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몬타나의 경비병 1(4화)
1장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라(4)


‘에이 씨, 돈 아까워 빨리 먹고 튀려고 했더니만 안 되겠다.’
아무래도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는 슬쩍 눈치를 본다. 이미 여인네를 비롯한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상태였기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허. 잘 먹었다. 주인장, 돈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가겠소.”
하지만 이미 주인장도 예상하고 몸을 피하긴 마찬가지다. 아마 신고하러 갔을 거다.
그는 나름 가장 자연스러운 태도로 따라오는 시선을 무시하며 그곳을 벗어나려 몸을 움직이려는데 이 눈치 없는 꼬맹이가 그를 확 노려보며 반말을 지껄였다.
“야, 인마.”
그 인마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다스는 애써 무시하며 멍하니 서 있는 용병들의 틈을 지나쳐 간다. 용병들도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그를 제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야, 너 여자가 위험에 처했는데 혼자 몰래 도망가듯 빠져나가는 거야? 넌 기본적인 기사도도 없어?”
‘기사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건 배부른 종자들이나 내뱉는 소리다.’
그래 그런 건 배부른 엄친아 종자들만 내뱉는 소리다. 그는 엄친아가 아닌 현실적인 찌질이다. 그래 백번 인정한다. 고로 그는 끝까지 모른 척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입구 근처에 있는 저 여인네들의 탁자를 지나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스는 빠져나가기 위해 최대한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렇게 그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녀들의 탁자 옆을 지나치려는 찰나 이 꼬맹이가 진짜 미쳤는지 갑자기 그를 확 잡아챈다.
“야. 너 남자가 배알도 없어? 어떻게 연약한 여자들이 흉적들에게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 있어? 너 남자 맞아?”
‘아! 너 왜 그러는데. 그래 나 남자 안 할 테니깐 그냥 좀 보내 주라.’
그는 애원하는 눈빛을 꼬맹이에게 보내며 뿌리치려 했지만 이 꼬맹이가 힘이 얼마나 센지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뭔 꼬맹이가 힘이 이렇게 쎄? 야. 좀 놔라.’
조막만 한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꼬맹이가 갑자기 사악한 웃음을 짓더니 슬쩍 그의 얼굴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 내미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다가오자 꼬맹이도 나름 여자라고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나긴 했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어 보인다.
“어? 뭐라고? 저런 허약해 빠진 용병 새끼들은 나한테 다 맡기라고? 기사도를 따르는 나는 연약한 여자들이나 괴롭히는 저런 놈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 없다고?”
“응?”
갑작스럽게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 혼잣말을 지껄이는 꼬맹이를 보며 순간 다스는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었다.
“그래. 역시 넌 내 예상대로 기사도를 아는 멋진 남자구나. 정말 고마워. 자, 아름다운 나를 위해 저 악당들을 처리해 줘. 가서 악당들에게 너의 기사도를 맘껏 펼쳐 봐. 내가 뒤에서 응원해 줄게.”
라고 모든 용병들이 들을 수 있게 크게 외치며 이 꼬맹이가 그를 휙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 꼬맹이의 다스를 잡지 않고 있던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어어?”
꼬맹이가 성인 남자를 집어 던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분명 현실이다.
그렇게 날아간 다스의 시야에 점점 크라운 빵집, 아니 베이커리가 커지는 것이 잡혔다. 탁자를 뒤집어엎고 나서부터 다스의 생각 없는 탈출 행동에 다음 행동 패턴을 빼앗겨 버린 크라운 베이커리는 그가 날아오는 모습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본다.
물론 너무 가까웠기에 피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당탕탕.
“우악!”
크라운 베이커리와 한데 어우러져 널브러진 다스는 얼른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만큼은 정말 전광석화다.
“으윽. 젠장.”
강한 충격에 머리를 부여잡은 그는 문득 오른손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다. 뭔가 싶어 슬쩍 오른손을 내려 보니 피 묻은 포크가 하나 떡하니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건?’
분명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포크는 도대체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 다스는 슬그머니 작은 신음과 함께 서서히 일어나는 크라운 베이커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주르륵.
