게 들켜 소란이 일면 놈은 그 틈에 도망쳐 버릴 것이다.
‘제에기, 천상낙원장? 이게 지옥이지 천상낙원이야?’
마쌍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천상낙원장은 이름과 달리 암벽 지대 밑이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어느 곳이나 마음이 스산해질 만큼 황량하기만 한데다, 거칠 것 없이 불어 대는 차가운 밤바람에 뼈골이 시렸다.
‘나도 저 새끼처럼 건물 안으로 들어갈까?’
오죽 추웠으면 그런 생각이 들까.
횡대로 선 세 채의 밋밋한 건물은 관을 만드는 작업장이고, 그 앞으로 너저분하게 흩어진 것은 석상이나 석관, 비석 등을 만드는 대리석 돌 더미였다.
마쌍린의 눈이 건물 중 하나를 못 박히듯 응시했다.
세 채의 건물 중 마초가 들어간 곳은 크기가 반밖에 안 되는 삼사 장 너비의 우측 건물. 다른 두 건물과는 달리 떨어질 듯한 문이 그대로 열려 있어 들어가기도 쉽다.
‘에라, 모르겠다. 혹시 그 새끼가 떠났으면 어떡해?’
놈이 뒷문으로 나가 버릴 까 봐 일부러 정문과 뒷문이 다 보이는 쪽에 있었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걱정되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스스슥!
만들다 만 커다란 석상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마쌍린이 세찬 바람이 요란스럽게 부는 틈을 타서 건물로 움직였다.
‘엑!’
마쌍린은 출입문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코를 틀어막고 말았다.
오뉴월 땡볕에 쥐새끼가 썩어 가는 냄새가 이럴까.
게다가 발밑에 스멀대는 것은 희끄무레한 벌레들. 틀림없이 시신을 좀먹던 구더기가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으흑, 미치겠다. 이 버러지 새끼들은 잠도 없나. 왜 이리 밤중에 설치는 거야?’
아마도 안으로 들어가면 놈들이 지천에 깔려 있을지도 몰랐다. 마쌍린은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자식 정말 끈질기네?’
마초는 이미 마쌍린이 자신의 뒤를 쫓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건물 한쪽의 으슥한 곳에는 한 줄로 쌓인 세 개의 조잡한 관이 있었는데, 마초는 그 뒤의 벽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건물은 행려병자라든지 객사한 시신들을 두는 곳인지 몰라도 시신이 썩는 악취와 구더기의 등살만 대충 견디면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어 편히 쉬기도 좋았다.
‘가만있자. 아까…….’
마초가 예의 대도무심공을 운기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장가쌍걸을 죽이면서 천지종횡도를 전개했을 때, 분명히 칼에서 붉고 푸른 안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녹슨 칼로 그럴 수가 있다면…… 음, 그냥 손가락으로도 될까?’
한 손에는 푸른 기운을 내뿜고, 다른 손으로는 붉은 기운을 내뿜는다면, 그처럼 신기한 일도 없을 게다.
그러나 저 성가신 놈이 문제다.
얼굴을 삐쭉 내밀다가 황급히 코를 틀어막고 문 옆으로 몸을 옮긴 것은 시신이 썩는 악취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식이 곱게만 살아와서 언제 이런 지저분한 데에 들어와 보기나 했을까?’
속으로 픽 웃은 마초가 단전을 관조하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관조(觀照)!
특별히 누구에게 배운 건 없지만, 마초는 대도무심공을 운용하다 보면 단전에서 기류가 움직이는 통로를 느낄 수 있었다.
경지에 오르면 뇌리 속에 기가 움직이는 상(像)을 떠올릴 수 있다지만, 마초는 기맥으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단전에서 먼저 꿈틀거린 것은 십자형의 음기를 둘러싼 열기였다. 그러나 열기가 막 발동을 시작하자, 그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십자형의 냉기가 기맥으로 솟구쳐 올랐다. 흡사 냉기가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열기가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자, 자, 된다, 돼!’
마초는 거의 반쯤 무의식 상태에 빠졌지만, 속으로 열심히 된다고 외쳤다.
어느 순간, 마초는 오른손에는 냉기를 끌어들이고, 왼손으로는 열기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자, 자, 천천히, 천천히 양 손가락에 기운을 밀어 넣는 거야.’
양손에 한꺼번에 음기와 양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일까.
“끄아아악!”
마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면서 펄떡 뛰어올라 양손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기운이 손가락으로 분출되는 느낌은 온 손가락이 재가 되는 것만 같았다.

