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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0화)
3장 또 너냐?(3)
수습기사들이 분노한 비상대기조들에게 또다시 두들겨 맞은 채 끌려갔다. 그리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한스는 비상대기조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치료를 위해 오늘은 근무에서 빠졌다. 물론 다스는 그를 은밀히 구슬려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반면 다스는 괜찮다며 홀로 성문에 남아 한스를 대신해 줄 지원 경비병이 올 때까지 수습기사들로부터 턴 돈주머니를 세며 기다렸다.
“이게 얼마냐? 좋아. 수입 짭짤한데. 한스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얼굴은 미안한 표정이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자신의 팔에 기스를 낼 생각을 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막상 날카로운 칼을 보니 마음이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 때마침 한스가 눈에 들어왔고 결국 불쌍한 한스는 이유도 모른 채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소중히 품속으로 집어넣은 다스, 오늘 거하게 한잔할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어차피 한스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수습기사들은 다스가 생각하고 있는 수 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를 채택할 터, 그리고 최고 우선순위로 정해 놓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벌어지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한스가 입을 여는 최악의 상황만 가지 않으면 된다.
‘잘 구슬려 놓았으니, 함부로 입 놀리진 않겠지. 뭐 자기도 기사를 때렸다는 괜한 위화감과 불안감이 있을 테니.’
“그렇게 좋냐?”
여러 가지를 상황별로 머릿속에서 정리하던 그의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스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뭐…… 뭐야?”
죄를 지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심박수가 증가하며 놀란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어머?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놀랄까나?”
놀란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다스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어제의 그…….’
상당히 주목 받을 만한 화려한 외모를 지닌 여자와 귀엽게는 생겼지만 하는 행동은 전혀 귀엽지 않은 꼬맹이, 어찌 이 얼굴들을 잊을 수 있으랴.
“어이 비겁한 놈. 저기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하는 짓도 너한테 어울리게 참 비겁하더라.”
오늘도 이 꼬맹이가 자신의 염장을 지른다. 성질 같아서는 엉덩이라도 벗겨 놓고 찰싹찰싹 갈겨 주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분명 목이 성치 못할 것이다.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의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능청스러운 대답에 꼬맹이, 세실리아는 그를 말없이 지그시 노려본다. 처음에는 지지 않으려 세실리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노려보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그의 시선이 떨려 왔다.
사이코 패스가 아닌 이상, 죄가 있는 보통 사람은 사람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가 보다.
“너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야?”
세실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놓으며 자신보다 키가 큰 다스를 올려다본다. 마치 감히 누구에게 구라를 치냐는 듯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괜히 구린 것이 있어 뜨끔거린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경비병은 그렇게 한가한 직업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통행증이나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도 강렬한 세실리아의 눈빛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다스는 그녀를 무시하며 옆에서 그냥 조용히 웃고만 있는 이리아에게 다가가 통행증 제시를 요구했다.
“야! 너 내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거야? 어제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
무시를 당한다는 기분이 들자 세실리아는 버럭 화를 낸다. 하지만 다스는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했다.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얼굴은 넘어져서 생긴 상처일 뿐입니다.”
“어떻게 넘어졌는데 얼굴이 그렇게 떡이 되냐? 핑계를 대려면 제대로 대야지. 너 바보 아니냐?”
당연히 세실리아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구라를 치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다스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싹 무시할 뿐이다.
“떡이 될 정도로 졸라 넘어졌습니다. 누구신지 모르나 바쁘니 더 이상 업무를 방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간 세실리아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눈치 빠른 다스는 얼른 그녀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이리아에게 손을 뻗는다.
“통행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그러자 이리아는 현재를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 거리낌 없이 통행증을 꺼내 보인다.
“여기.”
“음. 1급 통행증이군요.”
“네.”
몬타나 제국 소속의 도시뿐만 아니라 전시가 아닌 이상 타 왕국의 도시라도 어느 곳이든지 자유로이 통행이 가능한 1급 통행증은 쉽게 발급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고위급이 아닌 이상 발급신청조차 불가능한 굉장히 레어틱한 종이 쪼가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동문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 통행증이지만 북문에서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것이었기에 다스는 상당히 놀란다. 게다가 보통 늙은 노인네들이 화려한 마차를 타고 다니며 이런 통행증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위조가 아니라면 이들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런 통행증을 지닌 이들을 잘못 건들면 수습기사 떨거지들이 말했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리진다는 의미를 정말 몸소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거 진짜 똥 밟은 거 아냐?’
1급 통행증의 위력은 그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꿀꺽.
다스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식은땀과 함께 침을 삼킨다.
1급 통행증 위조는 최소 1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큰 범죄다. 아무리 대강대강 근무 서고 대충 확인하는 다스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최대한 꼼꼼히 인장과 위조 방지를 위해 장치된 몇 가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요?”
위조 방지 여부를 확인하는 다스를 향해 이리아가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다스는 습관적으로 대답을 한다.
“네.”
“얼굴 부위 상처가 조금 있어 보이는데 괜찮으시고요? 많이 아프실 것 같은데.”
그는 아직도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뭐 견딜 만합니다.”
“저와 제 동생이 상당히 걱정을 했거든요. 어제 일은 저희가 좀 심한 듯해서 사과도 좀 할 겸 해서.”
