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몬타나의 경비병 1(5화)
2장 지금 경비병 무시하냐?(1)
유라시안 대륙.
그곳은 수천 년간 이어 온 전설의 꿈의 대륙이다. 검과 마법이 살아 숨 쉬고 엘프와 드래곤이 존재하며 신의 가호가 내려진 그곳은 누구나 영웅을 꿈꾸는 환상의 대륙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렇게 지랄 같은 곳이 또 없다.
마물과 몬스터들이 심심하면 튀어나와 너의 신선한 육질을 바치라며 침을 질질 흘리며, 마계에 있기만 해서 심심한 마족들도 가끔 튀어나와 한 번씩 세상을 휘저어 준다.
그뿐이냐?
순수하고 아름다운 종족 엘프들을 찾아갔다가 화살 꼬치가 돼서 너부러진 뒤 오크들의 꼬치 간식거리가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물론 그놈들은 좋지 않은 목적으로 찾아갔었던 거였겠지만.
그리고 간간이 진짜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질 재수 없는 놈은 그냥 무심결에 길 지나가던 드래곤한테 밟혀 육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심심하면 어떤 또라이 같은 놈이 정기적으로 한 번씩 튀어나와 세상을 정복하겠다고 지랄을 떨지 않나, 괜히 길 가다 물건 한 번 잘못 건드렸다고 로또 확률로 봉인되어 있던 수십 종의 마왕 세트 중 한 놈이 당첨되질 않나.
또 어떤 미친놈은 지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며 드래곤 잡으러 나갔다가 괜히 가만히 있는 드래곤 잘못 건드려 근처 마을들이 쑥대밭이 되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무법 천지에 또라이들이 넘쳐 나는 정말 무서운 곳이 바로 이 유라시안 대륙이다.
판타지의 환상을 깨라. 이곳에서 까딱 잘못하면 죽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인간이 자체적으로 일으키는 사건은 사건 축에도 못 낄 정도로 지구에서 벌어지는 대형사건 사고와는 그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소설 속에서나 환상과 꿈이 가득한 판타지지 정작 그것이 현실이 되면 바로 이렇게 외칠 거다.
“꿈과 환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직도 헛된 망상을 지니고 있는 이가 있다면 당장 꿈 깨라고 말해 주고 싶다.
지구, 혹은 대한민국만큼 인간이 살기 좋은 곳은 없다. 최소한 그곳은 인간 범주의 또라이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또라이들이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수백 바퀴다.
드넓은 유라시안 대륙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터로는 하나의 거대 제국과 5개의 왕국이 있다. 대륙의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생명의 숲에는 엘프들의 왕국인 엘븐 포레스트가 동쪽 끝에는 드워프의 왕국인 메탈 그라드가 자리 잡은 죽음의 산지가 있다.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은 신성불가침 조약이 있어 결코 서로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다. 물론 망상을 품은 몇몇 인간들이 엘프나 드워프들을 잡기 위해 나섰다가 죽는 경우가 간간이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엘프와 드워프 왕국이 지닌 힘은 제국에는 못 미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인간들은 최대한 그들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이다.
이종족 노예? 인간 노예제도도 폐지된 지 오래된 판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즉결 처분이다.
그리고 먼 바다 건네 인간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대륙이 더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들은 차차 설명을 하기로 하고 지금 주목해야 할 곳은 이름만 주인공인 다스가 살아가는 유라시안 대륙의 유일 제국인 거대 제국 몬타나다.
황성을 둘러싸고 있는 몬타나 시티를 중심으로 형성된 몬타나 제국은 그 역사가 오백 년이 넘을 만큼 상당히 유서 깊은 제국이다.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오백 년 동안이나 해먹었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영원한 제국은 없었고 거대한 제국은 내분, 내란 등으로 끽해야 삼백 년 이상을 가지 못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몬타나 제국, 그 장수의 뿌리는 유라시아 대륙의 선진 정치제도로 일컫는 입헌 군주제가 있었다. 대륙에서 가장 먼저 입헌 군주제도에 입각한 정치를 시작한 몬타나 제국은 주변 수많은 왕국들이 사라지고 다시 재생성 되는 과정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어차피 내분, 내란도 집중되는 권력이 팽배하면서 생기는 문제, 그 권력들을 국민 전체에게로 분산을 시켜 버리니 권력에 대한 부작용이 상당히 완화되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분산된 권력으로 인해 정세가 안정되면 외침이 있지 않은 이상 국가는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과거 귀족과 왕권 혹은 황권 위주의 절대적인 권력의 정치제도가 철폐되면서 시행된 최초의 입헌 군주제도, 이미 타 왕국들도 벤치마킹을 통해 도입을 시도했고 그 후로 새로이 왕국이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왕국의 회전은 더 이상 없었다.