‘쌍린아, 쌍린아! 네가 이렇게 겁이 많은 놈이더냐.’
마쌍린은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간신히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넓은 건물의 한구석에 쌓인 세 개의 관, 수많은 한 많은 원혼이 배회하는 것 같은 심장이 졸아드는 음습한 공기.
마치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귀신이 목 줄기를 조를 것 같은 답답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마쌍린의 이빨이 절로 부딪치고 있었다.
‘응? 마초, 이 새끼가 도망친 거 아냐?’
마쌍린이 주위에서 아무런 동정도 느끼지 못하고 관이 쌓인 곳에 근접하였을 때다.
휘이이, 덜커덩!
열려 있던 문이 거친 돌개바람에 닫히면서 칠흑 같은 어둠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싶었을 때,
번쩍! 꽈르르르!
벼락이 천지를 때렸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마쌍린이 속으로 투덜대며 움씰 몸을 떨었을 때,
끼아아악!
귀신의 비명 소리가 귓전에 부딪히면서 붉고 푸른 기류가 귀신불처럼 휘돌며 눈앞으로 쏘아 왔다.
“으아아악, 귀, 귀신이야!”
마쌍린이 혼비백산해서 비명을 내지르며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쩝. 졸지에 귀신이 되어 버렸군.’
마초는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 나가는 마쌍린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으헉헉헉!”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똥줄이 빠지도록 도망쳐 본 적이 있을까. 마쌍린은 금세 쫓아온 귀신이 뒷덜미를 낚아챌까 봐, 자신이 가는 길이 어딘지도 몰랐다.

장룡은 장원무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쌍걸이 죽은 도랑 곁에 섰다.
십 년 세월을 한결같이 자신의 수족이 되었던 두 사람이 졸지에 참사를 당했다.
중원으로의 대장정이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이다. 그러니 평소에 마음에 걸렸던 일을 후련히 해결하고 떠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장룡은 속이 텅 빈 듯한 무기력함에 신음하고 있었다.
‘안 돼! 장룡아, 장룡아, 힘을 내야 해! 이것은 작은 장애물일 뿐이야.’
장룡이 손에 든 비룡신도를 와락 움켜쥐며 새벽의 여명이 꼼지락거리는 동녘 바위산을 쳐다보았다. 화염산은 이제야 제 색깔을 찾으려는지 검붉은 그림자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때, 화염산 방향에서 후다닥 달려오던 인영이 멈칫하며 그 자리에 발을 멈췄다.
‘저, 저 사람은 자, 장룡?’
마쌍린은 망설인 것은 순간이었다. 애초에 마초가 숨어 있는 곳을 알리려는 의도였지만, 놈은 어디로 간지 모르고, 자신은 귀신에게 쫓겨 도망쳐온 꼴이다. 이 어정쩡한 때에 하필이면 장룡과 마주치다니!
‘제길. 재수 옴 붙었어.’
마쌍린이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마쌍린, 거기 서랏!”
장룡이 가전 용비풍운보를 펼치면서 몸을 날리자, 다급해진 마쌍린이 역시 마가장의 독문 경신법인 태극축지술로 몸을 날렸다.

“허억, 헉헉헉…….”
마쌍린은 무공은 장룡의 발꿈치도 못 따라갈지 몰라도 발은 빨랐다. 그러나 먼저 워낙 귀신에 놀라 진력을 탕진한 뒤라, 점점 장룡과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마쌍린이 뒤를 힐끔 돌아보다 그만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십여 장의 차이가 겨우 사오 장 정도로 줄어 있었다.
다급해진 마쌍린이 마침 자신의 왼쪽으로 높은 담장이 있는 것을 알고 불문곡직 몸을 날려 넘어갔다.
‘헉!’
마쌍린은 담을 넘자마자 뒷덜미에 강한 타격을 받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제기랄. 귀신이 숨어 기다리고 있었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었다.

