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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7화)
2장 지금 경비병 무시하냐?(3)
그렇게 그들이 다스에게 등을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좀 전의 고개를 급히 숙이며 겁먹고 있던 표정이 싹 바뀌며 재빨리 눈은 성문 주변을 훑는다. 눈빛으로 보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는 듯했다.
곧 확인이 끝났는지 그의 오른쪽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라고 할 줄 알았냐?”
빠악.
“으악!”
다스는 재빠르게 들고 있는 창으로 한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안 그래도 어제 일 때문에 기분 엿 같았는데 너희들 잘 걸렸다. 오늘 복날 개 맞듯이 맞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내 몸소 가르쳐 주마.”
동시에 나머지 놈들에게는 등 뒤에서 잔인하게도 아랫도리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연속으로 걷어차는 초전박살 2단 연속 초필살기를 보여 준다.
“컥!”
불시에 기습을 당한 셋이 쓰러졌다. 아직 경험은 물론이고 실력도 일천한 수습기사들이라 그런지 제대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당황했다. 결국 다른 한 놈도 다스가 휘두른 창에 그대로 등짝을 가격당하며 쓰러진다.
“정기사도 아니고 직책도 쳐 주지 않는 수습기사 찌끄래기 새끼들이 감히.”
현실적으로? 모나지 않게 얇지만 길게, 그래 물론 그것이 다스가 추구하는 삶이다. 아무리 공식적인 직책도 없는 수습기사지만 이제 곧 하급 공무원직이라 할지라도 10급 정기사가 될 자들을 상대로 잘하는 짓일까?
어제 너무 맞아 머리가 돌아 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뭐? 군타 유바르자? 이름 그대로 구타를 유발하는구나. 구타 유발자, 이 새끼 오늘 너부터 한번 죽어 봐라.”
정말 미친 것이 아닌지 조금은 두고 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리할 때는 비굴하게 유리할 때는 악독하게 그것이 다스의 진정으로 추구하는 인생철학이라는 거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50%는 먹고 들어가는데 여기는 성문, 즉 다스의 홈그라운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황 판단을 하며 그의 머리는 빛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보통 일반적인 평범한 여성들은 성인인 17세를 전후로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지금 제국 내부에서도 17세는 너무 어리다며 성인 자격을 최소 19세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는 있으나 천 년을 넘게 이어져 왔던 전통이 쉽게 사라질 리는 없었다. 사실 17세도 연령이 올라간 편이다. 수백 년 전에는 15세를 기준으로 법적인 성인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귀족들은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조혼이라고 해서 생각만큼 심한 정도는 아니고 법으로 허용하는 성인식 이전의 2년 이내의 결혼을 말한다.
그럼 예전에는 13세에 결혼을 했다는 말인데, 솔직히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게다가 지금의 15세도 어리긴 마찬가지다.
귀족들의 경우는 특히 그 결혼이 까다롭다.
지금은 근친혼 자체가 완전히 금지되어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과거는 혈통을 중시했기에 4촌 이하의 근친혼까지 매우 성행하기도 했다.
어릴 적 혹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치적 성향이 묶여 있는 귀족들끼리 미리 혼약을 정해 놓는 경우도 많았다. 권력의 지배 구조 속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자식들은 원치 않는 결혼 속에서 평생을 불행을 안고 가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입헌 군주제도가 완전히 뿌리박힌 오늘날에 이르러 귀족이라는 권위와 타고난 혈통이라는 관념이 많이 사라진 터라 과거보다는 사회 자체가 많이 진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였다면 자식에게는 결혼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귀족 부모들도 자식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세실리아, 그 교르제 가의 사람 어디가 그렇게 싫니?”
“싫어, 무조건 싫어.”
이리아는 앞서 걸어가는 세실리아를 달래듯 말한다.
