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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6화)
2장 지금 경비병 무시하냐?(2)


“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
몸도 마음도 나른해지니 갑자기 결혼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곧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곳도 남자가 도심가에 집 한 채 없으면 결혼하기 힘든 것은 기본이고 좀 괜찮다 싶은 여자와 결혼을 하려면 당연히 스펙이 뛰어나야 한다.
거기다 몬타나 시티 내에는 능력은 물론이고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 명품 좋아하고 고스펙을 가진 한참 유행하는 소설 속 내용인 기사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허영심 많은 골 빈 된장녀들이 널렸다.
명품을 좋아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가진 것도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것들이 머릿속에 허영심만 가득 찼다는 것이 문제다. 그녀들은 자신이 신데렐라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데렐라? 그런데 동화 속 왕자님이 신데렐라를 왜 택했을까?
전형적인 동화 속의 설정인 착하다? 독심술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겨우 무도회장에서 한 번 보고 착하다고 판단을 하기는 좀 힘들지 않나 싶다.
결국 요정이 꾸며 준 외모에 이끌렸다는 건데, 나쁜 동화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딱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케이스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동화 속 해피엔딩이 현실 속에서는 내연녀, 혹은 잘되어 봐야 첩이 아닐까?
허망하고 거짓 가득 찬 동화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솔직히 고스펙 기사들이 주위 사교계에 괜찮은 집안의 여자들이 널렸는데 뭐 볼 게 있다고 그런 골 빈 된장녀들과 결혼을 하겠는가.
그녀들은 항상 자신만의 판타지 속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당연히 나만은 예외라고 외치며 현실 도피를 하고 있다. 그래 자신이 만든 판타지니 스스로가 공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반면 다스는 나름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해도 그것도 쉽지가 않다.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호감도에 따라 공략을 해 보겠지만 이건 뭐, 게다가 군에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여자가 군에서도 최하층이라는 경비를 좋아하겠는가.
몇 번 도전을 해 본 적이 있으나 번번이 퇴짜 맞은 아픈 기억도 있다.
집이라도 구해서 어찌해 보려 해도 도심지의 집값이 한두 푼이 아니다. 크게 한 방 터뜨리지 않는 이상 평생을 모아도 집 한 채 구하기 힘들 것 같았다.
도시 여자들이 고생할 것 뻔히 아는데 뭐가 아쉬워서 집도 돈도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겠는가. 현실은 도피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젠장. 어차피 대한민국이나 여기나 엿 같은 인생이긴 마찬가지다.”
그래 아무리 능력이 없다고 생각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그는 문득 어제 보았던 그 여인네가 떠오른다.
“확실히 얼굴 하나만은 최고였지.”
예쁜 여자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겠나? 밤마다 그런 여자가 옆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 봐라.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리지 않는가.
얼굴이 예쁘면 1달 가고, 몸매가 좋으면 3달, 성격이 좋으면 3년, 똑똑하면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다 헛소리다.
얼굴만 예쁘고 몸매만 좋으면 평생 간다고 믿는다. 그것은 방울 두 개 달린 수컷들의 공통된 생각이며 당연한 본능이다.
“그래 혹시?”
그는 이미 꿈을 넘어 망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죄는 아니다. 까짓것 어제 일도 있으니 망상에서만이라도 그녀의 남편 혹은 소유주가 되어 열심히 상상해 본다.
다만 모든 사건의 원흉인 그 사악한 꼬맹이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마저도 싹 가신다. 이제는 귀엽다는 생각마저도 들지 않는다.
“망할 꼬맹이. 다시 한 번 보기만 해 봐라. 엉덩짝을 일본 원숭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주마.”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다. 다스에게는 그럴 만한 재주가 없다. 도로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에이. 망할.”
하릴없이 실현 가능성 없는 망상이나 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래도 이곳 유라시안 대륙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설마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다.
결국 그는 있는 놈만 예쁜 마누라 엉덩이 두드리는 더러운 사회라고 외치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살그머니 기댄 채 바닥으로 쓰러지며 잠이 든다.

몬타나 제국이 발달하면서 군권도 어느 정도 분리된다. 과거는 기사들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지만 신분제가 철폐됨에 따라 전문 군 지휘관들의 관직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명령체계가 완전히 분리된다.
일반적인 집단 전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는 병사들과 개개인이 뛰어난 기사들이 이제는 다른 명령체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허나 아직까지 기사라는 직책 자체가 엘리트라는 인식이 박혀 있고 대우가 좋기 때문에 대부분 능력이 좀 있는 자들은 군 지휘관직보다는 기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국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군권을 귀족 이하 기사들이 도맡던 시대는 이미 지났음이 틀림이 없다.