“헉!”
크라운 베이커리의 대머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붉은 물결, 그리고 정확히 이마에 표시 나 있는 삼지창 자국을 보며 다스는 깜짝 놀랐다.
스윽.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이마를 만져 보던 크라운 베이커리는 그것이 피라는 것을 확인하자 눈가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리고 피 묻은 포크를 들고 있는 다스에게로 시선을 아주 천천히 옮긴다.
다스는 그와 눈이 딱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와 함께 포크를 얼른 옆으로 던져 버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 포크 제 꺼 아닌데요?”
하지만 누가 봐도 그가 찌른 것은 분명했다. 크라운 베이커리의 죽일 듯한 살기를 감지한 그는 범인이라고 짐작되는 꼬맹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짧은 순간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꼬맹이뿐이다.
게다가 지금 그 꼬맹이는 딴청을 피우고 있다.
‘이 망할 꼬맹이가.’
심증일 뿐이지만 분명했다. 범인은 저 꼬맹이가 분명했다.
허나 심증은 꼬맹이지만 결정적인 물증을 지니고 있었던 자는 결국 다스다. 아무래도 크라운 베이커리의 분노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너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
“네? 저요? 진짜 제가 안 그랬는데요.”
다스는 스산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다.
“내 이마에 포크를 찍은 죄로 네 대가리를 반쪽으로 만들어 주겠다.”
크라운 베이커리는 더 이상 인내가 바닥이 났는지 자신의 애병인 거대한 도끼를 들고 그를 내려찍기 위해 달려 나왔다.
“으아악! 진짜 내가 안 그랬다니깐. 살려 줘.”

퉁퉁 부운 얼굴, 입가에 흐르는 피, 찢어지고 더러워진 옷가지 등 비록 어두워 표는 잘 나지 않았지만 어디 가서 신나게 얻어맞은 듯한 얼굴, 바로 다스다.
그는 비틀거리며 인적이 드문 몬타나 시내의 골목길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으으. 이 빌어먹을.”
얼굴은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하루 이틀로 붓기가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망할.”
그는 연신 저주를 퍼부으며 무슨 년, 무슨 년을 지껄인다. 그러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크으윽. 쓰라려.”
입을 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감싸 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 이름을 걸고 기필코 복수…… 음.”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차마 이름을 걸고 기필코 복수를 하겠다는 다짐까지는 하지 못 했다.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용병들조차 추풍낙엽으로 나가떨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여인네들을 보았지 않은가.
힘없는 자신을 원망하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는 통탄의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강철연금이가 외치는 등가교환의 법칙도 무시하며 이 더러운 세계로 데려온 하늘의 누군가를 원망하며 올려다본다. 원하지 않은 곳으로 자신을 데려왔다면 등가교환 법칙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줘야 할 것 아닌가.
“야이 빌어먹을 더러운, 특히 너 꼬맹이 네년은 능력 없고 그저 그런 새끼랑 결혼해서 평생을 그놈이랑 살아라. 네년 평생을 말이다.”
그래도 남자인지라 꼬맹이와 같이 있던 여자의 예쁜 얼굴이 떠올랐는지 차마 콱 죽어 버리라는 저주는 내뱉지 못한다. 게다가 나름 생긴 것도 만만하고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가져왔던 꼬맹이에게 아주 소심한 저주를 퍼붓는다.
솔직히 진짜 소심한 저주다. 조금은 이해해 주자. 그는 원래 소심한 인간이다.
번쩍!
“응?”
그 순간 마른하늘이 한 번 번쩍이는 것을 본 것은 그의 착각이었을까? 그래 착각이었을 거다. 마른하늘에 그런 현상이 일어날 리 없다. 하도 얻어맞아서 정신도 오락가락하나 보다.
“에라이. 더럽다. 더러워.”
마른 밤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봤다는 정신이상 증세까지 의심되자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골목길의 나무 상자를 강하게 걷어찼다.
콰지직!