“6급 정기사에 부모는 명망 있는 백작가가 아니니. 게다가 사업처가 많아 상당히 부유하다고 들었어. 그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 인간 오늘 날 얼마나 변태 같은 눈길로 본 줄 알아? 은밀히 날 훑어보는 그 눈빛을 받으면 온몸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렇게 좋은 집안의 놈이 22살이 되도록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녀가 보기에 그 남자는 상당히 매너가 있고 생긴 것 또한 준수했다. 하지만 세실리아가 이렇게 질겁하는 것으로 봐서 거짓은 아닌 듯했다.
“흠.”
“언니나 엄마, 아빠 앞에서는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인 척했겠지? 하지만 오늘 우리 둘만 있으면서 얼마나 끈적끈적한 눈길로 날 본 줄 알아? 난 죽어도 싫어. 그런 인간이랑 살 바에야 차라리 그냥 평생 혼자 살겠어.”
그래도 최근 들어온 혼사 중 가장 괜찮은 조건의 남자였다. 부모님도 이리아 자신도 그를 한 번 만나 보고는 딱 마음에 들었지만 세실리아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사랑스러운 동생을 싫어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빠르게 결혼을 종용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올해 안에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럼 그 세이렌 자작가 남자는 어떠니?”
“그 사람은 느끼해서 싫어.”
“그럼 유피테르 가의 그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싫어.”
아무래도 이 아이가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하지만 집요하게 이리아가 지금까지 혼사가 들어왔던 남자들에 대해 묻자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럼 언니가 시집을 가던가. 왜 내가 언니보다 먼저 가야 되는데. 언니가 먼저 그 사람들 중 한 명 골라 가면 되잖아.”
“언니는 지금 마법 공부를 하고 있잖니. 보통 마법사들은 결혼을 늦게 하는 게 정설이란다.”
“흥. 그거 다 옛날 말인지 모를 줄 알고? 그럼 나도 검술 공부 때문에 지금은 결혼 못해.”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고집을 꺾기는 힘들어 보였다. 물론 이리아도 강요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부모님은 아마도 가만히 두고 보시지 않을 것이다. 저번에 대화를 나누어 본 바로는 강제로라도 결혼을 시키겠노라 다짐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후우.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아니. 아예 하지도 마. 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니깐.”
철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동화 같은 순수함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정치적 입지를 생각한다면 결혼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제는 무조건 강요가 아니라 그중에서 그나마 나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을 뿐이다.
‘세실리아, 미안하다. 나도 그렇겠지만 너도 어쩔 수 없을 거란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흥이라는 단어를 연신 내뱉으며 앞장서는 세실리아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언니 뭐해! 더 늦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자.”
얼마 전 세실리아를 배제한 채 교르제 백작가의 장남을 몬타나 시티로 와서 직접 대면했을 때에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자신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교르제 백작가로부터 세실리아를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 새벽 일찍 백작가가 보내어 준 마차를 타고 메트로 시티에 있는 교르제 백작가로 가서 세실리아를 인사시키고 둘만의 만남을 가지게 해 주고 오는 길이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그를 만나고 나오자마자 질겁한다. 세실리아도 내심 마음에 들기를 바랐건만…… 부모님은 이미 교르제 백작가와 사돈을 맺을 마음을 굳힌 듯했기에 동생의 행동이 더욱 안타까웠다.
“빨리 가자, 언니. 오늘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김에 맛난 것도 먹고 시내에서 놀다 가자.”
원래라면 교르제 백작가의 마차를 타고 바로 북문을 통과해 집까지 가야 했지만, 세실리아가 놀다 들어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북문 입구의 외곽에 내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실리아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귀엽고 소중한 동생이었다.
“그래, 그래.”
세실리아가 이리아의 손을 잡고 이끌자 이리아는 동생을 향해 생긋 웃으며 동생의 이끌림에 동조한다.
동생의 손에 이끌려 가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북문이 보였다. 멀리라고는 하지만 느린 걸음으로 15여 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언니, 나 15섹터에 있는 분수에 가 보고 싶어. 얼마 전에 상당히 돈을 들여 정비를 했다던데 굉장히 예쁘게 잘해 놓았대. 오늘은 거기에 가 보자.”