“마지막 훈련 하루 그냥 쨌는데 괜찮을까?”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훈련 상황 검토하는 교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도시로 살짝 들어가서 오늘 하루 질펀하게 놀다가 내일 일찍 나가서 저녁에 동문으로 들어오면 되는 거야.”
“그래도 불안한데.”
하위 기사 계급체계는 대개 연수생, 수습기사, 정기사 이렇게 3단계로 나눈다. 이제 막 기사에 입문하여 기본적인 소양을 익히는 것이 연수생이라면 연수생을 졸업하고 정기사가 되기 위한 필요한 지식과 훈련을 익히는 것이 수습기사다.
그리고 지금 지저분한 옷에 검을 하나 치렁치렁 걸치고 북문을 향해 걸어가는 4명이 바로 수습기사들이었다.
“불안은 무슨. 우리 선배들도 가끔 쓰던 수법이야. 나도 전수 받은 거야. 하하. 그리고 동문이 아닌 경비병들은 이 인장만 내보여도 그냥 숙이며 통과를 시켜 준다는 걸 잘 알잖아.”
수습기사라는 표시는 가슴에 달린 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수습기사부터 가슴에 달 수 있는 수습기사의 인장이 수여되는데 이것은 기사로서의 명예로 불리기에 어딜 가나 항상 차고 다닌다.
기사 자체가 엘리트라는 인식이 강한 터라 예비 정기사인 수습기사들 역시도 인장을 자랑스러워하며 그들만의 프라이드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훈련이 마무리니 얼마 안 있으면 정기사가 되는구나. 기사의 인장을 수여하는 그날이 기다려지는데.”
“마찬가지다. 이 가슴에 기사의 인장을 차는 날, 이제 몬타나 시티의 여자들은 모두 내 여자가 될 거다. 하하하.”
“크크. 맨날 여자 타령이냐? 하긴 뭐 남자가 여자 빼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겠냐만은.”
기사라는 직책은 일반적인 행정 고위 관료 이상의 고 스펙으로 쳐 준다. 물론 법적으로는 최하급 기사인 10급 정기사는 조금 더 대우가 좋은 하급 공무원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내려온 기사에 대한 인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기사에게 귀족 작위를 주고 왕이 직접 수여하던 시대는 지나 이제 그들도 국가의 공무원 취급을 받고 있지만 엘리트 특권 의식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었다.
때문에 조금 능력 있다 하는 엘리트들은 모두 기사를 지원하는 편이고 그런 엘리트 편향 현상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 보였다.
“이제 이 수습기사의 인장도 마지막을 고할 때가 왔단 말이지?”
그들은 이제 곧 정기사라는 엘리트의 신분으로 격상될 자격 요건이 있다는 것을 과시해 주는 가슴에 달린 수습기사의 인장을 자랑이라도 하듯 가슴에 힘을 준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북문을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느새 기대어 잠이 들었던 다스는 귀를 간질거리는 다툼 소리에 스르르 눈을 떴다.
“제가 따로 통보를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이 자식이, 너 우리가 누군 줄 알아? 기사야, 기사. 너 모가지 날아가고 싶어?”
“통행증에 허가되지 않은 무기 반입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통행증도 없지 않으십니까? 그 누구라도 통행증도 없이 무기를 들고 도시 내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한 명은 한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상관이라도 되는 듯 언성을 높이는 놈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 정신 나간 미친놈들이 적어도 두 놈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내일이 훈련 마감인데 하루 일찍 마무리 짓고 오는 거라고 설명을 했잖아. 너 경비병 주제에 건방지다. 이 수습기사의 인장이 안 보여?”
“그러니깐 제가 상부에 확인 후 통과시켜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상부 확인? 이 하찮은 경비병 새끼가 미쳤나?”
“크윽.”
한스와 언성을 높이던 수습기사 한 명이 상부 확인이라는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라 맹렬하게 화를 내며 한스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어차피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으니 그들은 거침없이 행동을 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쓰러졌던 한스가 가슴을 부여잡자 수습기사들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너 옛날 같았으면 하찮은 경비 주제에 기사에게 대든 죄로 바로 즉결 처형이야. 넌 바로 그 자리에서 모가지가 잘리는 거였어. 알겠어?”