물론 기존 기득권들의 엄청난 반발 속에서 과도기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것은 감수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노예제도와 신분제도의 철폐는 당연한 수순이다. 비록 여전히 귀족들이 존재해 정계의 중심에 서 있기는 하지만 제국법의 적절한 견제가 있었기에 예전 같은 그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또한 다른 왕국들 역시도 제국법을 수렴해 오래전부터 정치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왕국들이 현재는 안정적으로 국가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제국 황성 외곽으로 형성된 몬타나 시티, 몬타나 제국의 이름을 딴 수도답게 계획도시로서 대륙에서도 가장 큰 엄청난 규모의 도시이다.
황성이 존재하는 내성을 지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두터운 외성이 있으며 각기 동, 서, 남, 북문이 있어 어느 정도 외부로부터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평시라 대부분 통행증을 확인하거나 물품을 검사하는 일이 다이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거나 대규모 상단일 경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상업도로와 이어진 동문은 항상 상인들로 북적거렸고 그 검문 또한 상당히 철저한 편이다. 반면 서문과 남문은 사람들의 출입만 가능한 상태라 물품을 반입하는 상인들은 그곳으로 통과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동문을 제외한 상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남은 문은 북문인데 북문 자체가 도시를 둘러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좀 기다리더라도 동문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동문에 너무 많은 이들이 몰릴 시에는 차라리 북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았기에 베테랑 상인들은 상황에 따라 북문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북문의 주간 경비를 맡고 있는 이가 바로 나름 주인공인 다스 베이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스타워즈의 그 다스 베이더가 아니다.
‘아, 뽈따구야. 어제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북문의 직업 경비병인 다스는 아침이 되어서 더 심하게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같은 조이자 의무복역 병력인 한스는 완전 컨디션 꽝인 그의 모습에 함부로 말을 걸지도 못했다.
보통 4년 이상의 고참 직업 군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주간 근무조에 배속된다. 4년이나 근무를 한 직업 군인들은 대부분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는 터라 제국 자체에서 배려를 해 주는 편이다.
조는 주로 고참 직업 군인 한 명을 조장으로 의무복역 군인들이 특성에 맞게 인원이 배속되어 한 개의 조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다스는 벌써 6년이나 직업 군인으로 경비를 서 온 경비병으로 대단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가장 거대하고 입구가 넓은 동문을 제외한 성문 경비병은 2인 1조로 북문은 고참병인 다스에게 이번에 새로 입대한 한스가 배속되어 주간의 한 조를 이루고 있다.
“야! 신삥.”
“넵!”
한스는 다스의 까칠한 목소리에 바짝 긴장했다.
“가서 시원한 물 좀 떠 와라.”
“넵,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그는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말대답도 없이 시원한 물을 얻으러 가기 위해 후다닥 뛰어갔다. 이미 어제 된통 당했던지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몸이 괴롭지 않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하여튼 앗세이, 아니 신삥들은 기합을 좀 받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깐.”
순식간에 사라진 한스의 모습에 역시 교육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 순식간에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아아! 젠장. 쓰라려.”
얼굴 근육을 움직이니 쓰라림이 확 몰려 왔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지나서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빵집 놈을 완전히 아작을 내 놓았다는 것이다.