이제 15살, 2년 뒤에나 성인이 되는 아직 어린 나이다. 게다가 지금 동생은 다른 또래의 아이들처럼 어리광을 피울 수 없는 위치에 올라와 있다. 가진바 재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아직 어린 세실리아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그런 부분을 겪으며 자라 왔기에 동생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항상 옆에서 지켜 주고 싶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알았어. 가 보자.”
“헤헤.”
그렇게 이리아의 손을 이끌고 북문을 향해 걸어가던 세실리아의 눈에 기묘한 북문의 상황이 들어왔다.
“언니, 저기 북문 쪽 좀 봐. 무슨 일 있나 봐.”
조금 멀기는 하지만 상황을 파악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경비병이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 같은데.”
“그렇구나. 저 네 사람 복장을 보아하니 수습기사들 같은데 수습기사들이 왜 경비병을?”
의문 가득한 눈길로 조금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세실리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앗!”
수습기사 중 한 명이 성문 경비병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행동으로 보아 폭력을 먼저 휘두른 수습기사들이 충분히 잘못한 상황이었다.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과거 자주 발생했던 권위의식에 빠진 기사들의 깡패 같은 짓거리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다.
눈앞의 상황도 그런 부류가 분명했다.
그녀들이 경비병을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다행히 수습기사들도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는 않은지 쓰러진 경비병을 그냥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북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성문 뒤쪽에서 또 다른 경비병이 나오더니 수습기사들과 시비라도 붙듯 대치한 채 있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세실리아, 일단은…… 세실리아?”
이리아는 일단 경비병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으며 세실리아를 부르는데 세실리아의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실리아, 왜 그러니?”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리아가 묻자 세실리아는 손을 가리켜 지금 성문 뒤쪽에서 나온 또 다른 경비병을 가리켰다.
“저놈.”
“응? 저놈?”
“방금 나온 저놈, 그놈이야.”
낮게 깔린 세실리아의 목소리, 이리아는 세실리아의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니?”
“저 경비병 놈 어제 식당에서 봤던 그 비겁한 놈팽이 놈이야.”
비겁한 놈팽이?
어제의 시간만으로 그런 명칭을 부여 받을 인간은 그녀의 기억 속에 단 한 명밖에 없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리아는 최대한 시선을 모아 경비병에게로 집중했다.
아무래도 소질에 따라 육체적인 검술을 수련하는 동생보다는 타고난 감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껏 집중을 해서야 그 사람의 얼굴 윤곽이 어느 정도 파악 가능했다.
“어머! 진짜네. 그 사람 북문 경비병이었나 봐.”
“저 남자 같지도 않은 비겁한 자식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나.”
세실리아는 어제 그가 마지막에 도망가며 지었던 표정이 생각이 나는지 나지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이리아는 낮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니? 가서 도와줄 거야? 아니면 저대로 당하게 놔둘 거니?”
수습기사 4명쯤이야 세실리아에게는 한 끼 식사거리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리아는 동생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흥미를 가지며 그녀를 바라본다.
“저딴 녀석 도와줘 봐야 소용이 없겠지만 저대로 묵사발이 되어 버리면 내가 건들 공간이 줄어들 테니깐. 일단은.”
“호호. 아니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겠네.”
상황을 보니 경비병이 꼬리를 내린 듯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과 수습기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확 구겨지며 길길이 날뛴다.
“아! 저놈 또 저러네. 어제 그렇게 나한테 혼나고도 또 저 지랄이야? 남자라는 놈이 자존심도 없나? 저런 놈은 맞아야 돼. 오늘 내 이름을 걸고 저놈을 두들겨서라도 개조시켜 주겠어.”
솔직히 세실리아가 날뛸 일은 아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저 비겁한 행동에 그냥 화가 났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리아도 조금 의아해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인상을 찌푸릴 수는 있으되 굳이 화가 나서 날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는 동생의 반응이었기에 그냥 잠시 지켜보기로 한다.
“어?”
이리아가 세실리아를 보고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북문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수습기사에게 고개를 숙이던 그 경비병이 수습기사들이 등을 돌리자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하니 경비병이 공격을 할 줄은 이리아는 물론이고 세실리아도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