순간 아직 17살밖에 안 되는 어린 한스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여전히 기사들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유라시안 대륙이었기에 특히 한스 같은 어린 이들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 이 기사 분들이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아서 그냥 넘어가 주는 거니깐 앞으로 조심해. 알겠어? 야! 가자.”
항상 그렇듯 일반 최하위직 경비들은 기사들의 횡포를 보고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 마련이다. 아니 솔직히 횡포를 보고한다 하더라도 기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은 중앙기사단 내부에 있었다.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겨우 경비 하나 때린 것 가지고 큰 문제로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훈련지 이탈은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스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중앙기사단의 권한이 상당히 큰 만큼 경비대에서도 혹시나 중앙기사단으로부터 불똥이 튈까 쉬쉬할 것이 뻔했기에 이들은 이렇듯 안하무인격으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이, 거기 양아치들. 잠깐.”
겁먹은 채 쓰러진 한스를 비웃으며 지나가던 4명의 수습기사들은 성문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어떤 미친놈인가 싶어 고개를 스르르 돌린다.
“이 새끼들이 드래곤 고기를 삶아 드셨나? 감히 성문에서 경비병에게 행패를 부려?”
여전히 아픈지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한스는 다스가 나오자 반색을 지으며 얼른 일어나 그의 뒤로 갔다. 한스가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직속 선임인 다스임이 분명하다.
다스는 겁먹은 한스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실룩거린다.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항상 갈구고 기합을 주더라도 한스는 자기 쫄따구다. 아무리 고문관이라고 해도 자신의 쫄따구가 저딴 놈들한테 맞았다는 것은 매우, 상당히 기분이 나쁜 일임이 틀림이 없었다.
“넌 잠시 뒤로 가 있어라.”
그런 다스의 행동에 수습기사들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며 비웃음을 띠웠다. 하지만 다스는 그런 비웃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북문 경비병 조장이냐? 도대체 수하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똑바로 안 해?”
“내가 북문 경비 조장인 건 맞는데. 그래서 뭐?”
건방진 다스의 반말 어투에 수습기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위협하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새끼 완전 간땡이가 부었네.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잘 알지. 10년 이하의 징역을 때릴 수 있는 제국 군법 제12조 23항에 의거한 경비 폭행범.”
미친 듯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수습기사들은 움찔한다.
진짜 알고 내뱉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솔직히 군법을 꿰차고 다니는 할 일 없는 인간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혹시 만약에라도 경비병을 폭행한 일이 군법적으로 넘어가면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너 우리를 잘 모르나 본데 가슴을 잘 봐, 인마.”
그들은 과시하려는 듯 가슴에 달려 있는 수습기사의 인장을 내밀며 고개를 으쓱인다. 다스는 그런 그들의 행동에 물끄러미 인장을 바라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허억. 설마?”
“그래. 그 설마가 이 설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어르신들인지 알겠지?”
수습기사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정체를 알았냐는 듯이 수습기사라는 데 매우 뿌듯해했다. 하지만 다스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 미친놈들, 나…… 나는 그런 취미 없다. 난 게이가 아니란 말이다.”
게이라며 질겁한 그의 모습에 수습기사들은 순간 칼을 뽑을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무리 막나간다 하더라도 경비병을 무기로 상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꺼림칙한 일임이 틀림이 없다.
“아놔 이 꼴통 새끼. 누가 내 가슴 보라고 그랬냐? 가슴에 달린 이 인장을 보라구.”
그제야 다스는 슬그머니 수습기사의 인장을 바라본다. 슬쩍 한번 인장을 바라본 다스는 코를 후비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는다.
“그게 뭔데.”
설마 진짜 몰라서 묻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수습기사들은 이 발언에서 기사인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어감을 받았지만 진짜 모를 수도 있다 싶어서 참았다.
“너 수습기사의 인장이라는 것도 몰라?”
코를 후비던 다스는 깜짝 놀라며 슬쩍 한 걸음 물러선다.
“설마 당신들 기사?”
다스의 그런 모습에 수습기사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얼굴을 한다. 일반적으로 기사를 바라보는 당연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런 제가 큰 실수를…….”
“그래. 인마. 몰랐으니깐 됐어. 기사인 나 군타 유바르자 님이 특별히 오늘은 조용히 넘어간다.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해라.”
비록 아직 정식 기사인 정기사는 아니지만 이제 곧 기사가 될 몸이 아닌가. 그래도 기사 대접을 받자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듯했다.
그렇게 수습기사들은 다스가 알아서 꼬리를 내리자 만족스러운 듯 그의 어깨를 한번 툭툭 치고는 다스와 한스를 지나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