“그게 사과로 끝날 일이었…….”
그제야 유도 신문이라는 것을 인식한 다스는 아차하며 입을 다문다. 그리고 1급 통행증에서 시선을 돌려 이리아를 바라본다.
이 여자도 결국 한패라는 것을 미모에 홀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여전히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달랐다. 조금 전부터 무시를 당했던 터라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그를 죽일 듯 노려본다. 특히 세실리아의 그 무식한 힘을 어제 직접 보았던 다스였기에 등 뒤로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니기미. 엿 됐다.’
어쩌면 오늘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스는 대강 확인이 끝난 1급 통행증을 이리아에게 던지듯 건네준다.
“토…… 통행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제국 경비병을 폭행하면 중죄라는 것을 아시죠?”
폭행과 중죄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말한 뒤 그는 얼른 그녀들을 지나쳐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 성문 밖의 공간으로 나간다.
“물론 경비병을 폭행하는 것은 매우 큰 중죄지. 하지만 자해공갈도 그 못지않은 중죄일걸?”
세실리아다. 보아하니 그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지켜본 것이 틀림이 없었기에 그는 멈칫한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는데 그녀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위증죄까지 추가하고.”
전생에 얼마나 원수지간이었는지, 그녀로 인해 어제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이틀 동안 10년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정말 엿 같은 일을 연속으로 겪어야만 했다.
“아까 끌려갔던 기사들에 대한 폭행죄까지 추가에 기사들을 농락한 괘씸죄까지 포함, 게다가 언니와 내가 증인을 서면 90% 이상 먹힐 가능성이 높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족히 10년 이상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걸?”
멈칫했던 다스의 뒷모습이 이번에는 눈에 띄게 움찔한다. 그러고는 서서히 등을 돌려 다시 그녀들을, 아니 정확히 세실리아를 바라본다.
다스는 바보가 아니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원하는 것이 있을 터, 그 와중에도 돈은 빼앗기기 싫다는 듯 돈주머니가 든 품을 꽉 부여잡는다.
“그래서?”
다스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착 가라앉아 있다. 물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음은 변함이 없다. 반면 세실리아는 오늘 제대로 걸린 다스를 보며 득의만면한 표정을 짓는다.
“뭐 나중에 내가 시키는 일 딱 세 가지만 해 주고 지금 내 앞에서 ‘어제 여자들을 버리고 가려 했던 제가 큰 잘못을 했네요. 아름다운 아가씨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용서를 빈다면 조용히 입 다물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데. 어때?”
협박에 다스의 몸이 살짝 떨려 온다.
분명 1급 통행증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들에게 무시 못할 수준의 힘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의미일 테고 이 모든 사항을 고해바친다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건 다른 것을 다 떠나 남자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엄밀히 따지면 어제 꼬맹이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은 자신인데 도리어 용서를 빌라니,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그는 결국 표정을 굳히며 그녀들에게, 정확히 세실리아에게 다가간다. 마치 전투 준비 태세라도 갖추듯 창을 든 오른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세실리아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는 얼굴이다.
‘뭘 하려는 걸까?’
어제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다스가 그녀들을 어떻게 공격을 하더라도 결코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만큼 그녀들의 실력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도 나름 용감과 정의의 상징인 해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아닌가.
그는 그녀들의 앞에 떡하니 그리고 당당하게 서며 창을 옆으로 내던진다.
그리고.
“아놔. 이것들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깐.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이 조막만 한 꼬맹이가 진짜. 그냥 콱!”
주먹을 들어 한 대 때릴 기세의 다스를 보며 세실리아는 같잖다는 듯이 조용히 바라보며 입을 연다.
“그냥 콱 뭐?”
차마 주먹을 내리꽂지 못한 다스는 억지로 참는다는 듯 슬쩍 몸을 돌린다.
“어무이, 저 오늘 이 꼬맹이를 상대로 사고 한번 제대로 칩니다. 용서하십시오. 으합!”
몸을 돌리는 척하며 순간의 방심을 노린 것일까?
그는 과감하게 기합성을 내뱉으며 해병 태권도 1단의 솜씨를 뽐내듯 멋진 옆 돌려차기를 선사했다. 순화된 말로 급작스러운 빠른 공격,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비겁한 공격스킬인 그의 특기가 발동된 것이다.
‘그래 어제는 맥주를 너무 마시는 바람에 취해서 헛것을 본 것이다. 이런 꼬맹이가 그런 힘을 낸다는 것은 말이 안…….’
겨우 맥주 한 잔 먹고도 취할 수 있다면, 취한 게 맞다면 정말 다행이지 않았을까?
턱.
“…….”
조막만 한 손에 떡하니 잡힌 그의 다리, 그리고 감히 날 기습 공격해? 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라는 의미가 담긴 세실리아의 눈빛, 그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저…… 저기.”
다스의 목소리가 점쳐 떨려 온다.
“남기고 싶은 유언은?”
기습 공격을 너무도 쉽게 막아 낸 세실리아는 비웃음을 지으며 그를 노려본다.
“잘못했는데요.”
오른쪽 다리를 잡힌 다스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세실리아의 얼굴에도 자그마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자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는 다스는 이번엔 활짝 웃어 보였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따뜻해 보이는 세실리아의 입술이 살며시 열렸다.
“이미 늦었어.”