그러자 상자가 부서지며 위에 있던 다른 나무 상자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갑자기 창문 하나가 열렸고 인상 험악한 남자 한 명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오밤중에 어떤 미친 새끼야?”
“헙!”
후다닥!
아까까지만 해도 비틀거리던 그였는데 어디서 갑자기 힘이 난 것일까? 그가 그곳에서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세실리아. 그 사람 던질 때 손에 포크 쥐어 준 게 너지?”
“아냐. 언니는 날 어떻게 보구.”
이리아는 세실리아를 지그시 바라본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울 뿐이다.
“너 그 사람에게 너무 심했어.”
“흥. 언니도 소극적으로 도와줬잖아.”
“언니는 마법사야. 도시 내에서 마법사는 개인에 대한 폭력이 없는 이상 허가 없이 마법을 쓰는 것이 금지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그리고 그 위험한 도끼를 날려 버린 사람도 나야. 결국 내가 그 사람의 생명을 살려 준 셈이지. 하지만 넌 아니잖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만 몰아가는 것이 못내 억울한 듯했다.
“그리고 결국 너 때문에 당했다는 생각은 안 하니? 네가 안 잡고 보내 줬으면 조용히 갔을 건데 말이야.”
“하지만 그 녀석은 연약한 여자들을 버리고 도망을 가려고 한 나쁜 놈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사람의 선택이 옳았기도 하지. 보통 힘이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니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야.”
도무지 말로는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세실리아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언니의 말대로 여자로서 언니와 자신을 비교한 그 녀석에 대한 작은 복수심에 자신이 잡아서 그렇게 된 것은 틀림이 없으니깐 말이다.
“그건 그렇고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솔직히 근성만은 대단했어. 보통 사람은 흉내도 내기 힘든 근성이었는데 말이야. 조금은 나도 그 사람을 다시 봤어.”
언니인 이리아의 말에 세실리아는 잠시 그때의 상황을 상기시켜 보았다.
이리아가 도끼를 날려 버린 후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그 크라운 베이커리라는 용병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곤죽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솔직히 그 전의 일도 좀 있고, 남자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조금 당해 보라며 던졌는데 설마 용병에게 덤벼들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거기서 뒷걸음질 치는 그를 가게 밖으로 던져 버리고 용병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흥. 근성은 무슨.”
그는 주변의 용병 동료들이 아무리 의자로 내려찍고 발로 밟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크라운 베이커리라는 그 용병만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한 놈만 잡고 죽어라 팼던 것이다. 아마 생존 본능, 혹은 어차피 죽을 거 한 놈이라도 같이 저승길 길동무 삼자는 심보였을지도.
덩치가 두 배나 되는 용병을 눕혀 놓고 주변의 구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죽어라 두들기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흥, 기사도란 것도 모르고 실력도 없는 놈이 근성이라도 있어야지.”
세실리아는 여자들이 흉악한 용병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도망만 가려는 그놈을 생각하니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도 없는 놈이 무슨 재주로 그 많은 용병들을 이긴단 말인가. 그때 그놈이 자신과 언니를 비교하는 그 눈빛만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냥 조용히 보내 줬을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놈은 맞아도 싸.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야.”
“그래도 상처가 심할 텐데 걱정이 안 되니?”
이리아가 넌지시 물어보자 세실리아는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 말은 저렇게 해도 세실리아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큰맘 먹고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했는데 재수 없는 눈빛으로 날 째려보고 도망간 놈이 무슨. 도망가는 모습을 보니 멀쩡하더니만.”
“네가 갑자기 화가 나서 그를 공격하려 하니깐 도망을 가지.”
그래도 상처가 심한 것 같아 나름 큰맘 먹고 치료를 해 주려던 그때 놈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잠깐 화가 다시 치밀어 올라 손을 들어 올리는데 그것을 눈치 챘는지 이미 저만치 도망을 가더니 골목길로 쏙 사라지더라.
“흥. 여자가 위험에 빠진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그런 놈이 감히 날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 다음에 다시 만나면 결코 가만두지 않겠어.”
이리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듯 말하는 세실리아를 보며 이런 동생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