언뜻 놈의 입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간 옥수수 강냉이만 해도 5개가 넘었다. 대한민국이었으면 수천 만원의 합의금을 내야 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쪽수가 안 되면 한 놈만 조지는 게 상책이지. 최소한 한 놈 정도는 옆 호실에 같이 입원하게 만들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반면 그 후에 꼬맹이가 설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떠오르자 등골이 서늘해진다. 분명 술집 안에는 스물이 넘는 용병들이 있었는데 그들 전부가 5분 안에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하도 많이 맞아 정신이 없었던 터라 정확히 어떻게 조졌는지는 자세히 못 봤으나 그 꼬맹이가 칼을 들고 설치는 몇 장면은 똑똑히 봤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려는 듯 칼집채로 들고 휘두르는 꼬맹이, 허나 그 칼집 몽둥이에 맞은 용병들은 단 한 놈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일부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떨어져 나가는 것까지 목격했다.
용병들에게 다구리를 당한 그는 칼집 몽둥이에 맞았던 용병들에 비하면 사실 경상이었다. 그 칼집에 자신이 맞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자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서운 것들. 솔직히 복수고 지랄이고 간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어설프게 복수를 꿈꾸다 그 꼬맹이에게 두들겨 맞고 죽을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뭐 이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스 조장님. 물 가져왔습니다.”
잽싸게 뛰어갔다 온 한스는 헥헥거리며 시원한 물이 담긴 물통 하나를 건넸다. 잠시 무시무시한 꼬맹이에 대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다스는 물을 낚아채며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 들이키는 모습이 얼마나 시원한지 한스가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자 다스는 남은 물을 슬쩍 건네준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갈구는 건 갈구는 거고 이 여름에 겨우 시원한 물 한 방울 가지고 쪼잔하게 굴 고참은 아니다. 또한 다년간의 해병대 생활과 이곳의 경비대 생활을 통해 쫄따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벌컥벌컥.
“아! 시원하다. 정말 시원합니다.”
다스는 물 한 모금에 좋아하는 한스를 보며 피식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한산한 북문 밖으로 시선을 향한다.
어차피 일반적인 통행인들이야 한스가 앞에서 모두 처리하기에 그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솔직히 어제와 같은 상인들도 그리 자주 지나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제는 대박 중 대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 덥다. 야, 나 성문 뒤쪽 그늘에 있을 테니 뭔 일 있으면 불러라.”
“알겠습니다.”
사람이 뜸할 시간이라 아주 간간이 들어오는 통행인들을 검문하던 한스는 얼른 대답을 하며 그 땡볕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맡은 바를 충실히 한다. 반면 다스는 그늘이 진 성문 뒤로 들어가 슬쩍 기대어 섰다.
전형적인 고참의 모습이었다.
그늘도 덥긴 했지만 그래도 땡볕보다는 낫다. 어차피 이 시간에 누가 감사를 올 일도 없고 동문이 아닌 이곳으로 높으신 분이 지나갈 일도 별로 없다. 또한 성문 뒤쪽이니 근무지 이탈도 아니고 걸려도 화장실이 급해서 그랬다고 하면 그만이니깐.
‘벌써 6년이 넘었구나.’
문득 떠올려 보니 이곳에 배속되어 근무를 한 지도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 6년 동안 성문 경비병 직책에서 몇 번이나 진급되어 상급 경비대로 배속될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이곳을 고수한다. 어차피 가장 천대 받는 직책이었기에 상부에서도 강제이행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북문, 이 얼마나 좋은 근무지인가.
다스에게 있어서는 비록 급여가 짜긴 하지만 공기업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신의 직장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이제 직업 경비병이라 야간 근무도 없을뿐더러 북문은 특성상 간간이 부수입까지 상당히 짭짤한 편이다.
동문이야 워낙 보는 눈이 많고 귀족들과 상관들이 심심하면 드나들기에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서문과 남문은 어차피 상인들이 들어올 수 없어 부수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 여기만큼 좋은 근무지도 없지. 난 여기서 평생 뼈를 묻는 거다.’
다만 경비병이라는 직책 자체가 매우 낮은 직급이다 보니 더 이상 진급은 하지 못하고 호봉만 계속 올라가는 처지가 흠이라면 흠일까? 당연히 직책이 낮으니 호봉이 올라가도 급여가 짜다. 그래도 그것을 충분히 상쇄할 정도의 부수입이 생기니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자칭 선택받은 자들의 신의 근무지에 배속되어 있는 다스는 그저 멍하니 시원한 성문 그늘 아래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