“이자가 어디로……?”
금방 앞에서 잡힐 것처럼 얼쩡거리던 마쌍린이 사라지자, 장룡의 눈이 담장으로 향했다.
‘그래. 담 너머로 넘어간 거야.’
장룡이 막 담을 넘어가려고 할 때, 뒤에서 쌩 하는 소리가 돌렸다.
“누구냐!”
얼른 몸을 비틀어 물체를 피한 장룡이 뒤에 등장한 곰 같은 덩치의 거한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땅에 떨어져 비실거리는 건 주먹만 한 돌멩이였다.
“이거 보슈! 무슨 일로 본 춘양루에 침입하려는 거요?”
“무슨 일이라니! 난 흉수를 쫓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라.”
“아아, 이제 보니 귀하는 바로 장가장의 이공자 아니시오?”
밭에서 김을 매다 왔는지 골망태가 손에 든 호미를 흔들며 대답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금방 난입한 자를 쫓는 것이라면, 담 너머 들어가 봤자 소용없소.”
“그게 무슨 소린가!”
“놈은 들어가자마자 저쪽 길로 뛰어나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소.”
골망태가 춘양루의 뒤쪽 담장 너머에 형성된 호두나무 숲을 가리키자, 장룡이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네 말이 거짓이라면 춘양루의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겠다.”
무서운 협박이지만, 골망태는 고개만 슬쩍 끄덕일 뿐이었다. 알아서 하라는 무시다.
“두고 봐라!”
장룡이 이를 갈면서 숲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두고 보자는 놈 무서울 게 뭐 있냐?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잠룡이라더니 토룡보다 못한 놈이잖아.”
골망태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다 코딱지를 툭 튕겨 방금 떠난 장룡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근데 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저 자식을 잡아놓은 거요?”
춘양루 후원의 채마밭, 거기서 골망태가 왕수에게 따지고 있었다.
“킬킬. 잡아 놓으면 언젠가 쓸모가 있다. 내 목을 걸고 장담하지.”
왕수가 기묘하게 웃으면서 마초를 떠올렸다.
‘클클. 넌 어차피 마가장 사람이야.’


9장 희생양(1)


마초가 고창 도축장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그동안 잡일만 시키던 석두한이 오늘 오후에는 도살 시범을 보인다고 도축장으로 끌고 나왔다.
주변에는 일꾼 몇 사람만 있을 뿐 손님도 없고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낸 모양이었다.
“야, 인마. 내가 하는 걸 잘 봐.”
석두한은 맨손에 걸쭉한 침을 퉤퉤 뱉더니 도끼를 들어 올렸다.
“아, 노파심으로 말하는데 말이야. 장갑을 끼면 감각이 무뎌져서 제대로 맞은 건지 알 수가 없거든? 머리칼만 한 차이가 소를 고통 없이 죽일 수 있느냐를 결정한단 말이야. 정통으로 급소를 때리지 못하면 소가 발광해서 도살부가 다칠 수도 있고. 음, 한 방에 못 죽이면 다음부터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거든? 더욱 중요한 건 소를 몇 번씩 때려죽이면 육질이 망가진다. 알겠냐? 아, 그리고 손에다 침을 묻히는 건 도끼 자루에서 손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다. 알겠냐?”
석두한이 ‘알겠냐’를 몇 번 되풀이하며 세세히 설명을 하더니, 자신의 등 뒤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돌아보았다.
“고삐를 풀러라!”
‘응? 저 자식은?’
마초는 저 녀석이 웬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석두한이 몸을 조금 비키자 드러난 여우처럼 생긴 십 대 후반의 청년, 조비였다! 조비는 한 달 전에 춘양루가 문을 닫자 늙은 아버지 대신 이 도축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그 내용을 알 리가 없는 마초가 빤히 쳐다보자 조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녀석이 자신보다 일찍 들어왔긴 하지만, 자신은 도축할 소의 고삐나 끌고 다니는 한심한 잡부 신세고, 놈은 잘만 하면 석두한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